디지털 문명 특성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생산하는 데이터들이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찾고 있는것인지, 어떤 고객을 포기하고 어떤 고객을 잡아야 하는지, 심지어는 한 사람의 고객이 때에 따라 왜 다르게 반응하는지도 이해하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소비자를 헤아리는 마음고객이 왕인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그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는 건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필수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SNS 활동을 통해 디지털문명을 제대로 경험하고 공감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진정성 있게 대화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며 그 문명이 갖고 있는 유머 코드와 재치 있는 이모티콘 표현도 학습해야 합니다. 고객을 알려면 디지털 문명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SNS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학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소비자는 정말 다양합니다. 마켓 세그멘테이션을 전공한 사람들이 얘기하듯, 백인백색을 넘어 일인백색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 면접을 보는 게 기본입니다. 신입사원이 그렇습니다. 매니저급 인재를 뽑을 땐 훨씬 더 많은 인터뷰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엄청난 실적을 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그런 특별한 인재를 뽑기 위한 프로세스를 구축한 결과입니다. 이들이 뽑는 인재는 당연하게도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유튜브를 즐겨 보고 킬러콘텐츠를 보유한 유튜버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잘 활용해서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경험한 사람들, 유행한 게임의 특성과 소비자를 끌어들인 성공 요소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 아마존이 왜 다른 플랫폼에 비해 매력적인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경험한 사람들, 이런 인재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소프트웨어 기획이나 개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 경험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어떻게든 스카웃하고 싶은 인재가 됩니다. 우리 회사는 이런 인재를 얼마나 찾고 있는지, 그런 인재들이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게 배려하는지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합니다.
킬러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뛰어난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킬러콘텐츠가 만들어진 과정을보면 종합예술과도 같습니다. 이 시대 가장 위대한 혁명가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의 문명 변화를

그 페이지를 인쇄해서 보관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6개월이 걸릴 일이었죠. 단순 반복 업무를질색하던 반 씨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 Python을 이용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반 씨의 카카오브런치에 올라온 글에 그 과정이 매우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반 씨는 일단 ‘파이썬과 함께라면 못 만들 것은 없다.‘는 마음가짐부터 다집니다. 그리고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실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바로 구글에 ‘Python crawler Library‘
를 검색합니다. 파이썬에서 라이브러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자주 사용하는 코드를 하나의 함수나 클래스라는 단위로 묶어서모아놓은 것입니다. 반 씨는 이중 셀레니움selenium이라는 이름의 라이브러리가 적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바로 ‘셀레니움으로 무적 크롤러 만들기‘ 사이트에 들러 학습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직접 코딩을 시작하죠. 이때부터는 전체 업무를 단계별로 나누고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하기에 생각의 힘이 작동합니다. 그렇게 반 씨는 직접 작업하면 6개월이 걸릴 업무를파이썬으로 30분 만에 해결해버렸습니다. 이 놀라운 혁신이 알려지자 고용노동부는 반 씨를 초청해 행정 업무의 자동화 방안에 대해 아이디어 제안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가 가진 디지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답은 ‘불가능하다.‘입니다. 그가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인재가 된 것도 바로 디지털 문명에 기반한 새로운 소프트웨어산업의 생태계 덕분이지요. 그러니 어려서부터이 문명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비교해봅시다. 책으로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학원에 가서 코딩을 배운 아이와 구글링, 유튜브를 매일같이 보고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만든 오픈소스 코드를 풀어가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 이 둘의 능력치는 얼마나 다를까요? 아마 후자의 아이가 새 문명을 이끄는 데 더 적합한 능력치를 가질 것입니다. 이제 스마트폰 문명에 기반한 디지털 학습 능력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요건이 되었습니다. 이걸 단지 부작용을 걱정해 막기만 한다면 유능한 미래 인재도 성장할수 없습니다.
구글 신과 함께한 혁신디지털 문명이 익숙해지면 생각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2018년 사회복무요원으로 대구노동청 안동지청에서 일하던 청1년 반병현 씨가 멋진 혁신을 보여줍니다. KAIST 바이오-뇌공학석사를 마친 반 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매우 단순한 업무를 지시받았습니다. 안동지청에서 보낸 3,900개가 넘는 등기우편 13자리 등기번호를 우체국 홈페이지에 일일이 입력한 뒤

최근 26세의취업한 김태훈 씨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있습니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유합니다. 물론 지적재산권 가치가 높은 코드는 공개하지 않지만요. 김태훈 씨는 UNIST 학부 재학 시절, 딥마인드와애플이 비공개로 설정한 코드를 혼자 개발해 20여 차례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구글 브레인의 수장 제프딘Jeft Dean도 그의 코딩 실력에 감탄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할 만큼 IT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김 씨는 그들 중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인류에 기여하는 안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자는 취지로 만든 기업 오픈AI를 선택합니다. 2019년 일을 시작하는 그가 받을 첫해 연봉은 30~50만 달러(약 3억~5억 원)라고하니 참으로 어마어마합니다. 이것이 축적된 자본의 힘입니다.
이 정도 인재면 우리나라 대기업 초봉의 10배를 지불해도 아깝지않다는, 새로운 인재의 기준이 등장한 겁니다.
김태훈 씨는 훌륭한 프로그래머입니다. 그렇지만 SNS 활동과 오픈소스에 기반한 학습이 없었다면 과연 독학으로 능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인주문기 앞에서 주문을 못 해 쩔쩔매는 분을 보면, 다가가 친절히 도와드리면서 이분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스마트폰앱사용법을 알려줄 때도 무엇이 디지털 소비세대와 달라서 어려움을 겪는지, 그걸 이해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디지털 문명에 대해 왜 불만을 가지는지,
정말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불편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정적인 문제인지를 공감해야 합니다.
시장 혁명의 시대에 깊이 벌어진 문명의 틈을 메우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옵니다. 혁명은 급속한 문명 교체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기성세대에게는 신문명이 어렵습니다. 국민소득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에 태어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까지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생은축적된 시간의 역사입니다. 그 엄청난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분들을 국민소득 1만 달러, 2만 달러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서 더 값진 일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청년이라면 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들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시장은 무한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고객의 선택이 시장을 결정하는 디지털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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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시대의 감각있는 예술가를
그리고 그 예술가를 알아보고 지원한 사업가를 뒤쫓아본 시간

웬일인지
가족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세계와 비전과 감각을 공유한다고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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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무자본 창업이 가능할까? 
첫째, 모바일과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사업 초보자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동네상가를 임대해 운영하는 동네 장사뿐이었다. 창업 자본금도 5000만 원 넘게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1년 현재는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다. 무료 홈페이지, 무료 마케팅으로 전국의 수요자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무자본창업이 가능한두 번째 이유는,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초보가왕초보를 도와주면 된다는게 내 사업철학이다. 꼭 프로가 초보를 도울 필요가 없다. 저렴한 가격에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왕초보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은 초보여도 상관없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달랐다. 내가 헤어숍을 창업했는데 근처에 나보다뛰어난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폐업하게 된다. 고정비때문이다. 프로만이 살아남는 세계였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초보가 왕초보를 도와주면 돈을 벌수 있는 시대다.
참고로 나는 디자인 재능이 전혀 없으며, 어떤 프로그램도 만질 줄 모른다. 내가 만약 지금 로고 회사를 만든다면 다음과같은 플로를 따라 월 3000만원씩 벌자신이 있다.

1. 무료 홈페이지 제작 플랫폼을 이용해 로고 디자인 사이트

를 만든다.
2. 로고의 시장가를 조사한다. 전문가가 만든 로고는 최소10만원에서 시작하며, 크몽에서 5만 원에 판매하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초보이므로 로고제작가를 2~3만원대로 책정한다. 로고 회사에 의뢰해서 판매 시스템을 알아본다. 보통로고 회사는 3개의 시안을 주고 범위를 좁혀나가면서 의뢰자를 만족시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3개의 시안을 준비한다.
3. 로고를 만드는 플랫폼을 이용해 로고를 디자인한다. 아임웹, 웍스, 망고보드 등 수십 군데 해외 사이트에서 30초 안에로고를 디자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4. 인스타그램 스폰서 광고를 통해 매일 5000원에서 1만원정도의 비용으로 광고를 돌린다. 크몽을 통해 광고를 해도 좋다.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이용한 무료 마케팅도 가능하다. 참고로 난 돈을 들이지 않고 모든 마케팅에성공했다.
5. 사이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6단계 밸런스 이론‘을 적용한다(자세한 내용은 이상한마케팅 회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칼럼 코너 참고).
6. 점차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두 달 하다 보면 사람

들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간은 극도로 단축되고 고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진다. 순수익이월 300만원에 달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7. 단가를 높여야 하는 단계다. 실무를 하면서 로고 공부를제대로 하기 시작한다. 디자인 실무에 대한 책을 볼 수도 있고, 업계 1위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볼 수도 있다. 디자인학원을 다니거나 관련 강의를 듣는다.
8. 점차 입소문과 마케팅에 의해 초과 수요가 생긴다. 만들수 있는 로고의 양보다 의뢰 양이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면,
가격을 점차 상승시켜 수요를 조절한다.
9. 사업 자동화를 위해 직원을 고용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교육한다. 디자인 제품을 고급,중급, 초급으로 나누고 가격을 차별화한다. 매출규모가 커지면 이제 제대로 회사 형태로만든다. 이후 경영 서적을 보면서 회사 확장 방법, B2B 시장개척 등에 대해 공부해나간다.
10. 로고 회사가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로고와 관련도가 높은 주변 사업들(웹디자인, 배너 광고, 홈페이지 제작)로 확장해나간다.
11. 이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들도 무자본으로 창업해본다.
7번 이후는 기업 형태로의 발전이고, 사실 6번까지만 실행해도 먹고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인생의 자유를 보장할 확률은 높다.‘
이 책에서 경제적 자유와 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진정 말하고싶었던 주제는 행복이다. 만약 내가 행복에 대한 책을 썼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라는 주제를 미끼로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어디까지나 경제적 자유를 이룬 덕분이다. 누구도 돈 자체를 위해살지 않는다.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중요하다.
역행자 7단계 모델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그것이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주는 방법인 동시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끊임없이 생각했다. ‘어떻게 나 같이 멍청하고 열등했던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바뀔 수 있었을까? 나의 성공을 이론화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 방법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경험을 스스로 신기하게 여기며,
10여 년간 원인을 분석했다. 그렇게 수없이 고민하여 이론화한 것이 역행자 7단계 모델이다.
특히 1단계에서 자의식을 해체하지 못하면 역시 불행할 가능성

이 크다. 발전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다.
하지만 지나친 자의식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순간, 꼰대가 된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린 친구들에게 충고하며 자위하기 바쁘다. 모바일 세상에서 "저건 사기야", "금수저로 타고났으니까 성공한 거지" 등의 댓글을 써대며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깎아내린다. 자기 상처를 피하기 위해 자기 확신만 강한 꼰대가 돼버리는것이다. 이런 회피가 반복되면 기회를 계속 놓치게 되고, 어린 시절 꿈꿨던 멋진 삶은 사라진다. 앞서 놓쳤던 기회를 합리화하기 위해 더욱 비뚤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역시 행복하기가 어렵다.
4단계의 뇌 최적화 또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뇌를 최적화하고, 지능을 상승시킨다면? 의사 결정력이 높아진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은 대개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좋은 방향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가능성들을 찾아낸다면, 행복해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역행자의 모든 단계는, 돈 버는 법으로 위장되어 있지만사실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직 미숙하고, 큰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세상엔 나보다 똑똑한 사람, 부자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내가 이런 책을 내는 게 맞나 싶어 2년간 수없이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아이템은 수많은 사업 아이템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런 과정으로 돈을 버는구나‘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내가 로고 사업 아이디어를 말한 후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수많은 사례들이 나왔듯이, 여기서 제시하는 아이템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이 아이템들은 아무 기술력 없이, 돈도 거의 들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있는 것들이다. 나는 이 4가지 아이템들을 1주일 만에 생각해냈다. 아이디어 도출법은 간단하다. ‘와, 이거 누가 대신해줄 수 없나?‘ 싶은 걸 떠올리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행복을 주면 돈은 벌린다. 내가 창업한 사업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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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게임을 정말 잘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친구들과새로운 게임을 하고 나면, 나는 집에 가서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공략집을 몰래 읽었다. 친구들은 수백 판 게임만 하지만, 나는게임 횟수를 늘리기보다는 공략집을 읽는 데 몰두했다. 1~2주 정도 몰래 공부한 뒤에 게임을 해보면 비교가 안 된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압승할 수 있었다. 수백 판 게임을 한 친구를 100판만한 내가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게임 공략집 덕분이었다.
대화법 책 덕분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질 즈음, 나는 게임에도 공략집이 있듯이 
인생에도 공략집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게임의 공략집은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지만, 인생의 공략집은 바로 책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완전히 꽂혀버렸다. 어차피 더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감정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어떤 열등감이 자극됐는지 생각한다. 이런 ‘탐색‘이 자의식 해체의 1단계다.

1단계 ‘탐색‘은 사실 별것 아니다. 종종 누군가의 발언이나 존재에 불쾌함을 느낀다면 그 원인이 ‘자의식‘ 때문은 아닌지 알아보는것이다. 이 탐색의 효과는 놀랍다. 나의 비대한 자아와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질투하고 화내고 의심하는 유치한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 상처, 잘못 투사된 공격성, 비뚤어진 생각이 어느 정도 보인다.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생긴다.

그다음 2단계는 ‘인정‘이다. ‘왜 그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
내가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질투는 오히려 내 학습을 방해하니까, 질투라 인정하고 일단 상대방이 어떤 포인트에서 인기가 있는지 흡수해야겠어‘, ‘나는 왜 인기가 없지? 그냥 매력이 없나 보다. 매력이 없으면 높이면 되지 뭐‘, ‘돈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왜 기분이 나쁘고 상대를 적대적으로 보게 되는 거지? 사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선 돈이 필수 조건 중 하나야. 내가 지금까지 이 부분에서 자신이 없으니 회피했던 것 같기도 해, 지금부터 뭘해야할까?"

다들 돈,
돈 하니까 돈에 관심 많은 것 같지만
(또는 관심 많은데도 아닌 척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정말로 돈을 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버는 것과 관련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큰돈을 벌고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는 몽상가들에 가깝다. 
그런데 간혹어떤 계기로 정말 돈을 벌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의 지식이 100 정도였다고 하자. 그리고책을 읽으면 딱 1퍼센트의 지식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하자. 그렇게 1년에 12권씩 읽었다고 가정하면 10년 뒤 지식의 양은 얼마가 될까? 놀랍게도 330, 즉 3.3배가 된다. 겨우 한 달에 한 권 읽었을 뿐인데도! 
그런데 당시 나는 1년 남짓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 물론 모두 다 정독한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별로인 책도 많았지만, 중요한 건 머릿속에 새로 들어온 지식이 좀비가 돼서 다음 지식을 전염시키고(흡수하고), 다시 그다음 지식을 전염시키는 과정이 엄청속도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복리로 불어난 지식 덕분에, 군대 갈 때까지 7년간 대입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언어영역만점을 맞을 수 있었다.

뇌 속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식 발달은 복리로 이루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은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다(사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책뿐 아니라 신문조차 읽기 어려워하고,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봐도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화를 낸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내 유튜브를 보고 자극 받아서 추천도서 5권을 읽은 사람들은 일종의 ‘안경‘을 얻었을 것이다. 
그 책들을 추천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읽었다면 그 뒤로 
자기 생각의 오류를 인식하고(클루지), 
사람을 지배욕, 자극욕, 안정욕 타입으로 구별하고(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뇌를 효율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정리하는 뇌). 
나 역시 『클루지』를 읽은 후로는 
나 자신과 남들에게서 무수한 클루지들을 알아보게 됐다. 나는 아마 평생 ‘클루지안경‘을 쓰고서 클루지들을 없애면서 살 것이다. 
만약 누구든 인생의 초기에 이런 좋은 안경들을 갖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그 복리혜택을 볼 수 있다.
스무 살부터 뇌의 복리저축을 실천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동갑내기 서른 살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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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I<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집필하면서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는 1976년 3월 뉴욕 퀸스로 이민했다.
IBM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존 삼촌이 우리 가족의 보증을 서주었다. 당시 나는 일곱 살, 주인공 케이시보다 두 살 많은나이에 미국에 온 것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는 엘름허스트의저소득층 동네에서 자랐다. 첫 5년 동안 초라한 셋집을 전전하고나서, 부모님은 매스페스에 세 가구가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샀다.
우리 가족은 2층에 살고 다른 두 층은 임대를 주었다. 나는 퀸스의 엘름허스트와 매스페스의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로 말하기와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동생과 나는 방과 후 알아서 노는 아이들이었다. 여름방학에는 부모님의 장신구 도매상에서 일하며엘름허스트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때는 이런 방식으로, 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내 어린 시절

은 이민과 계급, 인종, 젠더 문제에 끊임없는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렇기에 나는이 책이 미국의 이야기라는 정의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세상 그어떤 나라와도 다르게 미국은 이민정책과 초기 식민지 역사라는태생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노예의후손들을 제외하면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애는 궁극적으로이민자의 여행기와 연결된다.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졸업논문 주제는 ‘18세기미국 정신세계의 식민지화였다. 거창하기 짝이 없었다. 영국의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과 그 이후 세대가 유럽인 및 고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심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논지였다. 이런 관점은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내가 겪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법적으로 식민화된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이민자는 초기 피식민자(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다)와 같다. 즉 다른 곳에서 온 사람,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복잡한 규칙을 수반하는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사람인 것이다. 나는 픽션이라는 형태로 문화를-내가 보는 것과 내 눈에 띄는 것을 크레용으로 그리듯ㅡ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위치다. 나는 이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편으로 강인한 개인주의의 이상과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 미국 개척자 정신을 존경한다.
미국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

쿡은 어마어마한 개방성을 지닌 놀라운 나라다. 지식인들이 다른 곳에서 많이 했던 말이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른 어떤 곳보다 여기서 살길 위한 것이다. 필리핀계 미국인 작가카를로스 볼로산은 자신의 다채로운 소설에 "미국은 가슴속에(America Is in the Heart)"라는 제목을 붙였다. 불로산 이후의 이민자 세대인 나 역시 가슴속에 복잡한 미국의 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정직하게 좋아한다면 이상화된 사랑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그 결함도 인정해야 한다. 온갓 문제로 얼룩진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자. 연구를 거의 멸절시키다시피 진행된 원주민 학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노예제도 짐 크로우 법, 센더 불평등 남유럽 이민 쿼터제 중국인 이민금지법,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주지했던 정책, 히로시마 원폭 투하 매카시즘, 베트남 전쟁 등 한도 끝도없다. 이런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미국이 모든 세대마다 그 불안감과 걱정을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진가했다는 사실을 충격과연민 속에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뉴욕의 우리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었던 인간형들과 문제들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하고자했다. 나 자신에게, 또한 독자들에게 이런 이미지들과 생각들을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읽은 19세기 유럽소설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싱클레어 루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볼드윈, F. 스콧 피츠제럴드, 시어도어 드라

이제 더스매시 이디스 워튼 등 수많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감정과 역사, 통찰력, 시차를 통합하는 시선으로 분화약품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민자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퀸스에서 자랄 때, 우리 동네에는중국, 한국계, 인도계는 물론 독일계, 폴란드게, 아일랜드게리스케, 이탈리아계, 헝가리게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다. 백인이 아년 이민자로 산다는 것에는 흥미롭고 어쩌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외모적인 특징이 인종적으로 분류되는 한 그들이 결코 다수자 집단으로 ‘패싱‘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눈이나 코, 머리카락, 신체적인 특징이 다수자 집단의 그것과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면, 좋든 나쁘든완전한 동질화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개방적인 사회에서도 이 사실로 인해 온갖 흥미로운 문제들이 고개를든다. 소수인종집단은 다수 집단과 절대 혼합될 수 없을 거라고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치는 이도 있다. 당연히 이 이론은 특권과 책임감을 지니고 다수집단의 문화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실망스러울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등장인물들에게 온갖 장점들을 부여했다. 교육 수준, 외모, 재능, 강한 가족적 배경……… 그리고 나는 그들이 각자의 야심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시련도 주어지고, 각자 문제도 일으킨다. 인종과* Kasing 자신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여지는 상황.

계급 이민, 젠더 정치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줄까? 혹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역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매우 궁금했다.
나는 언론에서 정확하게 재현되는 이시아 미국인의 삶이 무하다는 사실이 그들에 대한 왜곡을 낳는다고 믿는다. 매우 자주 아시아계 미국인은 긍정적일 경우 대단히 유능하고 근면하고 호전적이지 않은 사람 혹은 기만적이고 속을 할 수 없고 과대망상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된다. 어느 쪽이든 이런 상은 내가아는 아시하게 미국인을 완전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마찬가지지만, 명확한 표현과 감정이깃은 목소리와 언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의 인간 자체가 부정된 것이다. 인간을 기계나 짐승과 구분하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 표현하고, 의문을 갖고 갈망하고, 후회하는 능력. 이런것들이다. 나는 정확한 재현의 부재가 소수자를 사실상 사회적으로 지워버리며 심대한 심리적 문제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논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는 내가 아는 한국게 미국인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인물인지 너무나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로서 나는 비한국계 미국인 등장인물 역시 같은 기준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많은 독자에게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굳이적는다. 한국계 미국인 남성도 낭만적이고, 연징적이고, 사랑하는마음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인물일 수 있으며, 그들 역시 문제가있고, 슬프고, 좌절을 겪을 수 있다. 한국계 남성은 이 모든 것뿐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특징을 지닌 존재 한국계 여성도 가두려울 수 있다. 한국 여성도 가슴이 아볼 수 있다. 내가 배우쉽고 사랑하는 한국에 미국인 남성과 여성에게 복잡한 특징이 공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정말로 중요했다. 나는 오리라를 듣고 시를 쓰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한 푼까지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한국인 남성들알고 있다. 나는 지나친 희생과 자기 부정으로 인생을 망치는 한국인 여성들을 보았다. 나는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녀가 그런모습이기를 바랐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통화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소망으로 인해 우리 한국계 미국인들이 자기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입 밖에 내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는점이 나는 늘 신경 쓰인다. 안전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침묵을 지키거나 표현을 유보하는 이런 특징 때문에 타인이 우리의 성격이나 인생을 대신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한국계 미국인을 정확히 대변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분명 한 인간의 한정된 시각을 통해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한국계미국인이라는 것이 좋고, 내 가족과 나의 커뮤니티 내 역사를 사랑한다. 이 사람은 일종의 필터이고 일종의 편견일 것이다. 나는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진실되게 말함으로써, 그 결함과 그모든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내가 세운 목표는 민망할 정도로 고매했지만, 최소한나는 등장인물들이 불완전하며 재능 있기를 바랐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인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픽션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점이겠지만 나는기억에 남아 있는 일평생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언제나 먼저 독자가되어야 한다. 내 평생을 통틀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다. 픽션을 더 잘 쓰는 법을 연구할 때 내 본보기는 언제나 내가 읽고 또 읽고 싶었던 책들이었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즐거움을 얻기를 바란다. 읽어주어서 감사하다. 여러분의 관심과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커다란 의미다.

2007년 일본 도쿄에서이민진

주의 조소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자기 규율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로스쿨 학비를 다 써버린 뒤라 예술석사학위(MFA) 비용까지 치르는 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툴게 나
‘자신만의 창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선 언제나 즐겨 읽던 19세기 거장들의 소설을 더욱 폭넓게읽었다. 좋은 장편과 단편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진정으로탁월한 작품들을 연구했다. 아름답게 쓰인 문단이 눈에 띄면, 예를 들어 줄리아 글래스의 <세 번의 유원(Three Junes) 같은 책을만나면 나는 공책에 글을 그대로 필사했다. 그런 뒤 자리에 앉아싸구려 모슬린 위에 핀으로 고정한 희귀한 나비를 보듯 조잡한공책에 적은 우아한 문장들을 숙독했다.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단단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기술이었다. 주노 디아스의 《드라운》을 읽고 또 읽으면 작가의 용기와 천재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화자의 완벽한 서사적 목소리는 정교하고 거대한 플롯의 설계와 조응했다. 위대한 픽션은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나 좋은 느낌뿐만 아니라 감정과 구조, 이상, 용기를 요구한다. 거장의 회화나황혼 녘의 바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 그렇듯, 훌륭한 픽션 작품은 나를 기쁘게 했다.
뉴욕에서는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위대한 작가를 연구할 수 있다. 여기서 사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예술가들이 거의돈을 받지 않고도 일하려고 할 정도로 풍요로운 문화가 있는 도시다. 일주일에 한 번 크리스토퍼가 퇴근 후 샘을 봐줄 수 있는

스와니에 모인 사람들은 죄다 아이오와 대학 같은 곳에서 명망높은 예술석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출판 계약도 따놓은 것 같았다.
당시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모두 이름표를 달았는데, 내 이름표는 장학금을 받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그냥 이름만 적혀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 나는 자기 이름과 장학금 명이 적힌 이름표를 단젊은 여자 한 사람을 만났다. 출판사에서 장학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그녀는 개인적으로 학비를 내지 않았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그 젊은 여자는 학비를 다 내고 컨퍼런스에 참석한 가정주부들을 가볍게 조롱했다.
나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나는 서른 살이었고, 갓 엄마가 되었으며, 재능 있는 젊은 여자 예술가 한 사람이 가정주부 작가들을 멸시한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식사를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남은컨퍼런스 기간 내내 나는 그녀를 피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고 느짧기 때문이었다. 수업 하나 들으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이 실수있다. 컨퍼런스 마지막 날, 앨리스 맥더모트는 새로운 미국의목소리 2000) 선집 수록작 후보로 내가 워크숍에서 제출한 단편이 선정되었다고 공표했다. 편집부는 내 소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쩌면 내가 계속 노력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몇 달 뒤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뉴욕예술재단 픽션 부문에서예술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었다. 상금은 7,000달러였다. 나는 그돈의 일부로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유명 편집자 겸 작가인 톰크스와 작가 캐릭 에드가리언의 5일짜리 문예창작 과정 학비

고 싶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했지? 당신이 창조한 이 온전한하나의 다른 세상 속으로 어떻게 나를 끌고 들어갔지? 이 새로운느낌, 오래된 느낌들을 어떻게 내게 느끼게 했지? 어떻게 이 모든것들에 의미가 있다고 계속 믿을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이런 질품들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들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작품에 대해 뭔가 증명할 필요가 없고 작품도 내게 뭔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적인 방식으로 작품이 내게 말을 걸고내 곁에 머물렀기 때문에,
나는 습관적으로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 날 나는 V, S.
나이폰의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을 2호선 지하철에서 다 읽고책을 덮다가 그의 찬란한 문학적 성취에 감동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논란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한로 그는 여성 작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비범한 무엇인가를 픽션으로 성취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서툴게, 하지만너무나 악착같이 발버둥치는 겸손하고 호기심 많은 인물에 대해내가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등장인물의 형상화와 공감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소설의 배경인 가상의 공간 아르와카스가 나이폼이 자라난 동인도-트리니다드계 이민자들이 사는 마을 차구아나스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퀸스의 내 고향동네 엘름허스트에 대해 써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나이폴이었다.
문예창작 수업과 독서 모임들을 거치며 수많은 습작들을 폐

기한 뒤, 나는 저널리스트처럼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를 지작했다. 등장인물인 투자금유가 테드 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을 매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한 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실감하고 싶다면 직접 봐야 한다면서 지원 회망자로서 그곳 수업을 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방문자 등록양식을 작성하니 하루 청강 허가가 나왔다.
나는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에는 스물다섯 명 정도 남짓 되는학생들이 있었고, 각자 앞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 공간에서숨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숨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확실했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심지어 법대에서 내가 경험한그 어떤 수업과도 달랐다.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이 숙제를 다 했는지, 강의 내용과 화이트보드에 적힌 복잡한 스프레드시트를 완벽히 이해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매력적인 젊은이들에 대해 뭔가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이남다른 점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 매우 어려운 문제를해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가득 찬 건물에 있어본 것은처임이었다. 몇 시간 뒤, 나는 정말로 경영대학원에 지원해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활기찬 에너지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우울하거나 초조한 사람,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날만큼은 집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바뀌었다. 나는

그때부터 자료조사를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세세한 묘사나 현장감 있는 매끄러운 대사를 원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통해받는 느낌 때문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는 것단으로 덩달아 나도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짜 지원자이자저서 한 권 없는 작가 입장에서 청강하고 있는 내게도 이렇게 긍정적인 기분이 느껴지는데, 그런 곳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나는 테드에게 문제가 있거나 두려울 때조차 자신이 옳다고 믿는 남자에게 그 느낌을 고스란히 옮겼다. 테드의 자신감은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그에게 안긴다. 그러나 성욕 앞에서, 동류의 인간에 대한 내적 갈망 앞에서그 자신감은 약해진다. 테드는 신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자료조사를 통해 그의 약한 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이 테드라는인간 전체를 하나의 개체로 사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시기에 멋진 일이 생겼다. <미주리리뷰>에 내가 열일곱 번인가 열여덟 번 고쳐 쓴 단편이 실린 것이다. 그 이야기 하나를 고쳐쓴 원고만 종이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아마 그 정도가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 잔을드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때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때 몇 블록 걷는 길조차 힘겨웠다. 발목이 퉁퉁 부었고, 길을 건너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쉽게 문고리를 돌릴 수도, 계단을 올라갈 수도 없었다.
몇 번의 오진 끝에 한 류머티즘 전문의를 만났는데, 그는 내 지

병인 간질환이 원인이라고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와인 한 방울마시지 않는 내게 이미 간경변이 진행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누었다많은 의사가 치료에 참여했고 그들은 내 상태를 놓고 의견을소화기 전문의는 내가 아직 젊고 간이식 수술은 쉽게 시도할 수 없으니 인터페론으로 치료해보자고 했다. 석달동안 나는 매일 허벅지에 직접 약을 주사했다. 샤워를 하면 머리가락이 뭉텅이로 빠졌다. 바닥청소를 하려고 허리를 굽히면 얼굴의철판이 터져 멍이 들기도 했다. 설사가 있거나 구토가 멈추지 않아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하루 몇 시간 정도만 에너지가 있었고, 세 살배기 샘에게 쓰려고 그 힘을 비축했다. 엄마가 건강하다고 아이가 믿도록 해주고 싶었다. 치료가 끝난 뒤 검사에서 간 기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의사는 신중하게 감사를 계속했다. 나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첫 원고를 어떻게든 마치기 위해 작업을 계속했다. 치료가 끝나고 1년 뒤, 의사는 내가 완치되었다고 선언했다. 100만 명 중에한 명 정도라며 그는 놀라워했다. 그날 오후 나는 좋은 소식을 안고 돌아가서 침대에 누웠다. 예상치 못한 삶이었다. 비판이 두려워시 움츠러들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나는 그리지 않았다.
2006년 여름 출판 계약을 했을 때, 나는 습작 11년째였다. 서른일곱 살이었다.
2016년 8월이민진

옮긴이의 말주인공 케이시 한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 1세대 부모의 희생을 딛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해서 주류 사회의 번듯한 일원으로 기회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단순한 성공만으로는 부족하다.
서툰 영어로 평생 이민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의 눈에는 법대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케이시에게는 멋진 패션과 화려함에 대한 욕망이 있다. 마음껏 사랑도 즐기고 싶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집을 뛰쳐나온다. 명문대라는 안전한 울타리마저 걷어차고 화려한 뉴욕의 거리로 나선 케이시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인종이라는 벽과 계급의 사다리가 사회 곳곳에 쳐놓은 정교한 거미줄이다.
미국이라는 자유의 땅, 그중에서도 특히 화려함과 성공의 정점에 있는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과 본을 물려받아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의 이야기도 당연히 한국인의 역사이겠지만, 각자의 사연을 안고이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퍼져 살고 있는 이민 1세대, 2세대, 3세대의 역사 역시 넓게 보아 한국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이라는 공통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데에서우러나는 진한 감정적 공감, 자신이 살아가는 땅에 동화되려는 노력, 이질적인 땅에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좌절, 계급적 인종적격차로 인한 불화, 그들이 이룬 크고 작은 성취.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한민족의 이야기에 넋을 잃다가도 문득생각하게 된다. 주류 미국인이 아닌 미국인, 아니, 주류 한국인이아닌 한국인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 옆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누가 우리,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가.
한국에서 형성된 다문화가족의 시초는 역시 한국 전쟁, 미군병사와 한국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가족이다. 이후 외국인노동자를 통해 차츰 그 수가 늘어났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한국인 남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결혼 이민이 급증했다고 알려져있다. 2020년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인구가 200만 명이 넘었다. 혼인 열 쌍 중 한 쌍은 다문화 결혼이며, 출생아 100명 중 여섯 명은 다문화가정 자녀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으로 넘어와

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피부색이 다른 이주민과 그들의 2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숫자를 놓고 생각하면 궁금해진다. 앞으로 0.5세대가 지난 뒤, 1세대가 지난 뒤 한국에 사는한국인이라는 집단은 과연 어떤 사람들의 집합일까.
이민자의 역사가 곧 국가의 역사인 미국에서 주류에 편입하려는 노력은 한국에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와 결이 다를 것이다. 백인, 황인, 흑인, 온갖 피부색이 섞인 인종의 전시장 같은 땅에서소수자가 다수자로 패싱되려는 노력과 관련된 논의는 흥미롭게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런 곳에서 남과 다른 얼굴 윤곽, 다른피부색으로 정착하고 한국인임을 주장해야 하는 이민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흑인 외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힘든 아프리카게 한국인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일까. 그들의 문제는 한 세대만 지나도 쉽게 주류 인종으로 패싱될 수 있는 아시아계 한국인이민자와 그 가족들이 안은 숙제와 어떻게 다를까.
전쟁과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코리안 드림을 꿈꾼 이민자들, 그들의 2세들이 이 땅과 타협하며,
혹은 불화하며 써내려가는 이야기 역시 우리가 소중하게 보듬고우리의 것으로 여겨야 하는 ‘한국인‘의 이야기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답변을 들을수 있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민진 작가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한국 땅에서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다수의 한국인보

다. 피부색이 더 어두운 한국인, 아프리카 한국인, 필리핀 마닐라나 베트남 어딘가에서 삼대 위 할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한국인에게 더욱 절실하게 말을 거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표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목소리들이 있을 것이다. 농촌에 시집와서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는 며느리, 종일 공장에 처박혀서 일하고 주말에도 밖으로 나오기 힘든 노동자 등 ‘리아와 조셉부부는 이 땅 어딘가에서 엄연히 살아가고 있다. 말이 어눌해서걸핏하면 바보 취급받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케이시 한도, 계급과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도약하겠다고 이를 악문 ‘테드 김‘도 어딘가에우리와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만장자를위한 공짜 음식》은 그 어떤 한국인들보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권유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미디어에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땅일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한국인이라는 집단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한국이 다양한 목소리들에게 가시화의 기회를 주고 우리의 것으로, 한국인의 목소리로 품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K의 물결처럼 ‘우리‘와 ‘한국인‘이라는개념 자체도 조금이나마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번역할 기회를 준 인플루엔셜출판사와 원고를 다듬으며 함께 땀을 흘린 편집부에 감사한다. 번

역 과정에서 작가와 소통할 수 있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민진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2년 11월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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