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 것을 부려 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어느 한국 어머니와 아들이 앉은 테이블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은 무심코 급수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충실하게 계산대 앞으로 가서 수저를 가져다가 제 어머니와 제 앞에 깔아 놓은 종이 냅킨 위에 올려 놓는다. 아들은 볶음밥을, 어머니는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사골 수프를 먹는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 꼭 우리 엄마처럼. "양파를 여기에 찍어 먹어봐."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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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이 힘들다면 한 달에 한 번, 그마저도 힘들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마다 한 번, 그조차 무리라면 1년에 한 번은 의무로써 부모님을 찾습니다.
부모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말쑥한 옷을 입고 남아 있는 체력과 수중의 돈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도착하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전에 저지른 실수를 지적하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을 기회로여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조심성과 위로와 예절이 필요합니다. 데면데면 서먹하게 지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쁜데 여기까지 오느라 혼났겠구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라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서로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이 자녀와 부모의 성숙된 관계입니다.

부모님이니까 내버려둬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P-1


환자 중에 생활 보조금을 아껴서 적지 않은 돈을 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조카에게 모두 줘버리곤 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간호사들을 위해 과자 한 봉지를 사서 "같이들 먹어요."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그 사람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내 생활에서 이웃 사람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신세지고 있는 분들에겐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큰며느리에게 부모님을 맡겨놓고는 "뭘 잡숫게하는 거예요." "더 다정하게 해드려요." 라고 쓸데없이 참견하는 시누이도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매일 보살펴주는 큰며느리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고 그 마음을 표현한다면 시누이의 말도 얄밉게 들리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면 어쩌다 찾아오는 딸이나 조카에게 주느니 함께 사는 며느리나 신세지고 있는 양로원 직원들에게 베푸는 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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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 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 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 P-1

귀로

듣고 싶은 답을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생각대로 당신은
내가 바라던 답을 들려주었다

하나의 답을 정한 것은 나였고
무수한 답을 아는 것은 당신이었다

원망은 매번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 P-1

「마중도 배웅도 없이]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무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관계의 거리감,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의 잔여를 섬세하게 떠올린다. 

이전의 시집들이 상실과 그리움, 그 곁의 사랑에 대해 온건하고 단정한 언어로 이야기해 왔다면 이번 시집은 그 감정의 결을 더욱 구체적이고 서사적인 장면들로 드러낸다. 장면들 속의 마음은 느슨한 문장들로 묶인 채 더욱 깊이 고여 있다. 문장 사이의 공백과 쉼, 비워진 자리를 응시하는 일은 지나간 마음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한 사람의 일기처럼 읽힌다

이번 시집은 단지 감정을 전하는 ‘문장‘이 아니라, 정직하게 한 시절을 건너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삶의 표면을 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은 데까지 가 닿는 언어의 온도, 박준은 이제 ‘말을 고르는 시‘에서 ‘말이 지나간 자리를 들여다 보는 시‘로 옮겨 왔다. 그리하여 이 언어들은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중도 배응도 없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끝내 보내지 못한 사람, 보내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 그 모두를 위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독자의 슬픔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이다. 박준은 언제나 덜 말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울림을 전해왔다.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 많은 말들로 넘실거리는 그 모든 여백일 것이다.
이제니 시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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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지킨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지킨다‘는 말은 친구 사이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식 간에도 필요합니다. 가정은 마음 편히 지내는 보금자리입니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도록 행동해도 좋다는뜻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 들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응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에 "내 나이가 되면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줘"라고 자랑하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억지로 참고 들어주는 것을 할머니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평생 누구에게도응석부리며 버릇없이 굴지 않겠다, 배우자나 성인이 된 자녀의 생활에 일일이 간섭하며 무례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작심 - P-1

하는 편이 낫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 수 있는 중요한 유산 중 하나가 깨끗한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가르쳐 최종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상태에 놓였을 때 자녀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베푼 일에는 항상 감사받고 싶고, 또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주었다면 상대방에게 꼭 확인시키고 싶은 보통의 인간 관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부모의 애정이란 사심 없는 사랑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희망대로 18세에 나고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이에게 무거운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무렵 다행히 아들은 내 품을 떠나 그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은 경제적으로 보살펴줬지만 대학에 입학하던 그때 자녀 교육은 끝이 났습니다.
그 후로 35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아들은 내 품에서 살았던세월의 배가 넘는 시간을 홀로 걸어왔습니다. 취미도 세상을보는 눈도 나와 다른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속으로는 항상걱정스러운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아프다고 하면 불안하고,
하는 일이 잘 안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든 성공해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나마도 이런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사람이니까 그냥 염려하는 정도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과는 30년 넘게 사귀어왔지만 수중에 저금한 돈이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친구들 - P-1

과의 사귐과 동일하게 아들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만큼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가 관계를 잘 맺는 비결은없다고 생각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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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단순한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단순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 그건 욕망에 더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뉴욕이 좋다고 확신할수 있었던 시절의 나는 뉴욕을 사랑하기보다는 욕망했던 걸까?

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 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그 대상에 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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