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용기, 억압과 자유, 상처와 치유
삶과 문학의 영원한 화두에 관해 이야기하는 고전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희망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어리지만 사자왕처럼 용감한
요나탄과 칼 형제의 분투는 인간이 왜 끝까지 타인의 존재를 믿어야 하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세계를 구해야 하는지 해답을 보여 준다.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 P-1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8~99면)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서울의 여름, 이상한 열정으로『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있는 열두 살의 내가 있다.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병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텡일이라는 무자비한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 - P-1

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울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예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세계, 낭기열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 P-1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그 후 삼십여 년이 흘러, 오슬로로의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다시 완독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왜 연도를 착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1980년 아홉 살의 내가 문득 생각했던, 그 여름을 이미 건너지 못했으므로 그 가을로도 영영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된 그 도시의 소년들의 넋이, 그로부터 삼 년 뒤 읽은 이 책에서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소년들에게로 연결되어 내몸속 어딘가에 새겨졌다는 것을.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2.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 - P-1

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먼저 이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고 싶었다. 촛불의 불꽃의 중심을 통과하여, 삼십여 년을 건너 우리에게 오는 넋들의 - P-1

걸음걸이를 생각했다. 그 불가능한 재생을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케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그곳에서 죽어 여름으로 건나오지 못한 소년 동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만 애도하고 온 힘을 다해 존엄에까지 가자고 결심은 했지만. 「소년이 온다」를 써 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 흔들리곤 했다. 

4장 ‘쇠와피‘ 같은 경우에는 내가 흔들리며 회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소년에게 매달렸다. 
그가 나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랐고, 실세로 그에게 끌려가듯 가까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폭력보다 먼저, 인간의 참혹보다 먼저, 6장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에 이 대목을 썼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얻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 P-1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 안에 기득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벌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진 생의 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 P-1

밖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폭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212~13년)

3.
고백하자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소년들을 거의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 한 권이라는 사실 외에는 실상 많은 것이 희미했다. 

그러니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 P-1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이어 읽다가, 생전의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의 뉴스들에 유난히 민감했으며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 나는 조용히 짐작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그녀의 고통이 이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배음으로 깔려있다는 것을. 
열두 살의 내가 비밀로서 품고 있었던 어렴풋한 사랑과 고통이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그녀의 사랑과 고통에 잠시 맞닿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때로 우리가 만남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고. 그 경험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우리들의 심장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였던 눈에 뜨겁게 새겨지기도 하는 것이리라고. - P-1

허락된다면, 린드그렌의 이 아름다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우리는 시냇가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텡일이라든가그 밖의 끔찍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침나절이었습니다. 햇살은 맑고 따스했습니다. 어찌나 조용한지 들리는 거라고는 약간씩 거품을 일으키며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하늘 군데군데 흩어진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요나탄 형이 뎅일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
"스코르판, 잠시 동안 너 혼자 기사의 농장에 남아 있어야겠어. 나는 들장미 골짜기에 다녀와야 하니까."
요나탄 형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혼자는 단 일 분도 기사의 농장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형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만일 형이 탱일의 소굴로 가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요나탄 형이 아주 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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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 "네"라는 대답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힘이다. 세상의 수많은 남성이 프러포즈할 때 여성에게 "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네"라는 답을 끌어내는 건 어려우면서도 쉽다. 연습하면 된다. 
습관적으로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생각하는 훈련을 하라. 질문을 던지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시뮬레이선해보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다.

고전을 읽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익한 점은 이름짓기다. 고전에는 압축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이다." 

이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첫째,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좇지 않는다. 
둘째, 모든 스포츠에서 힘을 빼라는 말이 바로 의도를 갖지 말라는 말이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도를 가지면 몸이긴장하고 오히려 경기에 방해가 된다. 
셋째, 배우가 연기를 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된다. - P-1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문명은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시선이 물건에만 가 있으면 후진국,
물건과 제도에 가 있으면 중진국, 
물건과 제도와 철학에 모두 가 있으면 선진국이다.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250쪽

문명 세계를 ‘물건-제도-철학‘의 세 층으로 정리했다. 
물건, 제도,
철학. 내 삶에 기준이 생겼다. 
- P-1


상대방에게 "네"라는 대답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힘이다. 세상의 수많은 남성이 프러포즈할 때 여성에게 "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네"라는 답을 끌어내는 건 어려우면서도 쉽다. 연습하면 된다. 습관적으로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생각하는 훈련을 하라. 질문을 던지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시뮬레이선해보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다.

고전을 읽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익한 점은 이름짓기다. 고전에는 압축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이다." 이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첫째, 부자가 되기위해 돈을 좇지 않는다. 
둘째, 모든 스포츠에서 힘을 빼라는 말이 바로 의도를 갖지 말라는 말이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도를 가지면 몸이 긴장하고 오히려 경기에 방해가 된다. 
셋째, 배우가 연기를 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된다. - P-1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을 찾았다. 그때 발견한 책이『손자병법이다. 물론 전에도 제목은 익히 들어봤던 책이지만, 단지옛날에 전쟁할 때 써먹던 구닥다리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고전의 힘을 몰랐던 탓이다.

‘그래도 혹시?‘ 하고 펼쳐 보았다가 100페이지도 채 읽기 전에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알아버렸다. 
그 기술이 바로 도, 천, 지, 장, 법이다.
이 방법을 자기 자신과 사업에 잘 적용할 수만 있다면 백전백승의 승률을 올릴 수 있다. - P-1

첫째, 도)는 명분이다. 도의 핵심은 내가 아니라 ‘남‘이다. 내 돈과 내 행복만을 위해서 싸우면 반드시 진다.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도는 남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기가 모르는 땅에 가서 전쟁하는 것과같다. 그 동네에 원래 살고 있던 토박이가 저쪽으로 가면 낭떠러지가나오니 돌아가라고 하는데 오직 자신의 신념에만 가득 차 직진한다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고객에게 반드시 이익이 되는 전쟁을 해야 한다. 왕이 자기 이익만 위해서 전쟁한다면 반드시 패한다. 백성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사람들이 왕을 따르게 되지, 내 이익만을 위해서 싸우는 왕은 늘 배신, 배반의 두려움을 안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도의 핵심은 남을 먼저 이롭게 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 오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천(天)은 시간이다. 전쟁해야 할 완벽한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기란 정말 어렵다. 나 역시 과거에 식당 창업을 준비하다가 공간 월세가 - P-1

지출되기 시작하자 조급한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부족한 줄 알면서도 혹시 잘될 수도 있겠다는 요행과, 월세라는 비용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예상했던 시점보다 빨리 오픈해버렸다.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요행을 바라고 싸우면 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차라리 두 달치월세를 날리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 더 나았다. 서두르면 투자금 전체를 날리게 된다.
천의 핵심은 속도다. 당신의 속도는 얼마인가? 당신은 황새인가,
말인가, 거북인가, 달팽인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지(地)는 공간이다. 지의 핵심은 ‘어디서 싸울까‘다. 자기가 잘알고 있는 곳에서 싸워야 이긴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공간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공간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가? 여기서 특히 주목할 공간은 디지털 가상 공간이다.
이 글을 쓰는 2024년 1월, 비트코인이 현물 ETF로 승인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가상 공간에서 더 많은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나는 현실 공간에서의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어 가상 공간에서 판매해서 수익을 얻을 것이다. - P-1

이젠 반드시 두 공간을 모두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 디지털 가상 공간에 내 땅을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단,
웹 3.0 관련 책만 읽어서는 가상 공간의 땅을 점령할 수 없다. 땅을 보하는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창의력은 결국 고전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 두 가지 땅을 모두 얻듯이 두 가지 분야의 책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넷째, 장(將)은 사람이다.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마땅하게 보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을 위해서는 ‘허풍‘보다는 ‘비밀‘
이 좋다. 우리는 말할 때 정확하게 진실만 얘기하지 않는다. 과장을 섞어 허풍을 떨거나 세력을 숨기고 비밀스럽게 말하거나 둘 중 하나다.
허풍은 실망을 낳는다. 상대방은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허풍의 거품이 걷히고 나면 나에 대해 실망감만 가질 뿐이다. 하지만 비밀은 의외의 만족을 낳는다.
너무 겸손하게 자기가 가진 능력보다 축소해서 말하라는 게 아니다. 허풍 없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깝게 자신의 능력치를 얘기하고, 동시에 상대방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을 비밀리에 키우라는 말이다. 그렇게 비밀리에 능력을 키우다보면 어느 순간 내힘이 빛을 발하고 상대방은 나에게 감동한다. - P-1

동시에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성장하는 사답을 찾아 함께해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계속 성장하면 된다. 내가 멈춰 있다면 성장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성장하는 사람들 옆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 고로 사람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내 옆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다섯째, 법(法)은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다. 『손자병법』에서 법은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해야 한다. 봐주면 안된다. 나를 다스리는 ‘나‘가 무서워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1월 16일이 내가 아침 긍정확언을 외친 지 777일째 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777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긍정 확언을 외쳤다. 내가 스스로 엄격하게 나와 약속한 법을 지켜나가자 엄청난 일들이 생거났다. 300일 정도 지나자 뭘 해도 성공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고, 400일 정도 지나면서 드디어 나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자기만의 스타일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300일 넘게 꾸준하게 나와의 약속을 지켜나가면 저절로 스타일이만들어진다. 화가 피카소는 91년의 생애 중 80년을 미술 창작에 몸을바쳤고 소묘, 회화, 도자기, 조각 등 총 5만 점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 P-1

피카소도 초창기에는 남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수천수만 장의 그림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겼고, 그게 바로 입체주의(큐비즘)의 탄생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법을 세웠으면 꾸준히 지켜나가라. 처음엔 반대에 부딪히고 조롱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긍정 확언 영상을 만들고 100일 전후에 만나는 사람들이 "닭살 돋게 왜 매일 아침 그런 이상한 영상을 올리냐?"고 비웃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이 출간되는 2024년 8월 26일, 긍정 확언 1,000일이 되는 날에는 모두가 나를 인정해줄 것이다. 이 스타일로 1만 일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25년 하고도 100일 더 외칠 수 있다.

힘이 빠지고 우울할 때 도, 천, 지, 장, 법의 잣대로 자신을 점검하라. 그리고 이 다섯 가지 방법으로 전략을 세우라. 이 방법을 깨달은 사람은 항상 이겨놓고 싸울 수 있고, 지시받으려고 기다리는 줄에서 벗어나 지시하며 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을 이기는 게 아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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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가는 대신 메시지로 필요한 것을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미적지근한 답을 보내왔다.
[아무거나]
아버지는 의뭉스러운 사람이었다. 늘 속내를 감추었고무얼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속을 갑갑하게 하는 침묵과 불통, 묵인만 이어지는 집이 지겨웠다.

아버지의 메시지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미스터 김이 남자와 대화를 마치고 내게 다가왔다. 그는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나를 따라오겠습니까?
미스터 김은 내게 이곳을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오후 한시였다. 곧 떠나야 하긴 했으나 핸드폰도 충전되었고 제프가 입국할 시간까지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가이드를 자처하는 미스터 김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미안했고, 고민하다 그의 뒤를 따랐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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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기록을 격려하고 기록이 기억을 위로한다. 상실과 슬픔에 관한 깊은 사유와 글쓰기가 우리를 단단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책이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이 벌써 그립다는 서문부터 모든 슬품으로부터 날아오르자 다짐하는 끝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불안해하는 독자에게, 엄마로 살아가는 세상 모든딸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가족이라는 주제로 이토록 풍요로운 이야기를 구사할 수 있다는 데 놀랍따름이다. 단락마다 단편소설 한 편만큼의 서사가 함축되어 있고, 사유깊은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은유와 삶의 향기가 스며있다. /이현숙 소설가

글이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처럼 맑다. 어머니의 슬픔과 노고를 정화하여 자기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 이야기에 살아가는 일이 좀 가벼워진다. 30년 넘게 재직한 교직을 마감하며 가장 먼저 어머니께 달려가 큰절을 올리는 모습은 가족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수진 수필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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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널 만나니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내 몫을 했을 뿐이다. 힘들었어도 후회는전혀 없다. 살아 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 형은, 영혼조차도 비명을 지르는 시대에 살았다. 강용우 씨를 생각해봐. 비명이너무 끔찍하지 않니?"

한 마디 한 마디를 힘주어 말하던 형이 문득 말을 그쳤다. 복받치는 감정을 참느라고 형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우리는 묵묵히 각자의 감정을 다스렸다. 
하지만 벽시계는 계속 초침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다. 형에게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어 난 애가 탔다. 나는 자꾸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윽고, 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아니? 내가 널 참 좋아했다는 것을 내가무엇을 하건, 어떤 일을 하든, 내 속엔 늘 네가 있었지.

나는 마침내 말문이 트일 모양이었다. 내 입술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목소리로 ‘나의 말‘을 시작했다.
"형. 난......."
그때 자지러지게 벨이 울렸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에 내말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난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형이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난," - P-1

"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널 만나니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내 몫을 했을 뿐이다. 힘들었어도 후회는전혀 없다. 살아 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 형은, 영혼조차도 비명을 지르는 시대에 살았다. 강용우 씨를 생각해봐. 비명이 너무 끔찍하지 않니?"
한 마디 한 마디를 힘주어 말하던 형이 문득 말을 그쳤다. 

복받치는 감정을 참느라고 형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우리는 묵묵히 각자의 감정을 다스렸다. 

하지만 벽시계는 계속 초침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다. 형에게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어 난 애가 탔다. 나는 자꾸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윽고, 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아니? 내가 널 참 좋아했다는 것을. 내가무엇을 하건, 어떤 일을 하든, 내 속엔 늘 네가 있었지...
나는 마침내 말문이 트일 모양이었다. 내 입술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목소리로 ‘나의 말을 시작했다.
"형, 난......."
그때 자지러지게 벨이 울렸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에 내말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난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형이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난," - P-1

이럴 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울리지 않고 어색해지기에 십상이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부신 해를 올려다보았다. 둥근 태양은 붉은 보석 같았다. 삭풍 몰아치는 음산한 겨울에도 하늘엔 보석 같은 해가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우리는 큰길이 보이는 곳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끝내 나에 대해서, 아니 내 앞에 가로놓인 미래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해준 그가 몹시 고마웠다. 헤어지면서 그는 또내 머리통을 주물렀다. 

간판들이 숲을 이룬 거리로 사라져가는 아저씨의 넓은 등을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도 돌아섰다. 생각 없이 골목 안으로 몇 발짝 걸음을 옮기다 말고 나는 우뚝 서버렸다. 방들이 서로의 맨몸을 부비며 칭얼거리고 있을 나성여관은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었다. 나는 망연해져서 낯익은 주변 형상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보았다. 그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공기조차 떨지 않는 고요를 보았다. 그러나 그 고요를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온했던 순간의 고요를, 휘몰아쳐 내달려온 바람이 일시에 헝클어버렸다.
다시 되돌아 나오다 나는 바로 옆에서, 제대로 풀칠이 되지 않아 깃발처럼 나부끼는 전봇대의 광고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더기같이 덕지덕지 붙은 다른 광고지에 비해 최근의 것인 듯 가장 깨끗하게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생산직 남녀사원 00명 모집. 초보자 환영. 
깃발같이 펄럭였던 그것은 구인광고였고, 내가 읽은 것은 그 두 문장과 전화번호였다. - P-1

는 인간이다. 그것을 비속함 또는 무지스러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작은 열려짐 속에는 허위나 허세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우연이는 그 마음속의 단순성과 직접성의 회로를 통해 형이 저지른 파국을 받아낸다. 우연이는 상황을 정리하거나 취사선택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다. 우연이는 그 파국에 자신의 마음을 밀착시키고, 단순하게 그러나 종합적으로 그 파국을 받아낸다.
나는 어쩌면 형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 안으로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울며 속삭였다. 형을 사랑한다고. (533쪽)

한복을 입고 있어서일까. 형은 마치 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이 저러했겠다 싶은 분위기였다. 형에게서 아버지를 읽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형을 좀 더 가깝게 보고 싶어서 자꾸 쇠창살에 얼굴을 박았다. (538쪽)

지금도 그랬다. 넉넉한 회색 한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형의 마른 마른 몸피는 도저히 칼을 든 자의 형상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칼을맛은 자의 초췌함. 그러면서도 너그러운 표정 쪽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540쪽)

인용된 세 토막의 문단들은 범행을 저지른 형의 존재가 우연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단순하고 민첩한 마음은 구속된 형의 모습에서 젊었을 적 아버지의 모습을 읽는다. - P-1

아버지! 우연이네 아버지는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력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던가. 그 아버지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우연이는 아버지의 아름답고 북받치는 청춘에 가서 닿는다. 그리고 우연이의 마음은 칼을 휘두른 형의 살의(殺意)의 밑바닥에 고인 부드러움과 교감하고, 형의 운명 속에 교직된 사랑과 증오, 가해와 피해. 찌르기와 찔리우기가 결국은 다른 것이 아니며 한 덩어리라는 그 난해한 복합구조물을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삽시간에 파악한다.
우연이의 마음은 그 복합구조물을 분리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해버리고, 그것을 마음의 무늬 위에 짜놓는다. 형을 면회하고돌아오는 길에 우연이는 눈 속에서 보라와 입 맞춘다. 여자아이가 달려들어서 입술을 포개는 이 입맞춤은 순결과 평화 속에서 포개지는 고전적인 입맞춤이고 세상의 고통과 세상의 뒤엉킨 복합구조에대한 이해와 긍정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년의식과도 같은 입맞춤이다.
이 입맞춤은 지독히도 감각적인 입맞춤이지만, 곧 감각이 얼얼해지는 입맞춤이다. 아이들인지 어른인지 아직은 구별되지 않지만,
아이의 말투와 아이의 민첩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어린 인간들이 고전적인 입을 맞출 수 있다. 그 입맞춤은 키를 자라게 하는 입맞춤이라고 할 만하다. 소설 전편에 번져 있는 우연이와 보라 사이의 관계의 경박성(이것이 그들 세대의 한 가엾은 불행일 것이다)은 이입맞춤에 의하여 비로소 극복된다. 그래서 좀 더 키가 커진 우연이는 나성여관이 헐리기 전날, 타락한 누나의 귀가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누나는 꼭 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누 - P-1

나와 형, 그리고 내가 나성여관에 품고 있는 사랑을. 그것은 때로 누추했고 더러는 끔찍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오밀조밀했고 아늑했었다. 우리들의 사랑 속에 담긴 분노와 증오와 슬픔 없이 어찌 이처럼 질긴 애정의 끈을 묶어낼 수 있었으리. (571쪽)

소설의 말미에서, 그 우연이가 한 시대의 밤을 송별하고 있다. 밤은 형이나 찌르레기 아저씨의 칼에 맞아 사라지지는 않는다. 밤의 고통과 증오와 시달림을 받아내고 거기에 삼투하고 거기에 대하여 정직한 여러 마음이 모여 만든 삶들에 의하여 우리들의 기나긴 밤은 비로소 송별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맨입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밤은 인간의 마음과 삶 속으로만 사라진다. ‘생산직 남녀사원 00명 모집. 초보자 환영‘우연이가 바라보는 찢어진 구인광고 너머로 우리는 찌르레기 아저씨의 무너진 ‘집‘과 우연이네 형의 파괴된 ‘마을‘
이 다시 돋아나고 아물어가는 희망의 가녀린 그리고 끈질긴 싹들을 본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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