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주택난 해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 한 번에 많은 집을 공급할 수 있는 아파트었습니다. 파리와 서울, 두 곳에서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한다‘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아파트 건설이 시작됐지만, 그 방식은 달랐습니다. 파리에는 낮은 임대료를 내고 긴 기간 동안 빌려 살 수 있는 장기 임대 아파트가 서울에는 돈을 내고 사고파는 분양 아파트가 주로 만들어졌습니다. 파리의 아파트는 처음부터 시민을 위한 주거 복지 공간인 사회주택(Social Housing)‘으로 기획됐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꼭 필요한 기본 요소이므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깔려 있었지요. 따라서 아파트의 대부분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건설사가 아닌 공공 영역 또는 공공성을 띤 준공공 개발자가 짓게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 필요한 자금도 사회임대주택기금 등공공 자본을 통해 조달했습니다. 공공 자본은 아주 낮은 이자로 장기간에 걸쳐 돈을 빌려줬습니다.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파리의 아파트는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대량 공급되며 서민들의 주요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에 서울의 아파트는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건설 자금은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되었습니다. 국민주택기금과같은 공적 기금이 있었지만, 그 운영 방식은 민간 자본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쉽게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남에게 떠넘겨 있습니다. 자동차와 배에 실어 보내거나, 저 멀리 소각장에서 대기 중에 오염 물질을 뿜어내며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배출한 쓰레기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옳고, 환경적으로도 좋습니다.
경기도 하남시에는 유니온파크라는 특별한 쓰레기 처리 시설이있습니다. 지하에는 쓰레기 소각장, 재활용선별장 등의 쓰레기 처리 시설과 하수처리 시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상에는 어린이 물놀이장과 잔디 광장, 풋살장 등 주민 편의 시설이 자리를 잡았고요. 소각장의 높은 굴뚝은 전망대가 됐습니다. 이곳을 오가는사람들에게 유니온파크는 쓰레기 소각장이 아닌 공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쓰레기 소각장이자 열병합발전소인 아마게르바케(Amager Bakke)는 매년 40만 톤의 쓰레기를 태우며 발생한열로 지역난방수와 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높은 굴뚝 아래에는코펜하겐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가 있고, 경사진 지붕은 사계절 내내 이용이 가능한 스키장으로 꾸며져 지역의 명물이 됐지요.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전기입니다. 도시가 전기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석유, 석탄, 가스 등 다른 에너지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전선만 설치해 놓으면 어디든 손쉽게 전기를 보낼 수 있습니다. 또 전기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전기난로에 연결하면 열에너지로, 선풍기에 연결하면 운동에너지로, 전등에 연결하면 빛에너지로 전환해 쓸 수 있지요. 그리고 배출가스를 생각하면 매우 깨끗한 에너지입니다. 지금 당장 전기로 작동 중인 기계의 에너지원을 석유와석탄 같은 화석연료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세요. 연소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오염 물질이 발생해, 도시는 엄청난 매연에 시달릴 것입니다. 이런 장점이 있다 보니, 과거 다른 에너지원이 하던 일들도 점차 전기로 대체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모닥불이나 촛불이 전기난로나 전등으로 바뀐 것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고, 가스레인지는 전기레인지로, 휘발유 자동차는 전기 자동차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른가 ‘무지의 장막‘이리는 원초적 평등 상황에서 하는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전기 만드는 일에 적용해 볼까요? 나는 발전소 바로 옆에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발전소와멀리 떨어져서 전기만 받아서 사용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에 놓인 상태에서 발전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전기를 만들 것을 선택할까요?
굳이 롤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 스스로 좀 더 친환경적인 전기를 만들려고 분명히 노력할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계가 있는 생각입니다. 당장 모든 전기를 도시에서 만들 수는 없고, 일정량의 전기는 멀리서 만들어 가져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는 외부에 빚진 상태에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발전소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도시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이 겪는 고통의 범위도 정의합니다. 동물의 본래 습성과 신체 원형을 훼손하며 키우는 경우, 동물을 굶주리게 하거나 영양 결핍 상태로 방치하는 경우가 모두 고통에 해당합니다.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이든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이든, 동물을 길들여 키우기로 한 이상 인간은 법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상해, 질병,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요. 동물보호법은 "동물도 생명체로서 존엄성을 갖는다"는 생각에서출발합니다.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동물을 잡아먹고, 동물의 부속물을 이용해 온 인간이 동물의 존엄성을 논하며 동물과의 관계를 되묻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에서 출발해 인권이라는 개념이 생겨 난 것이 불과 300여 년 전이니 말입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권은 아무 조건 없이 오직 인간이라는 이유로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인종, 성별, 종교, 성적지향 등과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존엄성을지니고 있으며, 그 존엄성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은 오랜 투쟁과 논의 끝에 합의된 현대 문명국가의 윤리적 기초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기본 철학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국가가 인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인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늘
도시의 홍수는 불투수 면적 증가와 큰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시가지에 내리는 빗물은 자연의 흙과 인공적인 우수시설이 감당합니다. 흙이 무슨 일을 할까 싶겠지만 정말 큰 역할을 합니다. 정원, 공원, 가로수 밑, 보도블록 틈새, 공터, 운동장에서와 같이 노출된 흙은 물을 땅속으로 들여보내거든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있는 점토 형태의 흙은 자기 부피의 40%에 해당하는 물을 저장할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빗물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흙이 외부로 노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투수 면적이 늘어나면서 흙이 감당하는 빗물의 양은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수 시설이 감당해야 하는 양이 불어나는 것이지요. 증가하는 도시의 불투수 면적에 맞춰 우수 시설 또한 늘어나지 않는다면 홍수 위험은 더욱 높아집니다. 불투수 면적의 증가는 홍수 이외의 또 다른 문제점도 낳습니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면 지하수가 고갈됩니다. 그러면 하천으로 안정적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줄어 도시 하천의 물이 부족해지거나 말라 버립니다. 또 빗물이 흙에 스며든 뒤에 하천으로 흐를 경우에는 토양의 정화 작용으로 많은 오염 물질이 걸러지지만, 도로 같은 불투수면을 따라 흐르다가 하천으로 바로 들어가면 도
시의 오염 물질을 그대로 하천으로 옮기게 됩니다. 불투수면의 증가는 평상시에는 하천의 수량 부족하게 하고, 비가 오면 물과 오염 물질을 함께 하천으로 보내게 되어 하천 수질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하천 생물의 종 다양성과 개체 수도 감소합니다.
물을 머금는 도시, 어떻게 가능할까
오랫동안 도시의 홍수 방지는 우수관에 빗물을 모아 도시 바깥으로 빠르게 배출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중앙 집중형 빗물 관리). 하지만 불투수 면적이 증가하면서 이와 같은 방식이 점점한계에 다다르자, 이제는 비가 오는 그 지점에서 빗물을 감당하는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분산형 빗물 관리). 우리나라에는 불투수 면적 증가를 막기 위한 직접적인 제도가 없지만, 해외의 몇몇 도시들은 각종 규제를 통해 불투수면적의 무분별한 확대를 막고 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주는 불투수면적 총량제를실시하여 도시의 전체 불투수면적률을 11% 이내로 유지합니다. 독일의 함부르크시는 땅 소유주에게 불투수 면적 1m²당 0.73 유로(약950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고요. 깔끔한 포장도로로 도심을 정비하던 시절을 지나, 도시는 이제빗물이 흘러가는 길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습니다. 빗물을 머금었다가 자연스럽게 내보내도록 도시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는 복개를 막고 수원천을 되살리려고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서명운동, 청원서 제출 시장 항의 방문, 시민 대토론회, 문화재청 청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알렸지요. 점차 수원 시민들이 도시 하천의 환경적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론이바뀌었습니다. 1991년에는 시민의 94%가 수원천 복개에 찬성했지만 1996년에는 복개 반대가 44%로 복개 찬성 33%를 앞질렀습니다. 수원 시장은 시민들의 달라진 여론을 받아들여 1996년 5월 수원천 복개 공사 철회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복개 공사가 30% 정도진행된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도시 하천 정비 사업 이래로 가장 선호되던 방식인 하천 복개가취소된 첫 사례였습니다. 이런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도시 하천의환경적 가치를 알아본 수원 시민들이었습니다. 수원 시민들의 행동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청주 무심천, 대전 갑천, 부산 온천천등 하천을 되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움직임이 일어났지요. 수원천 복개 중지 결정은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탄소 발자국이 뭐냐고요? 탄소 발자국은 인간이 길 위에남기는 발자국처럼, 인간이 지구의 대기에 남긴 온실가스의 흔적을발자국으로 상징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 유통, 사용,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해 표시하지요. 탄소 발자국이 클수록 그 식품은 먼 거리를 이동해 왔고, 그만큼 운반하기 위해 석유를 많이 썼으며, 그만큼 지구온난화에 기여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구의 환경 측면에서 보면농산물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소비해야 합니다. 그 농산물이 내 집 앞, 우리 동네 텃밭에서 키운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요. 비록 텃밭에서 재배해 먹을 수 있는 것은 전체 먹거리의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일상에서 실천이 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텃밭 농사는 의외로 효과가 큽니다. 농기계나 농약 사용이 적은 데다 텃밭의 작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해 실제로 환경에 도움을 주거든요. 경작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높은 인식이 생기는 것은 물론입니다.
고객을 위한 시설을 확충하라‘는 정당한 요구입니다. 거창한 이념을 내세운 주장이 아니라, 실생활에 근거한개선 요구는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수긍하기 쉽습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수요 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수요가 많은 곳에서 자전거 이용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고, 실제 도시의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자전거 이용자가 점점 더 늘어나면, 그 흐름이 도시 전체로 확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사는 동네는 아라뱃길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지나갑니다. 이 자전거도로는 한강과도 연결되어 있고, 끝까지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동네는 아라뱃길에 맞닿아 있는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입니다. 자전거족들이 오며 가며 중간에 들러서 휴식을 취하고, 고픈 배를 채우기에 딱 좋은 위치지요.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법으로 강제한 적도 없지만, 동네의 추어탕 가게와 짬뽕집에는 멋진 자전거 보관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식당 안팎에는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MTB 환영"
수요가 있으면, 자연스러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시민들의 행동을바꾸고 싶다면, 당위를 역설하기보다 먼저 수요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일에 ‘당위‘를 갖고 들어가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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