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한 사람이 아이패드를 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이패드의 화면을 볼 수 있도록 360도로계속 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지금 다 안 들려요.

아이패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다 안 들려요. 그 말이 옳았다. 신촌 번화가의 입구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는 차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끼어 들어갈 틈이 없었다. 병원앞의 장사진을 보고, 이 불가해한 상황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도로는 정차한 차들로 완전히 막혔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뭔가 크게 외쳤다 - 아니 외치는 것처럼보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최소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듣지못한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갑작스레 허탈해져서 웃었다. 익숙한 웃음이 들리지 않으니 더 기운이 빠졌다. 끔찍한 더위가 다시금 실감났다. 더위와 공포 때문에 땀을 너무 흘렸다. 공기 중의 습기 때문에 전혀 마르지 않아서, 찜통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진부한 비유가 맞아떨어졌다. 소리고 자시고 일단땀이 좀 말랐으면 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병원인들 뭘 해 줄 수 있겠나. 나는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아주 많은 연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룹 채팅방에서 "너희도 안 들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차였다. 

하늘에서 정적 구역의 한계 높이를 알아낸 사람들은 땅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몇 단체가 연합해난지도 근처에서 굴착기로 땅을 파고 또 팠다. 지하 1,000m부터 콰콰콰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정적 구역의 경계 지점이 지상 1,000m, 지하1,000m라고 하니 이공계열 종사자 등 숫자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묘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정적 구역 밖의 사람들 중에서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이상 현상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TV로이런저런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이 희한한 정적을 만든 사람이 의도한 것인지, 마포구에는 꽤 많은 방송사가 있었다. 아나운서들은 뉴스를 전달하다가 갑자기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깜짝 놀랐다. 대부분은 뉴스룸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프로 정신을 발휘해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도 있었다. 일종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목소리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약간 어색해진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갑자기 정적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영상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돌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웃음거리로만 볼 일은 아니었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영상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정적 구역 내에서도 소리가 나긴 하지만, 단지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적 현상이 일어난 이후에 녹음된 소리들이 전파를 타고 디지털 매체에 저장된 것 아닌가. 

새로이 당을 충전할 만한 곳이 필요했다. 마카롱과 홍차가 그리웠다.
나는 골목길들을 쏘다니며 영업 중인 카페를 찾아다녔다. 평소 잘 다니지 않는 곳에서 한 카페를 발견했다. 손님이 몇 명 구석진 데에 앉아 있었고,
젊은 여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다행히 마카롱도 있었다. 가격은 꽤 저렴했다. 나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카운터 앞에 선 그는 나를 보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휴대폰에,
「블루베리 마카롱, 바닐라 마카롱이랑 차가운 홍차 주세요.」라고 써서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달라는 뜻 같았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휴대폰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뭔가 타이핑한 뒤에 휴대폰 액정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수화할 줄 모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살면서 처음 받는 질문이었다.
약간 당황해서 "그래야 하나요?"라고 말할 뻔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가 웃었다. 웃긴가? 뭐가 웃기지?
그는 자기 휴대폰을 꺼내 뭔가 도도도 쳐서 내게

보여 주었다. 그의 휴대폰에는,
「여기는 원래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단체가세운 비영리 수화 카페예요. 이런 일이 생기니까 비장애인 분들도 오시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뭔가 손짓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게 수화인 것을 알아보았다. 민망했다.
그는 구석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에 앉으라는뜻 같아서 그대로 따랐다. 조금 있으니 그가 쟁반에 마카롱 두 개와 차가운 홍차를 담아 가져왔다.
마카롱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바삭하게 부스러지는 표면, 부드럽고 다디단 크림, 홍차를 입에 곧장흘려 넣었다. 달콤하고 씁쓸한 맛, 식감까지 참 좋았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씹고, 마시고, 넘기는소리가 없는 게 문제였다. 소리를 잃으면 먹는 재미조차 줄었다.
카페의 벽에는 카운터를 보는 여자의 사진이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사진 밑에 적힌 글은 수화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안내문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머리를 짧게 친 채로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수화 그거 별거 아니니신청해 봐.‘라고 표정으로 웅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정적 구역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데, 수화를 배워 볼까.

약간 어두운노란 조명이 그의 눈동자를 점점이 수놓고 있었다.
만약 소리가 들린다면,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슴이 뛰거나 말거나, 수화는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수화라는 게 뭐, 그냥 손가락으로 한국어 발화를 흉내 내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손의모양, 위치, 움직임, 손 외의 다른 부분까지 동원했다. 수화는 성대를 제외한 몸의 모든 부위를 이용한강렬한 표현이었다. 몸짓에 대응하는 단어도 있고,
문법도 있었다. 문법이 한국어와 크게 다르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신조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그랬다. 새로 만들어진 단어는 수화 목록에 바로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튜브‘를 말하고 싶을 때 이미수화가 존재하는 ‘유‘와 ‘튜브‘를 합쳐서 표현했다.

1년 전, 스웨덴어의 문법이 영어와 비슷해 쉽다고들 하길래 공부를 시작했다. 2주일 하고 때려치웠다. 수화는 낯선 언어이긴 해도 한국말이니 스웨덴어보다 쉽겠지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문화의 장벽보다, 감각의 장벽이 훨씬 높았다. 음성 언어가 약간의 억양 차이로 다른 뉘앙스를 전하듯이, 수화는 거의 같은 몸짓을 약간 변형하는 것으로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 미묘함을 익히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카페에서 나올 때 카페를 운영하는 단체의 이름을 봐 두었다. 나는 잠들기 전에 그 단체에 내 이름으로 5만 원을 후원했다. 학생에게는 큰 돈이었다.
요즘 약속이 적어서 돈을 쓸 만한 데도 별로 없고 하니까. 뿌듯했다. 가끔 이름 모를 누군가들을 따라 클릭 몇 번으로 작은 후원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의 기분이 훨씬 나았다. 아주 가슴이 벅찬 상태로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알람보다 일찍 일어났다.
시끄러워서 깼다. 에어컨 바람이 부는 소리, 뒤척일 때 베갯잇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냉장고에서 우웅 하고 흐르는 낮은 소리, 창밖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어제 켜 두고 잤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게임의 배경 음악, 작은 소리, 백색 소음, 큰 소리, 소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꿈인가 싶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마포구, 서대문구의 적막이 오늘 아침 9시에 일제히 사라졌다는 뉴스들, 이게 다 대통령 덕이라는 댓글도 있었고, 대통령 때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댓글들도 있었다. 나는 대통령 뽑았지 제사장 뽑았냐고 조롱하는글을 남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