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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신경림(庚林 1935~ )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절창이다. 보지 않는 듯 하면서 다 보고 계셨구나.
어려운 말 하나 쓰지 않고 깊은 곳을 찌른다. 어떤 경지에 오른 시인만이 그런 거룩한 살인을 할 수 있다.
1990년대, 마포와 인사동 언저리에서 신경림 선생님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언성을 높여 누군가와 다투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분이었다.
시집 <돼지들에게》를 펴내며 신경림 선생님에게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세대는 다르지만 내 시를 편견 없이 봐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추천사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술 노래 A Drinking Song
에이츠(W. B. Yeats 1865~1939)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우리 늙어 죽을 때까지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들어 내 입술로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고, 나 한숨짓노라.
Wine comes in at the mouthAnd love comes in at the eye;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마다젊은 날,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소리내어 암송했던 예이츠의 술 노래, "입으로(at the mouth)" "눈으로 (at the eye)"
1행과 2행이 대구를 이루고 "comes in " 이 반복되어 노래가 되었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그대‘는 예이츠가 평생 사랑했던 모드 곤이리라. 술과 사랑의 진실을 이토록 간결하게 묘하다니.
20세기가 낳은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는 찬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알아야 할 진실이 어찌 이것뿐이랴.
그러나 이렇게 사랑에 죽고 사는 시인이 나는 좋다.
그녀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예이츠의 말에 모드 곤은 이렇게대답했다지. "아, 그래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그 불행으로부터아름다운 시를 만들지. 그래서 그 시를 보며 당신은 행복하지.
결혼은 따분한 일이야. 시인은 결혼하면 안 돼. 당신과 결혼하지않은 것에 대해 전 세계는 내게 고마워해야 해."

<이소>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며 중국 최초의 시인이라고 알려진 굴원屈原의 대표작이다. 총 375개의 구에 2,490 글자로 이뤄진 장편시의 제목인 이소(騷)는 근심을만나다‘ 혹은 "이별과 근심의 의미를 담았다.
"저는 하늘의 신 고양의 후손으로 시작하는 <이소〉는높고 아름답게 태어나 왕을 보필하다 모함을 받고 쫓겨난 굴원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읊는다. 자신을 버린 님 (왕)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너무 진해 쓰고 또 써도 눈물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소의 마지막은 ‘이제 그만 하리! 이 나라에는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고국에 무슨 미련을 두리. 훌륭한 정치를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나는 팽함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로 끝난다. 팽함은 은나라의 충신으로 임금에게 직간했다 듣지 않자 물에빠져 죽었다. 초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굴원은 멱라강에투신해 죽었다.

목욕하는 사람아 
이백(李白 701-762)

향수로 머리 감았다 해서
갓티끌 튕기지 말 것이며,
난초 담근 물로 몸 씻었다 해서
옷먼지 털지는 마소.
사람사는세상
지나친 결백은 삼가하나니.
도에 지극했던 사람들
제 본색 감추기를 귀히 여겼더라네.
창량(流浪) 물가에 고기 낚던 이 있었다니.
내사 그이나 찾아 가려네.

이범한 옮김

이백의 시들을 읽다가 술 타령 달 타령에 염증이 나 술이 나오지 않는 시를 찾다 <목욕하는 사람아>를 발견했다.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의 먼지를 털고, 새로 몸을씻은 자는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턴다"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를 되받아치며 이백은 지나친 결백을 삼가고 본색 감추기를 귀히 여기라고 말한다.

창랑(滄浪: 한수이강의 지류)에 고기 낚던 이는 굴원과 대화를 나누던 어부, 고결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묻히지 않겠다는굴원에게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노래를 남기고 어부는 사라졌다. 청렴결백을 자랑 말고 세상에 따라 변하라, 깨끗함에 집착하지 말라는깊은 뜻 아니던가. 지나친 결백은 나에게도 불편하고 타인에게도 불편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진면목‘이라는 말은 소동파의 시에서비롯되었다. 여산을 두루 구경한 뒤 서림사의 벽에 그가 남긴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가로로 보면 산마루, 옆에서 보면 봉우리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 내가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 밖에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그가 유배되어 밖에 있었기에 도달한 이치가 아닐까.
시문학뿐 아니라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던 소동파, 자유로운 듯하나 절제된 아름다움,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힘이 있다.

기대지 않고
이바라기 노리코(木子 1926~2006)

더이상
기성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기성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기성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그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그 정도
자신의 눈과 귀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으면서
그 어떤 불편함이 있으랴
기댄다면
그건의자 등받이뿐

-성혜경 옮김

내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며 사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대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노리코 여사는 엄청난 독서를했음에 틀림없다. 이런저런 사상과 학문을 섭렵했던 자만이 그처럼 쉽게 버릴 수 있다. 내가 조선 여자라 노리코의 시에 격하게 공감할지도 모른다. 성리학과불교, 모더니즘을 수입해 얼른내 몸에 둘러야 했던 변방의 먹물들. 서재 가득한 책에 포위된지식인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내 나라 안방을 점령한 무슨무슨 클래스에 열광하는, 무슨무슨 논리에 영혼을 바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유튜브의시대, 내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자신의 다리로 서 있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말이 없어진다면 삶은 더 간단하게 행복하거나 불행하겠지.
호주오픈 테니스가 시작되기 전에 편하게 앉을 소파를 사야겠는데 아직 맘에 드는 소파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 맘에 딱 드는 물건이 아니라면 사지 말자. 오래 살면서 내가 배운 건 그정도.


이바라기 노리코(木07子1926~2006)

이라크의 가수가 노래 불렀다
열렬히 허리를 비틀어 가며
"사담에게 이 피를 바치자
사담에게 이 생명을 바치리"

어딘지 귀에 익은 노래
45년 전 우리도 불렀다
독일 어린이들도 불렀다
지도자의 이름을 걸고
피를 바치자 따위의 노래를 부를 땐
변변한 일은 없는 법

피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
굳이 바치고 싶다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이야말로

- 성혜경 옮김

변변한‘이라는 형용사가 절묘하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번역한 성혜경 선생의 탁월한 언어 감각에 감탄이 나온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쓸 피가 내게 남아 있나? 내 자신을 위해 쓸 피도부족한데….
피처럼 선명한 언어들, 허튼 수식어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엮어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던 위대한 시인.
일본군국주의를 예리한 ‘여자의 말‘로 비판했던 노리코 여사에게 조선은 아름다운 피해자, 알고 싶은 이웃나라였다. 한국어를배우고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소개했던 이바라기 노리코, 어떤문학상 수상도 거부했고 장례식도 조의금도 거부한다는 편지를남기고 그가 타계한 몇 달 뒤 일본을 방문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게서 노리코 여사의 집에 배용준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이도 지식인인 척하는 남자들에게 어지간히 실망했던 게다.

유언
김명순(1896~1951)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 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이 사나운 곳이 사나운 곳아.

내가 조선이 나를 영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영결할때이다. 그만큼 주체적이고 활달한 자아를 엿볼 수 있다. 죽은시체에게도 학대해 달라니, 자학적인 표현에서 그녀에 대한 집단가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된다.
평양 갑부 소실의 딸로 태어난 김명순은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부하다 1917년 최남선이 주간하는 《청춘》의현상응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창조‘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했는데 일본 유학 중에 데이트 강간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한 비난에 시달렸다.
"부정한 혈액" "처녀 때 강제로 남성에게 정벌받았다" 남성문인들의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김명순은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간행했고 매일신보사의 기자로도 일했다.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근대 처음으로 시집을 간행한 여성 시인. 그 찬란한 처음을연 그의 마지막은 불우했다. 궁핍한 생활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땅콩을 팔아 연명하다 도쿄의 뇌병원에서 죽었다고 한다.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나혜석(錫 1896~1948)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가자.
사남매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처음부터 격하게 시작하는 나혜석의 유언과도 같은 시. ‘살러가자가 아니라 죽으러 가자" 다. 비장한 내용이나 문체는 사뭇당당하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파리로 가서 죽고 싶다는 시를 쓰고 왜 못 떠났을까? 죽으러‘는 ‘살러‘의 역설적 표현 아닌가 얼마나 시달렸으면….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던 나혜석은 파리에서 만난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관계가 알려지며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부도덕한 신여성‘은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행려병자가 되어 52세에서울시립자제원 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1934년 나혜석이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장의 한 문장이 내 귀에 메아리친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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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면서 나는 이주하는 새들의 여정을 더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를얻었다. 
내가 여행을 하며 때때로 경로를 바꾸거나 계획을 수정해야했던 것처럼 새들은 어떻게 저마다의 다양한 여정에 적용해왔는지,
그리고 새의 이주가 나의 어릴 적 단순한 생각처럼 계절마다 북쪽에서남쪽으로 이동하는 움직임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나의 비행기 편이 취소되거나 여행 일정이 바뀌고 날씨가 나빠지는일쯤은 새들이 이주하는 동안에 맞닥뜨릴 위험과 그 뒤에 따라올 여러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부디 이 책을 통해 멋진 새를 만나러가는 여정에 영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새들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있도록 지구 곳곳에서 조력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든 이 책에 등장한 새들의 일부를 만날 수 있으며일 년 내내 그들의 놀라운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그 기회를 더 많은사람이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 이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를 시간이다.

극제비갈매기 오Sterna paradisaca
이주 형태:계절성, 위도 이주

의심할 여지없이 극제비갈매기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이동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끈기 넘치는 여행자는 지구의 한쪽 극지방에서 다른 극지방으로 
최소 왕복 4만 킬로미터에서 7만20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그 시작과 끝 지점이 어디인지, 그리고그 길이를 직선거리로 재는지 혹은 우세한 기류를타고 이동한 새들의 구불구불한 경로를 모두 따라서측정하는지에 따라 총거리는 달라진다.
이 엄청난 비행으로 극제비갈매기는 일 년에 여름을

두 번 즐길 수 있다. 한 번은 북극에서, 한 번은 남극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매년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많은 햇볕을 쬐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부분은 극제비갈매기의 긴 수명(25~30년)을 고려할 때 한마리가 평생 이동하는 거리가 얼추 100만킬로미터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구와달 사이를 거의 세 번 오가는 것과 맞먹는 거리다.

벌새는 어떻게 이주할까?

이주는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몸이 가장 작은 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벌새류는 몸무게가 단 3그램, 몸길이는 7~10센티미터로 아주 작지만대부분 두 서식지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혼자 날아서 이주한다. 예를들어 멕시코만 상공을 쉬지도 않고 날아서 지나는 루비목별새‘" (Archilochuscolubris)는 여정의 시작과 끝 지점에 따라 짧게는 800킬로미터에서 최대15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대체 작은 몸으로 어떻게 이토록 멀리까지이주할 수 있는 걸까?
오랫동안 사람들은 벌새를 포함한 몸집이 작은 명금류가 혼자 힘으로는격렬한 비행을 완주할 수 없어서 참을성이 많은 튼튼한 새의 등에올라타 히치하이킹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설화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우리는 이제 벌새가 어떻게이주하는지 훨씬 잘 알고 있다.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s

벌새는 혼자 이주한다이 작은 새는 이주하는 여정 내내 혼자서 여행한다. 하나의 작은 표적은잠재적 포식자의 눈에 훨씬 덜 띄기 때문에 벌새는 안전하게 이주할 수있다.
벌새는 낮 동안에 이동한다벌새는 대기온도가 높아 최상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오전부터 초저녁시간까지만 이동한다.
벌새는 낮은 고도로 난다고도가 낮을수록 공기밀도가 높아서 이동하기가 더 쉽다. 육지 위를 날때는 나무 바로 위인 지상 6~15미터 높이로, 물 위를 날아갈 때는 파도를스치듯이 낮게 날아간다.
벌새는 꽃망울이 터질 때 이동한다벌새는 이주 시기와 경로를 꽃 피는 일정에 맞춘다. 꽃들이 가장 많이피어나 꿀이 풍부해지는 때와 장소를 자신의 이주 경로에 연결해 이동중에 사용할 에너지로 쓴다.
이런 모든 적응을 통해 벌새류는 이주하는 동안 보통은 하루에32~40킬로미터나 육지 위를 날아갈 수 있다. 이는 같은 기간에 차체길이가 4.6미터 정도인 중형차가 1600킬로미터를 내달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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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과 육체적으로 위대한사람으로 나누면 육체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작아 보이고,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가까워 올수록 평범하고 작아져서 우리의 눈앞까지 오면 결함과 병통투성이의 우리와 똑같은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위대한 까닭이다."
이것은 위의 말을 적의적으로 인용한 노신魯迅의 말이다.
내가 사서삼경에서 『논어』를 애독하는 이유는 공자가 평범한 인간으로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그의 문답과 생활 모습에서 풍기는인간미, 그의 평범한 신변잡사에서만 인간중니와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이란 곧 위대한 생활이다. 치졸한글이 가끔 인간미를 지니고 있거니와, 인간미를 풍기는 글이란 또한 위대한 글이다. 서가들이완의 글씨 중에서도 예서를높게 평하는 것은 그 고졸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생활과행복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해 먹고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살아가기가 바빠서 아무런 오락이나 향락의 여유도 없이 판에 박은 듯한 생활을 되풀이하는 가난한 한국인의 생활을 보고 어느 미국 사람이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에 왜 사는지 알 수가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있고, 냉장고가 있고, 자동차가 있는 문화 주택에 사는 미국 사람이 생활고에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어느 한국 사람이
"그것은 너무 복이 과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그런 부자 나라에서자살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면 저마다 행복한 생활을 희구하고 있건만 행복하지 못했다.
얼른 생각하면 서로 당연한 생각들이다. 

길가 구루마 주점에서 온주 두어 컵에 군참새 한마리를 뜯는 것은 싫지 않다. 귀부인들이 하필이면 술집인지 요릿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에서 향연을 하고 계신 것은 그리 고상해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늙은 자세하고 아내와 동반해서 뒷골목 싼거리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는 것은 제법 탈속한 식도락의 기분이다.
밤늦게 독서삼매에서 깨어나면 출출하게 마련이다. 이때 요 밑주발 뚜껑 속에 누릇누릇하고 구수한 누룽지의 진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절에서 심동설야深雪夜에 승려들과 법당에서 즐기던 누룽지 튀각 맛을 생각한다.
근래는 좀체로 엽차도 사기 어렵더니 어느 친구가 대만 갔다오는 길에 차 한 통을 주어서, 다시 다향을 누린다. 화붕은 가고적연히 앉았더니, 마침 벽상에 걸린 시구가 우연히도 "손은 가고 차향기만 혀뿌리에 남았네客去茶香留舌本."다.
긴 밤이다.

이때다. 김치에 찬밥을 비벼 먹는 진미는 별미란 맛보다 때다. 때를 놓치면 그 맛은 안 난다. 광주의 속댓국, 진주晋州의제삿밥, 난중의 은어 무처정부의 두죽豆 호타하맥반이 유명한 까닭이다. 어느 부자가 감히 내 향연의 진미를엿보라

얼마나 늘어진 팔자냐.
발을 뻗을 방 한 간 없이 코에서 단내가 나게 헤매도 입에 풀칠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늙은 부모는 떨고 어린 자식은 울고, 병든아내는 신음하고, 천대 조소멸시 속에서 시달리고, 쪼들리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더러 안빈낙도를 하라는 것도 맹랑한 주문이다.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요,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수없는 것이 진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당초에 비할 바에야 청淸하기라도 하고 못 얻어먹을 바에야 끌끌하기라도 해야 욕을 더하지않고 자존심을 구제할 수 있다. 때로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굴하지않는 의리도 알아야 하고, 냉수 한 모금에도 상미를 느낄 줄도알아야 한다.
광해조 때 이위경李偉이란 선비, 지각이 있어 어지러운 조정에서 벗어나 먼 고장에 숨어 살더니, 아내가 손 대접을 하기 위하여밥을 끓이려 토막을 패다가 도끼에 손을 찍힌 것을 보고, 그 이상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어 다시 환로에 나섰다. 그 손이란 출사하기를 권유하러 온 서울 손이었다. 이위경은 이것이 동기가 되어 본의아닌 폐모소의 주역이 되어 몸을 망쳤다. 

그릇된 말은 없다. 그가 한마디의 간쟁도 없이 먼 고장으로 간것도 영리한 보신책이요, 다시 진출한 것도 시세가 고정되어 가는기색을 살핀 것이다. 그가 환로로 진출한 심기는 아내가 손을 찍힌뒤에 있지 않고 손을 맞아들일 때 있었다. 손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한 홉 쌀조차 없었던들 나무를 팰 일도 없었을 것이요, 그가 환로에서 관심을 끊었다면 그 흔한 나무쯤은 제손으로 채취하도록 생활을 고쳤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을 가난의죄로 돌린다는 것은 값싼 매빈이다. 그러므로 가난이 비극이아니라 처빈處貧을 못 하는 것이 비극이다.
세상에는 실로 딱하고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여하한 범죄에 대해서도 나는 질책할 아무 용기도 없다. 그러나 다행히 염반일망정 밥을 먹고 값싼 천일망정몸을 가리고 구차한 사글셋방일망정 풍찬노숙을 면하고 있다면 이이상 바랄 것은 없다.
해로하는 부부가 있어 건강한 몸으로 환갑을 맞이했다. 이에서기쁜 일이 없다. 매일 먹던 음식도 이날따라 별미요, 풀 한 포기, 꽃한 송이도 이날따라 신광에 빛날 것이다. 두 늙은이, 겸상을 받고 서로 행복을 다짐하는 기쁨이 크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큰 잔치를 베풀고 잔칫상 못차리는 것을 크게 여겨 기쁜 날을 괴로운 날로 바꾸려는가.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백년가약이 성취되어 화촉을 밝히니 이에서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냉수 한 그릇의 맑은 정성이 얼마나 성스러우며, 평소에 입던 옷을 다시 빨아 다렸을망정 이날따라얼마나 호사로우나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호화로운 식장과
"성대한 주연과 화려한 성장을 부러워하여 일생의 기쁜 날을 놓고고민으로 바꾸려는가.
쪽박이 있으면 물을 뜨고, 솥이 있으면 밥을 짓고, 이불이 있으니 따뜻한 밤을 지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쓸모보다 눈치레가 앞서는 혼구婚를 장만하기에 신혼 초부터 채무를 안고 고난의 길을살려는가. 이 곧 처빈을 못하여 행복을 불행으로, 낙樂을 고뿜로 말살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의 굶주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음에 없는 짓이나 비루한웃음이라도 웃어 가며 살아야 할 것이니, 개성이나 자존심만을 싸가지고 지낼 수도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타협은 필요하리라. 그러나 죽을 밥으로 바꾸기 위하여, 누추한 셋방을 깨끗한 저택으로올리기 위하여, 대단스럽지도 못한 남들과 어깨를 맞추기 위하여자기의 신조와 고집을 꺾고, 한가로운 자유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백년가약이 성취되어 화촉을 밝히니 이에서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냉수 한 그릇의 맑은 정성이 얼마나 성스러우며, 평소에 입던 옷을 다시 빨아 다렸을망정 이날따라얼마나 호사로우나,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호화로운 식장과
"성대한 주연과 화려한 성장을 부러워하여 일생의 기쁜 날을 놓고고민으로 바꾸려는가.
쪽박이 있으면 물을 뜨고, 솥이 있으면 밥을 짓고, 이불이 있으니 따뜻한 밤을 지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쓸모보다 눈치레가 앞서는 혼구婚를 장만하기에 신혼 초부터 채무를 안고 고난의 길을살려는가. 이 곧 처빈을 못하여 행복을 불행으로, 낙樂을 고苦로 말살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의 굶주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음에 없는 짓이나 비루한웃음이라도 웃어 가며 살아야 할 것이니, 개성이나 자존심만을 싸가지고 지낼 수도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타협은 필요하리라. 그러나 죽을 밥으로 바꾸기 위하여, 누추한 셋방을 깨끗한 저택으로올리기 위하여, 대단스럽지도 못한 남들과 어깨를 맞추기 위하여자기의 신조와 고집을 꺾고, 한가로운 자유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혼자서 먼저 말을 타고 출발하였다. 말은 자줏빛에 흰 정수리,
날씬한 정강이에 높은 발굽, 날카로운 머리에 잘룩한 허리, 그 두 귀가쫑긋한 것이 진실로 만리를 달릴 생각이 있는 듯하였다. 창대는 앞에서 고삐를 잡고 장복은 뒤를 따른다. 안장에는 쌍으로 주머니를 걸어, 왼쪽에는 벼루를 넣고 오른쪽에는 거울을 넣었고, 붓이 두 개에다 먹이 하나, 작은 공책 네 권과 이정록 한 축을 넣었다. 행장이 지극히 가벼우니 짐 검사가 비록 엄하단들 염려할 것이 없었다. 성문에 못 미쳐서소나기가 한줄기 동쪽으로부터 몰려들기에 마침내 채찍을 서둘러 가서성문 입구에서 말을 내려 홀로 걸어 문루에 올랐다. 성 아래를 굽어보니홀로 창대가 말을 잡고 서 있고 장복이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더니장복이가 나와 길가 작은 일각문에 서서 아래위로 바라보다가 삿갓을치면서 비를 가리고, 손으로 작은 오지병을 들고서 설렁설렁 온다.
余, 獨先一騎而出, 馬, 紫騮而白題, 脛庾而蹄高, 頭銳而腰短, 竦其雙耳, 眞有萬里之想矣. 昌大前控, 張福後囑, 鞍掛雙囊, 左硯右鏡, 筆二墨一, 小空冊四卷, 程里錄一軸, 行裝至輕, 搜檢雖嚴,可以無虞矣, 未及城門, 騷雨一陣, 從東而至, 遂促鞭而行, 下馬城蘭, 獨步上樓. 俯視城底, 獨昌大, 持馬而立, 不見張福, 少焉, 張福出 立道傍小角門,望上望下, 敲笠遮雨, 手提烏瓷小壺, 楓堀而來,
와 같은 치밀한 사실적인 묘사가 있는가 하면, 유혜풍柳惠風[혜풍은유득공의 호의 시를 읊으면서, 홀연히 이수를 건너는 헝가

의 고사를 이끌어 기탕한 일문을 초하여 심회를 객관적 비유로표현하는가 하면, 요동백탑遼東白塔」에서 "좋은 울음터로다 울어볼 만하고녀好哭場, 可 정천입지天立地의 방성일곡放聲."란맺으로 도도한 일문을 초하여 낭만의 물결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개 그는 서사 설리에 가장 능하다. 다만 그 문장이 지나치게 유창하고, 4·4조를 기본으로 하는 일정한 억양과, 약간 진부한예투와 다변에 흘러, 공안파公派의 참배맛 같은 글이 가다가 경릉파竟陵派의 도토리 맛을 그립게 하는 일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강록」에 중국의 동진문에 이르러 그 번성한 것을 보고 "여기가 이러할 데야 더 가면 얼마나 굉장할 것인가. 기가 질리고 낯이 홧홧하여 되돌아가고 말까?" "아니다. 내 평생에 질투가 없더니 타국에 와서 만분지일도 못 보고 질투를 느끼다니, 이 본 것이적은 탓이다. 여래의 혜안으로 시방세계를 보면 만사가 평등이 아닌가." "장복아, 너 이담에 중국에 태어나고 싶으냐?"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 살고 싶지 않소." "장님이 어깨에 금낭을 메고, 손으로 월금月책을 타며 온다." "내 깨달았노니 저것이 평등안平等이아닌가." 이와 같이 사건과 사건으로 연달아 이어 가며, 허虛에 실험을 담고 자취 없이 무드를 살려, 문장을 계속시키고 정회를 풍기는서술법은 또한 높이 살 만하다.

선생은 수필문학입문이란 저서를 통해서수필문학에 대한 투철하고 명확한 생각을 펼쳐 보인 바 있다.
그는 동양 수필의 연원을 하고혁신의 만명 소품문운동에서 찾았다. 수필이 자유로운 산문이기는 해도 어디까지나문학작품으로서의 자유로운 산문이라고 했다. 수필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볼 때 흔히 수필이라고 일컫는 세간의 비문학작품적인문장들은 한낱 잡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 신비적 이미지로 된 문학이 곧 수필이니, 수필이란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시에 가장 새로운 문학 형태요, 아직도 미래의 문학 형태라고 했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문장기를 벗겨야하는 것과 한가지 이치다. 
그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간다.

수필의 정신은 산문정신이니, 평소에 쌓인 온축과 박학이 완전히 융화되고 체질화되고 생활이 되어 사물에 접할 때마다 자기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흘러, 혹은 유머도 풍기고 혹은 위트도 빛내며,
혹은 풍자도 되고 혹은 우화도 되며, 구비마다 새로운 기축열되어느 때 어느 줄을 튕겨도 거문고 소리는 거문고 소리, 비파는비파 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산문정신의 높은 경지라고 했다.

수필은 자유로운 산문이다. 이때 자유롭다는 말은 고전 문장의일체의 규격과 제한된 사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라 했다. 탈피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이다. 허물이 없고서야 탈피가 있을 수 없듯이, 과거의 문장을 모르고 전통을 계승한 바 없고 대가에 속한 바가 없으면 탈피할 무엇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원중랑의 글을 읽은 뒤에 비로소 과거의 고전 문장이 오늘의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고문을 다 털어 버렸다. 그 후 십년간 나는 공안의 글이 아니면 읽지 않고, 공안의 글이 아니면 쓰지아니했다. 그러다가 담원춘의 글을 읽고 나서 십 년간 노심해서 쓴 내글의 무차치함을 알고 다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경릉의 글만을 오직 애독하고 경릉의 글만을 써 왔다. 무릇 칠 년간을 그렇게해 왔다. 그러나 나는 차차 그 글에 불만을 느끼고 또 다 불에 태워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자의에서만 글을 쓰고 내가 창조한 글만이 내법이 되었다. 지금 내 글은 오직 장대의 글일 뿐이다.

음속의 울림은 종소리의 파장처럼 쉬 가시질 않는다. 그 소재는 기이하지 않고 모두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서 취해 왔다. 깍두기처럼 지극히 평범한 소재에서 취하고 재래에 있던 여러 방법에서 가져왔으며, 전에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 냈다.
내가 거울을 꺼내 지금의 나를 살펴보다가 책을 들춰 그 사람의 글을읽으니, 그 사람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이튿날 또 거울을 가져다보다가 책을 펼쳐 읽어 보니, 그 글은 다름아닌 이튿날의 나였다. 이듬해또 거울을 가져다 보다가, 책을 펴서 읽어 보니 그 글은 바로 이듬해의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 가면서 자꾸 변해 가고 변하여도 그 까닭을 잊었건만, 그 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기이하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을 뿐이다.
순조 때의 문장가 홍길주는 수십 년간 연암 박지원의 문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마침내 이를 읽고 느낀 감회를 이렇게 썼다. 세월이 지나 사람의 모습은 변해도 그 글을 읽는 감동만은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윤오영의 수필을 읽다가 홍길주의 감회를 새삼 떠올렸다.
문여기인즉 글이 곧 그 사람이란 말은 옛사람이 늘 일,
러 오던 이야기다. 하지만 글에 교언영색이 난무하고 허세과장이

넘치다 보니, 그 글만 읽어서는 그 사람을 알기가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수필에는 그의 육성과 체취가 지금도 살아있다. 굳이 그를 만나 보지 않았어도 그 글을 읽으면 그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970년에 간행된 선생의 수필집은 그 제목이 ‘고독의 반추이다. 반추란 되새김질의 뜻이니 고독을 씹고 곱씹어 음미하고 사색하는 데서 우러나온 소담스런 낙수들을 모았다는 뜻이다. 그는 다른 문학은 마음속에 얻은 것을 밖으로 펴지만 수필은 밖에서 얻은것을 안으로 삼키는 것이어서, 수필은 자기를 대상으로 한 외로운독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수필이 바로 그렇다.
그 외로운 독백이 넋두리나 푸념으로 흐르지 않았던 데서, 고금의문장에서 제혼섭백提魂攝하여 격조와 품격으로 승화시킨 그의정신의 아득한 높이와 만나게 된다. 그의 수필은 한국 수필이 거둔가장 빛저운 수확의 하나다.

한국 근대 수필의 진수
윤오영 산문의 결정판!

"감이 곧 곶감은 아니다.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 그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 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곶감이라야 오래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만든 곶감이다.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윤오영, 곶감과 수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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