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과 육체적으로 위대한사람으로 나누면 육체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작아 보이고,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가까워 올수록 평범하고 작아져서 우리의 눈앞까지 오면 결함과 병통투성이의 우리와 똑같은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위대한 까닭이다."
이것은 위의 말을 적의적으로 인용한 노신魯迅의 말이다.
내가 사서삼경에서 『논어』를 애독하는 이유는 공자가 평범한 인간으로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그의 문답과 생활 모습에서 풍기는인간미, 그의 평범한 신변잡사에서만 인간중니와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이란 곧 위대한 생활이다. 치졸한글이 가끔 인간미를 지니고 있거니와, 인간미를 풍기는 글이란 또한 위대한 글이다. 서가들이완의 글씨 중에서도 예서를높게 평하는 것은 그 고졸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생활과행복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해 먹고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살아가기가 바빠서 아무런 오락이나 향락의 여유도 없이 판에 박은 듯한 생활을 되풀이하는 가난한 한국인의 생활을 보고 어느 미국 사람이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에 왜 사는지 알 수가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있고, 냉장고가 있고, 자동차가 있는 문화 주택에 사는 미국 사람이 생활고에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어느 한국 사람이
"그것은 너무 복이 과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그런 부자 나라에서자살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면 저마다 행복한 생활을 희구하고 있건만 행복하지 못했다.
얼른 생각하면 서로 당연한 생각들이다. 

길가 구루마 주점에서 온주 두어 컵에 군참새 한마리를 뜯는 것은 싫지 않다. 귀부인들이 하필이면 술집인지 요릿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에서 향연을 하고 계신 것은 그리 고상해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늙은 자세하고 아내와 동반해서 뒷골목 싼거리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는 것은 제법 탈속한 식도락의 기분이다.
밤늦게 독서삼매에서 깨어나면 출출하게 마련이다. 이때 요 밑주발 뚜껑 속에 누릇누릇하고 구수한 누룽지의 진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절에서 심동설야深雪夜에 승려들과 법당에서 즐기던 누룽지 튀각 맛을 생각한다.
근래는 좀체로 엽차도 사기 어렵더니 어느 친구가 대만 갔다오는 길에 차 한 통을 주어서, 다시 다향을 누린다. 화붕은 가고적연히 앉았더니, 마침 벽상에 걸린 시구가 우연히도 "손은 가고 차향기만 혀뿌리에 남았네客去茶香留舌本."다.
긴 밤이다.

이때다. 김치에 찬밥을 비벼 먹는 진미는 별미란 맛보다 때다. 때를 놓치면 그 맛은 안 난다. 광주의 속댓국, 진주晋州의제삿밥, 난중의 은어 무처정부의 두죽豆 호타하맥반이 유명한 까닭이다. 어느 부자가 감히 내 향연의 진미를엿보라

얼마나 늘어진 팔자냐.
발을 뻗을 방 한 간 없이 코에서 단내가 나게 헤매도 입에 풀칠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늙은 부모는 떨고 어린 자식은 울고, 병든아내는 신음하고, 천대 조소멸시 속에서 시달리고, 쪼들리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더러 안빈낙도를 하라는 것도 맹랑한 주문이다.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요,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수없는 것이 진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당초에 비할 바에야 청淸하기라도 하고 못 얻어먹을 바에야 끌끌하기라도 해야 욕을 더하지않고 자존심을 구제할 수 있다. 때로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굴하지않는 의리도 알아야 하고, 냉수 한 모금에도 상미를 느낄 줄도알아야 한다.
광해조 때 이위경李偉이란 선비, 지각이 있어 어지러운 조정에서 벗어나 먼 고장에 숨어 살더니, 아내가 손 대접을 하기 위하여밥을 끓이려 토막을 패다가 도끼에 손을 찍힌 것을 보고, 그 이상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어 다시 환로에 나섰다. 그 손이란 출사하기를 권유하러 온 서울 손이었다. 이위경은 이것이 동기가 되어 본의아닌 폐모소의 주역이 되어 몸을 망쳤다. 

그릇된 말은 없다. 그가 한마디의 간쟁도 없이 먼 고장으로 간것도 영리한 보신책이요, 다시 진출한 것도 시세가 고정되어 가는기색을 살핀 것이다. 그가 환로로 진출한 심기는 아내가 손을 찍힌뒤에 있지 않고 손을 맞아들일 때 있었다. 손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한 홉 쌀조차 없었던들 나무를 팰 일도 없었을 것이요, 그가 환로에서 관심을 끊었다면 그 흔한 나무쯤은 제손으로 채취하도록 생활을 고쳤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을 가난의죄로 돌린다는 것은 값싼 매빈이다. 그러므로 가난이 비극이아니라 처빈處貧을 못 하는 것이 비극이다.
세상에는 실로 딱하고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여하한 범죄에 대해서도 나는 질책할 아무 용기도 없다. 그러나 다행히 염반일망정 밥을 먹고 값싼 천일망정몸을 가리고 구차한 사글셋방일망정 풍찬노숙을 면하고 있다면 이이상 바랄 것은 없다.
해로하는 부부가 있어 건강한 몸으로 환갑을 맞이했다. 이에서기쁜 일이 없다. 매일 먹던 음식도 이날따라 별미요, 풀 한 포기, 꽃한 송이도 이날따라 신광에 빛날 것이다. 두 늙은이, 겸상을 받고 서로 행복을 다짐하는 기쁨이 크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큰 잔치를 베풀고 잔칫상 못차리는 것을 크게 여겨 기쁜 날을 괴로운 날로 바꾸려는가.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백년가약이 성취되어 화촉을 밝히니 이에서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냉수 한 그릇의 맑은 정성이 얼마나 성스러우며, 평소에 입던 옷을 다시 빨아 다렸을망정 이날따라얼마나 호사로우나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호화로운 식장과
"성대한 주연과 화려한 성장을 부러워하여 일생의 기쁜 날을 놓고고민으로 바꾸려는가.
쪽박이 있으면 물을 뜨고, 솥이 있으면 밥을 짓고, 이불이 있으니 따뜻한 밤을 지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쓸모보다 눈치레가 앞서는 혼구婚를 장만하기에 신혼 초부터 채무를 안고 고난의 길을살려는가. 이 곧 처빈을 못하여 행복을 불행으로, 낙樂을 고뿜로 말살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의 굶주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음에 없는 짓이나 비루한웃음이라도 웃어 가며 살아야 할 것이니, 개성이나 자존심만을 싸가지고 지낼 수도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타협은 필요하리라. 그러나 죽을 밥으로 바꾸기 위하여, 누추한 셋방을 깨끗한 저택으로올리기 위하여, 대단스럽지도 못한 남들과 어깨를 맞추기 위하여자기의 신조와 고집을 꺾고, 한가로운 자유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백년가약이 성취되어 화촉을 밝히니 이에서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냉수 한 그릇의 맑은 정성이 얼마나 성스러우며, 평소에 입던 옷을 다시 빨아 다렸을망정 이날따라얼마나 호사로우나,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호화로운 식장과
"성대한 주연과 화려한 성장을 부러워하여 일생의 기쁜 날을 놓고고민으로 바꾸려는가.
쪽박이 있으면 물을 뜨고, 솥이 있으면 밥을 짓고, 이불이 있으니 따뜻한 밤을 지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쓸모보다 눈치레가 앞서는 혼구婚를 장만하기에 신혼 초부터 채무를 안고 고난의 길을살려는가. 이 곧 처빈을 못하여 행복을 불행으로, 낙樂을 고苦로 말살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의 굶주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음에 없는 짓이나 비루한웃음이라도 웃어 가며 살아야 할 것이니, 개성이나 자존심만을 싸가지고 지낼 수도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타협은 필요하리라. 그러나 죽을 밥으로 바꾸기 위하여, 누추한 셋방을 깨끗한 저택으로올리기 위하여, 대단스럽지도 못한 남들과 어깨를 맞추기 위하여자기의 신조와 고집을 꺾고, 한가로운 자유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혼자서 먼저 말을 타고 출발하였다. 말은 자줏빛에 흰 정수리,
날씬한 정강이에 높은 발굽, 날카로운 머리에 잘룩한 허리, 그 두 귀가쫑긋한 것이 진실로 만리를 달릴 생각이 있는 듯하였다. 창대는 앞에서 고삐를 잡고 장복은 뒤를 따른다. 안장에는 쌍으로 주머니를 걸어, 왼쪽에는 벼루를 넣고 오른쪽에는 거울을 넣었고, 붓이 두 개에다 먹이 하나, 작은 공책 네 권과 이정록 한 축을 넣었다. 행장이 지극히 가벼우니 짐 검사가 비록 엄하단들 염려할 것이 없었다. 성문에 못 미쳐서소나기가 한줄기 동쪽으로부터 몰려들기에 마침내 채찍을 서둘러 가서성문 입구에서 말을 내려 홀로 걸어 문루에 올랐다. 성 아래를 굽어보니홀로 창대가 말을 잡고 서 있고 장복이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더니장복이가 나와 길가 작은 일각문에 서서 아래위로 바라보다가 삿갓을치면서 비를 가리고, 손으로 작은 오지병을 들고서 설렁설렁 온다.
余, 獨先一騎而出, 馬, 紫騮而白題, 脛庾而蹄高, 頭銳而腰短, 竦其雙耳, 眞有萬里之想矣. 昌大前控, 張福後囑, 鞍掛雙囊, 左硯右鏡, 筆二墨一, 小空冊四卷, 程里錄一軸, 行裝至輕, 搜檢雖嚴,可以無虞矣, 未及城門, 騷雨一陣, 從東而至, 遂促鞭而行, 下馬城蘭, 獨步上樓. 俯視城底, 獨昌大, 持馬而立, 不見張福, 少焉, 張福出 立道傍小角門,望上望下, 敲笠遮雨, 手提烏瓷小壺, 楓堀而來,
와 같은 치밀한 사실적인 묘사가 있는가 하면, 유혜풍柳惠風[혜풍은유득공의 호의 시를 읊으면서, 홀연히 이수를 건너는 헝가

의 고사를 이끌어 기탕한 일문을 초하여 심회를 객관적 비유로표현하는가 하면, 요동백탑遼東白塔」에서 "좋은 울음터로다 울어볼 만하고녀好哭場, 可 정천입지天立地의 방성일곡放聲."란맺으로 도도한 일문을 초하여 낭만의 물결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개 그는 서사 설리에 가장 능하다. 다만 그 문장이 지나치게 유창하고, 4·4조를 기본으로 하는 일정한 억양과, 약간 진부한예투와 다변에 흘러, 공안파公派의 참배맛 같은 글이 가다가 경릉파竟陵派의 도토리 맛을 그립게 하는 일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강록」에 중국의 동진문에 이르러 그 번성한 것을 보고 "여기가 이러할 데야 더 가면 얼마나 굉장할 것인가. 기가 질리고 낯이 홧홧하여 되돌아가고 말까?" "아니다. 내 평생에 질투가 없더니 타국에 와서 만분지일도 못 보고 질투를 느끼다니, 이 본 것이적은 탓이다. 여래의 혜안으로 시방세계를 보면 만사가 평등이 아닌가." "장복아, 너 이담에 중국에 태어나고 싶으냐?"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 살고 싶지 않소." "장님이 어깨에 금낭을 메고, 손으로 월금月책을 타며 온다." "내 깨달았노니 저것이 평등안平等이아닌가." 이와 같이 사건과 사건으로 연달아 이어 가며, 허虛에 실험을 담고 자취 없이 무드를 살려, 문장을 계속시키고 정회를 풍기는서술법은 또한 높이 살 만하다.

선생은 수필문학입문이란 저서를 통해서수필문학에 대한 투철하고 명확한 생각을 펼쳐 보인 바 있다.
그는 동양 수필의 연원을 하고혁신의 만명 소품문운동에서 찾았다. 수필이 자유로운 산문이기는 해도 어디까지나문학작품으로서의 자유로운 산문이라고 했다. 수필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볼 때 흔히 수필이라고 일컫는 세간의 비문학작품적인문장들은 한낱 잡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 신비적 이미지로 된 문학이 곧 수필이니, 수필이란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시에 가장 새로운 문학 형태요, 아직도 미래의 문학 형태라고 했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문장기를 벗겨야하는 것과 한가지 이치다. 
그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간다.

수필의 정신은 산문정신이니, 평소에 쌓인 온축과 박학이 완전히 융화되고 체질화되고 생활이 되어 사물에 접할 때마다 자기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흘러, 혹은 유머도 풍기고 혹은 위트도 빛내며,
혹은 풍자도 되고 혹은 우화도 되며, 구비마다 새로운 기축열되어느 때 어느 줄을 튕겨도 거문고 소리는 거문고 소리, 비파는비파 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산문정신의 높은 경지라고 했다.

수필은 자유로운 산문이다. 이때 자유롭다는 말은 고전 문장의일체의 규격과 제한된 사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라 했다. 탈피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이다. 허물이 없고서야 탈피가 있을 수 없듯이, 과거의 문장을 모르고 전통을 계승한 바 없고 대가에 속한 바가 없으면 탈피할 무엇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원중랑의 글을 읽은 뒤에 비로소 과거의 고전 문장이 오늘의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고문을 다 털어 버렸다. 그 후 십년간 나는 공안의 글이 아니면 읽지 않고, 공안의 글이 아니면 쓰지아니했다. 그러다가 담원춘의 글을 읽고 나서 십 년간 노심해서 쓴 내글의 무차치함을 알고 다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경릉의 글만을 오직 애독하고 경릉의 글만을 써 왔다. 무릇 칠 년간을 그렇게해 왔다. 그러나 나는 차차 그 글에 불만을 느끼고 또 다 불에 태워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자의에서만 글을 쓰고 내가 창조한 글만이 내법이 되었다. 지금 내 글은 오직 장대의 글일 뿐이다.

음속의 울림은 종소리의 파장처럼 쉬 가시질 않는다. 그 소재는 기이하지 않고 모두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서 취해 왔다. 깍두기처럼 지극히 평범한 소재에서 취하고 재래에 있던 여러 방법에서 가져왔으며, 전에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 냈다.
내가 거울을 꺼내 지금의 나를 살펴보다가 책을 들춰 그 사람의 글을읽으니, 그 사람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이튿날 또 거울을 가져다보다가 책을 펼쳐 읽어 보니, 그 글은 다름아닌 이튿날의 나였다. 이듬해또 거울을 가져다 보다가, 책을 펴서 읽어 보니 그 글은 바로 이듬해의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 가면서 자꾸 변해 가고 변하여도 그 까닭을 잊었건만, 그 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기이하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을 뿐이다.
순조 때의 문장가 홍길주는 수십 년간 연암 박지원의 문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마침내 이를 읽고 느낀 감회를 이렇게 썼다. 세월이 지나 사람의 모습은 변해도 그 글을 읽는 감동만은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윤오영의 수필을 읽다가 홍길주의 감회를 새삼 떠올렸다.
문여기인즉 글이 곧 그 사람이란 말은 옛사람이 늘 일,
러 오던 이야기다. 하지만 글에 교언영색이 난무하고 허세과장이

넘치다 보니, 그 글만 읽어서는 그 사람을 알기가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수필에는 그의 육성과 체취가 지금도 살아있다. 굳이 그를 만나 보지 않았어도 그 글을 읽으면 그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970년에 간행된 선생의 수필집은 그 제목이 ‘고독의 반추이다. 반추란 되새김질의 뜻이니 고독을 씹고 곱씹어 음미하고 사색하는 데서 우러나온 소담스런 낙수들을 모았다는 뜻이다. 그는 다른 문학은 마음속에 얻은 것을 밖으로 펴지만 수필은 밖에서 얻은것을 안으로 삼키는 것이어서, 수필은 자기를 대상으로 한 외로운독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수필이 바로 그렇다.
그 외로운 독백이 넋두리나 푸념으로 흐르지 않았던 데서, 고금의문장에서 제혼섭백提魂攝하여 격조와 품격으로 승화시킨 그의정신의 아득한 높이와 만나게 된다. 그의 수필은 한국 수필이 거둔가장 빛저운 수확의 하나다.

한국 근대 수필의 진수
윤오영 산문의 결정판!

"감이 곧 곶감은 아니다.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 그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 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곶감이라야 오래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만든 곶감이다.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윤오영, 곶감과 수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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