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고 하네.
세상에나! 울프에게는 멋지고 당당한 삶의 드라마가 있었다. 이토록 생활력 있고 강인한 모습은 어째서 그간드러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의 긴이 메이가 친절하게 짚어준다. 

울프는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불행한 여성 작가, 광기와 성폭력과 불감증(!)같은 키워드로 이야기되는 삶"(199면)으로 그동안 소비되었는데, 
"아름다움, 기쁨, 유머, 관능, 열정, 욕망으로 찰랑대는삶" (200면)을 살았고 물질적 풍요로부터 얻은 즐거움을 만끽하는 활기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불행한 여성 작가라는 낡은 라벨이 아니라 새로운 라벨,
글 써서 집 가꾸고 차 사는 활기찬 울프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울프의 언어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 작품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나도 울프처럼 ‘글쓰기에 대한 헌신으로 조직된 일상‘에 헌신하며 열권의 책을 썼지. 어떤 책의 인세로는낡은 화장실을 보수했고, 또 다른 책으로는 싱크대와 세탁기를 교체하고, 강연료를 모아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울프식

60의 살림 서사가 있거든.

그런데도 자부심을 갖지 못했다. 왜일까. 아마도 작가는경제적으로 순진하고 상업 감각이 없어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거 같아.

 자기만의 방을가지려고 글을 쓰는 여성의 서사보다 집안의 천사이자 희생자인 여성이라는 라벨이 훨씬 익숙했기 때문일 거야.

이번 영국 여행은 그런 경직된 틀을 깨는 나름의 정신과영혼의 증축 공사 느낌으로 추진했다. 스스로에게 여행의자격을 묻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 행복을 도모하고 실행하자. 고양이와 아이들을 두고 양육자 신분으로2주간 집을 비운 최장기 해외여행이었고, 동성 아닌 이성 친구랑 동행한 여행도 처음이었지. 여행 메이트가 되어준 친구는 성소수자거든. 울프는 작품을 통해 ‘위대한 마음은 양
‘성적‘이라고 말해왔고, 실제로도 자신의 생애를 통해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실험해온 인물이니 왠지 이런 조합을 환영했을 것 같아.
버지니아 울프의 집, 몽크스하우스 방문에 허락된 시간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뒤처진 새」라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이미 시죠. 저만의속도로 날아가는 뒤처진 새, 그 새가 무사히 강을 건너갈기

다리며 응시하는 시인. 저만치 떨어진 채 눈짓으로 날갯짓을 돕는 풍경이 동화처럼 그려집니다. 이 연대가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쿤체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어린 시절을 보냈고 많은 핍박을 견뎠답니다. 뒤처진 새를 노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키 작은 풀 하나도 주의 깊고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인간의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는 올 곧은 사람이기도 했다고요.

쿤체는 원래 좋은 사람이라 좋은 시를 썼을까요. 아니면좋은 시를 쓰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갔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대가 시를 공부하려다가 겪은 이상한 방식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시를 쓰고 싶어 찾아간 사설교육기관, "무슨 전공이세요?"라며 인사를 나누는 수강생들, ‘아무래도‘ 대학을 가야겠다 싶어 찾아간 문예창작과 입시 전문학원, "네 시는 시도 아니야" 같은 원장의 말, 입시에합격한 고등학생들 작품을 세번씩 노트에 필사시키는 학습법 같은 것들이요. 그대 말대로 도식화된 문장을 뽑아내며노회한 교수들의 취향에 길들여지는 것이 시인의 자격증은

작을 안했을 거고, 이런 게 삶이라면 안 태어났고・・・・그럼 이제 와서 어쩌나요. 이 집요한 삶의 배반을 견딜 방법은 없는가. 예전에 어느 문학잡지를 보다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 리Yyun 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베껴놓은 적이있어요. 그가 그랬죠

"삶은 그저 삶일 뿐이지요. 늘 고난이 있습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있고, 저는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순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테니까요. 그것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친절은 우리가 베풀거나 베풀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친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친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선택이기 때문에 저는 친절에 대해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희망적입니다. 게다가 친절은 글쓰기로 훈련할 수 있거든요.
저는 삶의 고난이 자아내는 난폭함으로부터 ‘나의 감정과

‘생활‘을 보호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자꾸 쓰다보니 ‘남의 입장과 감정‘도 보이게 됐고, 그 남을 존중하기위해서 내 할 일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령, 카드센터 직원이 일부러 늦게 처리한 것도 아니니까 너그러이 이해하자가 아니라, 앞으로 살면서 남들에게 정색하지 않으려면 여유 시간 없이 앞뒤로 촉박하게 일정을 잡지 말자고, 글을 쓰면서 돌아보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든 경쟁과 효율의 속도에 끌려다니노라면 내 조급함에 내가 파묻히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내가 친절해지는 삶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구축하는 게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남사스럽게도 요즘 강연을 가면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어렵게 모셨다‘고 소개를 받습니다. 처음엔 정말 놀랐습니다. 또 작가님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아요. 그럼 거의 없다고 하죠. 브런치 카페 직원 한분, 동네 카페에서 인사를 건넨 주민이 한분 있었고요. 누가 저를 알아보고 아니고가 뭐 중요할까요. 다만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나중에 직장을 다니며 노동자로 살아간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나이들어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적자생존으로 돌아가는 경쟁 시스템은 멀쩡하던 사람도 늘 화가 난 사람‘이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풍토에서 어느 직종이라고 해서,
어떤 스펙으로 무장을 한들, 몇살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있겠느냐고요.

무엇보다 대다수 보호자가 내가 혹은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봐 걱정하지만 내가 혹은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해야만 이런 폭력적인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준이 어머니가 자식의 죽음을 걸고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말아야 내 아이도 지킬 수 있다는 호소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 영화「시」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미자가 말해요.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는 법이 정신을 단련하는 길로 통합니다.

"이 시간들이 내 정신세계를, 그러니까 중요한 게 뭔지를 판단하는 기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성숙하게 만들어놨다"(345) 고 이지민 엄마는고백해요. 
이영만 엄마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면서 "주변 사람들의 아픔도 돌아보게"(340면) 되었으니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하고. 
오준영 엄마도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334) 말해요.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나한테 계속 강요"(330면 한다.
고 말하는 이재욱 엄마는 멋지죠.

죽은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곁에 남아 매순간 그들의 결정에 개입하고 마음을 흔들고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칩니다. "집에 들어가면 회의 녹음한 걸 세번, 네번,
어떤 때는 다섯번까지 들어요. 이해를 하려고요. (・・・) 우리 아들이 옆에서 자꾸 공부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314면) 호성이 엄마의 이 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세월호의 시간

15년, 유가족은 주변에서 그토록 권하는 일상으로 돌아간 게아니라 한 사람의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복귀했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땅에 슬픔의 눈물을떨구어 진실의 언어를 심고 있습니다.

통제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사회는 무슨 방식을 쓰든지 슬픔을 관리하려 한다, 사람들이 마음껏 슬퍼하도록 허용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기에 일정한 처리방식을 따라가도록 한다고요. "사람들이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면 하나의 인식에 도달하는데, 그 대상은 결코 슬픔의 감상이아니라 바로 사회적 삶의 조건들에 눈뜨기 쉽다는 것입니다."(659~60면)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습니다. 

슬픔은 위험한 감정입니다. 가족을 뺏긴 유가족들,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
온갖 사회적 참사 피해자의 글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 저도슬픔이 얼마나 급진적인 감정인지 목격했습니다. 사람이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세상이 보이는 사람이 되죠. 슬픔의렌즈로만 보이는 은폐된 진실을 보았기에 권력자가 가장두려워하는 존재로 거듭나죠.
이번 참사에는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은 참사 한달이 다 되어서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내 자식이 "생매장당했는데도 정부가 제

가 닿는 대로 인파속에서 놀았거든요.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야외 록페스티벌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즐기고 음악에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저 같은 중년의 마니아도 있고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옵니다. 스탠딩석 가장자리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와 손잡고 신나게 몸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왜몸도 성치 않은데 저길 가서, 왜 아줌마가 저길 가서, 왜 애를 데리고 저길 가서, 같은 비난이 쏟아지고도 남았겠지요.
선생님이 누차 강조하던 객관적 권력, 즉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것, 생의 기쁨을 빼앗아가려는 모든 것,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모든 것‘의 정체가 이번 참사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슬픔이 통제되고 놀이가 비난받는 이 일그러진 세상에서 시험과 노동에만 복속된 삶을, 우린 왜 누구를위하여 평생 살아가야하는 걸까요.
선생님이 강의 때 자주 던진 물음이고, 책에도 남긴 질문을 붙들어봅니다. 도대체 상처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

당함을 가져야 그대도 당당한 환자가 되겠지. 존재는 연결돼 있으니까. 
김진영 선생님 식으로 말하자면,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79~80면) 이문장을 아픔은 너무도 혼자의 일인데 투병은 다행히 모두의 일이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어.
저번에 봤을 때 그대가 그랬지. 읽었던 책들이 발병 이후 새롭게 보인다고. 형광펜 파티 하고 있다고. 나도 그러네.

『아침의 피아노』에서 좋았던 부분은 여전히 좋은데, 아픈 몸들을 떠올리면 구체적으로 좋아. J에겐 활자의 약효가 가장빠르다는 것을 아니까 특히 그래. 이 책이 주는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같은 조용한 감정들이 그대의 등을 어루만져줄 거야. 그리고 를 쓰게 하겠지. 아마도 형광펜이 두툼하게입혀질 이 문장 때문에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기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242)

글쓰기의 본질은 나눔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표현할 수 있을까. 몸이 신음하고 마음 어딘가 작게 부서지는 느낌을 기록하면서 그대는 나날이 확실해지겠지.

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고 딸이 말할 정도로 딸에게 집착해요. 어머니는 체념 어린 투로 말하죠.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102면)딸은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해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는의지, 권위, 낭만, 야심, 분노, 의심, 딸에 대한 지지와 질투등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활화산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봅니다. "나는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인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51)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엄마를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손쉬운 선악 이분법으로 갈라서 보지 않고, 그가 처한 사회구조, 모순과 욕망의 지도를 읽어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정의실핏줄까지 포착한 글들은 사모곡을 넘어선 인간탐구서가되거든요.

르는 여인처럼 매일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만삭이 되도록수행한다. 영화 끝 무렵 딱 한번 감정의 수문을 연다.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며 목놓아 실컷 운다. 나도 따라 물었다. 남자를 비난했고 여자를 연민했다. 엄살 없이 살아내는여자를 존경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어디서나 저래도되는 남자가 생겨나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분개했다.
같은 영화를 본 너는 나처럼 주인공 여성에 감정이입을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원치 않았던 아기‘의 존재, 단역처럼 스치듯 등장한 신생아를 언급하며 말했다. "어쩌면 나도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너는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말로 다하지 못한 가족사와 복잡한 심정을 글로 남겼다. 엄마에 대한정보는 두가지뿐이라고. 아빠와 아빠의 부모에게 가족으로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것. 자신이 생후 100일일 무렵 홀연히떠났다는 것. 너는 훗날 아이를 낳고 10년 넘게 엄마로 살아낸 지금에야 ‘떠난 엄마를 바로 본다며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엄마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 엄마는나에게 역할이 아닌 주체로 살라고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대 후반의 엄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드라마나 소설 같은 픽션에서 엄마의 부재는 단골 시나리오다. 자식을 버린 여자, 엄마가 되지 못한 엄마는 늘 있었다. 나쁜 년이고 독한 년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그런 사례는 잘 만나지 못했다. 아니, 드러나지 않았다. 정상가족중심주의 사회에서 엄마 없음은 커다란 결핍이고 모성의 거부는 금기였으니까. 가족은 숨겼고 당사자는 숨었다.
몇년 전부터 나는 본다. 소위 숭고한 모성의 기준을 이탈하는, 감히 자식을 저버린 엄마의 서사를, 그것을 진술하는자식의 용감한 목소리를 글쓰기 수업에서 듣는다. 먹먹한감동이 이는 순간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부류, 자리를 할당받지 못한 사람, 모성 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여자들의 서사가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법과 언어를 익힌 자식의 몸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의 너그러운 품에서 먹고 자고 놀던 아이가 자라서 50여년 후 자기를 돌봐준 보모의 서사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 50년은 백인 가정에 고용된 원주민-보모-여성이라는, 이중삼중으로 차별받는불리한 생애 조건에 놓인 한 사람을 역사와 서사 속에서 바라보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너도 44년 만에 엄마를 재의미화했다.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갔을까‘에서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로 질문이 나아가기까지 네온 생애를 바쳤다. 네가 그토록 책을 떠나지 못하고 읽고 쓰고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있지만 네가 모르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구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이해는 그만큼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한편의기품 있는 영화가 불러온 너와 엄마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삭제된 여자의 서사,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겠지.

살면서 우리는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듯 시인지도 모르고 시도 짓는다. 잠결의 아이처럼.
수레는 고2가되니까 문학을 배워서 좋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어느 밤엔 내 옆에서 자려고 눕더니 묻는다.
"엄마,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 알아?"
"응, 알지. 우리 집에 시집도 있을걸. 근데 왜?"
"문학시간에 배웠는데 그 시가 좋아... 귤값을 깎으면서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수레는 제법 결연한 어투로 시구를 두행 읊더니만 이내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그 나이를 두번 산다. 나도 열일곱 무렵부터 시가 괜히 좋았다. 시집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노트에 정성스레 베껴 쓰곤했다. 슬픔, 기쁨, 사랑, 그리움 같은 단어가 만든 감정의 둘레에서 나는 마치 꽃그늘 아래 앉은 것처럼 더없이 안전하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나도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한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는데, 똑똑한 게 자기답게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언제부턴가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이젠 안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지켜보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드수레에겐 고양이 무지가 책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를 대하는 법을 일러주는 지침서이자, 도도한 상대와 관계 맺는법을 알려주는 탁월한 심리 에세이, 한번도 같은 장면이 나오지 않는 마술 같은 그림책, 매번 설렘으로 첫 장을 열게 하는 책.

은 문자를 신봉하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은 대화와 훈계의차이를 특유의 예민함으로 걸러내고 체벌과 훈육의 차이도간단히 간파합니다. 가족이든 학교든 회사든 그 조직의 가장 약한 사람은 많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말을 안 할 뿐.
Pigle

렇게 다른 계급 다른 조건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같은 시험지로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 그걸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꾸준하게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72)고 말해도 무리가없게 됩니다.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사회적으로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21면)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능력을 꼭 학력과 성적으로만 측정하는가? 즉, 능력을 도대체 누가 평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요. 한번은 제 책을 읽은 고등학생이 이런 후기를 남겼어요. "글쓰기를 배우지 않아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유 작가님은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엄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한 사람의 고유함을 진득하게 알아갈 수 있는 ‘일상의 시간과 장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없어진 것, 그것이야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323면)「아이들의 계급투쟁이란 책을 읽다가 번개처럼 다가온 문장입니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 Brady Mikako 가 영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있는 무료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하며 쓴 책인데요, 저자는 복지제도가 밑바닥 사회를 어느 정도 지탱해주던 ‘저변 시대‘와 생활을 위한 지원금이 모두 끊긴 ‘긴축 시대‘의 경험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전개해요. 긴축 시대가 되자 탁아소가 폐쇄되고 그 공간이 푸드뱅크로 변해버립니다. 그걸 본 저자가 낙담하며 바로 저 말을 해요. "거기서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 그것은(……)‘존엄성‘이었다."(323면)저는 탁아소를 인간 대 자본의 투쟁이 일어나는 최전방

마지막 반전은 깜짝 시상식! 여러분이 저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한 학생이 교장 선생님처럼 남색 하드커버 상장을 펴자, 저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다소곳하게 모아졌어요. 상이름이 ‘넌 항상‘. 

학생은 상장 내용을 낭독했습니다.
"위 작가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2021) 을 쓰며 사회에서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사회 약자들의 편에 서주었으며 항상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2021년 9월24일 내면고등학교 학생 일동."

실은 제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선을 한몸에 받는시상식 자리에 서본 게 이때가 처음입니다. 생애 첫 상이 ‘넌항상‘이라니요. 상 이름이 너무 예쁘고 빛나서 울 것 같았습니다. 학생 때 못 받은 상을 어른이 되어 학생에게 받는다는건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게다가 최연소 수상자가 아니라최연소 시상자가 나섬으로써 상의 의미를 간단히 바꿔놓았습니다. 보통은 힘을 가진 이가 임의로 기준을 정해 상을 수여하고 그 수상 이력이 다시 권력의 발판이 되곤 하는데, ‘

"지금이라도 바꾸죠. 세상에 읽어야 될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안 읽히는 책을 읽나요?" 당신의 말은 익숙한 내면의 소리였기에 저는 대답했어요. "안 읽히니까 읽어야죠. 읽힐 때까지 읽는 게 시집 독서의 묘미입니다."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1819년생으로 미국 사람이에요. 1818 년생 독일 사상가 마르크스 Kart Marx 랑 또래더라고요.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며 계급 철폐를외치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듯이 휘트먼도 만물에 위계를두지 않고 "동등한 관계로써 오라" (22)라고 노래했어요.
영웅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자신의 시에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기에 후대에 혁명적인 인물로 남았죠. "위대한 시는여러 세월에 대해, 모든 계층과 피부색, 모든 부문과 분파에대해,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 대해, 여자와 마찬가지로남자에 대해 공통적이다."(38면)

자리를 마련한 것일 테고요.
『고통에 이름 붙이는 사람들』이란 책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날 강연에서 약자에게 차별은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만 말했지 얼마나 어떻게 그러한지 말하지 못했는데요. 이 책은 차별이 어떻게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에어컨 설치 기사, 플랫폼 노동자, 학교급식 조리원 등 우리 일상을 떠받치는 25개 직업 사례를 들어 상세히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이런 사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이 죽는 거나 발암물질에 더많이 노출되는 상황은 차별이 낳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차별은 일의 위험을 받아들이라는 강요이기때문이다. 노동자는 차별에 적응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려고애쓰다가 병들고 다친다."(9)환경미화원이 사고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작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자체는 낮에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어한다. 과소비를 유지하려면 쓰레기에

니다.
저도 스무살 무렵에는 도대체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거치고, 또글 쓰는 일을 하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깨졌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화란 거저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비난으로는 변하지 않고 애씀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애써 글을 쓰고, 누군가 애써 글을 읽고 애써 소개하고요. 남의 말에귀를 열고 질문하고 영향을 받는 것도 애씀이지요.
이 느리지만 단단하게 이어지는 각성과 변화의 흐름을보았기에 저는 ‘애씀 공동체‘를 키워나가는 일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서 읽고 쓰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같이 애쓰고 있지요. 요즘엔 장애인 예산 권리확보 시위 관련한 글을 읽으며 그간 우리 사회가 누린 속도와 편의가 장애인 같은 교통약자가 배제된 채 설계된 것이었음을 배웠습니다. 나를 변화시킨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금 더 애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편지를 띄웁니다.

부록
해방의 목록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김명남 옮김, 창비 2022
미셸 바렛, 메리 맥킨토시 반사회적 가족, 김혜경, 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2019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이예원 옮김, 플레이타임 2021
캐럴라인 냅 욕구들,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2021
캐럴라인 줄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20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조재룡 옮김, 길 2010
김수우 김민정 ‘나를 지켜준 편지」, 열매하나 2019
윤이형 붕대 감기, 작가정신 2020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2011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 전영애 박세인 옮김, 봄날의책 2019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
버지니아 울프 『파도』, 박희진 옮김. 솔 2019
레프 니꼴라예비치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강은 옮김, 참비 2012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20
모이라 데이비 엮음 분노와 애정, 김하현 옮김, 시대의창 2018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20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황가한 옮김, 민음사 2019
정지우 감독 「4등, 2016
김윤아 「Flow」,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2001
최예원 외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글항아리 2021
이창동 시 각본집』, 아를 2021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임진실 사진, 돌베개 2019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창비 2019
김진영 상처로 숨 쉬는 법』, 한겨레출판 2021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18아니 에르노 여자,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2012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2018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요리는 감이며, 창비교육 2019
존 버거 「제7의 인간, 차미례 옮김, 눈빛 2004
김보라 감독 「벌새 2018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 오월의봄 2018
박은실 양성애, 이연 2017
김지은 외 지음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세이브더칠드런 기획, 오월의봄 2018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김명남 옮김, 창비 2018
김진숙 소금꽃 나무, 후마니타스 2007
박권일 외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벗 2020
이용덕 ‘우리가 옳다! 숨쉬는책공장 2020
리베카 솔닛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노지양 옮김, 창비 2021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9
루쉰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김하림 옮김, 그린비 2011
김승일 외 교실의 시, 돌베개 2019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문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7이라영 정치적인 식탁, 동녘 2019
월트 휘트먼 풀잎, 허현숙 옮김, 열린책들 2011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포도밭출판사 2021
이라 말을 부수는 말, 한겨레출판 2022
성태숙 변방의 아이들. 민들레 2015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김동원 감독 내 친구 정일우, 2017

해방의 밤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초판 1쇄 발행 / 2024년 1월 15일지은이 / 은유펴낸이/염종선책임편집 / 최지수 신채용조판/박아경펴낸곳 / (주)창비등록 / 1986년 8월 5일 제85호주소 / 10881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84전화 / 031-955-3333팩시밀리 / 영업 031-955-3399 편집 031-955-3400홈페이지 / www.changbi.com전자우편 / human@changbi.comⓒ은유 2024ISBN 978-89-364-8010-303810*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반드시 저작권자와 장비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책은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다"

막막한 삶,
우리를 더 나은 삶의 자리로 데려다줄
은유의 문장들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시간이 경과해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내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웅크린 존재의 등이 펴지는 만개의 시간, 밤.

『해방의 밤』은 책과 사람에 대한 오래된 믿음의 기록이다. 책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으로 책을 반박하며 덩어리진 생각에 질서와 문장을 부여했다. 

읽는 사람은 답을 구하는 사람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말들, 아픈 데를 콕 짚어주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신통한 말들, 기어코 바깥을보게 만드는 문장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위대한 말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반칙인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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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젊은 여자‘는 내가 너무 유난인가 싶어 주저앉길 반복하던 저이기도 하고요.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동화책이나 읽어주고 같이 시간 보내면 될걸, 이렇게 화를 내고 속상해하면서까지 수업을 들어야 할까? 남편 말대로 나중에 애들 크고 할까?" 되뇌는 사랑눈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만국의 엄마들이 ‘조용하지만 끈질긴 불안, 모기의 잉잉거림처럼 성가신 내면화된 경고‘에 시달립니다. 존재에 가해진 금기와 제약이 이렇게까지 완강하기에 무언가를 하려면 이렇게까지 힘겨운 것 같습니다.

사랑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현장에 오길 소망했습니다. 동료들 실물도 보고 싶고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망원동 이후북스에서 책 구경도 하길 바랐죠. 드디어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한 날엔 아이들의 방해 없이 엄청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울먹였죠. 또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걱정되지 않는다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사랑눈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갓난쟁이 떼어놓고 나온 김라임씨도, 김지현씨도 육아 해방

눈물과 웃음을 어쩌지 못했어요. 자신의 욕망이 타당하다는 걸 몸은 느끼는 거겠죠.
[욕구들]에서 저자는 ‘딸‘의 목소리로 묻습니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뻥 뚫리는 말입니다. ‘하지 마‘
의 세계에서 엄마를 구원하는 멋진 문장이죠. 사랑눈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중에‘라는 시간은 영영 도래하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증여이고, 원함에 관해 아이들이 본받을만한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에 비해모자람 없는 어머니의 일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백일홍에는 민달팽이가 가득하고. 이 밤에 랜턴을 들고나가서 달팽이를 잡아. 우지직 눌러 죽이는 소리가 들리지." (62) 몽크스하우스에 살던 시절의 울프의 일기는 정원에 깃든 자연을 관찰하고 찬탄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사실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익숙해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던 거 같아. 읽다가 멈칫한 대목은 따로있었다.
"돈을 벌면 집에 건물을 한층 더 올려야지" (32) 같은 생활인의 언어야.
자가 소유주이자 살림꾼 울프의 모습은 의외였다. 책에따르면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으로 번 돈으로 몽크스하우스의 낡은 화장실을 고치고,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올랜도』인세로는 방과 거실을 증축했다. 『등대로』의 인세로는런던과 로드멜을 오가기 위한 자동차를 구입하고 말야. 이러한 경제적 자립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이라는책을 출간하고, 두달 후 울프는 진짜로 ‘자기만의 방‘을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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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올해 어버이날 카드에 이렇게 썼다.
"2020년 11월부터 삶에 책을 들이고 
2021년 5월부터 삶에글을 들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차곡차곡 일과 삶의 대전제들, 즉 변하지 않고 사고의 기준이 되어줄 것들을 쌓아왔습니다. 
문장을 수집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기도 하면서요.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말들, 삶의 고유성과 구체성을 이야기하는 것, 타자의 삶에 공감하고 그들이 되어보는 것, 불행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해피 어버이날."

유아차를 탈 때부터 도서관을 드나들던 아이, 곤히 잠든것으로 엄마의 독서 생활에 기여했던 아기가 그때 제 엄마의 나이가 되자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목적이 분명한 책들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필연의 책장엔 우연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서가 구석을 하릴없이 기웃거리곤 했으려나. 헛걸음을 뒤늦게 헤아려본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 잘 모르겠어요, 계획이 있었던 적이 없어서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줄곧 그리 살았다. 
중요한 건 당면한 글 한편을 무사히 잘 쓰는 일이었다. 그것만이 계획이고 목표였다. 

내가 읽은 건 필독서 목록의 책이 아니라 우연히 걸려든 한권의 책이었고 그 책을 나침반 삼아 한걸음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책을 열권 넘게 썼지만 책을 너무 많이 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책기둥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생의 목격자 양천도서관이 일러준다.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헛수고와 헛걸음으로 우연 앞에 나를 풀어둘 것. 
어디를 가야 자기 존재가 피어나는지 몸은 안다.

1부는 관계와 사랑, 2부는 상처와 죽음, 3부는 편견과 불평등, 4부는 배움과 아이들을 키워드로 묶었다. 
특히 마지막 4장은 중·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이나 교사에게 보내는글이 대부분이다. 
내 딴에는 중심에 있지 않기 위해, 굳어가지 않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급진적인 질문이 가장 많이 터져나오는 장소다. 나는 학교만 다녀오면 아이들이 감당할 세상의 불의가 선명하게 감지되어 어지러웠고, 이 망할 세상에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고,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 것 같은 나의 무능을 탓하며 책을 팠다. 이 아이들이 직면한 현실이 더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 몸에 박힌 기죽이는 말의 가시를 빼주고 싶어서,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바빴고 그 ‘뭐라도‘는 언제나 글쓰기였다.

‘질문이 있는 삶‘을 살도록 자극해준 책과 사람에게 감사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인터넷에서 인종차별 철폐 집회 사진을 봤는데 흑인이든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평화는 백인의 단어다. 해방이 우리의 언어다.‘ 모아놓고 나니 이 책에도 해방이란 말이 꽤 여러번 등장한다. 읽는 사람이 되고부터, 즉 고정된 생각과 편견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기에 쓴 것 같다. 나도 해방을 우리의 언어로 삼는다. 

비록 앎이 주는 상처가 있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무신경함이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적어도 약자의 입막음이 평화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더디 걸리더라도 배움을 통한 해방은 내적 평안에 기여하고 낯빛과 표정을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해방은 평화를 물고 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명절이 즐겁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차례가 없어졌고 시가의 사슬도 저절로 풀렸습니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요새는 뜻밖에도 친정입니다.

엄마 없는 친정. 그건 살림하는 사람이 없는 집이라는 뜻이지요. 가사노동의 빈자리는 평소에는 주 2회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메우고, 외동딸인 내가 1년에 세번은 직접 맡습니다. 명절 두번, 엄마 기일 한번.

친정 가는 길은 늘 양손이 무겁습니다. 이번에도 육수에 떡국떡, 매생이와 굴, 불고기 잰 것, 문어 샐러드감, 잡채까지 식구들 먹을 음식을 챙겼어요. 한끼 양식입니다. 

없는 엄마일을 있는 딸이 합니다. 아버지는 안하고 오빠도 못하고

똑같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수십년을 살았는데 그 능력은 딸에게만 전승됐습니다. 

왜 두 남자는 자기 식구를 위해 밥 한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 의지, 노력을 보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아마 배달 음식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일을 시키는 데도 만만찮게 신경이 소모되는 법입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분배하는 거니까요. 또 어떤 톤으로 말해야 하는지, 거절당했을 때의 대처법은 무엇인지 대안까지 고려해야죠. 그러니 그냥 내가 하고 말자며 간소한 반찬 몇가지를 출장뷔페처럼 이고 지고 갑니다. 바꾸기보다 행하기를 택합니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편을 택하는 겁니다.

친정집은 좁아지고 있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신발이 열켤레 넘게 나와 있죠. 엄마의 자랑이자 특기였던 식물 키우기. 엄마가 작은 식물원처럼 발코니에 가꿔놓은 수십종의 화초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실은 택배 상자와 생수 묶음이 놓여 있어 복도처럼 돼버렸고, 식탁 위는 커피머신과 일회용 수저, 소스 같은 잔재들이 점령했고요. 냉동실에선 유통기한이 2년쯤 지난 냉동식품이 발굴되죠. 
음식 아닌 식품으로 꽉 찬 냉장고 택배 집하장으로 변해가는 집. 엄마의 부재 16년간 아주 서서히 틀어지고 살아가는 집을 지켜보고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특기는 무릅쓰기. 참고 견디기. 마음 없이도 임무 수행 모드의 가동이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여든다섯이 됐네요. 늙은 아빠와 아픈 오빠에 대한 연민이 크겠죠. 또살림 경력 30년, 한끼 밥상은 몇시간이면 뚝딱이니까요. 

밥은 이상해서 먹는 사람은 차리는 사람의 수고를 알기 어렵지만 
밥은 또 이상해서 먹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차리는 사람은 그 수고를 얼마간 보상받습니다. 해 먹이는 즐거움이 크죠. 
밥을 내가 밀어내려 해도 밥이 나를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갑니다.

나는 나를 이중으로 비난합니다. 아버지랑 먹을 밥 한끼 하는데 웬 불만이 그리 많아? 
왜 아직도 명절에 꼭 모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이게 다 한쪽 성역할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가부장제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어디다가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나를 야단칩니다. 꾸짖고 어르죠. 이번만 참고 지나가자. 아직 족쇄가 풀리지 않은 곳.

일전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일마나 좋았을까. 딸이 이렇게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는 걸보셨어야 하는데!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네요. 엄마는 여름 넘도록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게 뻔하니까요. 육신의 노화가 착실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세끼 식사를 차리고 반찬 투정을 들으며 살았을 엄마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않습니다. 

가부장제는 엄마에게 집 아닌 다른 장소를 허락하지 않았고 집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사랑과 안정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명절 때마다 딸은 사라진 엄마를 만나고 엄마와 함께 사라집니다. 엄마는 늘 내게 말했죠. "너는 없는 것처럼 컸다."
손이 하나도 안 가는 자식이었던 순둥이 딸.

 자신을 비존재로 만드는 건 여자들의 개인기이자 생존술입니다. 앞치마 두르고 시금치 뿌리의 흙을 살살 털어내던, 어딘가 기가 죽어 있는 며느리였던 나는 시댁에서도 가급적 없는 듯.이 지냈습니다.

눈물을 누르며 자아를 죽이고 밥을 차렸고요. 집에 와서 도망치듯 카페로 달려가 설움을 분출하듯 글을 썼었네요. 아, 말하다보니 맨날 똑같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된 양 처량 맞고 쏠쏠한 기분에 젖고 맙니다. 나는 왜, 아직도, 명절 타령인가.
사실 ‘이런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습니다.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내적 분투의 기록이라면 이미 책 한권(『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서해문집 2016)으로 웬만큼 털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이런 리뷰를 남기기도 했죠. ‘명절 때 가져가는 책이다.‘ ‘밥에 묶인 삶이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터졌다. ‘누나를, 엄마를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인지, 몸이 뒤집힌 벌레처럼 ‘밥에 묶인 삶‘에서 허우적대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아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이들이 다 자라고 시가에 가지 않아도 명절이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죄의식까지 엉겨붙습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리베카 솔닛 RebertaSolnit 이 쓴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게 각별한 작가입니다. 그의 책들을 거의 읽어왔기에 그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내 앞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작가죠. 

이번 책은 회고록입니다. 개인적 경험을 담았지만 솔닛의 주특기가 십분 발휘되었죠. 솔닛은 자신의 이야기를 여성이 겪는 집단적 경험의 맥락 속에서 서술합니다.
죄다 밑줄을 그을 지경이었는데요, 유독 이 문장이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망가진 사람이다. 우리 모두를 망가뜨리며 그중에서도 여성을 특정 방식으로 망가뜨리는 사회의 일원이다." (297) 나는 ‘망가진 사람‘이라는 선언이라니요.
나는 이 문장을 수치의 언어가 아니라 해방의 언어로 읽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망가졌기 때문에 망가뜨리는 것들에대해 쓸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망가진 것을 수선해야 하기 때

환승하듯 가족을 떠나 바로 가족으로 옮겨 탔을까.

‘가족‘이 삶의 화두가 됐다. 마치 공기처럼 삶에서 한번도 분리된 적 없는 그것. ‘보호‘보단 ‘제약‘이 연상되는 단어.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나를 자극했다. 모두가느끼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금기가 들어 있을 것 같았지.
예감대로였다. 저자는 가족의 폐단을 세가지로 꼽는다.

첫째, 부와 빈곤을 세습하는 것. 

둘째,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갈등 을 은폐하는것. 

셋째,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여성을 속박하는 것.

난 한줄 한줄 빨려들었다. 흙수저 • 금수저란 말도 있듯이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된다. ‘계급 배치의 강력한 기관‘으로 가족이 기능하지.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은 뉴스의 단골 소재잖아. 부모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통제하고 간섭하지.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고들 말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한 게 현실이다.
특히 가족이 ‘여성을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속박한다‘


"먹지 마, 커지지 마, 멀리 가지 마, 많이 원하지 마."
꽤나 익숙한 명령이죠. 사랑이 다이어트 실패기를 두페이지나 되는 글로 썼던 것처럼 먹지 말아야 하고요. 사랑눈이 전문직이지만 직업적 야망을 갖지 않게 된 것처럼 남자보다 잘나가도 안 되고요. 사랑눈이 수업 하나 들으면서배우자, 아이, 동료들에 대한 죄의식에까지 시달리는 것처럼 나의 필요는 가족의 필요를 위해 포기해야 하고…이렇게 ‘하지 마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최초의 욕구가 발동했을 때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기 의심과 싸우게 됩니다. 캐럴라인 냅이 떠올리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죠. 
"애초에 자신에게 욕망하고 원할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하지못하고, 자신의 필요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그 필요들을 거의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122~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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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잠들어 있는 사람

그날 다시 전화를 걸면서 나는 「골짜기에 잠들어 있는사람(Le Dormeur du val)」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배운 아르튀르 랭보의 소네트였다.

초록빛 골짜기, 그곳에는 풀밭에 은빛 잔해를미친 듯이 쏟아내는 강이 노래하네.
태양은 우뚝 솟은 산에서 빛나네.
그것은 햇빛으로 넘쳐나는 작은 골짜기.

한 어린 병사, 입 벌리고 모자도 없이,
싱그러운 푸른 풀밭에 목덜미 담근 채

잠들어 있네. 구름 아래 풀밭에 누워 있네,
빛이 쏟아지는 초록색 침대에 창백한 모습으로,

글라디올러스 꽃에 발들을 묻은 채 잠들어 있네.
병든 아이가 미소 짓듯 웃으며 꿈꾸고 있네.
자연이여, 따뜻하게 그를 재워주기를,
그는 추워하네.

향기에도 그의 콧구멍 떨리지 않네.
햇빛 속에 그는 잠들어 있네, 평온한 가슴에 손을
올려놓은 채, 오른쪽 옆구리에 붉은 구멍 두 개가 있네.

시는 많은 시대를 거치면서도 전해지는 강력한 힘이 있다. 시를 지을 당시 랭보는 열여섯 살이었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한창이던 1870년도였다. 또 다른 시대. 또다른 전쟁. 또 다른 비극. 만일 랭보가 21세기에 시를 썼다해도, 시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 시는 지금 다라야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젊은 병사의 죽음과 맞선 저항의 표현, 마지막 안식을 향한 길에 울려 퍼지는, 평화로운 자연이 들려주는 선율의 위로.

베벨 광장(Bebelplatz)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때는 1933년5월 10일, 하룻저녁에 히틀러 정권은 나치 군대가 압류한 수천 권의 반체제 작품을 이 광장에서 불태우게 했다. 
이때 제물이 된 작품에는 체제 전복을 꾀한다고 판단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혹은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Freud)의 책이 들어 있었다. 
그날 밤, 정권의 선전을 맡은괴벨은 신세계의 창조에 관한 담화를 발표했다. 정권에 반대하는 책이란 존재할 권리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그 후 수십 년이 흐른 1995년, 이스라엘의 조각가 미하 울만(Micha Ullman) 이 이 장소를 다시 찾았다. 
울만의 부모는 독일의 수도를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울만은 책을 불태운 만행을 기억할 수 있도록, 광장의 포석 아래를 파서 가공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땅을 파고 유리판을 덮어서 만든 공간은 일부러 비워두었다. 
내려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텅 빈 책장들만 놓인 50제곱미터의 지하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몸을 숙여야 했다. 지금 그곳은 ‘침몰한 도서관(Versunkene Bibliothek)‘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베를린에서처럼 다라야도 언젠가 그들의 베벨 광장을 가질 수 있을까? 

"다라야에 대해 제가 기억에 담고 싶었던 것들이 이런 장면이에요. 결속된 하나의 집단 미래를 건설하려는 공동의 바람, 새로운 생각을 지켜내는 것. 우리는 하나였어요. 결속과 연대감, 다른 도시에도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다라야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입니다."
샤디는 추억에 빠져들었고, 눈빛에는 향수가 깃들었다.
샤디는 다라야의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말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바샤르 알 아사드는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자비한 포위 공격 속에서 4년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대승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뒤에서 한 여자 손님이 빵집이기도 한 이 작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양팔에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있던 그 손님은 딸의 생일을 위해 ‘눈의 여왕‘과 ‘백설 공주‘
모양의 케이크 중에 무엇을 고를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더 힘든 건 그다음이에요." 샤디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요. 비행기를 봐도 떨지 않고, 고요 속에 잠드는 법을 배워야 하죠.
갑자기 모든 것이 불변하고, 영원히 약속된 것이 되었어

모든 현실의 문이 잠겼을 때,
세상의 문을 열어준 책장 속의 책들
도서관은 그들에게 피난처이자 치유의 장소였다.

"책이라고?" 그가 놀라 되물었다.
전쟁 한복판에 책이라니, 사람 목숨도 구해내지 못하는 마당에 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마지못해 친구들을 따라 나선 아흐마드는 무너진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현관문은 폭격으로 날아가고 없었다. 마루의 잔해들 사이로 책들이 흩어져 있었다.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첫 번째 페이지를 넘겨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몇 가지 익숙한 단어들을 읽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책의 주제가 아니었다. 
익숙한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그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흐마드는 천천히 책을가슴에 끌어안았다. 온몸이 떨려왔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내가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었어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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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동네 아이와 청소년들이 도서관으로 쳐들어왔다. 대부분 쥐덫만 놓인 초라한 집에서 나와 ‘바깥바
‘람을 쐬러 온 아이들이었다. 이들 중의 하나였던 암자드(Amjad)는 그것을 자신의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친구들은암자드에게 ‘사서‘라고 별명을 붙였다.
종이로 된 은신처가 잠시 소강상태를 거쳐 문을 다시 열자, 토론 또한 다시 시작되었다.

새로운 비디오가 도착했다. 발언자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참가자들을 작은 무리로 갈라서 그 무러들에 퍼즐 조각처럼 생긴 판지 조각을 나누어주었다.
"다시 맞추는 데 45초 드리겠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자 한 조만이 환호성을 질렀다. 교사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결과네요. 퍼즐을 맞추기 전에 표본을 본 유일한 조였거든요."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머릿속에 정확한계획이 없다면, 여러분의 발상은 막연할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길을 잃을 위험이 덜한 것이죠" 그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가 덧붙였다.

 "맹목적으로 무리를 따르지 마십시오. 새로운 장소,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세요."
출구도 없이 포위된 도시에서는 역설적인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고입니다. 누구도 자기 목적에 이용하고

자 당신을 마음대로 조작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나다." 단 한 번도 아사드나 다에시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그 속에 담긴뜻을 알아차렸다. 
획일적이며 거세된 사고를 거부하고, 매
"조된 진실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참가자들은머리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휘갈겨썼다.

갑자기 불이 꺼졌다. 방의 한쪽 구석에 설치해둔 오버헤드 프로젝터가 작동하면서 흰색 벽면은 영화관 스크린으로 변했다. 이 다용도 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이 영화도볼 수 있었다! 
그날 상영한 단편영화 제목은 <2+2=5)였다. 처벌이 두려워 학생들에게 잘못된 더하기를 반복하도록 강요하는 어느 교사의 이야기였다. 억지로 거짓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한 이 우화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에서 그려낸 ‘거짓 공식‘을 떠올리게 했다. 이란 출신의 감독, 바바크 아미리(Babak Amiri)가 만든 이 영화는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영화 속에는 수학 수업이 끝날 무렵, 구석에 웅크리고있던 한 학생이 기존 질서에 도전했다. 강요된 그 숫자를

지우고 대신 자기 공책에 ‘4‘를 적었다. 영화가 상영되던 열람실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펴졌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환호성에 흠뻑 빠져서 흰 벽면을 가득 채운 아랍어로 된 이 문장을 읽었다. "만일 세상이 무언가를믿는다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일까?"
다라야의 블랙홀 구석에 있는 이 젊은이들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폐허로 둘러싸인 이 성소에서 이들은 참고 문헌을 넓혀가고, 새로운 사상들을 탐구하고, 어두운밤에 출구를 찾고자 밝힌 작은 촛불만큼 매일 조금씩 자신들의 문화적 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다져갔다. 

지하의 은밀한 생활, 위에서부터 강요된 침묵이 열정과 용기를 담은고함으로 바뀌는 곳.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영화 속 마지막까지 저항한 그 어린 학생과 같은 열정이 있다. 아직도 유효한 일방적 결정에 도전하고, 대포 소리가 들린다고 포기하기를 거부하고, 어두운 전쟁의 실상을 앞으로 나아가려면 통과해야 할 시금석으로 바꾸었다.
영화 감상이나 강의 시간에 이들은 조국의 새로운 역사 한장을 써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길이 험난하다는 것은 그들도 안다. 그 길은 망명 중인 저항자들에 대한 토론이나 제네바의 호화로운 호텔과

부패 스캔들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앞으로의 국기 색깔, 사회에서 이슬람의 위치, 장차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의 역할 등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 소박하게 한걸음씩 진보하며 사고의 팔레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나가기를 좋아한다.

아랍의 봄 초기 이슬람 국가 발전의 모범 사례로 여겨졌던 터키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이슬람, 민주주의, 발전‘ 모두를 집대성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터키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적용할수 있을까요?" 잇따른 비디오에서 다라야의 투사가 자문했다. 그에게 분명하게 대답해준 것은 이븐 할둔을 앞세운 오마르였다. "네, 하지만 터키의 총리 에르도안(Erdogan)의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조건에서만 그렇습니다." 또 한 번,
질문이 이어졌다. 저항에 뒤따르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변화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정권을 세워야 합니까? 이슬람의 정치가 민주주의에 녹아들 수 있을까요?
배움을 향한 이들의 갈증은 끝이 없었다. 어느 2월의 아침, 아흐마드는 나에게 또 다른 지하의 아고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곳은 2015년 말 도서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처음으로 세웠다. 
극비로 운영하는 이곳은 스카이프를 통해 원격 화상회의를 개최하는 제2의 토론 장소가 되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스크린을 마주하고 앉아 눈앞에 나타난 교수나 추방된 저항자들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질문은 모두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정책의 기준을 세울 기회였다.

"지난주에 우리는 비종교적 저항파인 부르한 갈리운(Burhan Ghalioun), 기독교 출신의 반대파 조르주 사브라(George Sabra) 등을 초청했어요."라고 아흐마드가 밝혔다.
"우리는 과거 지하디스트의 아들인 팔레스타인 출신 후타이파 아잠(Huthaifa Azzam)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주장했던 폭력과 단절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우리 청년들이 급진적 사상에 관심을기울이는 것을 견제하려는 방편이었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비밀리에 진행된 이런 강연을 담은 영상은 어떤 것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정권의 관심을끌지 않으려고 그리고 무엇보다 폭탄을 퍼붓는 헬리콥터의 사정권에 들지 않고자, 주최 측은 토론회 날짜를 알릴

때 전통 방식을 취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늘 꿈꾸던 하나의 대학이에요. 미리 정해진 가이드라인 없이 검열도 받지 않고, 사방으로 열려있는 배움의 장소입니다." 아흐마드가 설명했다.

또한 이 은밀한 대학은 위반의 장소였다. 배움을 통한 위반, 다라야의 이 비판가들은 새로운 칸막이벽에 달린 칠판에 건설 중인 미래를 노래하는 가사를 적을 수 있었다.
가냘픈 선율, 어둠의 골짜기를 거쳐 죽음의 고비에서 헤매는 한 도시의 멜로디.

아흐마드는 당연한 일인 듯 말했다. 그의 나라는 전쟁중이다. 그의 도시는 깊은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다. 다라야는 소란과 폭발, 화염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그 ‘카르카
‘베(혼돈)‘의 한복판에서 아흐마드가 나에게 자기계발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것이 유행이던 당시 서구 사회에서 인기를 얻은 이 책을 말이다. 

나는 요약본만 읽어봤는데,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이책은 개인의 성공 가능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길로 나아가려면 자아의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파리·런던·뉴욕· 두바이 등의 비즈니스계에서는 앞다투어 이를 활용했다. 게다가 이 책은 아랍어를 포함한 서른여덟 개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그렇다고 다라야의 책장에서 이책을 발견하다니.……

"이 책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어쩌면 나침반 같기도 해요."라고 아흐마드가 말했다.
이렇게 다라야에서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소위 ‘신에 미친 사람‘으로 왜곡된 이들은, 다마스쿠스의 정권이 선동하는 고리타분한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인 ‘자아‘를 계발하고 있었다. 살육에 목마른 무법자나 정권이 선전하고자 하는 이슬람의 도구 같은 이미지와 모순되는 개인적

인 과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품이 즐겨 읽는 도서목록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제일 처음 우리에게 그 책을 알려준 사람은 우스타즈어요"라고 아흐마드가 대답했다.

우스타즈는 다라야 시민 저항 세력의 노장이었다. 이 불굴의 스승에게는 정말 수많은 방책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책을 사이드나야의 감옥에 있을 때 처음으로 읽었대요. 새로운 발견이었죠! 이 혹독한 세상에서 약해지지 않으려고 선생님은 그 책을 처세술의 안내서로 삼았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 책이 말하는 철학을 따르며, 우리도 그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 사상적 지도자는 감옥 생활을 경험하며 미국의 자기계발서에서 영감을 얻었고, 감금 상태가 이어지면서 음지의 젊은 저항자들 역시 이를 활용하게 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이 책은 이혼 결별 · 실업 등의 일시적 위기에 효과적인 해법을 원할 때 찾는 책이다. 흔히 알려진 고통에 하는 단순한 조언이다. 

하지만 감옥과 같은 다라야에서 시리아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뻔한 해답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냈다. 이 책은,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기에 안정감을 주는 동반자로서, 그들

이 만나지 못했던 심리 상담가와 같았다. 전쟁의 폭력으로일어난 불안감뿐 아니라 폐쇄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서 오는 위기에도 도움이 되는 완충재였다. 다라야의 일상 속에 만연한 전쟁이 ‘철창에 갇힌‘ 삶에서 생기는 고통 즉 언쟁과 질투 그리고 정치적 불협화음 등을 피하게 해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단체 생활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죠.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우리 사이에 건전한 경쟁적기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등에 말이죠."
아흐마드는 처음에는 우스타즈가 준 요약본에 만족했다. 이 책의 원서는 건물의 잔해 속에서 되살려낸 책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책 전체를 읽을 방법을 마련해준 것은 역시 인터넷이었다. 구글을 이리저리 검색한 끝에, PDF 파일이 그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을 내려받아 인쇄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다라야에서 종이는 비싸다 못해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아흐마드는 종이 한 장에 책 네 장의 내용을 인쇄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빼곡하게 들어찬 깨알 같은 글씨의책은 혁명 전 외투 속에 숨겨 돌아가며 읽었던 은밀한 팸

플릿처럼 제본했다.
"책을 읽으려면 눈을 찌푸려야 하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책에 대해 토론합니다. 그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좋은 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구에 부용하고자 2쇄를 만들어야 했어요. 덕분에 두 차례 강연 과정도 마련되었죠. 처음에는 도서관 내부에서 열렸고, 두번째는 새로 만들어진 지하의 토론 장소에서 열렸습니다.
이 강연을 스카이프를 통해 소개한 사람은 아랍 세계 전문가인 야시르 알아이티(Yasser al-Airi) 였습니다. 이 책에 대한강연은 정말 성공적이었어요!" 아흐마드가 인정했다.

귀퉁이가 접히고, 긁히고, 색이 바랜 이 책은 손에서 손으로 꾸준하게 전달되었다. 읽히고 또 읽히면서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특히 더 많은 사상자가 있었던 2016년겨울, 이제 5년째로 접어드는 전쟁이 언젠가는 끝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요소가 이 책에는 들어 있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면서, 전쟁을 일시적 차원의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고, 잔혹한 폭격과 늘 마주하는 죽음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포위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지 예상하지 못했던 병사들의 조바심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끊임

없이 폭격이 이어지는 불안정한 상태가 문학이나 정치적 고찰에 관한 책 읽기를 포기하게 할 때, 
더 실제적인 글 속으로 도피한 것이었다. 

그것은 깊은 수렁의 끝에 놓인, 
고통스러워하는 영혼을 쉬게 할 
보이지 않는 소파와도 같았다.

플릿처럼 제본했다.
책을 읽으려면 눈을 찌푸려야 하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책에 대해 토론합니다. 그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7가지 습관이 좋은 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구에 부응하고자 2쇄를 만들어야 했어요. 덕분에 두 차례 강연 과정도 마련되었죠. 처음에는 도서관 내부에서 열렸고, 두번째는 새로 만들어진 지하의 토론 장소에서 열렸습니다.
이 강연을 스카이프를 통해 소개한 사람은 아랍 세계 전문가인 야시르 알아이티(Yasser al-Aii)였습니다. 이 책에 대한강연은 정말 성공적이었어요!" 아흐마드가 인정했다.
귀퉁이가 접히고, 긁히고, 색이 바랜 이 책은 손에서 손으로 꾸준하게 전달되었다. 읽히고 또 읽히면서 하나의 상
‘징처럼 여겨졌다. 특히 더 많은 사상자가 있었던 2016년겨울, 이제 5년째로 접어드는 전쟁이 언젠가는 끝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요소가 이 책에는 들어 있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면서, 전쟁을 일시적 차원의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고, 잔혹한 폭격과 늘 마주하는 죽음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포위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지 예상하지 못했던 병사들의조바심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끊임

쭉한 벽면에 울리는 메아리 소리를 상상했다. 2 더하기 2는4 이지 5가 아니다. 진정한 학교, 그 어떤 필터도, 그 어떤거짓의 근시안도 없는 진실.

놀랍도록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여성들이 마침내 거리에 다시 나타났다. 
암흑에서 빠져나온 그림자처럼, 여성들은 대피소 밖에서 새로운 위험을 무릅썼다. 
그들은 인생의 지혜를 얻게 하는 사소한 수다를 떨며, 온갖 시련의 소란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뜬눈으로 지새운 밤,
놀란 아이의 그치지 않는 울음, 다시 깨지 않으려고 잠을 청하던 강박증도 이제 끝났다. 폭격이 있던 시절에는 젖을 먹일 수 없었던 젊은 어머니의 가슴에 밤낮으로 다시 젖이 돌았다. 
용감한 어머니들은 녹이 슨 낡은 유모차를 밀며, 젖먹이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다녔다. 포위된 이후로 약 600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대부분 지하 대피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연의 빛을 맛보았다. 아이들은 울고 소리치며 재잘거렸다. 진실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다라야에는 더는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옹알이하는 아이들의 소리일 것이다.
지옥 같은 몇 달이 지나고, 다라야의 저항자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인생에 대해, 결혼에 대해 그리고 직업에 대해서도 늘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는 아흐마드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데 열중했다. 

강사였던 우스타즈는 뜻밖의 휴지 기간을 이용해서, 이제야 약혼이나 결혼을 감히 꿈꾸게 된 사람들을 위해 부부 관계에 관한 조언을 담은새로운 세미나를 준비한다고 한다.

오마르는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임시 휴관이 끝난 뒤 오마르는 도서관에서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새로운 강연도 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배움과 나눔을 향한 갈증이었다. 발산하고 싶은 욕구이기도 했다. 폐허가 된벌판 한가운데에 축구장이 세워졌다.

대피소는 곧 폐쇄하고, 둑은 다시 평평하게 하고, 건물의 잔해는 치웠다. 열 명으로 된 여덟 개조가 꾸려졌다. 

각조에는 병사, 행동주의자, 구경꾼이 모두 섞여 있었다. 임시로 마련한 계단식 좌석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티셔츠를 맞춰 입은 이들의 평화로운 행진이 이어졌다. 

갑자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다. 이제 미래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를 사는 것에 다시 의미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마을에

서는 입는 옷마저 화사해졌다.
담벼락도 다시 찾아온 봄을 노래했다. 거리의 모퉁이마다 부서진 인도의 끝에, 때로는 들쭉날쭉한 건물의 구석에시의 구절과 반짝이는 스텐실 그림, 언어의 방패들이 등장했다. 그래피티 예술가인 아부 말리크 알샤미 (Abu Malik LShami)는 물감으로 천연색의 희망을 그리고자 마을을 돌아다녔다. 폭격의 여파로 무너진 어느 건물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옷을 입은 네다섯 살 소녀의 크로키를 그렸다. 죽은이들의 해골이 쌓인 언덕 위에 앉은 소녀는 오동통한 손으로 ‘희망(HOPE)‘이라는 글자를 대문자로 썼다. 이 벽화는낙관주의를 권고했다. 전쟁을 조롱하는 형태로 기성 질서를 비판하는 흔적을 남겼다.

아흐마드가 사진에 담은 또 다른 벽화가 내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창문이 부서진 어느 교실이었다. 형체만 겨우남은 책상과 고철로 된 의자 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부 말리크 알샤미가 뒤쪽 칠판에 분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끄적거렸다. 나는 아랍어로 된 그 문장을 해독했다.

"옛날에는 제발 학교가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농담했다. 그런데 정말 학교가 무너졌다." 이 자조는 또 다른 방패막이였다. 내 시선을 조금 더 왼쪽으로 움직이자 그림이 이

어졌다. 그림에는 맨발에 누더기를 입고 배낭을 멘 한 소년이 핏빛의 검붉은 글씨로 ‘다라야‘라고 적고 있었다. 나는 또 다른 행동파인 그래피티 예술가, 마이드 모하다마니(Madjd Mohadamani)를 떠올렸다. 그가 2016년 2월 19일에군대의 탱크가 쏜 포탄에 맞아 사망했다고 아흐마드가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또 반사적으로 반아사드의 그래피티를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2011년 봉기의 불씨가 되었던 다라의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그 그림은 이 모든 이에게 보내는 경의와 같았다.
또한 "우리는 깨어 있다."라고 외치고 싶은 바람이기도했다.
이들의 멍든 내상에도 불구하고, 다라야는 기어코 인생을 예찬하고자 했다.

주방 세제와 같은 생필품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키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세정제도 부족합니다.

우리, 다라야에 사는 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요청을 드립니다마을 모든 지역에서 포위를 즉각 철회할 것.
도로를 개통하고 생필품, 식량, 의약품, 수돗물, 옷, 신발,
청소 용품 등의 공급을 재개할 것.
우리는 타격을 입은 모든 사람에게 즉각 원조의 손길을 보내줄 것을 유엔과 인권 기구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기자 여러분께서는 다라야에 관한 기사를 써주시고, 기근이 전면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우리 마을의 상황에 대해주의를 환기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굶어서 죽는일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갓난아기와 연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필요한 도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편지 말미에 삽입된 서명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사우산, 카디야, 아지자, 무나, 이크람, 사마르, 나자, 아말,
말락, 아마니, 키나즈, 사미라, 라마, 하이파, 파테마, 마하,

메르자트 누르 주마나, 아프라, 가다, 쿨루드, 와르다, 루브나 아메나, 아트・・・・・・ 세상을 향해 보내는 최후의 구조 요청처럼 피로 쓴 이름의 행렬.
내가 알기로 이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여성들이 침묵을 깨뜨린 첫 번째 사례였다.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며, 익명에서 벗어난 여성들 그들이 오래전부터 지켜온 신중함을 깨뜨려야 할 만큼 이들을 짓누르는 절망의 무게를 감히 헤아려보았다. 이 편지는 환심을 사거나 속이거나 조작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있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주부, 교사, 조산원, 운동가. 나는 이들의 일상에서 고통을 읽었다. 
그 피로, 유산, 조산, 생리대 부족 등의 상황을 안다. 

나는 놀란 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싸고, 불안한 어머니들은 불면증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 모든 불행은 전사의 용기를 북돋우고자 전쟁이 은폐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남성의 승리 뒤에는여성의 고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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