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올해 어버이날 카드에 이렇게 썼다. "2020년 11월부터 삶에 책을 들이고 2021년 5월부터 삶에글을 들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차곡차곡 일과 삶의 대전제들, 즉 변하지 않고 사고의 기준이 되어줄 것들을 쌓아왔습니다. 문장을 수집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기도 하면서요.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말들, 삶의 고유성과 구체성을 이야기하는 것, 타자의 삶에 공감하고 그들이 되어보는 것, 불행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해피 어버이날."
유아차를 탈 때부터 도서관을 드나들던 아이, 곤히 잠든것으로 엄마의 독서 생활에 기여했던 아기가 그때 제 엄마의 나이가 되자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목적이 분명한 책들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필연의 책장엔 우연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서가 구석을 하릴없이 기웃거리곤 했으려나. 헛걸음을 뒤늦게 헤아려본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 잘 모르겠어요, 계획이 있었던 적이 없어서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줄곧 그리 살았다. 중요한 건 당면한 글 한편을 무사히 잘 쓰는 일이었다. 그것만이 계획이고 목표였다.
내가 읽은 건 필독서 목록의 책이 아니라 우연히 걸려든 한권의 책이었고 그 책을 나침반 삼아 한걸음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책을 열권 넘게 썼지만 책을 너무 많이 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책기둥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생의 목격자 양천도서관이 일러준다.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헛수고와 헛걸음으로 우연 앞에 나를 풀어둘 것. 어디를 가야 자기 존재가 피어나는지 몸은 안다.
1부는 관계와 사랑, 2부는 상처와 죽음, 3부는 편견과 불평등, 4부는 배움과 아이들을 키워드로 묶었다. 특히 마지막 4장은 중·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이나 교사에게 보내는글이 대부분이다. 내 딴에는 중심에 있지 않기 위해, 굳어가지 않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급진적인 질문이 가장 많이 터져나오는 장소다. 나는 학교만 다녀오면 아이들이 감당할 세상의 불의가 선명하게 감지되어 어지러웠고, 이 망할 세상에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고,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 것 같은 나의 무능을 탓하며 책을 팠다. 이 아이들이 직면한 현실이 더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 몸에 박힌 기죽이는 말의 가시를 빼주고 싶어서,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바빴고 그 ‘뭐라도‘는 언제나 글쓰기였다.
‘질문이 있는 삶‘을 살도록 자극해준 책과 사람에게 감사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인터넷에서 인종차별 철폐 집회 사진을 봤는데 흑인이든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평화는 백인의 단어다. 해방이 우리의 언어다.‘ 모아놓고 나니 이 책에도 해방이란 말이 꽤 여러번 등장한다. 읽는 사람이 되고부터, 즉 고정된 생각과 편견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기에 쓴 것 같다. 나도 해방을 우리의 언어로 삼는다.
비록 앎이 주는 상처가 있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무신경함이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적어도 약자의 입막음이 평화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더디 걸리더라도 배움을 통한 해방은 내적 평안에 기여하고 낯빛과 표정을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해방은 평화를 물고 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명절이 즐겁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차례가 없어졌고 시가의 사슬도 저절로 풀렸습니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요새는 뜻밖에도 친정입니다.
엄마 없는 친정. 그건 살림하는 사람이 없는 집이라는 뜻이지요. 가사노동의 빈자리는 평소에는 주 2회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메우고, 외동딸인 내가 1년에 세번은 직접 맡습니다. 명절 두번, 엄마 기일 한번.
친정 가는 길은 늘 양손이 무겁습니다. 이번에도 육수에 떡국떡, 매생이와 굴, 불고기 잰 것, 문어 샐러드감, 잡채까지 식구들 먹을 음식을 챙겼어요. 한끼 양식입니다.
없는 엄마일을 있는 딸이 합니다. 아버지는 안하고 오빠도 못하고
똑같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수십년을 살았는데 그 능력은 딸에게만 전승됐습니다.
왜 두 남자는 자기 식구를 위해 밥 한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 의지, 노력을 보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아마 배달 음식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일을 시키는 데도 만만찮게 신경이 소모되는 법입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분배하는 거니까요. 또 어떤 톤으로 말해야 하는지, 거절당했을 때의 대처법은 무엇인지 대안까지 고려해야죠. 그러니 그냥 내가 하고 말자며 간소한 반찬 몇가지를 출장뷔페처럼 이고 지고 갑니다. 바꾸기보다 행하기를 택합니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편을 택하는 겁니다.
친정집은 좁아지고 있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신발이 열켤레 넘게 나와 있죠. 엄마의 자랑이자 특기였던 식물 키우기. 엄마가 작은 식물원처럼 발코니에 가꿔놓은 수십종의 화초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실은 택배 상자와 생수 묶음이 놓여 있어 복도처럼 돼버렸고, 식탁 위는 커피머신과 일회용 수저, 소스 같은 잔재들이 점령했고요. 냉동실에선 유통기한이 2년쯤 지난 냉동식품이 발굴되죠. 음식 아닌 식품으로 꽉 찬 냉장고 택배 집하장으로 변해가는 집. 엄마의 부재 16년간 아주 서서히 틀어지고 살아가는 집을 지켜보고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특기는 무릅쓰기. 참고 견디기. 마음 없이도 임무 수행 모드의 가동이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여든다섯이 됐네요. 늙은 아빠와 아픈 오빠에 대한 연민이 크겠죠. 또살림 경력 30년, 한끼 밥상은 몇시간이면 뚝딱이니까요.
밥은 이상해서 먹는 사람은 차리는 사람의 수고를 알기 어렵지만 밥은 또 이상해서 먹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차리는 사람은 그 수고를 얼마간 보상받습니다. 해 먹이는 즐거움이 크죠. 밥을 내가 밀어내려 해도 밥이 나를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갑니다.
나는 나를 이중으로 비난합니다. 아버지랑 먹을 밥 한끼 하는데 웬 불만이 그리 많아? 왜 아직도 명절에 꼭 모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이게 다 한쪽 성역할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가부장제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어디다가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나를 야단칩니다. 꾸짖고 어르죠. 이번만 참고 지나가자. 아직 족쇄가 풀리지 않은 곳.
일전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일마나 좋았을까. 딸이 이렇게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는 걸보셨어야 하는데!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네요. 엄마는 여름 넘도록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게 뻔하니까요. 육신의 노화가 착실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세끼 식사를 차리고 반찬 투정을 들으며 살았을 엄마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않습니다.
가부장제는 엄마에게 집 아닌 다른 장소를 허락하지 않았고 집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사랑과 안정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명절 때마다 딸은 사라진 엄마를 만나고 엄마와 함께 사라집니다. 엄마는 늘 내게 말했죠. "너는 없는 것처럼 컸다." 손이 하나도 안 가는 자식이었던 순둥이 딸.
자신을 비존재로 만드는 건 여자들의 개인기이자 생존술입니다. 앞치마 두르고 시금치 뿌리의 흙을 살살 털어내던, 어딘가 기가 죽어 있는 며느리였던 나는 시댁에서도 가급적 없는 듯.이 지냈습니다.
눈물을 누르며 자아를 죽이고 밥을 차렸고요. 집에 와서 도망치듯 카페로 달려가 설움을 분출하듯 글을 썼었네요. 아, 말하다보니 맨날 똑같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된 양 처량 맞고 쏠쏠한 기분에 젖고 맙니다. 나는 왜, 아직도, 명절 타령인가. 사실 ‘이런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습니다.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내적 분투의 기록이라면 이미 책 한권(『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서해문집 2016)으로 웬만큼 털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이런 리뷰를 남기기도 했죠. ‘명절 때 가져가는 책이다.‘ ‘밥에 묶인 삶이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터졌다. ‘누나를, 엄마를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인지, 몸이 뒤집힌 벌레처럼 ‘밥에 묶인 삶‘에서 허우적대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아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이들이 다 자라고 시가에 가지 않아도 명절이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죄의식까지 엉겨붙습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리베카 솔닛 RebertaSolnit 이 쓴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게 각별한 작가입니다. 그의 책들을 거의 읽어왔기에 그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내 앞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작가죠.
이번 책은 회고록입니다. 개인적 경험을 담았지만 솔닛의 주특기가 십분 발휘되었죠. 솔닛은 자신의 이야기를 여성이 겪는 집단적 경험의 맥락 속에서 서술합니다. 죄다 밑줄을 그을 지경이었는데요, 유독 이 문장이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망가진 사람이다. 우리 모두를 망가뜨리며 그중에서도 여성을 특정 방식으로 망가뜨리는 사회의 일원이다." (297) 나는 ‘망가진 사람‘이라는 선언이라니요. 나는 이 문장을 수치의 언어가 아니라 해방의 언어로 읽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망가졌기 때문에 망가뜨리는 것들에대해 쓸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망가진 것을 수선해야 하기 때
환승하듯 가족을 떠나 바로 가족으로 옮겨 탔을까.
‘가족‘이 삶의 화두가 됐다. 마치 공기처럼 삶에서 한번도 분리된 적 없는 그것. ‘보호‘보단 ‘제약‘이 연상되는 단어.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나를 자극했다. 모두가느끼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금기가 들어 있을 것 같았지. 예감대로였다. 저자는 가족의 폐단을 세가지로 꼽는다.
첫째, 부와 빈곤을 세습하는 것.
둘째,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갈등 을 은폐하는것.
셋째,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여성을 속박하는 것.
난 한줄 한줄 빨려들었다. 흙수저 • 금수저란 말도 있듯이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된다. ‘계급 배치의 강력한 기관‘으로 가족이 기능하지.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은 뉴스의 단골 소재잖아. 부모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통제하고 간섭하지.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고들 말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한 게 현실이다. 특히 가족이 ‘여성을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속박한다‘
"먹지 마, 커지지 마, 멀리 가지 마, 많이 원하지 마." 꽤나 익숙한 명령이죠. 사랑이 다이어트 실패기를 두페이지나 되는 글로 썼던 것처럼 먹지 말아야 하고요. 사랑눈이 전문직이지만 직업적 야망을 갖지 않게 된 것처럼 남자보다 잘나가도 안 되고요. 사랑눈이 수업 하나 들으면서배우자, 아이, 동료들에 대한 죄의식에까지 시달리는 것처럼 나의 필요는 가족의 필요를 위해 포기해야 하고…이렇게 ‘하지 마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최초의 욕구가 발동했을 때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기 의심과 싸우게 됩니다. 캐럴라인 냅이 떠올리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죠. "애초에 자신에게 욕망하고 원할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하지못하고, 자신의 필요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그 필요들을 거의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122~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