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기록을 격려하고 기록이 기억을 위로한다. 상실과 슬픔에 관한 깊은 사유와 글쓰기가 우리를 단단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책이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이 벌써 그립다는 서문부터 모든 슬품으로부터 날아오르자 다짐하는 끝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불안해하는 독자에게, 엄마로 살아가는 세상 모든딸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가족이라는 주제로 이토록 풍요로운 이야기를 구사할 수 있다는 데 놀랍따름이다. 단락마다 단편소설 한 편만큼의 서사가 함축되어 있고, 사유깊은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은유와 삶의 향기가 스며있다. /이현숙 소설가

글이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처럼 맑다. 어머니의 슬픔과 노고를 정화하여 자기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 이야기에 살아가는 일이 좀 가벼워진다. 30년 넘게 재직한 교직을 마감하며 가장 먼저 어머니께 달려가 큰절을 올리는 모습은 가족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수진 수필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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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널 만나니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내 몫을 했을 뿐이다. 힘들었어도 후회는전혀 없다. 살아 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 형은, 영혼조차도 비명을 지르는 시대에 살았다. 강용우 씨를 생각해봐. 비명이너무 끔찍하지 않니?"

한 마디 한 마디를 힘주어 말하던 형이 문득 말을 그쳤다. 복받치는 감정을 참느라고 형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우리는 묵묵히 각자의 감정을 다스렸다. 
하지만 벽시계는 계속 초침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다. 형에게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어 난 애가 탔다. 나는 자꾸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윽고, 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아니? 내가 널 참 좋아했다는 것을 내가무엇을 하건, 어떤 일을 하든, 내 속엔 늘 네가 있었지.

나는 마침내 말문이 트일 모양이었다. 내 입술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목소리로 ‘나의 말‘을 시작했다.
"형. 난......."
그때 자지러지게 벨이 울렸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에 내말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난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형이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난," - P-1

"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널 만나니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내 몫을 했을 뿐이다. 힘들었어도 후회는전혀 없다. 살아 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 형은, 영혼조차도 비명을 지르는 시대에 살았다. 강용우 씨를 생각해봐. 비명이 너무 끔찍하지 않니?"
한 마디 한 마디를 힘주어 말하던 형이 문득 말을 그쳤다. 

복받치는 감정을 참느라고 형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우리는 묵묵히 각자의 감정을 다스렸다. 

하지만 벽시계는 계속 초침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다. 형에게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어 난 애가 탔다. 나는 자꾸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윽고, 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아니? 내가 널 참 좋아했다는 것을. 내가무엇을 하건, 어떤 일을 하든, 내 속엔 늘 네가 있었지...
나는 마침내 말문이 트일 모양이었다. 내 입술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목소리로 ‘나의 말을 시작했다.
"형, 난......."
그때 자지러지게 벨이 울렸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에 내말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난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형이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난," - P-1

이럴 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울리지 않고 어색해지기에 십상이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부신 해를 올려다보았다. 둥근 태양은 붉은 보석 같았다. 삭풍 몰아치는 음산한 겨울에도 하늘엔 보석 같은 해가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우리는 큰길이 보이는 곳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끝내 나에 대해서, 아니 내 앞에 가로놓인 미래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해준 그가 몹시 고마웠다. 헤어지면서 그는 또내 머리통을 주물렀다. 

간판들이 숲을 이룬 거리로 사라져가는 아저씨의 넓은 등을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도 돌아섰다. 생각 없이 골목 안으로 몇 발짝 걸음을 옮기다 말고 나는 우뚝 서버렸다. 방들이 서로의 맨몸을 부비며 칭얼거리고 있을 나성여관은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었다. 나는 망연해져서 낯익은 주변 형상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보았다. 그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공기조차 떨지 않는 고요를 보았다. 그러나 그 고요를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온했던 순간의 고요를, 휘몰아쳐 내달려온 바람이 일시에 헝클어버렸다.
다시 되돌아 나오다 나는 바로 옆에서, 제대로 풀칠이 되지 않아 깃발처럼 나부끼는 전봇대의 광고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더기같이 덕지덕지 붙은 다른 광고지에 비해 최근의 것인 듯 가장 깨끗하게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생산직 남녀사원 00명 모집. 초보자 환영. 
깃발같이 펄럭였던 그것은 구인광고였고, 내가 읽은 것은 그 두 문장과 전화번호였다. - P-1

는 인간이다. 그것을 비속함 또는 무지스러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작은 열려짐 속에는 허위나 허세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우연이는 그 마음속의 단순성과 직접성의 회로를 통해 형이 저지른 파국을 받아낸다. 우연이는 상황을 정리하거나 취사선택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다. 우연이는 그 파국에 자신의 마음을 밀착시키고, 단순하게 그러나 종합적으로 그 파국을 받아낸다.
나는 어쩌면 형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 안으로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울며 속삭였다. 형을 사랑한다고. (533쪽)

한복을 입고 있어서일까. 형은 마치 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이 저러했겠다 싶은 분위기였다. 형에게서 아버지를 읽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형을 좀 더 가깝게 보고 싶어서 자꾸 쇠창살에 얼굴을 박았다. (538쪽)

지금도 그랬다. 넉넉한 회색 한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형의 마른 마른 몸피는 도저히 칼을 든 자의 형상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칼을맛은 자의 초췌함. 그러면서도 너그러운 표정 쪽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540쪽)

인용된 세 토막의 문단들은 범행을 저지른 형의 존재가 우연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단순하고 민첩한 마음은 구속된 형의 모습에서 젊었을 적 아버지의 모습을 읽는다. - P-1

아버지! 우연이네 아버지는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력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던가. 그 아버지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우연이는 아버지의 아름답고 북받치는 청춘에 가서 닿는다. 그리고 우연이의 마음은 칼을 휘두른 형의 살의(殺意)의 밑바닥에 고인 부드러움과 교감하고, 형의 운명 속에 교직된 사랑과 증오, 가해와 피해. 찌르기와 찔리우기가 결국은 다른 것이 아니며 한 덩어리라는 그 난해한 복합구조물을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삽시간에 파악한다.
우연이의 마음은 그 복합구조물을 분리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해버리고, 그것을 마음의 무늬 위에 짜놓는다. 형을 면회하고돌아오는 길에 우연이는 눈 속에서 보라와 입 맞춘다. 여자아이가 달려들어서 입술을 포개는 이 입맞춤은 순결과 평화 속에서 포개지는 고전적인 입맞춤이고 세상의 고통과 세상의 뒤엉킨 복합구조에대한 이해와 긍정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년의식과도 같은 입맞춤이다.
이 입맞춤은 지독히도 감각적인 입맞춤이지만, 곧 감각이 얼얼해지는 입맞춤이다. 아이들인지 어른인지 아직은 구별되지 않지만,
아이의 말투와 아이의 민첩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어린 인간들이 고전적인 입을 맞출 수 있다. 그 입맞춤은 키를 자라게 하는 입맞춤이라고 할 만하다. 소설 전편에 번져 있는 우연이와 보라 사이의 관계의 경박성(이것이 그들 세대의 한 가엾은 불행일 것이다)은 이입맞춤에 의하여 비로소 극복된다. 그래서 좀 더 키가 커진 우연이는 나성여관이 헐리기 전날, 타락한 누나의 귀가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누나는 꼭 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누 - P-1

나와 형, 그리고 내가 나성여관에 품고 있는 사랑을. 그것은 때로 누추했고 더러는 끔찍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오밀조밀했고 아늑했었다. 우리들의 사랑 속에 담긴 분노와 증오와 슬픔 없이 어찌 이처럼 질긴 애정의 끈을 묶어낼 수 있었으리. (571쪽)

소설의 말미에서, 그 우연이가 한 시대의 밤을 송별하고 있다. 밤은 형이나 찌르레기 아저씨의 칼에 맞아 사라지지는 않는다. 밤의 고통과 증오와 시달림을 받아내고 거기에 삼투하고 거기에 대하여 정직한 여러 마음이 모여 만든 삶들에 의하여 우리들의 기나긴 밤은 비로소 송별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맨입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밤은 인간의 마음과 삶 속으로만 사라진다. ‘생산직 남녀사원 00명 모집. 초보자 환영‘우연이가 바라보는 찢어진 구인광고 너머로 우리는 찌르레기 아저씨의 무너진 ‘집‘과 우연이네 형의 파괴된 ‘마을‘
이 다시 돋아나고 아물어가는 희망의 가녀린 그리고 끈질긴 싹들을 본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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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의 젊은 시절을 노래 부르듯 외고 다녔던 노인의 짓무른 눈자위와 냄새나는 목도리가 떠올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노인이 쏟아놓은 말들이 일시에 내 기억창고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까는 너무 막막해서 호흡이 답답할 지경이었는데 이제는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노인에 관한 숱한 기억들로 숨쉬기가 불편할정도였다.
나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노인의 엄살 심한 탄식과 현실의 비참함에 늘 진저리를 쳤었다. 털어놓는 사연들도 부질없는 욕망과 작위적인 드라마가 범벅이라고 느꼈을 뿐이었다. 남과 북의 이쪽저쪽 땅에 떨구어 놓은 노인의 삶은 어느 쪽이든 다 갇힌 운명 같아서 내가 도와줄 만한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노인의 비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부끄럽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부끄러움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정말이다. 아, 진정 난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의미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형의 체포, 노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내가 홀로 탄식한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무엇이든 하고자 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난 천둥과 번개 속에 끼어 있던 약간 푸른 하늘인 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갇힌 운명으로만 살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비싼 대가를 치렀다. 
나는 아주 짧게 노인의 죽음을 설명할 것이다. 정말그러고 싶다. 물론 아버지가 갈말읍에 전화로 확인한 사실에만 의존해야 하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노인의 죽음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는 데 진짜 이유가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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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나스에게 미래는환상이었다. 
그는 그 미래가 현재로 다가왔을 때만 인정했다. "난 미래에 대해서 좀 생각이 달라. 전부 미래로 흘러가지만 사실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그건 우리가 만드는 거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바로 도덕성이야. 인류의 미래니 가족이니 뭐니 전부 지금 우리가 뭘 하느냐에 달렸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야 모든 게 나아진 다음 순간을 맞을 수 있는 거지."

사람들이 자주 행복하냐고 묻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고 요나스는 말했다. 당연히 행복하다는 것이다.
 "난 언제나 웃고 있어야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행복한 게 진짜지. 살면서 두루두루 다 잘해왔고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돼. 조금 이따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까봐 초조해하지 않아. 그냥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걱정도 하지 마. 그러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어. 내가 바로그렇거든."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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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6명 을 인터뷰한 1년을 통하여
인생의 깨달음에 대하여 기록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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