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언덕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매나해타가 공식적으로 서양의 도시가 된 것은초기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단돈 60길더를 주고 섬을 사들인 1626년의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뉴욕은 유럽과 신대륙을 잇는 중요한 지역이었는데, 그런 곳을 사유 재산이 뭔지도 모르는 아메리칸인디언을 상대로 그렇게 해결하다니, 어쩐지 도둑놈 일대기 같은 뉴욕 역사의 첫 페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영국인이 점령한 뉴욕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했고, 1811년 야심 차게 정비된 12개의 애버뉴 avenue, 남북으로 연결된 도로와 152개의 스트리트 Istreet, 동서로 연결된 도로, 가는 뉴욕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 바둑판무늬 계획은 당시 마구 오르기 시작한 투기 일풍을 반영한 것인데, 이런 도시 형태가 부동산을 사고팔고 이윤을 남기는데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벌한 도시계획 속에서도 살아남은 길이 하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인디언이 다니던 길. 바로 브로드웨이다.
지도를 펼쳐보면 오직 이 브로드웨이만이 겁도 없이 격자무늬의 맨해튼을 사선으로 지른다.
1851년부터 구상된 센트럴 파크가 들어서면서 맨해튼은 지금의 모습과 비슷해졌다.
현재 맨해튼은 센트럴 파크 바로 아래 미드타운 Midtown, 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로어맨해튼! Lower Manhattanl. 센트럴 파크 동쪽의 어퍼이스트사이드 IUpper East Sidel. 서쪽의 어퍼웨스트사이드 Upper West Sidel 그리고 북쪽의 할렘 Harleml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내가 묵고 있는 헤럴드스퀘어 호텔은 미드타운 34번가에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1931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오래동안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9.11 테러로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다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다.
플랫아이언 빌딩 Farron Building 1902년에 세워진 이 빌딩도 당시에는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우아한프렌치레상스 양식의 건물이 좁은 삼각 지대에 전기다리미처럼 들어선보습이다. 그래서 이름이 플랫아이언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보면서 맨 처음오른 것은 전기다리미가 아니라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하고 있는 나의가난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이었다.
울워스 빌딩 Woolworth Building 장엄한 고딕 양식의 이 빌딩은 영화<본 콜렉터>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장소로 잠깐 나온다. 일본의 100엔 숍처럼 모든상품을 10센트에 파는 상점을 만들어낸 F. 울워스의 의뢰로 세워졌다.
뉴욕에 남은 부호들의
철강왕 카네기와 카네기 홀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을남긴A 카네기(Andrew Camiegel는 철도회사에서 일하면서 곧 다가올 강철시대를예견하여 제강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은퇴 후 상당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카네기는 특히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미국 전역에는 그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서관이 2,500여 개나 이른다. 1891년에 개장해 수많은 명연주자를 탄생시킨꿈의 무대, 뉴욕의 카네기 홀도 그의 기부로 개축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됐다.
석유왕 록펠러와 록펠러 센터 스탠더드 오일을 창설한 미국의 석유왕J. D.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역시 카네기에 버금가는 재력과 기부로유명한 인물이다. 1947년에 세워진 빌딩단지 록펠러 센터의 프로메테우스 동상과 아이스링크는 뉴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영화 등에서 익숙하게 봤을 법한장소다.
금융 재벌 모건과 피어폰트 모건 도서관 거래의 천재‘, ‘월스트리트의제왕 등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모건은 전설적인 미국의 금융재벌이다. J. P. 모건 John Pierpont Morganl은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투자전문가면서 대기업 합병에도 관여했었는데, 미국의 대공황 때는 은행가들을 설득해 구제금융을 마련하기도 했다. 실은 자택 도서관에 거부들을 모아놓고 돈을 내놓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겠다고 했단다. 매디슨애버뉴에 있는 피어폰트크건 도서관은 모건의 대저택 일부분으로, 그가 소장했던 가치 있는 문화재를
인종의 샐러드볼이 된 도시
먼저 자리를 잡고 머릿수가 많은 것이 최고라는 간단한 법칙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듯하다.
처음 뉴욕에 도착한 사람들은 WASPI White, Anglo-Saxon, Protestant 그러니까 백인이고 영국계이며 신교도였다. 1880년대까지 뉴욕이민의 주류를 이루던 외국인은 아일랜드인과 독일인이었다. 그 후 이탈리아인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자, 토박이에게 멸시받던 아일랜드이민자는 뒤늦게 들어온 이탈리아인과 유대인을 무진장 박대하기 시작했다.
뉴욕은 수많은 인종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이지만 그들은 절대 섞이지 않고끼리끼리 모여 살면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고수한다. 관광객의 눈으로도뉴요커는 대부분 같은 민족끼리 어울린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공존할 뿐,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낯선 민족적 풍경은 오히려 뉴욕의 볼거리가 되었다. 현재 맨해튼지도에서 가장 돋보이는 민족 거리는 리틀이탈리아 Little Italy‘와 차이나타운 I Chinatown‘이다. 옛 아일랜드 구역에 이탈리아인이 들어오면서 그곳은 작은 이탈리아가 됐는데, 그들은 그곳에서조차 지방별로 나뉘어 살았다. 나폴리 출신이 모여 사는 멀베리스트리트 Mulberry Streetl는 리틀이탈리아의 중심거리다. 그리고 리틀이탈리아 바로 남단, 모트스트리트 Mott Street 를 중심으로는뉴욕의 차이나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사실 카네기, 록펠러, 모건 등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부당 내부거래와 독과점 등 지금은 불법으로 규정된 경제 활동이 한몫했기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 때문에 이런 경제 관련법이 생겨난 셈인데, 한때오건이 움켜쥐었던 미국의 경제 권력도 현재는 정부 기구의 손으로 넘어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은 이 미국의 대부호들은 그러나 말년에는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도덕적으로 마무리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는 우리나라 속담의진수를 그야말로 확실하게 실천했다고 할까.
로어 프라자(Lower Plaza)아이스링크에 있는 프로메테우스 동상.
가문의 영광 뉴욕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 20인중 ‘찰스 루치아노‘라는 마피아 보스가 있다. 루치아노의 업적은 시실리 출신갱단을 단순한 폭력배가 아닌 미국의 권력 중심부까지 좌지우지하는 기업체로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폭력배의 기본 수입원은 아무래도 근처 상가의 상인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것, 일명 보호비다.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의 명대사 "절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 거야"라는 말로 으스스한 분위기 조성까지 하면서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마피아가 이렇게까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원인은 무엇보다 1920년부터 시행된 금주법과, 범죄 소탕에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FBI의태도가 결정적이었다. 영화 <언터처블>에서 알 카포네를 잡아 넣은 투수 수사팀 엘리엇 네스트FBI가 아닌 미국 재무싱 소속이다. 알 카포네의 죄명도 탈세 마피아는 매매춘, 도박, 마약등 지하세계의 경제를 장악하면서 정치권력과 줄을 엮어 세력을 넓힌다. <대부>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뉴욕의 5대 마피아 가문은 살바토레 마란차노가 마피아를 통합한 후 뉴욕을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눠 각 가문에 할당한 것이시작이었다.
마피아가 미국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과 이에 관련된 사법기관의 부패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뉴욕 시장 줄리아니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많은 영화에서 차용된 전설적인 갱의 도시, 뉴욕의 범죄율은40퍼센트 이상 줄어들어 생각보다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게 한편의 말이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1910년대, 그리니치빌리지를 거쳐 간 사람 중에는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와 근대 사진 예술의 아버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도 있다. 이 스티글리츠의 아내가 꽃과 식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로, 스티글리츠는오키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그녀의 작품 활동을 팍팍 밀어주었다.
그리고 1920~1930년대에는 미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노먼 록웰과 화가 에드워드 호퍼, 극작가 유진 오닐이 살았었고, 1940년대에는뉴욕파 화가 잭슨 폴록이, 1960년대에는 밥 딜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유명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앞서 1900년대에 그리니치빌리지에서 활동했던 작가가 바로 오 헨리 10. Henry 다. 어린 시절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으면서그리니치빌리지를 알게 된 이들도 아마 적잖을 것 같다. 내가 읽은 동화책에서는 분명 소녀와 어머니 그리고 화가 할아버지가 등장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본 소설의 내용은 그게 아니다.
워싱턴스퀘어 서쪽, 그리니치빌리지의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는 수와 존시라는 두 화가 아가씨와 역시 가난한 화가면서 같은 집 1층에 사는 비번 영감이 바로 주인공이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동화책같으니라고!!
오 헨리의 단편은 대부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다시 읽는 그의 단편 소설에서는 무명의 작가와 화가가 살았던 당시의 그리니치빌리지 그리고 맨해튼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가 있다.
맨해튼에 자리한 대학교#NEW YORK 104
줄리어드 음악원 The Juilliard Schooll 정경화, 장영주, 아이작 스틴, 요요마등이렇게 화려한 클래식 연주자가 모두 줄리어드 출신이다. 이 음악원은 1905년에세워져 현재는 유럽인도 가길 꿈꾸는 전설 같은 음악학교가 되었다. 줄리어드는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 빈부와 인종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실제로 학생의 70퍼센트가 장학금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뉴욕 대학교 I New York University 미국의 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이 사립 대학의 장점은 뉴욕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월스트리트에서 인턴십을 한다든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수업을 받는다든가 하는 최상의 기회를 접할 수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아이비 리그에 속한 대학 중 하나로, 뉴욕에 자리한 고등교육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인류학이 학문으로 본격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1840년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중심으로해서 였는데, 마거릿 미드 같은 인류학자가 바로 컬럼비아 대학 출신이다.
맨해튼에는 SVAIScnool of Visual Artl나 파슨스 디자인 스쿨 Parsons School ofDesignl. FITI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l 같은 디자인 학교도 눈에 띈다. SVA는원래 일러스트레이터를 양성하는 학교였지만 1956년에 좀더 테크니컬한 교육을실시하면서 이름을 지금처럼 바꾸었다.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프랫인스티튜트 Pratt Institutel도 한국 학생이 선호하는 디자인 대학이다.
그래도 한 번쯤 들러봐야 한 미술관#063NEW YORK 104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I 뉴욕에 갔을 때 MoMA는확장 공사를 하느라고 퀸스로 이사 간 상태였다. 과연 퀸스까지 가서 작품을 감상해야 할까? 가이드북에 따르면, MoMA는 개마고원에 있더라도 꼭 가봐야하는 미술관이다. 록펠러가의 며느리 애비 록펠러의 주도로 1929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마티스의<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앤디 워홀의 <골드 메릴린 먼로> 등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공부했던 유명한 그림이 모두 모여 있다. MoMA가 인수한PS1 미술관도 호응이 좋다. 이곳은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미술관이기 때문에 아마도 뉴욕의 젊은 미술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ISolomon R. Guggenheim Museuml 광산 투자가였던 솔로몬구겐하임이 개관한 미술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아름다운 외관으로도유명하다.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rn of Armerican Art 예술 후원자이자 예술가인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자신의 수집품을 기증하겠다는 제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거절하자 1930년에 직접 이 미술관을 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센트럴 파크 옆에 자리한 미국 최대의 미술관. 맨해튼에 있는 베르메르의 그림 중 다섯 점이 이곳에 있다.
<위대한 유산>과 화가의 작업실
영화를 보면서 뉴욕 미술계의 분위기를 슬쩍 느껴보기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위대한 유산>이 제격이다.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상류층 아가씨를 사랑하는 가난한 화가 지망생 핀 벨(에단 호크) 이 뉴욕에서 아트스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핀 벨과 에스텔라 (기네스 펠트로)의사랑이야기도 좋지만, 영화 내내 초록빛으로 일관하는 영상도 멋지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출신 화가 프란시스코 클레멘트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도매력적이다. 핀 벨은 로드처럼 나타난 수수께끼의 사나이에게 뉴욕행 티켓을 받는다. 핀은 그가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소호의 로프트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그가 소개해준 아트 딜러에 의해 스타가 된다. 핀의 데뷔전은 모든 그림이 다 팔려나가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알고보니 이것도 모두 수수께끼사나이의 공로였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의 대부분은 섬 밖으로 작업실을 옮겨 갔다. 웃지못할 일은 그들이 모여 주목받는 예술 동네가 되고 그래서 그곳으로 관광객이 몰려들면 집값이 뛰는 바람에 화가들은 정작 쫓겨난다는 난감한 사이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애씨 예술인 마을을 만들어도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등이 예술가가 모여드는 대표 지역으로, 지금은 그곳 "역시 집값이 띈다고 한다. 아무래도 부동산 사업에 야망을 가진 복부인이라면 록밴드 대신 뉴욕 화가의 그루피를 자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현상이다.
패션 거리의 미싱사 아저씨
미드타운 서쪽 7번가인가 8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미싱을 돌리는 웬아저씨의 동상이 보인다. 바늘에 꽂힌 엄청나게 커다란 단추 모형과 패션디스트릭트/Fashion District 라는 거리 이름으로 볼 때 옷 만드는 일과 상관이 있는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상이 말해주듯 뉴욕의 기성복 제조 역사는 꽤 긴 편이다. 1820년대부터 각종 부티크와 숍이 브로드웨이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몇몇 돈을 번 상인은 넓은 대지를 확보해 대형 양품점을 세웠는데 1858년, 롤랜드 허시메이시가 6번가에 문을 연 손수건 가게도 30년 뒤 지금의 메이시 백화점 자리로 옮겼다. 뉴욕을 걷다 보면 이렇게 과거 혹은 현재를 말해주는 이정표를 가끔 만나게 된다.
뉴욕의 패션 디자인 회사가 몰려 있는 의류 지구 Garment District, Fashion Districtl 라든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극장이 잔뜩 들어선 극장지구 ITheatre District, 맨해튼 최남단 배터리 파크 근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금융 지구 I Financial Districtl까지. 그리고 지금은 고기를 포장하는 사람이 하나도없는 육류 포장 지구(Meat Packing Districtl도 있다. 육류 포장지구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힙 Hipl한사람들이 모여 글랩 파티 Glam Party‘를 즐기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마퀴로‘에서는 가끔 유명 스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혹시 거리 이름만 보고 "역시 고기는 안창살이 최고지"라며 입맛을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설마 또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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