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속 마루야마 겐지는 첫인상부터가 강렬했다. "나는 데뷔 후 50여 년간 일본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자기연민 가득한 글만 쓰는 나르시시스트 집단인 일본 작가들을 싫어한다." 
오! 난 이렇게 줏대 있는 사람이 좋더라, 죽 읽어나갔다. 스물두 살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단다. 남달라 보였다. 
뒤이어 사람은왜 자립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우리는 왜 계속 살아 나가야 하는지, 그의 생각이 이어졌다. 말투는 단호하고 분명했다. 당장 그의 책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샀다. 부제로 ‘인생이란 멋대로살아도 좋은 것이다‘를 단 에세이였다.

조금 읽고서 글자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내팽개쳐두었다. 3~4년 정도 지나서였나, 계속 눈에 밟혀 다시 읽기 시작했더니 그의 생각이 너무 좋아서 단숨에 읽었다. 요약하자면 부모, 가족,
국가, 직장, 종교에 휘둘리며 살지 말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서 살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청춘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기 때문에과감하게 자신의 할 일을 밀어붙이라며 쉬지 않고 일갈했다.
나 또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는주체적인 자유와 세상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었다. 타인에 휘둘리지 않

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해외에서 판매 중인 헨리 다거 화집을 발견해 선물해주었다. 그래, 외국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됐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화집에는 헨리 다거의 그림은 물론 개인 이야기도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그는 생전 병원 청소부로 일했고 죽고 나서야 방에서 방대한 원고가 발견돼 이름을 알렸다. 15,145쪽에 달하는 글과 수백 점이 넘는 삽화가실린 「비현실 왕국에서 In the Realms of Unreal]]라는 판타지 동화였다. 원제목은 ‘비현실 왕국의 비비안 걸스 이야기, 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안젤리안 전쟁 폭풍 속The Story of the Vivian Girls, in What is known as theRealms of the Unreal, of the Glandeco-Angelinnian War Storm, Caused by the Child SlaveRebellion‘으로 매우 길다. 헨리 다거는 평생 홀로 살며 몰래 작업했고, 한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자신만의 책을 손수 제본해 금색으로 제목을 적었다. "이 세상 모든 금광의 금으로도, 은으로도 이 그림을 나에게서 살 수없다. 이들을 훔치거나 훼손하는 이들에게 잔혹한 복수가 있을 것이다"라는 메모까지 남겼다.
나는 늘 그림을 그리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남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그림이 알려지고, 알려져야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어서다. 나뿐만 아니라 화가 대부분이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을 전제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발표해 인정을 받고 명예를 쌓는것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보여줄 수 없다면 그리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그림이 아니라면 애초에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헨리 다거는 평생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자신의창작 세계에 빠져들어 그림을 끊임없이 그렸다.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림을 사랑한다고 온 천하에 떠들고 다니는주제에 실은 꾸준히 그리지 않는 내 모습이, 남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기가두려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마감 없이, 누군가의 부탁이나 청탁 없이, 돈을 벌려는 생각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이토록 방대하게 오래도록 만들어가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창작‘이라는 단어에 혹시 다른 모습이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화가 기묘하지만 그의 그림은 더욱 특이하다. 「비현실 왕국에서는 평화로운 왕국의 아이들이 자기들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어른들의 침공을 받아 싸우고 투쟁하는 이야기다. 그가 상상한 왕국 속에서136

수많은 아이가 뛰어놀고 싸운다. 그 아이들 위로 형형색색 꽃과 푸르른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괴물과 먹구름, 시체가 나뒹굴기도 한다.
기괴한 한편 너무나 아름답다. 이런 그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없다.
헨리 다거는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인체를 자유롭게 그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동작이나 표정을 그릴 때는 기존 광고 사진이나일러스트, 만화를 베끼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그림 속 아이가 사람이아니라 인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을독특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련됨이나 능숙함은 없지만 신선하다. 인물데생은 그렇다 치고 그림 구도와 색감이 조화로우며 과감하고 색달라서힙하다고 느껴진다. 나비나 용 같은 환상적인 상상의 동물은 꿈속 이미지를 자아낸다.

두텁지 않은 채색도 마음에 든다. 수채화로 단 한 겹, 하나의 테두리 안에 하나의 색을 칠하거나 한 그림 안에 서너 가지 색밖에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간혹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강렬하게 끌린다. 실제로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를 지으라고 하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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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였다. 기사 속 마루야마 겐지는 첫인상부터가 강렬했다. 

"나는 데뷔 후 50여 년간 일본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자기연민 가득한 글만 쓰는 나르시시스트 집단인 일본 작가들을 싫어한다." 

오! 난 이렇게 주대 있는 사람이 좋더라, 죽 읽어나갔다. 스물두 살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단다. 남달라 보였다. 

뒤이어 사람은왜 자립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우리는 왜 계속 살아 나가야 하는지, 그의 생각이 이어졌다. 말투는 단호하고 분명했다. 
당장 그의 책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샀다. 부제로 ‘인생이란 멋대로살아도 좋은 것이다‘를 단 에세이였다.
조금 읽고서 글자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 내팽개쳐두었다. 3~4년 정도 지나서였나, 계속 눈에 밟혀 다시 읽기 시작했더니 그의 생각이 너무 좋아서 단숨에 읽었다. 

요약하자면 부모, 가족,
국가, 직장, 종교에 휘둘리며 살지 말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서 살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청춘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자신의 할 일을 밀어붙이라며 쉬지 않고 일갈했다.

나 또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는주체적인 자유와 세상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었다. 타인에 휘둘리지 않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해외에서 판매 중인 헨리 다거 화집을 발견해 선물해주었다. 그래, 외국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됐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화집에는 헨리 다거의 그림은 물론 개인 이야기도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그는 생전 병원 청소부로 일했고 죽고 나서야 방에서 방대한 원고가 발견돼 이름을 알렸다. 15,145쪽에 달하는 글과 수백 점이 넘는 삽화가실린 「비현실 왕국에서 In the Realms of Unreal]]라는 판타지 동화였다. 원제목은 ‘비현실 왕국의 비비안 걸스 이야기, 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안젤리안 전쟁 폭풍 속The Story of the Vivian Girls, in What is known as theRealms of the Unreal, of the Glandeco-Angelinnian War Storm, Caused by the Child SlaveRebellion‘으로 매우 길다. 

헨리 다거는 평생 홀로 살며 몰래 작업했고, 한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자신만의 책을 손수 제본해 금색으로 제목을 적었다. "이 세상 모든 금광의 금으로도, 은으로도 이 그림을 나에게서 살 수없다. 이들을 훔치거나 훼손하는 이들에게 잔혹한 복수가 있을 것이다"라는 메모까지 남겼다.
나는 늘 그림을 그리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남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그림이 알려지고, 알려져야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어서다. 나뿐만 아니라 화가 대부분이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을 전제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발표해 인정을 받고 명예를 쌓는것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보여줄 수 없다면 그리려는 마음을갖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그림이 아니라면 애초에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헨리 다거는 평생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자신의창작 세계에 빠져들어 그림을 끊임없이 그렸다.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림을 사랑한다고 온 천하에 떠들고 다니는주제에 실은 꾸준히 그리지 않는 내 모습이, 남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기가두려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마감 없이, 누군가의 부탁이나 청탁 없이, 돈을 벌려는 생각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이토록 방대하게 오래도록 만들어가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창작‘이라는 단어에 혹시 다른 모습이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화가 기묘하지만 그의 그림은 더욱 특이하다. 「비현실 왕국에서는 평화로운 왕국의 아이들이 자기들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어른들의 침공을 받아 싸우고 투쟁하는 이야기다. 그가 상상한 왕국 속에서

수많은 아이가 뛰어놀고 싸운다. 그 아이들 위로 형형색색 꽃과 푸르른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괴물과 먹구름, 시체가 나뒹굴기도 한다.

기괴한 한편 너무나 아름답다. 이런 그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없다.
헨리 다거는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인체를 자유롭게 그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동작이나 표정을 그릴 때는 기존 광고 사진이나일러스트, 만화를 베끼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그림 속 아이가 사람이아니라 인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을독특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련됨이나 능숙함은 없지만 신선하다. 인물데생은 그렇다 치고 그림 구도와 색감이 조화로우며 과감하고 색달라서힙하다고 느껴진다. 나비나 용 같은 환상적인 상상의 동물은 꿈속 이미지를 자아낸다.
두텁지 않은 채색도 마음에 든다. 수채화로 단 한 겹, 하나의 테두리 안에 하나의 색을 칠하거나 한 그림 안에 서너 가지 색밖에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간혹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강렬하게 끌린다. 실제로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를 지으라고 하면 머리

를 자르고 신체를 두 동강 내고 귀신이 물어뜯는 등 순진하고 착한 내용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치 그런 동화를 보는 것 같다. 그•가 묘사한 유토피아, 천국, 환상 세계는 색감이 기가 막히고 아름답다. 이런 색을 쓸 수 있구나, 잔혹한 그림에서 보이는 색감은 의도 또는 무의식적인 결과물이구나, 깨닫는다. 나라면 절대 그리지 않을 그림이기에 매력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트레이싱을 했다고 하면 엄청난 비판을 받는데, 만약 헨리 다거의 스타일로 트레이싱을 했다면 도둑질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적인 기법으로 인정받을 것 같다. 베껴 그리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구성, 재활용했기에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재탄생했을 터. 
베껴 그렸지만 누구의 그림보다도 독창적이며 자유분방하고 특이하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그의 이런 독특한 분위기는 다른 많은 화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책을 사기 전에는 헨리 다거의 그림을 조각조각 보았고, 그의 일생을대략적으로만 알았다. 
영어로 쓰이긴 했지만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를 더 자세히 알게 됐다. 특히 인터넷에 없는 그림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은 가로로 긴

그림이 많은데, 이 책도 가로로 긴 판형에다 중간중간 끼운 접지를 펼치면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비율로 볼 수 있다.
한 화가의 예술 세계를 이토록 자세히 보여주는 책이라니. 많은 화집이 화가의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묵직한 종이 더미로 어딘가에 존재한다.
책에는 ‘구성‘이 있다. 작가의 생애와 생각이 순서대로 편집되어 한 인간의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화집 감상은 내겐 선배, 이 업계의 길을 먼저 간사람의 노트를 훔쳐보는 일이다. 하여 수업 노트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 전시회 한 번 연 적 없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화가를 책 한 권으로만난다. 어떻게 이 종이 더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직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만나지 못한 화집이 전 세계에 수만 종이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모험 정신이 불끈불끈 솟는다. 비인기 분야이고 제작비가 꽤 들어가는 책임에도 여기저기서 꾸준히 나오는 건 나 같은 독자가 있어서겠지. 화집을 만드는 분들, 늘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살 테니 어서 마케팅을 해주세요! 

돈을 벌고 나서 제일 좋은 것 중 하나가 화집을 살때 예전보다 덜 망설인다는 점이다. 다만 화집은 일반 서점에서 흔하게 볼수 없다. 요즘은 더더욱 구매가 힘들어졌기에 바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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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소질이나 취미 계발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타인과의 사회적 경쟁에 나설 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때, 사회적 성취를 거둔 개인이 계발에 나설 때, 그는 노력하는 개인이 된다. 청년들은 이 구조적 문제를 희화화하면서도 우선은 생존을위해 영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훈이라는 것의 전형이 대개 그렇지만 노력, 도전, 열정과 같은듣기 좋은 단어들은 아주 모호하다. 그래서 그 공백마다 시대의 욕망이 스며들게 된다. 그렇게 무장된 단어들은 오히려 내규, 수칙, 방침등, 구체적인 제도의 언어에 우선할 만큼 힘이 세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노력으로,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이나 계약서에 명시된 추가근무수당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열정으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도전으로 각각 개인에게 강요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결국 모든 언어에 앞서는 헌법인 셈이다. 일과 삶이분리되지 않을 만큼의 ‘노오력‘, ‘도오-전‘, ‘여일정‘, 이처럼 현장의개인은 단어가 가진 모호함의 크기만큼 소모되고 만다.
‘회사의 비전‘과 ‘회사의 인재상‘에서 각각 다르게 표시된 ‘고객‘과
‘도전‘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욕망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누군가는 고객만족을 위한 도전이 이 회사들에게 오늘의 영광을 선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훈들이 이

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에 더해 개인의 소모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나쁜 훈‘이다.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없기에 굳이 나름의해석이 필요하게 되고, 자신을 억지로 그에 끼워 맞추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굴복하고 나서야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어 그에복무할 수 있다. 내가 이 회사의 구성원이라면 그 정문을 지날 때마다몹시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B급 감성을 드러내는 ‘이상한 훈‘들도 있다. 어느 회사원은 온라인게시판에 "건설회사를 다니는 직딩입니다. 어느 날 사장님께서 정말너무 멋진 사훈이 생각났다며 액자에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두신 사훈입니다." 하는 글을 올리고는 "죽을 만큼 일해도 안 죽는다"는 사훈의사진을 첨부했다. SNS에도 사무실의 사훈을 찍어 올리는 사례가 많다.
頭登可하기실음 관두등가) 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열심히 일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쉬지 말고 일하자", 
"손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잉이나 반전의서사를 애초에 의도하고 만들어진 것이어서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웃어야 할지 얼굴을 찡그려야 할지 고민하게만들고 곱씹어 볼수록 회사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별다른 의미도 남지않는다. 
모욕적이지는 않지만 괜한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권장하기는 어렵다.

송파구에서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1.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2. 업무는 수직적, 인간적인 관계는 수평적
3. 간단한 보고는 상급자가 하급자 자리로 가서 이야기 나눈다.
4.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5.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6.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7. 팩트에 기반한 보고만 한다.
8. 일을 시작할 때는 ‘목적, 기간, 예상 산출물, 예상 결과, 공유 대상자‘를생각한다.
9. 나는 일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10.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

11. 솔루션 없는 불만만 갖게 되는 때가 회사를 떠날 때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회사다. 위의사훈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라는 이름으로 2016년 즈음에 널리 알려졌다.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을 방문자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여기에 재미와 공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것을순식간에 확산시켰고, 실제로 송파구에 본사를 둔 우아한형제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별도의 비용 없이 홍보하는효과를 누렸다.

이전까지 사훈이라는 것은 대개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고 일상어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위의 각 항목에 활용된 ‘아니다‘, ‘적‘, ‘잡담‘, ‘망한다‘, ‘눈치‘, ‘농담‘, ‘팩트‘, ‘생각한다‘, ‘떠날 때다‘라는 단어들은 회사의 지침으로 활용되기에는 누가보아도 다소 가벼운 것이다. 
원래 사훈이라고 하면 모호하거나 고루하고, 구체적이라고 해도 곧 눈을 돌리게 만들 만큼 개인에게 부담을지우는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우아한형제들은 마치 대학교 동아리실이나 고등학교 교실의 급훈으로 어울릴 법한 문장들을, 
심지어 "업무는 수직적, 인간적인 관계는 수평적"이라는 식으로 어미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종결하는 방식으로 사훈을 만들었다.

2018년 8월 첫째 주,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에세이 부문) 순위
1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위: 곰돌이 푸 :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3위 : 모든 순간이 너였다
4위 : 언어의 온도
5위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6위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7위 : 곰돌이 푸 :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8위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9위 : 한때 소중했던 것들
10위 :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나는 저것이 누군가의 책꽂이에 차례대로 꽂혀 있는 상상을 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과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라는 책은, 회사원의 책꽂이에 있을 것만 같다. 직장 상사나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면서도 ‘이래도 괜찮을까‘ 하고 우울한 그가, 이것저것 업무와 관계된 서류들이 가

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가 없다. ‘분노‘가 될 수도 있고
‘더 깊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
우리는 책꽂이에 자신의 욕망을 전시해 왔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책꽂이를 살피는 일은 스스로가 내재화한 훈의 실체와 마주하는 일이 된다. 그에더해, 타인의 공간에 아무렇게나 놓인 한 권의 책은 현재의 그가 당신에게, 혹은 자신에게 가장 건네고 싶은 절박한 말과도 같다. 누군가가당신의 눈길이 닿는 곳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든가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놓아두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겠다.

7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བ༈

사람은 저마다의 훈을 만들고 살아가는 존재다. 좌우명이라든가하는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멋진 문구를 곁에 두면, 괜히 든든한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을 구원해 줄 것처럼, 무엇보다도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훈이 있었다. 이것은 야구선수 이승엽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오랜 팬이고, 언젠가 그가 한 시즌에 56개의 홈런을 치고 인터뷰에서 말한 이 좌우명이 정말로 멋져서 한동안 나의것으로 삼았다. 200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었으니까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훈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어떤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마다 ‘진정한 노력‘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하게 되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어느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결국 그 훈을버렸다. 아마 대학원생이던 때였을 것이다. 별다른 실패를 한 것은 아

불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80퍼센트가 넘는 금액을 수수료로 떼어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여행사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자를 바꿔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나오면서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어쩌면 내가 선택한 훈이 되겠다. 전화를 받고 있는 여행사 직원도 나를 닮은 을이고 그들에게 분노한다고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몇만 원을 더 돌려받는다고 해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내가 약간의 구제를 받는 것일 뿐,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 분노는 잘 간직해 두었다가 모두와 함께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꺼내기로 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이 사회가 아주 조금은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티켓을 양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누군가를 대신 여행 보내줄 수 있다면 그도 나도 1만 8천 원의 금액보다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가능하다면서 ‘1) 대한민국 남성이면서, 2) 이름이 김민섭이고, 3) 서로의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의 스펠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을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을 알았지만 ‘김민섭‘이라는 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찾아보겠다고 답하고는 페이스북에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 하는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저마다 자신의 친구 김민

그 이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만의 훈을 하나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다.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그 끈은 아주얇고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것을 잡아당기면서 ‘저는 여기에 있어요‘ 하고 말하면 그 줄이 팽팽해지고 비로소 자신과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 잘되면 좋겠다는 저마다의 마음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잘됨이 나의 잘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계속 찾아보고 싶다.
원래 마지막 글에서는 ‘욕망으로 남은 말들‘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여러 개인의 훈들을 모아보려고 했다. 언젠가 ‘막말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두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2016년 7월, 나향욱)는 문제의 발언이 나왔을 때였다. 사실 이러한 막말은 언제나 있어왔다. 우리는 그때마다 다 함께분노하고 그를 비난하고 가능하면 강력한 처벌을 바랐지만, 시간이흐르면 곧 언제, 누가, 어디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그 막말을 했는지를잊는다. 그래서 나는 IT업계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우리 현대사의 막말을 모으는 온라인 페이지를 개설해 보면 어떨지를 물었다. 그러한말들을 집단지성의 힘으로 실시간 기록해 내는 것이다. 친구는 재미있겠다고 했지만,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우리 둘 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도 "국민은 ‘레밍‘이다"(2017년 7월, 김학철),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거냐"(2017년 7월 이언주), ‘서울 살던 사람이 이혼하거나 직장을 잃으면 부천으로 가고거기서 더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로 옮긴다"(2018년 6월,
정태옥) 등등, 많은 욕망의 말들이 사회를 뒤덮었다.
우리는 그 말들을 막말로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이 시대가 가진 욕망의 말들이고 이 시대가 가진 훈의 품격이된다. 특히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오래 기억해야 한다. 액체화된 몸으로 타인을 좀비로 전염시키고 자신의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학교, 회사, 공공기관뿐 아니라 어디에나있다. 우리는 그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훈을 만들어야 한다.
‘나‘보다는 ‘너‘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훈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욕망을 따라 유동하는 개인의 몸을 구원해 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나의 훈을 보낸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욕망을 마주하다
<대리사회>가 우리 사회의 몸의 기록이었다면<훈의 시대>는 그 언어의 기록이다!

어느 시대이든 그 구성원들을 규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언어, ‘훈‘이 있다. 우리가 이미 소멸되었을 것으로 믿는 순결, 정숙, 착한 딸, 근면,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등의 언어들이 학교에 회사에 개인이 존재하는 모든 일상의 공간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한시대가 가진 적나라한 욕망이다. 
이 훈들은 물리적 실체를 가진 상징물이라기보다는 마치액체처럼 개인에게 가서 닿는다. 때로는 거대한 물질이 되어, 때로는 잘게 분사되어 그 구성원들을 그 욕망에 젖은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이 책은 이 시대의 개인들에게 보내는 작은 제안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은 누군가를구속시키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 주변의 언어를 전복시킬 때 비로소 찾아온다.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고, 우리를 규정하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할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대리인간‘이 되지 않고 이 ‘훈의 시대‘를 살아가게 할 것으로 믿는다.

김민섭 작가의 글과 작업은 늘 흥미롭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의 사정에 밝고, 그곳을 지배하는 배후의 힘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가끔은 그 힘을 이용해 재미있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이번에 그가 찾아간 현장은 학교와 회사와 아파트 단지.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에 탄탄하게 발을 디딘 사유를 따뜻하고 치우치지 않은 통찰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 訓들의기괴함을 폭로하면서 우리 자신의 訓을 새로 쓰자고 제안한다.
장강명_ <당선, 합격, 계급>, <한국이 싫어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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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이 커다래졌다. ‘친구들한테 아빠가 만들어줬다고 자랑해야지‘라며 맑은 입으로 바쁘게 종알거린다.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 조명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며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들여다보고 의자에 앉아보고 책상을 만져보고 서랍을 열어보고 하며 소꿉놀이라도 되는 듯 하나씩 점검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하루의 힘든 노고가 스르르 사라진다. 내가 만든 것 중 제일 큰 작품이었다.

언젠가 이 화장대보다 비싼 제품이나 고급가구를 더 좋아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아빠의 정성이 들어간 물건이 추억으로 남겠지 생각하면 애틋하다. 

인생에 기억할 만한 좋은 추억은 그리 자주 오지 않으며, 그런 날은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계절의 끝을 맞이할 즈음에 문득 깨닫는다. 
그런 봄날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서둘러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짧지만 좋은 날,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되는 날,
당신에게도 오늘이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나무를 만진다는 건
나를 위로한다는 것

"나무는 땅이 하늘에 쓴 시이다."
칼릴 지브란(레바논의 철학자, 시인)

"숲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는 힘과
오래된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묘한 공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보물섬>의 작가)

"우리의 모든 지혜는 나무에 저장되어 있다."
산토시 칼와르(네팔의 작가)

이곳에선 오직 나만 위할 것
반드시 쉬었다 갈 것
많이 행복할 것

"도심 속 작은 귀퉁이에서 즐거움의 세계가 열린다!"
취미와 예술이 만나는 작은 목공소가 여기에 있다. 집에서 목공을 하기 위해
이사까지 감행한 저자는 거실 베란다에 목공소를 차려놓고 토요일마다 놀러간다. 
운과 요행은 없는 세계, 노력과 실력만 있는 세계에서 정확하게 나무를 자르고 이어붙이며 몰입의 기쁨을 누린다. 

이 책은 무료하고 밋밋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주위를 둘러보라. 작은 귀퉁이에 자리를 마련하라.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이든 시작하라. 즐거움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황보름(소설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나무를 닮은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
이 세계를 이루는 재료 중 가장 아름다운 재료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무를 고르겠다. 저자의 글에는 나무를 닮은 정직함과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나무의 결에 발맞추어 자연스러운 창작을 이어가는 목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무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연결되는 다정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임이랑(에세이스트, 《아무튼,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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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아버지는 경남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대처승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동쪽에 별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을 ‘동성‘으로 지었다. 아버지의 등에는 녹두알만 한 검은 점들이 북두칠성 모양으로자리해 있는데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내려앉은 것이라 받아들였다.
해마다 한 질씩 책을 사들였던 손 여사 덕분에 문고판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나는 아버지의 등에 수놓인 검은점들을 비상하게 여겼고, 언젠가 아버지가 세상을 깜짝놀라게 할 사건을 벌일 거라고 상상하며 지냈다.
아버지의 인생을 통틀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은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세계 안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놀라운 사람이었다. 속이 투명한 아버지는 자신의 희로애락

을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아버지의그 맑은 감정들이 좋았다.
손 여사가 나를 낳기 전 배를 어딘가에 부딪힌 적이있었다. 막달이었다. 다행히 나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였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나를 아프게 한 것에 아버지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내가 혹여 입술이라도 파래지면 아버지의낯빛은 그보다 더 파랗게 질렸다. 어떤 상실을 걱정하고두려워하는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걱정 덕분인지 나는 무탈하게 잘 자랐고, 지금은 지나치게 건강하다 싶을 정도로 풍채를 키워 살고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상실을 두려워하며 나를 살폈던것처럼, 그럴까 봐 겁먹고 울었던 것처럼,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오래 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를 위해 어떤 게 편안한 삶인가 내내 고민하고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삶 너머를 상상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바보처럼 울고만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돌파해나갔던 사람은 아니었다. 경제 부흥기에 발 빠르게 움직여 대단한재산 축적을 이루지도 못했다. 노년의 삶이 어찌 될 것인

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겠지만 이렇게 일찍 은퇴해 집으로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죽음 또한 상상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은 "죽고 싶다"였지만, 치료가 잘 진행되었다고 전해줄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죽을 뻔했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나도 아버지만큼 겁을 먹고 산다.
나는 아버지 병구완을 하기 전까지는 바쁜 현재를 사느라아버지의 노년은 물론 나의 노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적금 통장을 유지하는 정도로 노인이 되어장애가 생길 나의 미래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을것인지도,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고민이 없었다. 그랬던 나는 아버지의 삶을 돌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그보다 더 자주 미래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존엄하게 사는 방법, 내 스스로 삶을 온전히지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숙고하게 된 것이다. 존엄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이라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학으로 번역되는 타나톨로지 Thanatology는 죽음이내제된 생명학으로 정의된다. 타나톨로지를 통한 ‘죽음교육‘은 존엄한 죽음보다 존엄한 삶을 목적으로 한다. 어떻

게 후회와 절망을 느끼지 않고 삶을 마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비하게 한다. 196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첫 강의가 시작된 이래 많은 연구자들이 죽음학 연구에합류하고 있다. 2021년 우리나라의 배재대학교에서도 교육과정으로 채택하여 정식 학문으로서의 죽음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원고를 쓰면서 내가 붙였던 첫 제목은 ‘나의 아버지는 병원에 산다‘였다. 2020년 12월 대학병원 응급실에들어간 아버지는 대학병원과 재활전문 요양병원을 거쳐현재는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그런 아버지의 실존적 상태를 드러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제목을 달아놓은 채 원고를 써내려갔다.
원고는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전히 병원에,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2024년 3월 11일 낮에 요양원 담당 간호사와 통화했을 때, 아버지의 몸무게가 그새 2킬로그램이 빠져 44킬로그램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호사는 아버지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노인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기력을 잃고 계시다고 말이다.
"제가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캔으로 식사하실

때 영양제 같은 것을 넣어드릴 수는 없을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프로틴 파우더가 있으니 그걸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것들이 드라마틱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몸에 보충이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간호사가 말한 제품을 주문했다.
단백질 파우더를 주문해 보냈다는 소리를 들은 지인은 이것도 "이제 곧 끝날 일"이라며 내게 "그간 고생했다"
고 말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도 과거형으로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 병구완을 하면서 "나이 드셨으면 어서 가셔야 젊은 사람이 살지. 젊은 사람 발목을 너무 오래잡고 계신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내가 사는 것인 양 여기는 말들이 가혹하게 다가왔다. 도착하지도 않은 죽음을 당겨서실행하고 있는 그들의 말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존엄한‘이 붙은 죽음은 현실의 여러 다른 죽음들을 존엄하지 못한 것들로 치부시키기도 하니까. 또, 존엄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존엄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생을 연명하고 싶은

욕망을 ‘존엄‘이란 이름으로 내리눌러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지인이 독하고 모질어서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님을 안다. 어느덧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인구의 20퍼센트가 노인이 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병든 노인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식상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노인 돌봄 현실에 봉착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이며 관습적인 방법으로 공감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공감은 이제 정말 괜찮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 고통에서 놓아주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가단정할 수 있는 범주의 선택이 아니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면 여전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마주하며, 당신의 생존을 생생히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생이 얼마나 남았든, 내가 할 수 있는일들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부탁하고 싶다. 나를 "좌파 고양이"라고 부르는 우파 손 여사에게, 이제는속수무책 멀어진 자매들에게, "우파 고양이인 아버지를부탁하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간의 속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지만, 다름 이전에 우리가 공유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와 감정이 있음을잊은 건 아닌지 환기시키고 싶었다.

또한, 나의 아버지와 같은 위 세대를 더 젊은 세대에게 부탁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 돌봄 현장에서의노인 혐오와 인간 존엄이 배제된 구조를 보다 현실적인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보길 바라는 간절함을공유하고 싶었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 세대의 보편적이며 구체적인 기록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록서사‘가 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러한기록에 가깝기를 바라면서 나는 나의 우파 고양이, 아버지를 부탁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나의 헤밍웨이, 나의 윌리엄 포크너, 나의 마루야마 겐지,
나의 로맹 가리, 나의 존 쿳시... 나의 아버지 동성 씨의말을 끝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는 니를 사랑한데이."

감사의 말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많은 분들의 에너지가 실렸다. 이 책에 멋진 추천사를 써주신 김선민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원장님의 문장이 보태지니 내 글이 한결 나아 보였다.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정과 애정을 담뿍 담은 추천사를 보내주신 홍용호 감독님과 소설가 우다영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세분의 응원 덕에 세상을 뚫고 나갈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열번도 넘게 원고를 갈아엎느라 긴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출판사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홀로 밤새우지 않도록 곁을 지켜준 편육스님과 고양이 바라에게 내 뜨거운 심장의 언어로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오래오래 내 왼쪽과 오른쪽을채워주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소원해진 나의 자매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싶다. 소식이 닿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나는 언니들과 막내를 내내 그리워했는데, 제대로 그런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 앞에서는 그런 마음들이 말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먼 곳에서 살든, 가까운 곳에서 살든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빈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계실 독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안녕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빈다. 온 우주의 기운이 가까이 모여 병상에서 번쩍 일어날 우리의 가족들을 간절하게 상상하며 한없이 부족한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늙고 병든 가족 구성원을 부탁하는 서투른 마음.
삶과 돌봄, 사랑과 좌절에 관한우리 시대의 아주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기록.

저자의 글은 영화 장면처럼 선명했다. 좌파 딸과 우파 부모, 서로 다른 남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읽는 내내 풉 하고 웃기도 했고, 세밀한날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아! 저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구나!‘ 하며안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몰입해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놀란 것은 내가 밥벌이로 했던 일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저자의 경험은 한국 의료와 복지의 문제를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짚어냈다. 묘사의 해상도가 너무 높아 아프기도 했지만,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김선민, 전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자기 자신마저 이토록 쉽게 비웃어버리는 지금 이 세상을 향해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라고 속삭이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이 책은 이해타산에 따른 사회적 피로와 혐오주의가 만연한 시대의 조롱 속에서 이제는의미가 바랜 ‘연민‘이라는 오래된 힘을 다그치지 않고, 호소하지 않고, 제스스로 부드럽게 행사한다. 고통과 수치로 가득한 삶을 울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단 한 사람이 어느새 우리를 이해시킨다. 결국 사람 곁에는 쿨하게 비웃는 사람이 아니라 뜨겁게 펑펑 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작가

아픈 아버지를 돌보면서 겪는 가족들의 따뜻한 이야기. 에세이가 빠지기 쉬운가식이나 위선 없이 작가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글을 만나 반갑다.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이상한, 우리네 가족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힘이 있다.
-홍용호, 변호사, <폭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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