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아버지는 경남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대처승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동쪽에 별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을 ‘동성‘으로 지었다. 아버지의 등에는 녹두알만 한 검은 점들이 북두칠성 모양으로자리해 있는데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내려앉은 것이라 받아들였다.
해마다 한 질씩 책을 사들였던 손 여사 덕분에 문고판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나는 아버지의 등에 수놓인 검은점들을 비상하게 여겼고, 언젠가 아버지가 세상을 깜짝놀라게 할 사건을 벌일 거라고 상상하며 지냈다.
아버지의 인생을 통틀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은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세계 안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놀라운 사람이었다. 속이 투명한 아버지는 자신의 희로애락

을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아버지의그 맑은 감정들이 좋았다.
손 여사가 나를 낳기 전 배를 어딘가에 부딪힌 적이있었다. 막달이었다. 다행히 나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였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나를 아프게 한 것에 아버지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내가 혹여 입술이라도 파래지면 아버지의낯빛은 그보다 더 파랗게 질렸다. 어떤 상실을 걱정하고두려워하는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걱정 덕분인지 나는 무탈하게 잘 자랐고, 지금은 지나치게 건강하다 싶을 정도로 풍채를 키워 살고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상실을 두려워하며 나를 살폈던것처럼, 그럴까 봐 겁먹고 울었던 것처럼,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오래 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를 위해 어떤 게 편안한 삶인가 내내 고민하고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삶 너머를 상상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바보처럼 울고만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돌파해나갔던 사람은 아니었다. 경제 부흥기에 발 빠르게 움직여 대단한재산 축적을 이루지도 못했다. 노년의 삶이 어찌 될 것인

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겠지만 이렇게 일찍 은퇴해 집으로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죽음 또한 상상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은 "죽고 싶다"였지만, 치료가 잘 진행되었다고 전해줄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죽을 뻔했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나도 아버지만큼 겁을 먹고 산다.
나는 아버지 병구완을 하기 전까지는 바쁜 현재를 사느라아버지의 노년은 물론 나의 노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적금 통장을 유지하는 정도로 노인이 되어장애가 생길 나의 미래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을것인지도,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고민이 없었다. 그랬던 나는 아버지의 삶을 돌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그보다 더 자주 미래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존엄하게 사는 방법, 내 스스로 삶을 온전히지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숙고하게 된 것이다. 존엄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이라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학으로 번역되는 타나톨로지 Thanatology는 죽음이내제된 생명학으로 정의된다. 타나톨로지를 통한 ‘죽음교육‘은 존엄한 죽음보다 존엄한 삶을 목적으로 한다. 어떻

게 후회와 절망을 느끼지 않고 삶을 마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비하게 한다. 196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첫 강의가 시작된 이래 많은 연구자들이 죽음학 연구에합류하고 있다. 2021년 우리나라의 배재대학교에서도 교육과정으로 채택하여 정식 학문으로서의 죽음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원고를 쓰면서 내가 붙였던 첫 제목은 ‘나의 아버지는 병원에 산다‘였다. 2020년 12월 대학병원 응급실에들어간 아버지는 대학병원과 재활전문 요양병원을 거쳐현재는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그런 아버지의 실존적 상태를 드러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제목을 달아놓은 채 원고를 써내려갔다.
원고는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전히 병원에,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2024년 3월 11일 낮에 요양원 담당 간호사와 통화했을 때, 아버지의 몸무게가 그새 2킬로그램이 빠져 44킬로그램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호사는 아버지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노인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기력을 잃고 계시다고 말이다.
"제가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캔으로 식사하실

때 영양제 같은 것을 넣어드릴 수는 없을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프로틴 파우더가 있으니 그걸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것들이 드라마틱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몸에 보충이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간호사가 말한 제품을 주문했다.
단백질 파우더를 주문해 보냈다는 소리를 들은 지인은 이것도 "이제 곧 끝날 일"이라며 내게 "그간 고생했다"
고 말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도 과거형으로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 병구완을 하면서 "나이 드셨으면 어서 가셔야 젊은 사람이 살지. 젊은 사람 발목을 너무 오래잡고 계신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내가 사는 것인 양 여기는 말들이 가혹하게 다가왔다. 도착하지도 않은 죽음을 당겨서실행하고 있는 그들의 말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존엄한‘이 붙은 죽음은 현실의 여러 다른 죽음들을 존엄하지 못한 것들로 치부시키기도 하니까. 또, 존엄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존엄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생을 연명하고 싶은

욕망을 ‘존엄‘이란 이름으로 내리눌러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지인이 독하고 모질어서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님을 안다. 어느덧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인구의 20퍼센트가 노인이 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병든 노인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식상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노인 돌봄 현실에 봉착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이며 관습적인 방법으로 공감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공감은 이제 정말 괜찮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 고통에서 놓아주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가단정할 수 있는 범주의 선택이 아니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면 여전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마주하며, 당신의 생존을 생생히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생이 얼마나 남았든, 내가 할 수 있는일들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부탁하고 싶다. 나를 "좌파 고양이"라고 부르는 우파 손 여사에게, 이제는속수무책 멀어진 자매들에게, "우파 고양이인 아버지를부탁하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간의 속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지만, 다름 이전에 우리가 공유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와 감정이 있음을잊은 건 아닌지 환기시키고 싶었다.

또한, 나의 아버지와 같은 위 세대를 더 젊은 세대에게 부탁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 돌봄 현장에서의노인 혐오와 인간 존엄이 배제된 구조를 보다 현실적인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보길 바라는 간절함을공유하고 싶었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 세대의 보편적이며 구체적인 기록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록서사‘가 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러한기록에 가깝기를 바라면서 나는 나의 우파 고양이, 아버지를 부탁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나의 헤밍웨이, 나의 윌리엄 포크너, 나의 마루야마 겐지,
나의 로맹 가리, 나의 존 쿳시... 나의 아버지 동성 씨의말을 끝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는 니를 사랑한데이."

감사의 말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많은 분들의 에너지가 실렸다. 이 책에 멋진 추천사를 써주신 김선민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원장님의 문장이 보태지니 내 글이 한결 나아 보였다.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정과 애정을 담뿍 담은 추천사를 보내주신 홍용호 감독님과 소설가 우다영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세분의 응원 덕에 세상을 뚫고 나갈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열번도 넘게 원고를 갈아엎느라 긴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출판사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홀로 밤새우지 않도록 곁을 지켜준 편육스님과 고양이 바라에게 내 뜨거운 심장의 언어로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오래오래 내 왼쪽과 오른쪽을채워주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소원해진 나의 자매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싶다. 소식이 닿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나는 언니들과 막내를 내내 그리워했는데, 제대로 그런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 앞에서는 그런 마음들이 말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먼 곳에서 살든, 가까운 곳에서 살든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빈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계실 독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안녕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빈다. 온 우주의 기운이 가까이 모여 병상에서 번쩍 일어날 우리의 가족들을 간절하게 상상하며 한없이 부족한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늙고 병든 가족 구성원을 부탁하는 서투른 마음.
삶과 돌봄, 사랑과 좌절에 관한우리 시대의 아주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기록.

저자의 글은 영화 장면처럼 선명했다. 좌파 딸과 우파 부모, 서로 다른 남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읽는 내내 풉 하고 웃기도 했고, 세밀한날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아! 저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구나!‘ 하며안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몰입해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놀란 것은 내가 밥벌이로 했던 일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저자의 경험은 한국 의료와 복지의 문제를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짚어냈다. 묘사의 해상도가 너무 높아 아프기도 했지만,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김선민, 전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자기 자신마저 이토록 쉽게 비웃어버리는 지금 이 세상을 향해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라고 속삭이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이 책은 이해타산에 따른 사회적 피로와 혐오주의가 만연한 시대의 조롱 속에서 이제는의미가 바랜 ‘연민‘이라는 오래된 힘을 다그치지 않고, 호소하지 않고, 제스스로 부드럽게 행사한다. 고통과 수치로 가득한 삶을 울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단 한 사람이 어느새 우리를 이해시킨다. 결국 사람 곁에는 쿨하게 비웃는 사람이 아니라 뜨겁게 펑펑 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작가

아픈 아버지를 돌보면서 겪는 가족들의 따뜻한 이야기. 에세이가 빠지기 쉬운가식이나 위선 없이 작가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글을 만나 반갑다.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이상한, 우리네 가족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힘이 있다.
-홍용호, 변호사, <폭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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