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비평은 무엇이 좋은 SF인지에 대한 아직 합의되지 않은, 어쩌면 끝까지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유동적 기준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그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과 가치판단의 틀을 제공한다. T창작계에는 한 사람이 창작자이자 평론가로서 양쪽 모두성공할 수는 없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좋은 작가인 동시에 좋은 평론가다.
한국SF소설계에서는 듀나와 정소연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듀나 작가는 흥미로운 비평집을 여러 권 출간했지만 나는연재 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을 가장 좋아한다. 이연재는 오 년간 이어지다가 작년에 마무리되었고 아직 책으
번역되지 않은 외서를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첫 논피선을 쓰는 과정에서도 언급했던 캐스린 앨런(Kathryn Allam)의「SF에서의 장애가 좋은 본보기다. ‘치료로서의 기술 표현(representations of technology is carre)‘이라는 의미심장한 부제에 맞게 여기 실린 비평들은 대개 SF 작품에 등장하는 발전된 기술이 장애를 오로지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비판적 관점을 취하며,
SF 작품에 등장하는 장애 표현이 지니는 한계와 가능성을 두루 비춘다.
나는 장애와 기술에 관한 논픽션을 쓰면서 이 책을 참조했지만 실은 논픽션으로 정리하지 못한 질문이 더 많다. 소설에서 소수자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SF가 장애 정체성에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고실험이될 수 있을지, 불평등을 쉽게 외면하거나 지우지 않고 어떻게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렇게 얻은 질문들은 다음 소설을 쓰기 위한 추동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설득력 있는 비평은 이미 쓰인 작품에 대한 관점을 바꿀뿐만 아니라 앞으로 쓰여질 작품에 대한 관점 또한 바꾼다.
한 장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좋은 비평이 필요하다. 국내의 많은 SF 작가가 한국 SF 비평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아쉽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무엇이 가치 있는 소설인가?‘ 묻는 질문에 단일한 답만 존재하는 문학장은 매우 지루하고 따분
그는 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살아오며 만난 싸우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유토피아 자체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불가능에 맞서는 태도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또 다른 글을읽었다. 그 사람은 이 소설 속 세계에 가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 그곳이 그립다고 말했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우리는 왜 가보지도 못한 세계를 그리워할까.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사실은 유토피아가 없다는 것을 안다. 차가운 우주는 유토피아를 허용하지 않는다.
냉혹한 물리법칙도 인간의 진부한 규칙들도 이 우주에 유토피아를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그곳은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영원히 그리운 세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차가운 우주의 유토피아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상상한다. 어쩌면 그모순에 맞서며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상상하는 것이, 소설의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
십대 ‘과학소녀‘ 시절 나의 바이블은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었다. 자연과 우주의 경이를 말하는 수많은 책이 있는데 왜 하필 제목도 험상궂은 이 책을 바이블 삼았냐고 물으면 그때의 내가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주제에 매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아득히 먼 블랙홀의 존재도 주기율표의 규칙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합리성에 끌렸다. 칼 세이건은 책에서 당대 미국을 휩쓸었던 반과학주의와 반지성주의, 유사 과학의 유행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관대하고 무비판적일 때, 희망과 사실을 혼동할 때, 우리는 유사 과학과 미신으로 미
끄러져 들어간다. 과학 논문에서는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제시하려면 반드시 오차 막대 (error bar)를 함께 표시해야 한다. 이것은 어떠한 지식도 완벽하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상기시켜준다.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중에서과학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며 오류를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만, 유사 과학은 반증과 반례를 거부하며 스스로 세운 믿음을 강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과학적 방법이야말로 과학적 발견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라는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온갖 미신과 루머, 음모론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한편으로 과학이 아직 이해하지못한 영역이 많고 잘못된 행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문장은 이렇다.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완벽한 도구라고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일 뿐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유행하던외계인 납치설이나 심령술사, 악령 등의 미신을 주로 다루기에 한국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그때 나에게는 이 책이
이제 사람들은 과학으로부터 유래한 풍요와 안전만큼 위협과 불평등이 존재함을, 과학이 얼마든지 자본 및 권력과 영합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 영역임을 굳이 길게 설명하지않아도 안다.
과학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도 기여했지만 더 나쁘게 만드는 일에도 기여해왔다. 때로 과학은 무언가를 연구함으로써가 아니라 연구하지 않음으로써, 즉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대상을 배제한다.
과학사회학자 데이비드 헤스는 이처럼 연구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조건 때문에 외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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