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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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이 펜시 고등학교를 뛰쳐나와 뉴욕 시가를 배회하던 이틀째 밤, 몰래 집으로 돌아가 만난 여동생 피비는 '오빠는 모든것이 다 싫다고 말하지만. 좋아하는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봐.' 라고 다그친다. 홀든은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 '호밀밭의 파수꾼' 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몇천명의 아이들이 있을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자기 밖에 없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서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그런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이 이와 같은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그역시 방황을 할때에 누군가 자길 잡아 주었음 하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 아닐까. 사회와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소년의 민감한 감수성이 때로는 아름답게 , 때로는 서정적으로 펼쳐져 있는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불결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그리고 있는듯하다. 현대사회의 경박감과 저속함을 상징하는듯 수많은 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읽은 책과는 사뭇다른 새로운 느낌을 나한테 전달하였다.

거짓으로 가득찬 세계.. 어쩔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이 환경속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은 모든 청소년이 느끼고 있을 법하다.. 어리석고 경박한 어른들을 보노라면 자신내부에서 꿈틀거리던 본연의 본성도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영영 사라져 버린것이 아닌가...생각이 든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누군가가 내 손길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붙잡아 주길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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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유예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36
오영수 외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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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 일컫는 6·25가 있은지도 언 반세기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 아픔은 수십년의 세월 속에 깎이고 묻힐만도 하건만, 아직까지도 우리네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전쟁을 조금도 겪어보지 못한 지금 청소년들이라고 해서그들의 아픔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번 TV를 통해 전국으로 흘러 나갔던 3차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며 그 누가 함께 눈물 짓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전쟁과 분단의 상처는 미약하게 나마 우리 가슴에도 아로 새겨져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진저리 난다. 곧 죽음이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생명을 담보치 아니하고는 도저히 겪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접하는 전쟁 영화나 소설 속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용감한 이들이 등장하곤 한다. 민족과 겨레 위해 의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명을 고결히 바치는 그들이다. '유예'의 주인공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배경하여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그 당시 전쟁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도 의롭고 담담한 주인공의 태도 앞에 절로 고개 숙이게 한다.

자신 역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동지의 죽음을 단순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분명 몇 날 며칠 '삶'을 위해 힘겹고 위험한 투쟁을 해왔건만, 그동안의 탈출이 무색하게도 그의 선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서도 분명 비굴하게나마 살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는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6·25 당시 '유예'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 비단 한 둘이었을까? 전국 곳곳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도 진정 죽음이 두려웠겠고 삶의 욕구가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였으리라. 우리도 그 당시 그들을 떠올리며 한 번 쯤 삶의 '유예'에 대해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게 1시간의 삶의 기회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유예'가 보여준 짧은 모습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분명한 명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먼 훗날 내가 죽음 앞에 놓여 있을 때 나의 '유예' 역시 그처럼 아름답고 명분 있는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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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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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맨 마지막의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라는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앞으로의 세 사람의 삶도 눈발을 날리는 거리를 걷듯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 한 곳이 계속 불편했다. 그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짧은 소설에서 이토록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가시고기나 등대지기 등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슬펐다.

아마도 소설 속의 상황이 지나치게 필연적으로 꾸며졌다거나, 등장인물이 위대한 사람이나 공주처럼 과장되었다거나 하지 않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할만한 이야기여서 더 친근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나 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한창 산업화의 물결이 급속히 진행된 1970년대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정씨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인생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국어 시간에 배운 소설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독서는 많은 것을 살찌운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평생 경험하지 못 할 수도 있을 삶을 여러 폭으로 느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아량도 넓어진 만큼, 벌써 내 생각의 두께도 저만큼 두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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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 상 - 1991년 제3회 이산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완서 소설전집 13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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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고 6·25가 발발하면서 이 소설은 개성의 인삼을 강화에 보존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 역사를 양반의 시각이나 그들의 모습이 아닌 우리 평민들의 역사로서 본 것 같았다. 너무나 복잡한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 정말 우리 민족이 어떠한 고통을 겪었고 특히 상민들이 우리 상업의 가느다란 명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 지도 알 것 같다. 일제가 남의 나라를 뻬앗았기 때문에 무작정 나쁘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이 아닐지라도 한 집안의 변천사에 대해 알게 되자 그 시대의 현실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여성이다. 머릿방아씨의 삶에서 여란이와 혜정이의 삶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단지 집안에 아들을 안겨주는 존재로밖에 여겨겨지지 않던 여자의 지위. 이에 비하면 아직도 차별대우가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된다. 여성의 지위 향상에 노력하고 끊임없이 남성만의 지위에 도전했던 용감한 여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망국의 한 속에서도 상품을 개발하려고 애쓰는 개성 상인들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삶을 바친 조상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이 현 위치에 설 수 있었고 세상에 대한민국 한 민족이라는 이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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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의 두얼굴 - 아침새책 38
이갑진 / 아침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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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한 문명 세계이다. 인류는 과거의 자연으로부터의 거의 모든 위협-맹수, 기후 변화, 홍수, 가뭄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폭발적으로 숫자가 증가했다. 또한 지금의 인류가 생활하는 모습은 과거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만큼 편리하고 안락하다.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과학이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이 만드는 도구 역시 발전했다. 원시적인 뗀석기에서부터 간석기, 철기를 거쳐 총, 대포, 폭탄에 이르는 무기들은 인간에게 지구상 그 어느 맹수의 발톱보다도 더 날카로운 발톱을 달아 주었다. 그 결과, 인간은 약하고 느린 사냥의 대상에서 모든 생물이 두려워하는 사냥꾼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기술할 때 '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사람들은 지금도 문명이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변화가 발전인가? 물론 인간 자체로만 볼 때는 발전이다. 수적 증가, 생활의 편리함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틀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문명, 특히 산업 혁명 이후의 문명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많은 현재의 상황이 그것을 보여준다.

먼저 인류의 숫자이다. 세계의 적정 인구는 약 1억 8천만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지구상의 인구는 그 30배가 넘고 있다. 한 종이 과잉 번식할 경우 자연의 질서는 당연히 깨지게 된다. 이렇게 숫자가 증가할 경우 예견되는 인간의 멸망은 제쳐놓더라도 엄청난 수의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과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지구를 속속들이 갉아먹고 있다. 이미 화석 연료는 100년을 넘기기가 힘들고 하루에도 수십 종씩 생물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열대 우림은 다음 세기에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는 인간의 행동들이다. 인간의 에너지 소비량은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많다. 이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태우고 원자로를 돌리며,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숲을 베어내고 화학 비료를 뿌려댄다. 이런 행동들이 지구의 온실 효과, 오염, 산성비, 황폐화 등 끝없는 문제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들의 원동력이 과학이다. 보다 편리하게 살기 위해 발전시킨 과학이 지금에 와서는 서서히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지금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을 뭉개버리면서 벼랑으로 달려가는 거대한 물체에 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생태계 자체가 파멸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말은 미래상 중 어느 미래상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에코토피아의 형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유토피아나 암울한 미래, 최악의 상황인 디스토피아를 향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바꿀 수 없다. 이 많은 문제점들은 결국 과학이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를 얽어매던 과학을 우리를 위해 이용해야 만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이 발생시킨 문제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요컨대,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또 자연계 전체를 위해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야 하며 그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과학이 해야 할 일이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모태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만이 우리가 이 위기를 벗어나 진정한 발전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만큼 인류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이 지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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