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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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맨 마지막의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라는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앞으로의 세 사람의 삶도 눈발을 날리는 거리를 걷듯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 한 곳이 계속 불편했다. 그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짧은 소설에서 이토록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가시고기나 등대지기 등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슬펐다.

아마도 소설 속의 상황이 지나치게 필연적으로 꾸며졌다거나, 등장인물이 위대한 사람이나 공주처럼 과장되었다거나 하지 않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할만한 이야기여서 더 친근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나 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한창 산업화의 물결이 급속히 진행된 1970년대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정씨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인생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국어 시간에 배운 소설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독서는 많은 것을 살찌운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평생 경험하지 못 할 수도 있을 삶을 여러 폭으로 느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아량도 넓어진 만큼, 벌써 내 생각의 두께도 저만큼 두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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