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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가의 살인 -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이야기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자음과모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나 가슴에 홈스 하나쯤은 있는 거예요!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이야기, 셜록 홈스 페스티슈 모음 베이커 가의 살인
요즘, 책을 읽고 ‘나름’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정리해봤자 그 수준입니다, 제 책상 기억하시죠? http://cameraian.blog.me/130102810317 ) 사실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나빠서, 사람얼굴만큼이나 책 내용도 기억 못 한다. 적어놓아도 그 때뿐이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한참 읽도록 “도대체 이 책은 뭐지?”라고 의아해한다. 몇 번이나 읽은 책을 또 읽으면서도 읽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 나 이 반전 기억나.”하기가 부지기수인데.
얼마 안 되게 자신 있게 읽었다고 말하고, 또 내용을 기억하는 책이 바로 셜록 홈스 시리즈다. “누구나 가슴에 홈스 하나쯤은 있는 거예요!” 라는 웹진 판타스틱 메인화면에 떡하니 쓰인 문구처럼, 그러게. 내 가슴 속에도 셜록 홈스가 하나 있어서(왜 이렇게 어색한 표현을 했는지는 이 책 454페이지의 ‘아서 코난 도일의 단어’를 읽으면 알 수 있다) 기억하나 보다.
베이커 가의 살인은 각각의 추리작가들이, 자신의 가슴에 사는 자신만의 홈스‘들’을 그려낸 이야기다.
총 11편의 단편으로 각각의 소재도, 배경도, 이야기의 시기도 다르다. 문체도 다르고, 시점도 다르다. 하지만, 읽는 순간 안다. ‘지금 이들이 모두 셜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은 길리언 린스콧의 ‘홈스를 태운 마차’다. 기묘하게 비틀거나 코믹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가, 마부의 눈으로 본 홈스의 이야기가 무척 신선했다. 반전은 추측이 가능했으나, 반전까지 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런 의미로, 내 구미에 맞았던 작품은 로렌 D. 예슬먼의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과 존 L. 브린의 ‘체셔 치즈 사건’.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은 문장에 위트가 넘친다. ‘사라진 문서의 행방을 찾아라!’라는 추리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의 소설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어서 말할 수가 없다-이 등장한다.
‘체셔 치즈 사건’은 클럽에 간 남자가 어째서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암호문 풀기’ 형식이다. 서두가 ‘홈스스럽기 짝이 없다.’ 그대로 옮겨온다.
pp.321~322
“왓슨, ‘체셔 치즈’라면 자네가 잘 가는 곳이겠지. 미국에서 온 이 손님이 왜 그곳에서 이 같은 처우를 받았는지 자네라면 알지 않겠나?”
홈스에게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라움과 만족과 무력감이 섞인 기분이 되었다. 그는 밤중에 베이커가 하숙을 갑자기 찾아온 의뢰인을 앞에 두고 언제나 하는 방법으로 놀라운 추리를 해 보여 크게 만족시켰다. 미국인 캘빈 브로드벤트 씨는 사흘 전에 영국에 도착했는데 항해 중에 계속 배 멀미에 시달렸고, 또 안정적이던 재정이 최근 실패했으며, 그 위대한 사전 편집자 새뮤얼 존슨 박사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플리트가의 유서 있는 술집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는데, 홈스가 이것들을 모두 맞힌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홈스는 늘 화난 사람처럼 무뚝뚝한 상태로 추리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어느 것은 뒤돌아보면 싱거울 정도로 초보적인 사건이고(손님 코트 주머니에서 보이는 나흘 전 뉴욕 신문이나, 상의 소매가 닳아 있는 것이나, 흥분한 게 분명한 모습으로 있는 것 등) 운 좋게 억측이 들어맞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조끼의 얼룩과 구두에 묻은 톱밥 등). 그리고 지금 홈스는 내가 ‘놀랍군, 홈스’라며 경탄하는 대신에 의뢰인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 공헌하는 기회를 준 것이다. 다행인 것은 지독한 망신을 당하지 않고 끝났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는 순간, 나는 왓슨이 하지 못한 ‘놀랍군, 홈스.’를 대신 말했다. 동시에, 최근 영국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셜록’을 떠올렸다. 21세기의 셜록을 너무나 멋지게 드러낸 그 드라마를 보며, “놀랍군, 홈스!”라고 말했었는데.
아아, 덕분에 홈스에 다시 한 번 빠져버렸다. 바로 인터넷으로 전집을 지르고, 웹진 판타스틱 구영탄 님이 올리신 서평에 덧글로 이야기를 나누다, 나 역시 홈스 패스티쉬, 나만의 홈스를 쓰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홈스가 있다. 그 홈스를 어떻게 탄생시키고, 굴러가게 하느냐는 나의 몫, 올해엔 셜록 홈스에 푹 빠져봐야겠다.
좋았어, ‘나만의 홈스’.
기다려, 곧 써줄게.
꼬리.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번역투가 심하다. 오탈자도 꽤 있다. 후기에 적힌 대로, 번역가님이 투병하시며 하시느라 많이 힘드셨나 보다. 번역투에 멀미가 심한 분들은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셜록홈스 100주년 기념 평론과 셜록사전(?)이 있으니 멀미나도 웬만하면 사라. 이야, 초 레어야. 레어. 절대 후회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