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상대성이론을 추리소설의 트릭으로 만든다면? - 형사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소설이 한 권 있다.

중학교 때, 엄마 손 잡고 서점에 가서 마구잡이로 고른 소설 열댓 권 중 하나-그 중에는 닥터스, 와처스, 히포크라테스의 침묵, 주라기공원 시리즈,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부르는 게 값이 된 고려원 세계SF걸작선 등이 섞여 있었고, 이 책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소설로 쓴 책이었다. 제목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었던 듯도 한데 확실치 않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백 투 더 퓨처’를 너무나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아인슈타인도, 그 유명한 ‘엠씨스퀘어’도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였지만, 타임머신을 개발한 박사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겉모습은 기억했다. 폭탄을 맞은 듯 산발한 백발 미치광이 박사와 아인슈타인에 대한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었을 때, 서점에서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혀 내민 사진’이 붙은 표지의 책을 발견했던 것.

무조건 집었다. 무엇보다, 책이 너무 얇아서 부담이 안 됐다.

하지만 내용은 중학생한테 부담스럽더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닥터스, 와처스, 주라기공원, 몽땅 재미나게 잘 읽었는데, 이 책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재미도 없었기에 던져버렸다. 이 책을 이해한 것은, 장미의 이름과 세계SF걸작선의 진정한 맛을 깨달은 이후였다.

형사 실프는 이 책을 떠올리게 했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소설이니까, 게다가 기상천외한 추리소설-게다가 아주 잘 응용하기까지 했다!-이지만 절대로 추리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는 추리소설이니 그 자체가 상대성이론의 평행우주설을 보여주는-장광설이다. 여기까지만.

특히 압권은 p.310~ 나오는 과학프로그램 ‘천국을 도는 별자리’의 방송과, 그 방송을 보는 형사 실프의 시선이다. 소설의 주제인 상대성이론을 ‘어떻게’ 추리소설에 대입시켰는가에 대해 설명하며, 각각의 캐릭터의 세계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며 앞으로의 반전까지 암시한다. 도저히 이 소설 못 읽겠다! 싶은 사람은 이 부분과, 반전(p.367~)만 찾아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랄까-일부러 페이지 적었다. 정말로 나가떨어지는 사람들 있을지도 몰라.

문학상 많이 받은 책답게 문장이 참으로 유려하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 단어가 단어를 꾸며주는 황홀한 문장들은 대학 이후로 거의 읽지 않았다, 멀미가 나서. 다른 분들의 감수성은 나보다 훨씬 훌륭해서 쉽게 봤으려나, 궁금하더라. 하지만 200페이지의 고비를 넘겨, 형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술술 읽힌다. 아주 재미있어진다.




그러니 왠만하면 끝까지 읽자. 사자. 어쨌든, 모던클라식 아닌가. 오랜만에 공부한다고 생각하자고,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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