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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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연애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사랑 이야기는 과연 어떨지, 누구나 다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 같다.
호기심이 기대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처음엔 분명 흥미롭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해지면 어느 순간 원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나도 모르게 이 책을 기대하고 있었다.

피카레스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인물들이 열심히 작품 내에서 다른 인물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넓혀가는 식이다.
미유키를 두고 모모미와 바람폈던 고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미유키와 후에 만나게 될 히다, 미즈키, 쓰키무라, 아키나, 마호가 등장하며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총 4쌍의 커플들 이야기다.
배경은 스키장이고 하얀 눈밭 위에서 얽히고 섥히며 저마다 연애를 하는데 영 심심하다.
일본과 우리 나라의 연애관이 다르기 때문도 있지만 뭔가 연애를 하는데 연애가 아닌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일찍 결혼을 결정하는 편인지 1년도 안되어 결혼을 결심하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왜인지 이해가 안 간다.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만난 시간 때문에 억지로 결혼하는 느낌이랄까, 결혼 날짜 정해놓고 바람 필 거면 뭐하러 결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혀 이들의 연애가 안 와닿는다.
그러니까 이게 작가의 문제인지 나라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좀 이상하다.

읽는 동안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잊으면서 보았지만 그럼에도 중간 중간 위기 상황이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 뭔가 사건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도난이든 살인이든 뭔가 범죄가 튀어나와야 할 것만 같은 상황이 계속 연출된다.
확실히 로맨스보다 사건 현장에 맞는 배경같다.
또 시작부터 불륜으로 인한 파혼이 등장하다 보니 마냥 좋기만 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고 예상되긴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 안 이어진다.
그것도 탁탁 맞아 떨어지면서 스릴 있게 비껴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맥없이 흐지부지되고 마는 식이라 영 재미가 없다.
가장 재미있어야 할 프로포즈 대작전 역시 기본적으로 그들만의 세상인데다 긴장감이 고조되거나 몰입이 왕창 된 상태에서 깨진 거면 아쉬움이라도 남을 텐데 전혀 감흥이 없다 보니 그냥 뭐하는 건가 싶다.
도대체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고 어떻게 결말이 날까 싶어 끝까지 꾸역꾸역 읽고 나면 허무함만 남는다.
약간 비슷한 이야기를 접해본 것도 같은데 이런 장르가 따로 있나 싶다.
될듯 말듯 하면서 짜증을 유발하고 절대 원하는 결말을 주지 않는 꼬인 이야기, 그게 이 책의 의도라 해도 그것조차 백퍼센트 성공은 아니다.

물론 추리와 로맨스의 괴리감은 어마어마하지만 이렇게까지 장르를 가리나 싶다.
그래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 소설이 아니라도 정말 괜찮았는데 연애가 들어갔다고 이렇게 재미가 없을 줄이야.
주인공도 남자들은 바람이나 피우고 배려심도 없는데다 여자들은 그냥 참고 넘기면서 결혼이나 기다리고 있고, 쓰키무라와 마호 커플만 빼곤 다 이상하다.
패트롤 대원인 네즈와 모모미의 친구인 야요이가 가장 정상인 같다.
이렇게 의도를 알 수 없는 소설이라니, 미심쩍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을 챙겨 읽는 팬은 아닌데 이 소설은 그의 명성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망까진 아니지만 참 찝찝한 느낌만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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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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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오사나이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채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장례식 때 한 번 보았을 뿐인 미스미라는 남자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와 15년 전 그 날 사실 모녀는 자신을 보러 도쿄로 오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현재 오사나이는 미스미와 한 모녀를 만나기 위해 딸이 죽기 전 그려 둔 그림을 들고 약속 장소로 나와있다.
오사나이는 딸의 친구였던 유명 여배우와 그녀의 딸 앞에서 가져온 그림을 꺼내려 한다.
‘루리와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라는 속담의 루리라는 아이는 오사나이의 딸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
아내의 꿈에 나타나 아이가 알려줬던 이름 루리, 그렇게 루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에는 총 4명의 루리가 등장한다.
먼저 본체라고 볼 수 있을 27세 루리는 미스미와 사랑에 빠진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죽기 전 미스미에게 자신은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을 다시 태어나는 죽음을 택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오사나이의 딸 루리는 7살이 되던 해 이유 모를 열병을 앓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옛날 노래를 부르고, 라이터에 대해 박식해지고, 가출을 해서 혼자 전철을 타고 모르는 비디오 대여점 앞에서 발견되는 등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사나이가 자유를 약속한 18살이 되던 해, 엄마 친구의 동생이었던 미스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을 전하고 그를 만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할아버지의 반대로 루리라는 이름을 갖지 못한 노조미는 미스미와 만나기 전 남편이었던 마사키와 먼저 만나게 된다.
노조미 역시 7살이 되던 해 열병을 겪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사키는 어린 노조미가 자신을 두고 죽은 아내임을 점차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노조미가 미스미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에 화가 난 마사키는 노조미를 차에 태워 미스미의 회사로 향하던 중 사고를 낸다.
노조미는 사고로 죽음을 맞고 마사키는 유괴범으로 몰려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 오사나이의 딸 루리의 친구였던 유이는 꿈에서 딸이 알려 준 이름 루리를 태어난 아이에게 붙인다.
친구 루리에게 들었던 대로 자신의 딸은 전생을 기억한다는 걸 인정하고 오사나이를 찾아가 그림에 대해 알려주며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루리와 미스미의 대면이 가까워온다.

4명의 루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보여주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모르고 보면 뜬금 없는 장면 전환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진다.
오사나이의 딸 이야기로 시작된다 싶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본체 루리의 이야기에 당황하게 되는 식이다.
젊은 미스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루리에 대한 설명은 너무 갑작스러운데다 심지어 불륜이라 그닥 몰입이 안되는데 알고 보니 메인 스토리다.
뭐가 그리 애틋한지도 모르겠고 별 감흥도 없는데 뭘 3번씩이나 죽어가며 미스미를 찾아가는지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 가기 시작한다.
죽고 못 사는 사랑 이야기로 쳐도 환생한 얼굴도 다 다르고 하물며 나이가 7살이랑 50대인데 이게 무슨 사랑인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알맹이만 똑같으면 정말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환생을 거듭하며 쌓이는 기억과 전생의 아빠였던 오사나이와 마주하면서도 전혀 감정 변화도 없는 4번째 루리를 보면 다 같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건지 싶다.
물론 판타지지만 그런 디테일 같은 걸 무시할 만한 절대적인 사랑인지에 대한 답이 전혀 도출되지 않는 이야기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굉장히 기대했었다.
도서관에서 검색할 때마다 대출 불가 딱지에 아쉬움을 느꼈고 딱 시작 부분부터 흥미진진했는데 이게 뭔가 싶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건 전혀 와닿지 않는 책이다.
판타지라도 그다지 겪고 싶지 않은 가상이고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루리라는 이름 역시 로리콘만 떠오르는, 혹시나 풍자로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아주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는 이야기.
모든 책은 역시 내가 읽어보고 판단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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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의 밤
올리비에 트뤽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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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진 핍박의 역사로 인해 사미족의 북은 현재 전 세계에 71개 밖에 남지 않았고, 그 중 단 한 개만이 고향 라플란드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돌아온 북이 어느 날 도난당하고, 곧이어 순록치기 한 명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누구도 실물을 본 적 없는 북의 자취를 쫓고 순록치기 마티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순록 경찰이 나선다.
유일한 사미인 경찰인 클레메트와 최초의 여자 순록 경찰 니나는 한 팀이 되어 마티스의 죽음에 대해 다른 순록치기들을 찾아가 탐문을 시작한다.
브랏센 반장에게 순록 경찰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수사를 진행하던 중 니나는 프랑스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미족 북의 기증자를 만나러 가고, 북과 마티스의 죽음이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사미족의 북과 요이크, 그 고난의 역사들이 살인 사건으로 인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순록 경찰 P9 순찰팀인 클레메트와 니나의 이야기에 농부이자 시의원인 올센과 브랏센의 공모, 거기에 지질학자인 라카냘이 더해지며 라플란드에 잠재된 금광을 찾는 일이 은밀히 진행된다.
사미족의 북에 대해 조사하며 새겨진 그림의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흩어져있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진다.
그렇게 여러 개의 시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할 때 그 중심에 아슬락이 놓인다.

프롤로그가 끝난 후 순록 경찰이 등장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사실 조금 지겹긴 하다.
전체적으로 불필요해보이는 내용들이 꽤 있는 편이라 이야기 진행이 더딘 감이 있다.
특히 초반부에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워낙 많은 인물들과 정보들이 주어져서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너무 빙 돌려서 표현하는 듯 느껴지는데 순록 경찰들이 움직이는 경로 그대로 진행되는 탓도 있고, 주어진 정보만 보면 사실 그리 복잡한 사건이 아니기에 일부러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조금 답답해도 주어진 대로 쭉 따라가다보면 만족할 수 있는 책이다.
단순한 재미로 표현하기 보다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모일 때의 선명함이 확실한 이야기였다.
살인 사건과 도난 사건에 대한 해결에 소수 민족의 역사가 더해져 뭔가 모르게 감동까지 전해지는 한층 깊은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중간에 썸을 탄다거나 대박이라는 단어처럼 책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찰떡같은 욕과 더불어 완벽하진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었던 번역이었다.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회색 표지에 QR코드를 발견하고 혹시나 해서 찍어봤더니 유투브 요이크 영상으로 연결되어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표지 색도 그렇고 세세한 부분에서 신경을 많이 쓴 책 같아 마음에 든다.
600페이지 가량이 전부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여덟 개의 산>도 떠오르고 <잘못 기억된 남자>도 생각나는 오묘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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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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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5
비어트리스는 동생인 테스에게 편지를 보내는 중이다.
테스는 아기를 낳고 얼마 후 실종되었고 결국 사체로 발견되었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둘 사이에 존재했던 8살의 레오가 낭포성 섬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후 비어트리스와 테스는 아주 가까운 자매 사이로 모든 비밀을 공유하며 지냈다.
비어트리스는 테스가 불륜으로 임신한 것도, 뱃속의 사비에르가 낭포성 섬유증을 진단받아 테스가 임상 실험에 참가한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아기를 낳은 것도, 자신에게 연락도 없이 실종된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통화하며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테스에게 내가 모르는 부분이 존재했다는 걸 깨닫지만, 그럼에도 테스는 결코 자살할 아이가 아니기에 비어트리스는 홀로 테스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한다.
테스의 종적을 쫓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누구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던 테스와 사비에르를 죽음으로 이끌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다.
비어트리스는 그래서 처음 테스의 실종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자신이 느낀 모든 일들과 감정들을, 현재 경찰청에 가서 증언하는 내용과 함께 낱낱이 편지에 남기고 있다.
차가운 바닥에서 홀로 떨다 간 테스에게 어느 날 동생이 사라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디가 아픈지는 나오지 않지만 비어트리스는 종종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 탓인지 때로 시간이 뒤죽박죽 엉키는 일들이 발생한다.
때로는 분노와 슬픔에 잠식되어 지나치게 감정적인 문장들로 채워지기도 하고 사건과는 전혀 상관 없을 사적인 부분까지 모두 털어놓기도 한다.
지도 교수와의 불륜으로 낳은 아기가 사산되고 난 후 일어난 21살 대학생의 죽음, 산후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으로 자살로 수사가 종결될 만큼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일 지도 모르지만 비어트리스에게만은 절대로 평범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그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일들로 비어트리스는 변해가며 사라진 테스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쳐나간다.

아름답고 섬뜩한 이야기라는 뒷 표지 소개글이 충분히 이해가는 책이었다.
단순히 사건과 해결을 담은 추리 소설이 아닌 남겨진 자의 모든 감정 묘사들이 더해진 이야기라 흔하지 않은 소설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추리 소설은 처음이라 신선하기도 했고 오히려 눈 앞에 모든 행적이 선명하게 보여서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았다.
가족, 자매 간의 우애와 또한 떠나간 후의 모습들이 감정을 흔들며 끝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밝혀질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범인 찾기는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돌고 돌기만 한다.
종반부에 이르기까지 어렴풋한 실마리는 잡은 듯하지만 그럼에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도통 예상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에 담겨진 큰 요소가 감정과 사건, 그리고 해결이라고 할 때 책은 무엇 하나도 놓친 게 없다.
꽉 들어차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평범하지 않다.
그저 그렇지 않은 소설, 결코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내가 느낀 감상이다.
일상적으로 늘어 놓아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특별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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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동 클린센터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최우수상 수상작
권정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4.7
나는 여전히 공포에 취약하지만 그럼에도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피 분장을 한 귀신들이 나오는 이야기에 슬며시 눈을 뜨고 만다.
어릴 적 누구나 다 보는 ‘전설의 고향’이 무서워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 떨면서도 귀 기울이던 그때보다 하등 나아진 게 없다.
그럼에도 책은 별 다른 고민 없이 펼쳐든다.
귀신을 보는 주인공, 흔한 소재인데 뭐가 그렇게 끌렸는지 선뜻 빌려와 놓곤 혹시 실망할까봐 기대감을 낮췄다.
다 읽고 보니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작품’ 그게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였다.

장의사인 할아버지의 일터에 이웃인 상화 누나의 시체가 온 날, 선동은 처음 귀신을 보았다.
이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독극물로 생을 마감하며 선동은 천애 고아로 마을을 떠돈다.
핍박에 가출을 감행하던 선동의 앞에 상화 누나의 일로 인연을 맺었던 강동철 형사가 나타난다.
그렇게 동철의 손에 키워진 선동은 다시 가출과 직업 학교를 전전하다 모든 인연을 끊고, 현재는 편의점 알바로 월세 밀리며 사는 서른의 백수가 되었다.
우연히 클린센터 명함을 받고 영안실에서의 면접을 통과해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 선동은 첫 의뢰날 사장이 금괴를 털어 잠적하는 바람에 선배인 정규와 함께 다시 실업자가 되고 만다.
어쩌다 보니 정규는 자신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결국 둘은 선동을 사장으로 한 이선동 클린센터를 연다.
한 노인의 의뢰로 인해 강동철 형사와 엮이게 된 선동은 일에 전념하며 애써 강 형사를 멀리하는데, 얼마 뒤 그와 친했던 문 형사에게 갑자기 강동철 형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걸 그제야 안 강 형사의 영혼과, 호주로 유학갔던 그의 딸 보라의 등장, 강 형사가 선동에게 남긴 가족들이 살해되었다는 내용의 서류들, 미심쩍은 의뢰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모두 한 데 얽히며 무궁무진한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누가 봐도 다음 편을 외치게 만드는, 닫히지 못한 결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2편이 나오고 나서 읽을 걸 그랬다.
재미있으면 재밌을수록 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요즘은 드라마도 완결나기 전엔 시작도 않고, 웹툰에도 손이 안 간다.
바보같지만 모든 시리즈가 한 번에 나오면 좋겠다.
기다리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는 게 너무 당연해서 슬프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렇게 금방 잊어버리다니.

귀신 이야기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보다는 걱정을 덜 했는데 아마 드라마에서 꽤 많이 접한 전개여서 그랬나 보다.
‘주군의 태양’은 조금 무섭긴 했는데 ‘고스트 위스퍼러’ 정도의 귀신들은 볼 만하다.
이 책의 귀신의 등장이 딱 ‘고스트 위스퍼러’와 비슷한 비중이다.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그리 무섭지도 않고, 정규가 겪는 몇 번의 불행 외에는 아주 크게 해를 끼치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하는 일인 유품 정리가 워낙 힘들게 그려지니 그에 비하면 옆에서 중얼거리는 귀신 정도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바람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무섭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귀신을 보지만 안 보이는 척하는 주인공에 민폐 캐릭터와 이어지는 의뢰들로 뻔한 전개를 예상하다가, 보라의 등장으로 역시 로맨스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생각도 못했던 사채업자와 청부 살인이 끼어들고 점점 자연스럽게 흐름이 과거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드라마의 장르가 어느 순간 범죄와 추리로 바뀐다.
문득 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떠올랐다.
시즌 2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시즌 1의 대본이며, 캐릭터며, 연출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완벽했다.
가족들의 자살로 홀로 남은 주인공,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다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 모든 사건들이 가리키는 곳, 배후의 인물 떡밥만 던지고 급 끝나버린 결말까지 ‘추리의 여왕’ 시즌 1과 겹친다.
둘은 확실히 다른 이야기지만 그 완벽했던 연출까지 더해 느꼈던 재미를 똑같이 활자로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게 신기하다.
‘추리의 여왕’을 보며 답답했던 것들이 이 책에는 없고, 모든 인물들이 정말 100퍼센트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다 마친다.
무엇 하나 놓치는 부분이 없고, 어디 하나 허투로 쓰여진 게 없다.
오히려 이 책이 드라마화된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얼른 속편이 나와서 누군가 드라마로 만들어주었으면.

마지막에 마지막을 향해가도록 제일 중요한 건 하나도 풀지 않고 덮어버린 결말, 다시 보게 되는 날에도 꼭 지금만큼의 감동이길.
소설을 위해 범죄 심리를 배우고 탐정 캐릭터를 쓰기 위해 직접 민간 자격증까지 땄다는 작가, 시도 쓰고 방송도 쓰고 웹툰도 쓴다는 작가, 감탄을 자아내는 이력만큼 확실한 책이었다.
최대한 빨리,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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