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동 클린센터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최우수상 수상작
권정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4.7
나는 여전히 공포에 취약하지만 그럼에도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피 분장을 한 귀신들이 나오는 이야기에 슬며시 눈을 뜨고 만다.
어릴 적 누구나 다 보는 ‘전설의 고향’이 무서워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 떨면서도 귀 기울이던 그때보다 하등 나아진 게 없다.
그럼에도 책은 별 다른 고민 없이 펼쳐든다.
귀신을 보는 주인공, 흔한 소재인데 뭐가 그렇게 끌렸는지 선뜻 빌려와 놓곤 혹시 실망할까봐 기대감을 낮췄다.
다 읽고 보니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작품’ 그게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였다.

장의사인 할아버지의 일터에 이웃인 상화 누나의 시체가 온 날, 선동은 처음 귀신을 보았다.
이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독극물로 생을 마감하며 선동은 천애 고아로 마을을 떠돈다.
핍박에 가출을 감행하던 선동의 앞에 상화 누나의 일로 인연을 맺었던 강동철 형사가 나타난다.
그렇게 동철의 손에 키워진 선동은 다시 가출과 직업 학교를 전전하다 모든 인연을 끊고, 현재는 편의점 알바로 월세 밀리며 사는 서른의 백수가 되었다.
우연히 클린센터 명함을 받고 영안실에서의 면접을 통과해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 선동은 첫 의뢰날 사장이 금괴를 털어 잠적하는 바람에 선배인 정규와 함께 다시 실업자가 되고 만다.
어쩌다 보니 정규는 자신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결국 둘은 선동을 사장으로 한 이선동 클린센터를 연다.
한 노인의 의뢰로 인해 강동철 형사와 엮이게 된 선동은 일에 전념하며 애써 강 형사를 멀리하는데, 얼마 뒤 그와 친했던 문 형사에게 갑자기 강동철 형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걸 그제야 안 강 형사의 영혼과, 호주로 유학갔던 그의 딸 보라의 등장, 강 형사가 선동에게 남긴 가족들이 살해되었다는 내용의 서류들, 미심쩍은 의뢰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모두 한 데 얽히며 무궁무진한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누가 봐도 다음 편을 외치게 만드는, 닫히지 못한 결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2편이 나오고 나서 읽을 걸 그랬다.
재미있으면 재밌을수록 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요즘은 드라마도 완결나기 전엔 시작도 않고, 웹툰에도 손이 안 간다.
바보같지만 모든 시리즈가 한 번에 나오면 좋겠다.
기다리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는 게 너무 당연해서 슬프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렇게 금방 잊어버리다니.

귀신 이야기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보다는 걱정을 덜 했는데 아마 드라마에서 꽤 많이 접한 전개여서 그랬나 보다.
‘주군의 태양’은 조금 무섭긴 했는데 ‘고스트 위스퍼러’ 정도의 귀신들은 볼 만하다.
이 책의 귀신의 등장이 딱 ‘고스트 위스퍼러’와 비슷한 비중이다.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그리 무섭지도 않고, 정규가 겪는 몇 번의 불행 외에는 아주 크게 해를 끼치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하는 일인 유품 정리가 워낙 힘들게 그려지니 그에 비하면 옆에서 중얼거리는 귀신 정도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바람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무섭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귀신을 보지만 안 보이는 척하는 주인공에 민폐 캐릭터와 이어지는 의뢰들로 뻔한 전개를 예상하다가, 보라의 등장으로 역시 로맨스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생각도 못했던 사채업자와 청부 살인이 끼어들고 점점 자연스럽게 흐름이 과거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드라마의 장르가 어느 순간 범죄와 추리로 바뀐다.
문득 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떠올랐다.
시즌 2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시즌 1의 대본이며, 캐릭터며, 연출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완벽했다.
가족들의 자살로 홀로 남은 주인공,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다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 모든 사건들이 가리키는 곳, 배후의 인물 떡밥만 던지고 급 끝나버린 결말까지 ‘추리의 여왕’ 시즌 1과 겹친다.
둘은 확실히 다른 이야기지만 그 완벽했던 연출까지 더해 느꼈던 재미를 똑같이 활자로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게 신기하다.
‘추리의 여왕’을 보며 답답했던 것들이 이 책에는 없고, 모든 인물들이 정말 100퍼센트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다 마친다.
무엇 하나 놓치는 부분이 없고, 어디 하나 허투로 쓰여진 게 없다.
오히려 이 책이 드라마화된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얼른 속편이 나와서 누군가 드라마로 만들어주었으면.

마지막에 마지막을 향해가도록 제일 중요한 건 하나도 풀지 않고 덮어버린 결말, 다시 보게 되는 날에도 꼭 지금만큼의 감동이길.
소설을 위해 범죄 심리를 배우고 탐정 캐릭터를 쓰기 위해 직접 민간 자격증까지 땄다는 작가, 시도 쓰고 방송도 쓰고 웹툰도 쓴다는 작가, 감탄을 자아내는 이력만큼 확실한 책이었다.
최대한 빨리,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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