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진화론 문학동네 청소년 30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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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청소년 소설은 순수함 같은 몽글몽글한 게 있긴 한데 아무래도 100퍼센트가 아닌 70~80퍼센트 정도 만큼의 감정만 주기 때문에 가까이하진 않는다.
이 책 역시 어디선가 본 그 추천글만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

막 사춘기를 지나는 그들의 이야기다.
방황하고 흔들리면서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그런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
거기에 약간의 마법과 또 약간의 판타지로 책은 조금 특별해진다.
라면 전쟁/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 소년소녀 진화론/ 창세기/ 흰돌고래를 소환하는 주문/ 너랑/ 와인드업 보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과 ‘소년소녀 진화론‘만이 연결된 내용으로 표지 그림 또한 이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라면 전쟁‘은 입시와 질투 같은 가장 평범한 이야기이고 달이 초대형 전광판이 되어버린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창세기‘, 마법 학교에 가지 못한 마법사의 이야기인 ‘흰돌고래를 소환하는 주문‘, 너무나도 닮은 한별과 한빛의 이야기인 ‘너랑‘ 역시 빠짐 없이 좋았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인 ‘와인드업 보이‘는 말하지 못하는 런던의 한 고아 소년이 주인공으로 소년은 거리를 떠돌다 우연히 색을 잘 구별해내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그로 인해 어느 저택에서 백작을 돕게 된다.
백작에게는 윌리엄이라는 기계가 있는데 윌리엄은 소년이 색을 조합해 잉크를 넣어주면 백작이 읽어주는 내용을 듣고 이를 편지에 그대로 입력해준다.
소년이 이리저리 잉크를 바꾸면서 색을 조합하면 윌리엄은 편지 내용을 형형색색의 잉크로 그려내 편지를 담은 그림을 선사한다.
소년은 글을 모르고 말을 못해 와인드업 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계속해서 저택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소년은 글을 읽게 되고 하녀인 멜리사를 통해 그 사실은 드러난다.

그리고 연속되는 두 편의 소설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 ‘소년소녀 진화론‘은 갈라진 땅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 대륙에서 거대화된 곤충의 위협으로 공중도시와 해저도시로 나뉘어 살게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가하는 공중도시의 주민으로 하층민인 삶이 싫어 가장 높은 곳인 인공위성 관제 센터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소년이다.
인공위성 경진대회를 위해 부품을 찾으러 지상으로 내려 간 가하는 곤충을 맞닥뜨리고 그때 바다에서 나루가 나타나 구해준다.
나루는 해저도시의 주민으로 엄마의 꿈인 심해조사 연구원을 자신의 꿈으로 삼고 있는 소녀다.
하지만 해저의 산소로만 숨을 쉬지 못하는 나루는 고래증후군 환자로 주기적으로 지상으로 올라와 호흡해야 하고 꿈을 위해 아가미 수술을 앞두고 있다.
둘은 처음 만나 공용어로 대화를 나눈 그 날 이후로 그 장소를 계속 해서 찾으며 또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생각하며 둘은 결국 서로가 다른 인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 둘이 섞일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렇게 진화하면 그때 만나기로 한다.

딱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아름답고 선연한 물빛의 이야기.
마음을 담은 글이 너무나도 예뻐서 아른거린다.
정말 아름다운 글이었다.

만약, 우리가 더 진화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서로 섞일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걸 뭐라고 부를까? 흐름은 우리를 독립된 개체로 만들려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닮아지기를 바라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랑 나는, 우리가 섞일 수 있는 그 미래를 진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우리는 진화할 거야.

우리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함께 시간을 더듬으며 나아갈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살아도 함께 진화할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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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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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8
창작과 비평사 책은 대체로 내게 맞다.
웬만해선 모험을 하지 않는 내가 다른 거 다 버리고 반쯤 무조건적으로 집어드는 게 창비라는 딱지고 그 시도들이 여태 실패한 적도 없다.
몇 번 봤던 표지인데 줄거리는 모르지만 그냥 눈길이 갔다.

알렉시티미아,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한 소년의 성장기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주인공인 윤재의 인생에 아마도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면서 진행된다.
엄마와 할멈, 곤이, 도라, 그리고 철사 형.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닥친 사건들로 윤재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채우려는 듯 다가오는 곤이, 그리고 도라를 만나면서 자라기 시작한다.

같은 창비 청소년 문학상이라는 이유로 <위저드 베이커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 늦은 나이에 읽는 성장소설은 청소년 때의 감정과는 멀지만 오히려 더 많이 공감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아픔에 따른 성장과는 별개로 꼭 행복했으면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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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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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목이 좋고 표지가 꽂히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읽고 싶던 책이었다.
딱 한 권 남은 대출 한도에 갈등하다가 <호프리스>를 빌려 왔고 자연스레 뒤로 밀린 책을 한 주 뒤에 처음으로 집어들었다.
이번 주는 날씨 탓인지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 2주에서 겨우 3일 남겨두고서야 읽기 시작했다.
고민도 없이 내키는 대로 바로 바로 고른 책들이었는데 생각만큼의 기대는 아니었는지 손이 안 갔다.
이 책 역시 궁금하긴 했으나 사실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책은 테드, 릴리, 미란다, 브래드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넷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들의 사각관계는 애정보다는 살인에 얽혀있다.
남들보다 이르거나 적절한 그 때 이들의 인생에 갑자기 살인이 끼어든다.
살의를 느끼고 살인을 행하는 과정,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나 처리 방법 같은 것들이 네 명의 주인공의 생각과 함께 죽 흘러나온다.
그런 이유로 살인을 하는 것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는 무리 없이 동행하게 된다.
분명 살인자인데 동정하게 되고 똑같은 살인자인데 둘 중 한 사람 편을 들게 되는 건 놀랍다.
특히 릴리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주 태연한 어찌보면 싸이코패스인데 살인이라는 걸 밥 한 끼 먹자 처럼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하는 게 신기하다.
다른 살인자들처럼 희열을 느끼거나 초조해하거나 당위성을 부여한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는, 뭐랄까 살인자의 특성을 깨는 인물이었는데 종반부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건 목격자를 지운다는 점에서 역시 전형적인 살인자의 모습이라 조금 시시했다.
그리고 끝으로 갈수록 캐릭터는 붕괴되어 그리 똑똑해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감으로 모든 거짓말을 꿰뚫어보고 진실에 다가가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자 후기에서는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절대 완전 범죄가 아니었다는 결말이라고 생각되는 건 그 종결 부분의 진행방식 때문이다.
시체만 발견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나 빨리 나갈 거라는 말은 언제나 이런 이야기에선 아주 큰 복선이다.
결국 모든 것은 밝혀지겠지.

완전한 허구가 아닌 소설을 본 느낌이라 묘하다.
어제 읽은 <휘>에서 작가의 ‘소설은 진실을 담은 거짓말‘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책이다.
재밌는 외국 소설은 꼭 <미비포유>와 연결된다.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그 느낌이 다 너무 비슷하게 다가온다.
눈 앞에 그려지는 그 분위기와 그 풍경, 그게 아마 내 취향이겠지.
영화화도 확정되었다는 것 같은데 이미 눈 앞에 생생한 캐릭터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꽤 재밌을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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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07-26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읽는 장르의 책이 아닌데도 휘(?)님 리뷰 읽고 나니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제가 한자를 잘 몰라서 사전을 뒤져서 읽은 건데 빛날 휘가 맞는지요...

2017-07-26 11:23   좋아요 1 | URL
빛날 휘 맞아요^^ 책은 무조건 추천까진 아니지만 괜찮았어요! 시간 괜찮으시면 읽으셔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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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신간 알림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8개 음절에 달린 이야기들.
담백하면서 깔끔한 소설을 원했는데 예상보다 질척거리고 혼탁하다.
중간 중간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이나 뚝 끊어지는 내용은 전개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하고 집중에도 방해가 된다.

‘휘‘는 감정이나 묘사가 딱 적당했는데 뒤로 가면서 암울한 이야기들이 전혀 정리 없이 늘어져서 자꾸 바닥을 치는 기분이 든다.
깊숙이 파고 드는 절망이나 암연을 주지도 않으면서 찝찝함만 남기는 게 그렇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개‘였는데 화자가 개여서 귀여운 점도 있고 엔딩까지 개연성도 좋고 무엇보다 모든 이야기 중 딱 눈 앞에 그려지는 유일한 내용이었다.
이 정도를 원했는데 못, 톡, 잠은 솔직히 비슷한 내용을 그저 쭉 늘려 놓은 이야기 같다.
색으로 치면 단 한 가지 색깔을 물 섞은 채로 다르게 그린 느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행해졌다.
누이는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종이었다.
마침내 일호는 나무 책상 한가운데 작은 홈으로 남았다.
나는 온통 새까만 개였는데도 할배는 나를 백구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나는 공항 한가운데에 못처럼 박혀 있던 하이힐의 뒷굽을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빨대 쥔 손끝을 떨면서 떨어뜨린 것의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하나의 길을 포기해야 다른 한쪽의 인생이 완벽해진다.
사방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그 누군가였다.

전체적으로 초반 네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인식되면서 각 음절과 정말 잘 어우러져서 좋았는데 뒷부분의 네 개는 와닿지 않는다.
‘초‘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본인의 이야기처럼 공을 들였다는 게 보이지만 굳이 이 이야기가 여기 있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세월호는, 더구나 소설에서 이런 식의 소비가 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다.
소설은 진실을 담은 거짓말이라, 현실은 거짓을 담은 진실에 가깝다는 작가의 말은 그럼에도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아버지 이름에는 악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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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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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정유정 작가의 소설 중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화가 결정된 책이다.
<28>은 읽었던 상황이나 여러 가지가 몰입을 도왔지만 그럼에도 약간 산만했고 큰 이미지만 남아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은 발매됐을 때부터 <7년의 밤>과 비교하는 글도 제법 있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서 꽤 기대했었다.

싸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다.
악인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초반에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 그대로 이끌고 가기에 섣불리 판단할 여유를 주지 않았는데 점점 갈수록 주인공임에도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만약 그가 주장한 것이 진실이고 이 모든 것이 잘못된 처방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인지, 혹은 역시 그의 말은 거짓이고 그는 싸이코패스라는 결함을 갖고 태어난 선천적 범죄자이기 때문인지, 한유진이라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 기원에 대한 의문.

싸이코패스라는 말은 특히 살인사건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인데 선천적인 뇌의 결함과 후천적인 환경 등이 원인이라고 들어왔다.
대부분의 유명 살인마들은 그러한 성향을 갖고 태어났고 주로 관리받지 못하고 폭력 등 불우했던 가정 환경이 그것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의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고 무엇이 옳고 나쁜 행동인지 모르기에 일찍 발견한다면 기본적으로 영리하기에 꾸준한 학습으로 인해 마음을 숨기는 교정은 가능할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지만 드러내지만 않고 계속해서 도움을 받으면 평생을 숨기면서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정신 의학계의 AIDS 같은 느낌.

모르겠다.
정신병의 세계는 참 복잡해서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정신과 심리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은 계속해서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
그래서 정유정 작가의 책에는 그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들이 꾸준히 드러난다.
난 그렇기에 계속 읽는 지도 모르고.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매번 후반부와는 전혀 다르게 거의 반에 가까운 초장 부분이 너무도 안 읽혀지는 게 큰 진입 장벽이었는데 이번엔 괜찮았다.
생각해보니 <28>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 <7년의 밤>이 줬던 것 만큼 막힌 부분이 술술 걷히며 마구 내달리는 만큼의 추진력은 주지 못했지만 꾸준한 템포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래도 재난 현장과 살인 현장 같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느낌이니까.
결말과 소재가 주는 찝찝함은 남지만 영화도 기대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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