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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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신간 알림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8개 음절에 달린 이야기들.
담백하면서 깔끔한 소설을 원했는데 예상보다 질척거리고 혼탁하다.
중간 중간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이나 뚝 끊어지는 내용은 전개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하고 집중에도 방해가 된다.

‘휘‘는 감정이나 묘사가 딱 적당했는데 뒤로 가면서 암울한 이야기들이 전혀 정리 없이 늘어져서 자꾸 바닥을 치는 기분이 든다.
깊숙이 파고 드는 절망이나 암연을 주지도 않으면서 찝찝함만 남기는 게 그렇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개‘였는데 화자가 개여서 귀여운 점도 있고 엔딩까지 개연성도 좋고 무엇보다 모든 이야기 중 딱 눈 앞에 그려지는 유일한 내용이었다.
이 정도를 원했는데 못, 톡, 잠은 솔직히 비슷한 내용을 그저 쭉 늘려 놓은 이야기 같다.
색으로 치면 단 한 가지 색깔을 물 섞은 채로 다르게 그린 느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행해졌다.
누이는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종이었다.
마침내 일호는 나무 책상 한가운데 작은 홈으로 남았다.
나는 온통 새까만 개였는데도 할배는 나를 백구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나는 공항 한가운데에 못처럼 박혀 있던 하이힐의 뒷굽을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빨대 쥔 손끝을 떨면서 떨어뜨린 것의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하나의 길을 포기해야 다른 한쪽의 인생이 완벽해진다.
사방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그 누군가였다.

전체적으로 초반 네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인식되면서 각 음절과 정말 잘 어우러져서 좋았는데 뒷부분의 네 개는 와닿지 않는다.
‘초‘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본인의 이야기처럼 공을 들였다는 게 보이지만 굳이 이 이야기가 여기 있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세월호는, 더구나 소설에서 이런 식의 소비가 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다.
소설은 진실을 담은 거짓말이라, 현실은 거짓을 담은 진실에 가깝다는 작가의 말은 그럼에도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아버지 이름에는 악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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