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
‘책 끝을 접다‘라는 페이지에서 추천해주는 글들을 친구 추가해서 꾸준히 받고 있다.
책의 줄거리나 짧은 단편을 그림을 곁들여 구미가 당기게 만드는데 영화 소개 프로그램 MC만큼 흡입력 있는 홍보로 책에 손이 가게 만든다.
이 책 역시 그 소개로 인해 알게 되었는데 읽기 전까지 단편인 걸 몰랐다는 게 불행이다.
한 마디로 낚였다.

책은 총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내가 기대했던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고작 4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었다.
그것보다 첫 편부터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 놓아서 뭔가 했다.
이런 글 읽으려고 책 편 게 아니었다.
그런데 다섯 편 중 세 편이 모두 자신이 출연하는 자전적 이야기다.
소설인지 수필인지 알 바 없지만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두 개의 소설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
죽어가는 할머니가 살아날 때마다 집 안의 다른 누군가가 죽어가는 이야기, 흥미로운 소재라서 꽤 몰입됐는데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처음 읽을 때부터 고교생의 시선이라기엔 적어도 20년은 넘은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껄끄러웠는데 결말이 너무 촌스럽다.
소재만 던졌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식의 단편 자체도 별로지만 초반부터 느껴지던 올드함이 엔딩에서 폭발한 것 같아 실소를 금치 못했다.
또 하나의 소설 역시 도둑질이 종교가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다.
순례의 입장에서 뭘 그리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오긴 하지만 너무 잡다하고 흐트러져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끼워넣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작가로서 그 인생이 어땠는지 독자가 소설 속에서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끝부분부터 바래져 잠식되어가는 시든 꽃 하나를 본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9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건 그 호기심이 왜 일어났는지 기억 못할 지라도 즐거운 일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불쑥 뽑아든 순간 책은 당연하게도 만화처럼 찰나의 심장 박동이나 세계가 멈춘 듯한 착각 같은 걸 전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그 끝에 대한 어떤 조그마한 전조 증상도 없이 그저 읽게 할 뿐이다.
등장인물이 나열되는 첫 페이지에서 이미 책의 운명은 결정되었으리라.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이 책은 신에 대한 불경이자 신화이며 인간군상과 희생을 담은 일대기이며 평행우주와 타임 패러독스다.
스티브와 그의 아버지 박영식이라는 인물, 1958년과 2016년의 시간과 용인과 트루데라는 공간, 로버트 와인버그와 T신부라는 메신저, 그리고 신과 계시.
‘무한의 책‘이라는 제목처럼 무한한 상상력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건드리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은 마치 보지 말았어야 할 금기 도서의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람을 뒤흔든다.
공포 이야기의 도서관 속 이름 없는 검정 표지의 책이 제목을 달고 나온 느낌이다.

‘박성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스티브‘로 시작하려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우스운 일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허구로 믿으면 허구가 되어버릴 이야기라는 감상은 허구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그처럼 되어 버린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긴 할 거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검은 새 떼처럼 까맣고 어두웠던 스티브가 마지막에는 이 책의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까닭이다.
홀로 소멸된 존재에서 희생의 숭고함이나 위대함 같은 건 중요치 않다.
신과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역설인지 1980년 광주의 아픔인지 꿈과 현실의 경계인지 고통과 치유인지 책이 주려는 메시지에 대한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김 없이 오롯이 모든 내용이 전해지는 책이다.
소련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 3호에서 언제 발신된 지 모른 채로 전달되어진 교란된 신호처럼 모든 내용을 허우적대며 문득 머리에 남는 건 인간은 그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라는 언젠가 스티브가 한 말이다.

읽고 난 후의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몇 번씩 표지에 눈이 끌려가게 만들고 또 몇 번씩 실없이 웃음짓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냥 놀랍고 놀라운 책.
책을 읽기 전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꼭 생각해야 할 그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을 위한 소설
하세 사토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4.5
책은 주인공 사만다 워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2084년 미래의 과학은 상상만큼 발전되지 않아서 여전히 사람들은 아픔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과학 기술로 인한 이득은 분배되지 못해 값 비싼 형태셀과 전통옷을 입는 사람들이 나뉘어 있고 그들 모두에게 평범한 것은 저작권이 끝난 무료 소설 정도다.
인공신경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뉴롤로지컬 사의 개발자이자 창업자인 사만다는 ITP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격체 wanna be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ITP란 간단히 말하면 모든 행동과 감정까지 포함한 인간의 뇌의 반응을 전부 신호화한 것으로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들을 하나의 시그널로 간단히 보여준다.
이를 이용해 인격을 만들어 이름을 부여한 인공지능이 wanna be였고 ITP의 실효성을 시험하기 위해 사만다는 그에게 소설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수행 중 사만다는 자신에게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책이라 조금 버거웠다.
ITP와 미래에 대한 묘사는 지겹도록 줄기차게 서술되고 사만다와 그의 동료들의 대화는 너무나도 전문적이다.
이해하기 힘들 만큼은 아니지만 어려우니까 확실히 재미는 덜하다.
사만다와 죽음, 그리고 wanna be.
세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쓰는 소설은 이야기의 중점은 아니지만 wanna be가 사만다와 대화하고 끝내 교감하면서 진화된다.
사만다의 미래를 포기한 가치관은 자신에게 인체 실험을 감행할 만큼 무디고 둔하다.
죽음을 앞둔 사만다는 부정과 분노를 겪으며 때로 폭주하고 아프기를 반복한다.
점점 말을 듣지 않는 몸 때문에 수치심 같은 것들을 잃어가면서 사만다는 wanna be와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정해진 죽음을 맞았다는 결말.
파트 별로 주어지는 임팩트가 묵직해서 그리 재미 있지 않음에도 책을 덮지 않게 만들고 전문적인 용어들과 현실성 있는 대화들은 2084년의 가상 세계를 견고하게 그려낸다.

인공지능이라는 점에서 영화 her이 생각났는데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인 사만다가 이 책에서는 반대로 개발자의 이름으로 나오는 게 흥미로왔다.
미래에는 모든 질병이 해결되었다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의 인공장기 이식에 따른 자가 면역 질환이라는 다분히 현실성 있는 설정 또한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현재 모종의 불치병 묘사보다 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식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레미제라블을 읽고 훔친 빵의 섭취에 대한 감상을 남기던 인공 지능이 죽음을 생각하기까지의 발전 과정도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인공지능끼리 인간이 모르는 은어를 만들어 대화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다른 의미에서 꽤 좋은 소설이라서 끝까지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티커스의 기묘한 실종 사건 - 모든 것은 마드리드에서 시작됐다
마멘 산체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2
마드리드의 경위 만체고에게 어느 날 영국인 신사가 찾아와 아들의 실종사건을 의뢰한다.
영국의 출판 명문 크라프츠먼사의 사장 말로 크라프츠먼의 아들인 애티커스는 각국의 잡지들 중 유일하게 수익을 내지 못하고 엄청난 적자만 기록하는 스페인의 리브라르테를 폐간하고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지하기 위해 석 달 전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긴 채 연락이 끊긴 상태.
유전자 감식을 한다며 동네 약국에서 면봉을 사오거나 영장이 나오는 시간을 못 기다려 자물쇠공에게 돈을 주고 문 따는 일을 시키는 등 만체고의 수사는 허점 투성이다.
리브라르테는 이모 같은 편집장 베르타,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 잡지사에서 일하며 안정을 찾은 아순시온, 회계를 맡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 마리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1인 기술팀 가비, 집시 유전자를 가진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솔레아까지 다섯 명의 여자로 이루어졌고 직원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허리띠를 조르고 일하지만 적자가 계속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잡지 폐간을 통보하러 영국인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해고 통보를 미루기 위해 다섯 여자들은 모종의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궤짝에 있다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미발표 시로 애티커스를 꼬여 내 고향 섬 그라나다로 데려 간 솔레아는 일을 잊고 가족들에게 뒤엉켜 집시와 동화되는 애티커스를 내버려두면서 조금이라도 해고 통보를 미루려한다.
한편 베르타에게 우연히 마리아의 불륜이 발각되고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튀어간다.

이야기에서 영국과 스페인은 원칙과 즉흥으로 상징되어 그려진다.
크게 보면 반대편에 존재하는 극과 극의 인물들이 만나면서 섞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집시의 자유분방함과 스페인의 역동성이 이야기를 통통 튀게 만들고 최고조인 그라나다로 이끌고 간다.
스페인 작가의 책이라서 그런지 FM스러운 영국을 살짝 비꼬면서 스페인을 훨씬 매력적으로 표현하려 하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 두 나라의 결혼식 장면에서의 디테일한 묘사는 어느 쪽도 차별하지 않는 듯 동등하게 페이지를 할애했지만 끝까지 스페인을 강조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맘마미아를 뛰어넘는다는 뒷 표지 소개글을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에너제틱, 리드미컬이라는 평이 딱 들어 맞는 소설이다.
초반부의 지루함은 약간 있지만 그라나다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스페인의 향기로 가득차고 확실히 그 솔레아의 푸른 눈만큼 매력적이지만 결말이나 개연성 같은 정형화된 부분에서 소설의 재미는 반감한다.
캐릭터부터 스토리 전부 소설보다는 뮤지컬이나 코미디 영화가 어울려서 책으로서 읽기에는 아쉽다.
모든 사건의 즉흥성이 스페인이라는 이유로 무마되기에 이쯤되면 스페인이 궁금해지긴 한다.
아마 그라나다에 다녀온 뒤 읽게 된다면 더 재미있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3
표지의 삽화도 그렇고 제목도 굉장히 귀엽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림을 따라가면 표지 뒷면에 승객들에게 드리는 안내 말씀이 적혀 있다.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빨간 머리의 역무원이 그려져 있지 않은 부분에서 더더욱 마음에 드는 표지다.

우미하자마 역의 분실물 센터를 중심으로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이고 얽히는 이야기다.
똑같은 가방 때문에 분실물이 뒤바뀐 이야기, 부적처럼 생각하던 어릴 적 받은 러브레터를 찾으러 왔다가 러브레터를 써준 여학생을 만나는 이야기, 습득한 분실물으로 인한 거짓말으로 멀어지게 된 사이를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 기억을 분실한 이야기.
펭귄이 돌아다니는 철도 만큼 딱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펭귄이 철도에 있게 된 이유가 나타나는 마지막 장에서 각 인물들은 간접적이나마 자신들만의 해피 엔딩을 맞았음을 알린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하는 이야기.

모든 연결이 밝혀지는 마지막 ‘스위트 메모리즈‘도 괜찮았지만 어디선가 레벨업의 팡파르가 울린 듯 했다 로 끝나는 ‘팡파르가 들린다‘가 가장 좋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고등학생이 현실을 마주보고 내 자리를 찾아 낼 결심을 하면서 정말 현실에서 레벨업하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마지막 장에 나온 모습만으로도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구나 느껴져서 괜히 기특하다.
소설 자체의 분위기는 <펭귄 하이웨이>와 비슷하다.
이 책의 펭귄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뭔지 모르게 신비한 동물처럼 그려지는 것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든 평화로운 마을 같은 고요함과 따뜻함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펭귄이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지의 동물이라도 되는 걸까.
펭귄을 좋아한다면 아마 두 작품의 재미 또한 배가 될 지도.
흔한 분실물 센터라는 정적이면서 유동적인 소재에 기대 거기에 펭귄을 더했을 뿐 그런 상상 가능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크게 재미는 없었다.
그냥 딱 표지 그림 같은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