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건 그 호기심이 왜 일어났는지 기억 못할 지라도 즐거운 일이었다.반가운 마음에 불쑥 뽑아든 순간 책은 당연하게도 만화처럼 찰나의 심장 박동이나 세계가 멈춘 듯한 착각 같은 걸 전해주지 않는다.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그 끝에 대한 어떤 조그마한 전조 증상도 없이 그저 읽게 할 뿐이다.등장인물이 나열되는 첫 페이지에서 이미 책의 운명은 결정되었으리라.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이 책은 신에 대한 불경이자 신화이며 인간군상과 희생을 담은 일대기이며 평행우주와 타임 패러독스다.스티브와 그의 아버지 박영식이라는 인물, 1958년과 2016년의 시간과 용인과 트루데라는 공간, 로버트 와인버그와 T신부라는 메신저, 그리고 신과 계시.‘무한의 책‘이라는 제목처럼 무한한 상상력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건드리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이 책은 마치 보지 말았어야 할 금기 도서의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람을 뒤흔든다.공포 이야기의 도서관 속 이름 없는 검정 표지의 책이 제목을 달고 나온 느낌이다.‘박성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스티브‘로 시작하려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우스운 일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허구로 믿으면 허구가 되어버릴 이야기라는 감상은 허구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그처럼 되어 버린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긴 할 거다.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검은 새 떼처럼 까맣고 어두웠던 스티브가 마지막에는 이 책의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까닭이다.홀로 소멸된 존재에서 희생의 숭고함이나 위대함 같은 건 중요치 않다.신과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역설인지 1980년 광주의 아픔인지 꿈과 현실의 경계인지 고통과 치유인지 책이 주려는 메시지에 대한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김 없이 오롯이 모든 내용이 전해지는 책이다.소련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 3호에서 언제 발신된 지 모른 채로 전달되어진 교란된 신호처럼 모든 내용을 허우적대며 문득 머리에 남는 건 인간은 그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라는 언젠가 스티브가 한 말이다.읽고 난 후의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몇 번씩 표지에 눈이 끌려가게 만들고 또 몇 번씩 실없이 웃음짓게 만드는 책이었다.그냥 놀랍고 놀라운 책.책을 읽기 전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꼭 생각해야 할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