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아 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 - 풍파 마스터 어르신들의 삐뚤빼뚤 고민 상담
11명의 신이어들 지음 / 카멜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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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신이어들

귀여운 그림으로 만난 어르신들의 삐뚤빼뚤 고민 상담

 

 

 

'똑똑하다'와 '지혜롭다'는 다른 의미입니다.

어느 정도 살아보니 세상에 똑똑한 이들은 넘치지만,

지혜로운 이는 드문 것 같습니다.

지혜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나가면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깨달음이기에 쉽지 않죠.

그래서 '지혜'하면 '연륜'이 연상되는가 봅니다.

평균 나이 만 81세 신이어 카운슬러분들 등장에

삶의 고민들을 털어놓은 2030들처럼

저 또한 질문하고 답을 얻어 가고자 책을 펼쳤습니다.

 

 

 

'신이어 상담소'

조부모 세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여러 사회·경제·문화적 이유로 청년 세대와 노인 세대 간 갈등이 있거나

교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세대가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교류의 장이 될 신이어 상담소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소통을 바라고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청년들의 고민과 질문은 경험 많은 시니어의 대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서로를 나누었던 단절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죠.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서로를 보듬아주면서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소셜 브랜드로 청년 세대와 노인 세대를 이어주는 플랫폼입니다.

2030 청년 세대가 제품을 기획하고 7080 어르신 세대가 제품을 만들고 포장합니다.

 

'모든 것이 삐뚤빼뚤해도, 실수가 많아도 괜찮다.

그 자체가 매력이자 차별화 포인트, 작품이다.'

 

 

'아립앤위립'

빈곤 노인, 폐지 수거 노인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소셜 브랜드 '신이어마켙' 운영뿐 아니라 다양한 창구로 노인 세대 일자리를 만들며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20대 청년부터 70대 시니어까지 구성원을 '식구'라 표현하는 기업.

청년 세대들의 공동체 의식에 감복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청년 세대로서 고민이 클 텐데 개인적 성장에 집중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눈을 돌려 그들의 존엄에 힘쓰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세상 속 숨은 영웅을 만났네요. 고마운 이들입니다.

깊은 응원을 보냅니다.

 

 

가족 - 건강 - 사랑 - 진로 - 돈 - 일 - 삶

중요한 7가지 주제로 나누어 청년들의 고민에

어르신들이 손수 적어주신 그들만의 답을 엮어 구성하였습니다.

고민과 질문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답은 진지하다가도 엉뚱하고 새로우면서도 묵직했습니다.

유머와 진지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유쾌 통쾌한 어르신들의 세계에

웃었다 울었다 빠져들었죠.

 

새기고 싶은 말씀들이 많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답변들이 있네요.

 

<가족> 시간 있을 때 더 잘해 주고

"그냥 옆에 있어 주고 잘해 주면 되는 거지."

그렇죠. 옆에 있어 드리는 게, 자주 전화드리고 찾아뵙는 게 중요하죠.

서로 알면 알수록 이야깃거리는 더 풍성해질 거니까요.

 

 

<사랑> 몰라, 나도. 연애 박사가 아니니까.

Q. 남자친구가 왜 안 생길까요?

A. 눈을 딱 뜨고 계속 찾아라.

Q. 24년을 살았는데 남자친구가 없어요. 제가 문제겠죠?

A. 그래, 네가 문제다. 예쁘게 잘 살아라.

연애 박사 아니라고 하시더니 매운 답변을 내주셨네요.

 

 

<진로> 희망을 가지고 네가 잘하는 거 찬찬히 살펴봐라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할머니의 손길같이 다가옵니다.

꼭 안아주고 다독여주시는 것 같네요.

힘내라. 힘내겠습니다. 그래야겠죠? ^^a

 

Q.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아요.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요?

A. 무언가 만들어라. 찾지 마라.

묵직하게 한방 맞았네요.

스스로 만들어가라는 말씀에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겠다 싶어집니다.

 

 

<돈> 씀씀이가 헤프면 배가 고파 봐야 안다

"장소, 상대에 따라 쓸 데만 써라."

"푹 쉬어라."

중요한 말씀이네요. 기억하겠습니다.

 


 

 

고민하는 청년을 생각하며 한자 한자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쓰셨을

어르신들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지고 온몸이 따뜻해졌습니다.

모르면 모른다, 아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주고자

열심히 상담해 주신 어르신 열한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위안과 격려 한가득 받았습니다.

계속되는 하루,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고 의미 있게 보내야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어르신들의 그림과 글로 가득 찬 이 책의 여운이 오래갈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할게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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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 무서운 아이 생각학교 클클문고
조영주 지음 / 생각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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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에 빠져 한 달에 한 번 만화책 나오는 날만 애타게 기다렸다. 8,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최애 만화책이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학교에서 만화책을 돌려읽었던 추억을 떠올리는 지금,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해진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점프 트리 A+', '북해의 별', '굿바이 미스터 블랙' 등 우리나라 만화책뿐만 아니라 '유리가면', '베르사유의 장미' 등 일본 만화책도 인기였다. 그중 조영주 작가의 신작이자 첫 청소년 소설인 『유리가면 : 무서운 아이』는 같은 제목의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을 적극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워낙 유명하고 연재 시작 47년째 결말이 나지 않은 화제성을 지닌 만화인지라 유리가면을 아는 이도 모르는 이도 이 책을 통해 「유리가면」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조영주 작가가 만화 「유리가면」의 주요 인물과 설정을 잘 활용하여 청소년의 심리를 내밀하게 표현하였다.

 

 

유리가면 | 무서운 아이/조영주 지음/생각학교



2022년 재혼 후 발령으로 외국에 간 엄마 대신 아빠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생각중학교 2학년에 전학 온 딸 '윤유경'의 현재와 1999년부터 시작된 부모 배미라와 윤민의 과거가 교차하여 구성된 소설이다. 유경의 중학교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부모의 사랑, 결혼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져 동년배로서 공감이 되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만이 전부가 아닌 결혼에 관한 고민과 결론이 솔직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부연 설명이 되어 '윤유경'이라는 인물이 또렷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캠퍼스 연상연하 커플이었던 부모는 이혼했지만, 딸이라는 고리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기 웹툰 작가인 아빠 '윤민'과 담당자 '영희'언니?의 연애를 지지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박사인 엄마 '배미라'와 같은 회사 동료인 새아빠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혼했지만, 서로 편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부모와 두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기에 유경은 밝고 순수하고 따뜻한 아이다.

 

 

배꽃이 피었다, 분수대의 물을 틀었다… 자연친화적이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던 평택 친구들과 공간을 떠나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서울에서 처음 듣는 말은 "너 가방 어디서 샀음?"였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도 마찬가지, 당황스러웠다. 유경은 자신에게 다가온 '은유미'의 속마음은 모른 채 보이는 외형적 모습에 이끌려 유미의 눈치를 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사는 곳에 따라, 들고 다니는 물건에 따라, 그리고 부모의 집에 따라 수준을 나누고 아이들 레벨을 정했다. 유미 수준에 맞는 친구가 되기 위해 유경은 자신을 잃어가는 지도 모른 채 유미의 눈치만 살피게 되었다.

 

 

 

 

유경은 글과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빠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생활화하였다. 아빠 민 또한 유경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싶은 웹툰이 생겼다. 그리고 소재가 궁할 때는 유경이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유경이기에 글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살피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그 글을 통해 요즘 십 대 심리에 대해 밀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솔직히 유경이처럼 유미의 입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 과도하게 보이는 외형에, 이미지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주변인들을 조종하려고 하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희선이의 말처럼 인기를 얻고 싶은 것뿐이고 잘못된 방법만 아는 아이, 그걸 즐기는 아이, 무서운 아이. 유경은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자 유미는 유미고, 자신은 자신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았다.

 

 

교묘하게 상대방을 조종하는 가스라이팅, 스토킹까지 서슴지 않는 집착 그리고 따돌림까지 청소년들의 미묘한 심리와 행동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유리가면 : 무서운 아이』 끝맺음 또한 현실적이라 씁쓸하지만, 열린 결말로 각자의 폐막은 제각기 색깔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무서운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네가 아니라 무서운 아이가 잘못한 거야.

너는 사랑하고 믿는 이가 분명히 있어. 너는 너야. 너를 잃지 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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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링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8
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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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ing

서로 조화롭게 짝을 짓는 행위로, 조규미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주요 아이템인 '무선 이어폰'을 소재로 입시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페어링 하고 있다.

 

 

십 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시험 기간이라 한껏 예민해져 있는 딸아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로서 조규미 작가의 소설 『페어링』과는 시기적절한 만남이었다.

이번에 시험공부를 하는 딸아이는 이어폰은 꼭 챙겨서 스터디 카페에 갔다. 백색 소음이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는 세대, 지금 중고등학생의 현주소다. 낯설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넘쳐나는 소리와 자극에 나름의 해결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이렇게 필수품이 된 무선이어폰을 소재로 청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어느 날 귓가에 들려오는 낯선 소리, 과연 그 소리는 심신이 지친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줄까?

 



페어링/조규미 장편소설/자음과모음

 



추첨제라 제3지망 학교인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고수민'의 바람은 소박하다. 1년 후 지금을 되돌아보면서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정도. 하지만, 새 학기 첫날 '미니'가 없어진 사건으로 반의 '극혐 1호'가 되었다. '미니'는 새로 산 무선 이어폰으로 애칭까지 붙어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 없었던 나만의 공간이 그 순간 창조된 느낌이었다.


 

그런 미니를 잃어버리고 담임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반 아이들은 방과 후 1시간 동안 자신의 소지품과 옷가지와 사물함까지 뒤져야 했다. 그렇게 반 아이들을 '잠재적 도둑'으로 만들어버린 수민이는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졌다.

 

수민이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다차원(다른 차원에 사는) 아이들 - 세진이와 한결이 그리고 현수 - 과의 연결고리는 봉사활동이었다. 전교 1등이자 반 회장으로 의사가 꿈인 '김세진'은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며 상냥한 아이다. 이런 세진이가 수민이에게 봉사활동을 같이 하자고 권한 것이다. 그들이 모인 곳이 바로 '방송실'이었다.

 

수민이는 고등학생이 되면 방송부가 되고 싶었다. 자신이 틀어주는 음악이 교실과 교정에 울려 퍼지고 학생들이 좋아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방송부원이 된 이는 다차원 멤버인 송한결이었다.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었던 방송부, 방송실에서 주운 주인 없는 무선 이어폰은 수민이에게 다른 세계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

"네가 즐겁게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멋진 일이지."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질 때가 있다. 그 안의 어른들이 너무 못되고 못나서. 페어링에서도 여지없이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실력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학, 직장이 그 사람 자체로 평가되기 일쑤이다. 부정하면서도 명문 대학, 높은 연봉, 전문직으로 이루어진 특권층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불평등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그렇기에 세진같이 스트랩이 넓은 시계로 리스트 컷을 감추고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가 생긴다. 반대의 경우도 많다.

 


입시, 성적, 실력.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증명하라고 한다. 그 숨 막히는 전쟁터에 스스로 선택해 들어선 자가 몇이나 될까 싶다. 그 잘못되고 과도한 경쟁구도를 벗어나 각자 잘하는 일을 찾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쉽게 공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다.

 


수민이는 이어폰 너머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를 궁금해하고 찾으려 하다 궁지에 몰린다. 학교, 친구, 가족 그 어떤 공간에서도 속마음을 편히 내비칠 수 없었던 수민이는 오히려 큰 사건을 겪으면서 가족, 친구, 학교 이 모든 공간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토닥여주는 낯선 목소리 하나로 힘을 내게 되었다. 정말 힘들 때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을 해준 그 따뜻하고 기적 같은 공감은 수민이를 위로해 주고 성장시켜주었다.


 


 


"친구가 위험한 상황인 거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더라.

그 친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가지 않으면 그 애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할 테니까."

'그래, 우리 살아 내자. 함께 이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자.'

"잘했다. 이제 혼자서도 잘 해내겠는걸."

 


씁쓸하고 침통한 현실 하지만, 아이들은 굴복하지 않는다. 잘못은 인정하고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수민이에서 세진이에게 전달된 무선 이어폰! 세진이에게도 어느 날 낯선 목소리가 들릴까?

* 수민이가 고른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해지는 날씨이다. 함께 듣고 함께 느끼며 함께 행복해지는 노래들이 흘러나올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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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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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수잰 오설리번 지음/한겨레출판

 

 

책 제목이 왜 '소녀들'일까? 궁금했다.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심인성 장애들을 조사하고 정리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기능성 장애에 걸리는 환자 중 적어도 3분의 2가 여성이라고 한다.(p268) 스웨덴, 니카라과, 카자흐스탄, 쿠바, 콜롬비아, 미국과 가이아나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증상들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십 대 여자였으며, 쿠바 내 미국 대사관 외교관의 아바나증후군 외에는 여성들이 주된 환자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증상에 발작과 실신, 수면 증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라는 책 제목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되었다. 그렇다면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불가사의하다고 명명되는 집단 발병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쫓아가볼 차례라고 생각했다. 각종 의학 용어와 증상 관련 단어, 지리적 명칭 등 대부분 취약한 분야라 따라가는 점이 버거웠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리는 바에 대한 공감이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게 지탱해 주었다.


기존에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전문가 평가와 일반인 평가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도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렌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책은 기능성 장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히스테리'라 불렸던 병이 지금은 전환장애로, 또 더 최근에는 기능성 신경장애라는 더 적합한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일반의학 영역에서 심인성 장애와 신경학에서 기능성 신경장애는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흔하며,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이런 사실은 잘 모른다.

완곡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문구, 오해 뒤에 숨겨지기 때문이다. 기능성 신경장애를 의학적인 '불가사의'라고 하는 언론의 묘사가 단적인 예이다.


심인성 장애 - 기능성 장애 - 전환장애

우리 사회가 '심인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표시하는지 저자는 4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심인성'에 포함된 정신, 마음이라는 뜻의 접두사인 'psych'는 너무도 빈번하게 정신적인 유약함 혹은 정신 이상으로 잘못 해석된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심인성 장애 진단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소리에서, 독에서, 백신에서, 악마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저자가 들려주는 집단 발병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지리적, 문화적 제약과 함께 특정 나이대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이 집단 발병 피해자들이 처한 환경이 대부분 열악하다는 공통점도 눈에 띄었다. 신경학자로서 순수하게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수집해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나 그들의 고통을 목격한' 의사로서 도의와 역할이 상충하면서 고민하는 저자의 내면이 진실되게 다가왔다. 나 또한 콜롬비아의 라칸소나 지역 소녀들의 이야기가 매우 가슴 아프고 참담했기 때문이다.


"마치 훈련받은 그림자가 된 기분이래요."(p.115)




저자는 심인성 장애를 설명하는 공식을 '스트레스' 하나로 규정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심인성 장애나 기능성 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삶의 어떤 특별한 사건이 환자의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환자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고 의사가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범한 오류로, 환자와 의사 사이가 틀어져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크다. (p.143)


이 책을 읽으면서 '신체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질병에 대해 문화적으로 형성된 개념 역시 신체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시에나 사례를 보면서 이 신체화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심인성 질환이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이 의료계에서 소홀히 여겨진다는 저자.

아직까지 집단심인성질환은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정의되고 논의되는 방식과 이 집단 밖의 사람에게 이해되는 방식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질환이 집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기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끔은 집단사회원성질환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정신질환라기보다는 사회현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회복을 향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차원의 긍정적인 반응일 것이다. 비판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공동체, 지원해 주는 공동체, 건강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저자 수잰 오설리번은 말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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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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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다. 적확한 의미를 담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어른에 국한되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나는 비로소 나이를 먹으면서 본질과는 다르게 왜곡되는 '말'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말을 부수는 말』 책을 통해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둔갑되는 언어를 들여다보고 해체하는 일련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눈과 귀를 닫아버린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했다.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지음/한겨레출판

 


고통 - 노동 - 시간 - 나이 듦 - 색깔 - 억울함 - 망언 - 증언 - 광주/여성/증언 - 세대 - 인권 - 퀴어 - 혐오 - 여성 - 여성 노동자 - 피해 - 동물 - 몸 - 지방 - 권력 - 아름다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들은 묵은 때를 벗고 이라영 작가의 손을 거쳐 순수한 언어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 의미를 이어나가고 지켜나가할 역할은 독자인 우리의 몫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투영된 나의 자화상은 권력의 편보다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편 가까운 곳에 서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시선에 통감하고 말을 부수는 지난한 작업을 응원하게 된다. 예전에는 불편하지만 무심코 흘렸던 '말'을 여기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작가를 따라 살펴보니 외면했던 영겁의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왜곡과 기만이 넘치다 못해 썩어 고여있었다.

 

 

읽으면서 콕콕 찌르는 문장들이 있다.

<고통> 청자가 있는 고통은 조명 받는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이 아닐까.

고통을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운동이다. 이 표현처럼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증언하고, 기록한 이들의 나날들이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다. 고통의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고통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통이, 내 주변의 고통이 아니면 외면하거나 무시해버리기 쉽다. 주변의 고통에 좀 더 마음과 귀를 열어야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색깔> 비슷하게 생긴, 닮은 얼굴이라 더 가깝게 느끼면서 동시에 닮은 얼굴이라 더 쉽게 착취한다.

인종차별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주위를 떠올려 보았다.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외국인과 쉽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지인으로 엮인 그들과 같은 나라 사람들이지만 다른 공간에서 접하는 이들에게 차별 없이 친절하게 대했나? 잠시 생각해 본다. 아는 언니가 올해 이사를 가면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몽골인이라며 불편해했던 기억이 책 속 문장과 오버랩되면서 감정이 복잡해졌다.

 

 

<억울함> 자기 연민에 휩싸인 자와 투쟁하는 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불교 경전 <보왕삼매론>

저자로서는 <보왕삼매론>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의 법문을 통해 이 '억울함'에 대해 비로소 이해했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억울함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 밝혀지기 때문이다. …… 단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내 억울함을 밝히지 않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억울함을 당할 일이 생긴다면 이때는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도록 돕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과 억울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투쟁하는 이들은 '나'와 '우리' 그리고 '죽은 자'의 억울함을 연대한다. '다시는' 혹은 '더는' 이 간절한 언어는 개인의 억울함 해소를 넘어 공적 사안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임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이런 억울함 마저 오역한다. 특권층의 억울함을 '공정'으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무능력'으로 뒤바꾼다. 저자는 '다시는'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오역된 억울함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대> 한국인들이 특권의 불평등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분노"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2021)

MZ 세대, X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인지하게 된 꼭지였다. 세대 구분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고, 사용하는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묵과했던 부분들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공정 세대'라는 개념은 특정 계층의 억울함을 특정 세대의 분노로 둔갑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충분히 수긍되었다.

 

 

<권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직무와 무관한 능력까지 검증받으며 억울한 상황에 처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모르거나 몰라도 된다 우긴다.

2016 트럼프의 당선, 2022년 윤석열의 당선이 시사하는 바를 관통하는 꼭지로 권력의 언어에 대해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뼈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되거나 반대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고 던진 '말'도 찔리면 아프다. 그렇다면 거대한 칼이 되어 우리 사회 곳곳을 향해 거침없이 휘둘러진, 작정하고 왜곡된 권력의 언어가 만든 상처는 어떨까. 뼈아픈 상처를 입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소수자라고 안심하고 있는가. 권력층에게는 우리가 그들이고 그들이 우리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다.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고통을 통해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는 시몬 베유의 말을 늘 되새긴다. 고통을 통과한 언어가 아름다움을 운반하기를, 그 아름다움이 기울러진 정의의 저울을 균형 있게 바꿔놓기를. 이 세계의 모든 고통받는 타자들이 관계의 대칭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고통에서 아름다움까지

 

권력의 고리는 탄탄하지 못하지만 이리저리 엮여있어서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권력을 뒷받침하는 왜곡된 언어를 부수는 저항의 연대는 더 끈끈해져야 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져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어져도 저항의 목소리를 이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결연한 의지를 읽었다. 우리 한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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