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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수잰 오설리번 지음/한겨레출판
책 제목이 왜 '소녀들'일까? 궁금했다.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심인성 장애들을 조사하고 정리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기능성 장애에 걸리는 환자 중 적어도 3분의 2가 여성이라고 한다.(p268) 스웨덴, 니카라과, 카자흐스탄, 쿠바, 콜롬비아, 미국과 가이아나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증상들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십 대 여자였으며, 쿠바 내 미국 대사관 외교관의 아바나증후군 외에는 여성들이 주된 환자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증상에 발작과 실신, 수면 증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라는 책 제목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되었다. 그렇다면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불가사의하다고 명명되는 집단 발병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쫓아가볼 차례라고 생각했다. 각종 의학 용어와 증상 관련 단어, 지리적 명칭 등 대부분 취약한 분야라 따라가는 점이 버거웠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리는 바에 대한 공감이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게 지탱해 주었다.
기존에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전문가 평가와 일반인 평가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도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렌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책은 기능성 장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히스테리'라 불렸던 병이 지금은 전환장애로, 또 더 최근에는 기능성 신경장애라는 더 적합한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일반의학 영역에서 심인성 장애와 신경학에서 기능성 신경장애는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흔하며,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이런 사실은 잘 모른다.
완곡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문구, 오해 뒤에 숨겨지기 때문이다. 기능성 신경장애를 의학적인 '불가사의'라고 하는 언론의 묘사가 단적인 예이다.
심인성 장애 - 기능성 장애 - 전환장애
우리 사회가 '심인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표시하는지 저자는 4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심인성'에 포함된 정신, 마음이라는 뜻의 접두사인 'psych'는 너무도 빈번하게 정신적인 유약함 혹은 정신 이상으로 잘못 해석된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심인성 장애 진단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소리에서, 독에서, 백신에서, 악마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저자가 들려주는 집단 발병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지리적, 문화적 제약과 함께 특정 나이대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이 집단 발병 피해자들이 처한 환경이 대부분 열악하다는 공통점도 눈에 띄었다. 신경학자로서 순수하게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수집해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나 그들의 고통을 목격한' 의사로서 도의와 역할이 상충하면서 고민하는 저자의 내면이 진실되게 다가왔다. 나 또한 콜롬비아의 라칸소나 지역 소녀들의 이야기가 매우 가슴 아프고 참담했기 때문이다.
"마치 훈련받은 그림자가 된 기분이래요."(p.115)
저자는 심인성 장애를 설명하는 공식을 '스트레스' 하나로 규정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심인성 장애나 기능성 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삶의 어떤 특별한 사건이 환자의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환자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고 의사가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범한 오류로, 환자와 의사 사이가 틀어져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크다. (p.143)
이 책을 읽으면서 '신체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질병에 대해 문화적으로 형성된 개념 역시 신체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시에나 사례를 보면서 이 신체화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심인성 질환이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이 의료계에서 소홀히 여겨진다는 저자.
아직까지 집단심인성질환은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정의되고 논의되는 방식과 이 집단 밖의 사람에게 이해되는 방식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질환이 집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기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끔은 집단사회원성질환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정신질환라기보다는 사회현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회복을 향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차원의 긍정적인 반응일 것이다. 비판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공동체, 지원해 주는 공동체, 건강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저자 수잰 오설리번은 말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