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로그인
최현주 지음 / 애플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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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나는 '진짜 세계'에 로그인했다.


너에게로 로그인/ 최현주 지음/ 애플북스




가제본 [알고 보니 내가 인공지능인 건에 대하여]으로 먼저 읽었던 이야기가 드디어 멋진 옷을 입고 정식 출간되었네요.







[너에게로 로그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소설은 인공지능 시스템 가이아와 그가 만들어낸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 베타 테스터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현실과 가상이 적절히 섞여 근미래의 우리 청소년들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연령대라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식본은 가제본일 때보다 더 깔끔하게 정돈되어 읽기가 편했습니다. 한번 읽은 이야기인데도 어느새 빠져들어갔습니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듯한 기분에 묘하면서도 생각이 깊어지게 만드는 소설집입니다.







인공지능 시스템 가이아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상상이 더해졌기에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은 인간의 욕망과 맞물려 윤리적인 문제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인간들은 뇌의 정보를 전기적 형태로 변환해 영원불멸의 삶을 누리고자 하고, 그 목표를 위해 희생되는 인공지능 로봇들은 마치 인간처럼 쓰러져갔죠. 그 모습이 기이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 속에서 자신이 인공지능 로봇인지 모르고 다른 로봇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휴머노이드와 두뇌의 결합으로 탄생한 존재는 과연 인간일까요? 기계일까요?


<오류로 인해 재시작합니다>는 학교 폭력을 까마귀와 엮어냈습니다. 까마귀를 일컫는 '효조'가 등장인물인 이 이야기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 방관자로 움츠려드는 우리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정 폭력, 게임 중독, 가스라이팅, 이상형 등 십 대 청소년들의 오늘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특히 <안전 모드 진입에 실패했습니다>는 질투가 가상의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에게로 로그인]은 미래를 미리 체험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있는 요즘, 사람과 인공 지능이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 어느 날을 여러 버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SF와 환상이 뒤섞인 이 이야기들은 미래에서 우리에게 보내온 위험 경고이기도 하지만, 변화를 꿈꾸는 희망 메시지이기도 한 거죠.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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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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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창비인권만화04/ 창비




창비인권만화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호시탐탐>

8분의 작가들이 모여 보여주는 일곱 가지 시선을 따라 세상 속 숨은 차별을 발견하고 체감할 수 있다.



먹이를 찾는 맹수의 눈(호시, 虎視)처럼 우리 사회의 낮고 약한 부분을 노리는 편견과 혐오에 맞서 숨은 차별을 발견해낼 줄 아는 또 다른 '호시', 즉 밝은 시선[晧視]과 너른 시선[浩視]과 좋은 시선[好視]을 갖출 때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다질 수 있습니다.
- 여는 글 中




책 제목 '호시탐탐'에 담긴 의미를 떠올리며 쫓아가는 여정을 통해 우리네 인권의 무게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힘겹게 쟁취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계속 돌고 있다. 이를 무심히 바라볼 수 없는 이들의 행보가 남기는 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이만하면 좋은 세상'이라는 위태위태한 변명과 핑계로는 부족하다. 깨어있는, 의식하는 이들이 마음으로 담아낸  <호시탐탐>이 내미는 손을 잡게 될 것이다. 



노동 ·성 ·세대·지역 ·교육 ·이주민 차별과 기후 위기와 돌봄에 관한 이야기가 만화가들의 펜촉 끝에서 피어난다. '보통', '평범', '정상', '평균' 등의 범주로 뭉뚱그려 사회를 바라보면 분명 경계 밖이 존재한다. 과연 개개인의 삶이 이런 잣대로 평가되는 게 올바른 일인지……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 효율성, 이윤 등 자본의 방정식으로 접근하는 오늘날의 세태가 진정 소중하고 귀한 가치를 경시하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였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 같은 소리 하네.
…이제서야 내가 사람으로 보입니까?








'사람'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한 우리. 김보통 작가의 <최후의 보호막>은 일하는 노동자로서 안전하게,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해야 하는 세상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입이 되어 전하고 있다. 비정규직, 더티 워커 등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상한 가족은 없어.
서로 사랑하면 다 똑같은 가족이야."





'정년이'로 주목받은 서이레 작가의 대본과 요니요니 작가의 감각적인 그림체가 만난 <청첩장 도둑>
이혼 가정을 향한 밖의 시선과 성 소수자와 그 가족의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인물별로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족'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가 소중하기에 더 가슴 아팠던 순간들이 부딪치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가족이 어여뻤다.







귀여운 그림체 너머 무게 있는 주제를 펼쳐낸 김금숙 작가의 <섬>
작은 영토의 대한민국, 인구 5천만 중 9백만이 살고 있는 서울이 있다. 경기도까지 합하면 2천만이 넘는 인구가 그 좁은 지역에서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있다. 김금숙 작가는 서울과 섬의 생활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극명하게 대비되게 표현하고 있다. 숨 가쁜 도시와 느린 시골, 사라진 지역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 그리고 출생률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 노년 세대가 가득한 공간. 미래에 대한 이 예측을 바꿀 수 있을까?








익숙한 그림체로 <수수께끼>를 이야기하는 김정연 작가.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상품'으로, '엄마'로, '도리'로 불리던 '나'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필요한 환기였다. 누구나 필요한 '돌봄'에 대한 짧지만 묵직한 질문은 세상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기후 위기가 걱정되어 만화가가 된 구희 작가는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을 들려준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



달리기에 진심인 은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후 위기를 우리네 삶 속으로 끌어당겼다. 기후 위기에 처한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에 관한 작가의 코멘터리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와 책임을 되새겨 보게 된다.



다문화와 이주민에 관한 시선을 음악으로 풀어낸 정영롱 작가의 <끄나빠> 
인도네시아에서 온 닐루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외국인인 노아 그리고 지후가 학교 대표 밴드로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갑자기 꾸려진 밴드부로 음악적 기반이 부족하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끄나빠. '왜'를 의미하는 인도네시아 말로 각자의 사정을 그려낸다. 끄나빠는 여러 의미로 만화 속에서 등장한다. '왜'로 다가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현실적인 외침이 인상적이었다. 



사적 제재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최경민 작가의 <참교육>
지우 선생님처럼 헷갈리는 마음이 컸기에 더 와닿는 만화였다. '교사'의 무게와 '참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사적 제재에 관한 우려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피해자 중심에서 답을 찾고자 다가서는 진중한 모습으로 공감을 자아낸다.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 해서도,
미처 감각하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도
모두 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가는 나, 너,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외면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같이 손잡고 걸어나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이 걸어가는 그 길을 그려내어 우리를 깨우치게 해준 <호시탐탐>,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힘찬 걸음에 힘을 실어줄 목소리다. 숨은 차별을 발견한 시선들이 모이고 모여 틈 같이 경계를 부수고 흐르고 흘러 다채롭게 어울리는 사회를 그려본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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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동남아 - 24가지 요리로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현시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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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동남아/ 현시내 지음/ 한겨레출판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원들이 출판하는 동남아 관련 도서들을 한겨레 하니포터 활동을 하며 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특색 있는 음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관광지로 각광받는 지역이라 여행을 가지만, 실제 그들의 일상을, 유구한 역사를 품은 유적지를 제대로 감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겹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관련 도서를 읽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고, <인물로 읽는 동남아> 도서를 읽어서 아는 정보들이 나오니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번 [미식 동남아] 도서는 현시내 작가가 저술한 책으로, 음식과 본인의 이야기로 동남아시아를 한층 더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다. 



총 24가지 음식을 통해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해가는 일련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향신료를 둘러싼 열강의 제국주의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와 중국인이 이주하여 현지 여인과 교혼하여 새로운 계층이 사회에 등장한 다문화 현상들, 여러 종족들이 한 나라 안에 혼재하는 독특한 동남아가 제각각 맛과 냄새를 풍기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알고 먹어본 음식과 들어본 음식 그리고 생소한 음식들의 향연은 반가움, 호기심과 함께 동남아 국가의 특수성과 음식으로 드러나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과 결집하는 구성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시내 작가 본인이 직접 먹어보고 만들어보는 등 익숙한 음식들이기에 더 진정성 있게 담아내어 우리에 닿는 지점이 더 넓고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유학시절의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들과 음식들에 관한 일화는 국적, 나이, 성별, 종교를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순수한 우정과 교류를 전해준다. 다시 찾아갈 이유가 되고, 추억하고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되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되기도 하는 음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면은 일상과 축제에 엮인 
역사의 한 가닥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식민 지배, 독립, 전쟁, 쿠데타 등 지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레시피로 전통음식을 만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음식문화와 재료가 융합하여 만들어낸 혼종 음식으로 한 사람, 한 세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듭하며 진화해온' 이야기 안에서 동남아의 오늘을 만날 수 있었다. 










국가의 주도로 탄생한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중국의 면에 스페인의 문화를 더한 필리핀의 국민 요리 '빤싯',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 문명과 교류하면서 자기 고유성을 지키려는 미얀마식 볶음밥 '터민쬬', 베트남 사람들의 생존과 삶을 향한 의지를 담고 있는, 부서진 쌀로 지은 밥을 뜻하는 '껌떰', 말레이 문화권을 연결하는 역사적 매개체가 된 인도네시아의 '른당', 일본의 빙수가 필리핀만의 '할루할로'가 되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었다. 









식도락 여행을 통해서 이웃 동남아를 좀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좀 더 넓은 시야로 동남아를 다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즐거운 미식 역사 여행을 떠나고픈 이들에게 [미식 동남아]를 추천합니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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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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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소설집/ 창비




전지영 작가의 첫 소설집 <타운하우스>

작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진작가인 그는 8편의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출간하였다. 


'일상의 균열을 파헤치는 능란한 필치' 

'소설 쓰기의 새로운 전범'

범상치 않은 수식어를 단 전지영 작가의 <타운하우스>를 펼쳤다. 








소재와 배경이 다르지만, 작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추고픈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밑바닥의 감정을 긁어냈다. 죄책감, 수치심, 모멸감, 질투, 불안 등 삶의 거리에 눅진하게 들러붙어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실체를 지닌, 물성을 띤 개체처럼 감각하게 만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느껴야 하나? 싶을 정도까지 예리하게 독자들을 인도하는 전지영 작가의 능수능란한 필치에 이끌려 어느새 방어막 없이 민낯으로 공격당하는 듯하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들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여러 이야기로 전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옳고 그름의 선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과 입장에서 그려지는 개개인의 이야기들은 명확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이 없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이, 감정이, 긴장이 묘사된다.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인물들에 어느새 이입되어 상황이 주는 압박을 같이 느끼게 되니 흥미로웠다. 기묘한 이야기야, 하면서도 다음이 궁금해 숨을 죽인 채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마 그가 건들어서 그럴 것이다. 애써 뒤돌아서서 외면하는 감정을 미묘하게 들쑤시고 있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말의 눈에 비친 얼굴을, 

곧 부서질지 모르는 플라스틱 쪼가리가 의지할 전부인 싱크대 속 쥐를,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그리고 결코 그 마음에 지고 싶지 않은 자신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무언가가 왜 필요한지를 모르겠는 이유를, 

소문이 공격하는 이의 무고함을 믿는, 실력 없는 이의 두려움을, 

알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세계를 향해 걸어나가는 지인에 대한 질투를, 

아들의 미래가 무너진 그날의 진실을 알고픈 간절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남은 아이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또다시 이어질 것이다.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전지영 작가는 알고 있다. 씁쓸하지만, 버티거나 잊거나 혹은 같이 견디어간다. 불안의 기저에 깔린 본디 마음을 안다는 건 아니 인정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 아닌가. 전지영 작가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친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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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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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무엇일까?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저자 임지은 작가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라 말한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산문/ 
한겨레출판





서울대 나민애 교수는 '에세이는 조금 더 과거의 일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 가시를 건드는 글'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에세이 쓰기에는 깊게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를 지키고, 발견하기 위해서 생각의 뿌리를 깊게 탐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민애 교수의 말은 임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쓰는 자세와 일맥상통한다. 이번 산문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또한 '나'에 관한 것과 '당신'에 관한 것 2가지 테마로 싫어하는, 미워하는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얻은 내밀한 그만의 이야기가 이 한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기도 망설여지는 법이다. 









좋아하는 마음 안에 싫어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 안에 좋아하는 마음이 존재하기도 하는 양가감정과 모순을 인지하고 있는 우리는 임지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마음으로 도리어 깊어지는 좋아하는 마음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배반하는 용기뿐 아니라 배반 당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부모를 배반하여 부모 너머를 가보려 하기에 동생에게도 자신을 배반하기를 격려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무뎌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각자의 세상을 인정하려는 용기, 배반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용기는 부모 자식 간의 영역만이 아니었다. 이토록 친밀하고 끈끈한 자매라니…… 


반지하, 이혼, 가난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가는 그런 일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지치고 열악한 삶에 앞서 엄마는 살아 있다.

엄마의 매일에 기대어 호두는 살아 있다. 

내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들은 아름다움에 앞서 

살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언제나 앞서는 

살아있음은 정말로 아름답다. 

- 아름다움에는 더 많은 것이 속해 있어




사시사철의 슬픔 하면 떠오르는 게 냉장고의 소음이라는 그. 냉기를 위해 많은 열을 내는 냉장고처럼 유능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무능이 가장 두려웠던 그가 '글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시사철 켜져 있어 고장 나기 충분했다는 고백에 마음이 짠해졌다. '작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저자를 얼마나 뒤흔들었는지, 또 저자 스스로 흔들렸는지 알 수 있었다. 글을 써내지 못하는 자신의 신통찮음이 글을 써도 신통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면서도 글을 요구할까 봐 무서웠다는 모순이 요동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음을 고장 난 냉장고의 부활로 알려주는 그의 글재간이 사랑스럽다. 








서로를 위하느라 자신을 외면하는 법부터 익혀온 한 가족의 산물이라는 게 자신을 곤두서게 하고 고지식하게 하고 상처받게 한다고 임지은 작가는 밝힌다. 자신을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는 그는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개 호두에게 배운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걸, 머무르는 자리에서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걸. 

표지 그림이 인상적인데, 이 이야기와 연결되는 듯하다. 부다페스트의 예술가 산드라 폴리아코프의 작품으로,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여성의 생동감 넘치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의 에르메스에 관한 이야기는 명품 아니 지금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한다. 오지 않는 미래를 대비하며 현재의 사람은 버티는 것이고, 미래의 역할은 거기에 있을 따름이라는 현명한 문장이 눈에 박히는 이야기였다. 



삶에 무엇을 중심으로 두는지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나무를 지금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이 아닌 씨앗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떠올리며 바라보는 방식으로 지지분한 시간을 지날 수 있다고 말하는 진지함이 좋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산문집으로 임지은 저자와 주변 인물의 삶을 만났다. 싫어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자신을, 가족을,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프고 부끄럽고 두렵더라도 기꺼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헤아리려는 임지은 저자의 수고가 세상의 다양한 시선과 모순 앞에서도 그를 담대하고 꼿꼿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한겨레 하니포터 9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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