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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산문/ 한겨레출판
웃다가, 입맛 다시다가, 어느새 술상을 차리게 만드는 책, 바로 권여선 작가의 <술꾼들의 모국어>다. 2018년 출간되었던 <오늘 뭐 먹지?> 작품을 2024년 개정하여 출간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권여선 작가가 이토록 '술과 안주'에 심취한 분이었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읽기 시작했다. 역시 먹는 것을 좋아하는 1인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어서 "해 먹어봐야겠다. 맛있겠는걸. 저런 수고 끝에 맛있는 음식이 아니 안주가 탄생하는 거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식거리다가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 예사롭지 않다.
목젖이 바르르 떨려온다.(67쪽)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69쪽)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118쪽)
간지에 권여선 작가가 손글씨로 가득 남긴 편지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본인이 엄선한 안주 메뉴판을 건네고, 안주를 성심껏 고르고 한 잔 같이 기울이기를 청한다. 마음이 혹해 얼른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절에 걸맞은 안주들을 면밀히 살펴본다.
익숙한 음식 아니 안주들도 그의 표현으로 만나니 특별식처럼 느껴진다. 안주와 얽힌 이야기 덕분에 더 풍성해진다. 김밥, 만두, 순대 같은 친근한 음식들이 추억 속 인물들을 소환하여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삼시 세끼 다른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글을 쓰는 작가를 상상하게도 한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저자가 추천해 주는 여름 안주들은 특색 있다. 매운맛을 좋아하여 청양고추만 엄청 썰어 넣은 고추전을 부쳐 먹는지라 매운 음식들 레시피들이 더 눈에 띄었다. '깜장'과 '고추장물'이다.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라는 감각적인 표현에 지나간 여름을 다시 뒷걸음질 치게 만들까? 싶었다.
'목에서 손이 나온다'라는 표현이 재밌었다. 음식에 진심인 마음과 그만큼 맛에 민감하여 정성을 쏟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술과 안주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하는 그 공간과 시간에 이야기가 쌓여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 독자들에게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의 재료가 되어주었다.
음식에 정성을 다하시는 저자의 어머니 덕분에 새로운 음식들을 접했다. 사투리인지 구수한 어감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괜스레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까죽', '까막고기' 음식에 담긴 저자의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친정 엄마의 손맛 담긴 음식들을, 추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음식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배는 허기지고 혀는 친구 식도와 인사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머리는 새로 입력된 음식들과 잊혔던 과거의 음식들을 재배치하느라 분주하다.
"술을 좀 줄이자. 죽을 때까지 먹게."가 '인생의 한 마디'라 밝힌 진정한 술꾼 권여선 작가의 사계절 안주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하고 만족스러웠다.
권여선 작가님, 술 한잔하실래요?
안주는 냄비국수 어떠세요? 이제 가을이잖아요.
첫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 혀를 소중히 여기소서.
언제나 한결같은 '맛'을 행복으로 아는, 그 맛을 지키는데 목숨을 거는 권여선 작가의 다음 주류문학 작품을 기다린다. 일단 아쉬움은 단편소설 《자전거, 캔맥주 그리고 곰》으로 풀어본다. 캬~ 목은 시원한 맥주를 넘기고, 손가락은 책장을 넘긴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