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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전수경 지음/ 창비
"많은 경우 우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야 하죠."
「우주로 가는 계단」에서 평행 우주 이론을 바탕으로 상실과 그리움, 치유와 위로를 담담히 그려내었던 전수경 작가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가 출간되었다.
전수경 작가는 SF 장르로 상처와 고통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담백한 어조로 다정하게 내미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만다. 이번에도 딸 희진과 엄마 미영이 각자 짊어진 상처를, 희진의 친구 윤아를 침잠시키는 우울증을 다중 우주와 연결시킨 흥미로운 접근으로 마주 보게 한다. SF 장르로 과학적 호기심을 배경으로 하면서 인간 내면의 상처와 골을 살피는 따뜻한 전개는 우리네 감각을 깨우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움츠렸던 몸을 펴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너는 오직 여기에만 있어.
이 세계에만 존재해.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이유야.
이 세계는 나에게 가혹하고 매정했지만,
그래서 너무 무섭지만 떠날 수가 없어.
네가 여기 있으니까.
희진아, 너는 엄마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야."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고등학교 1학년 '제갈희진'에 공감하며 『채널명은 비밀입니다』를 읽어 내려갔다. 희진의 엄마인 미혼모 '제갈미영'에 관한 서사는 세세하지 않았고, 현재의 모습이 부각되었기에 같은 엄마이기에 그녀를 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희진의 속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안전한 공간인 텔레비전 앞에 자신을 가둬버린 미영을 말이다. "그래도…… 네가 똑똑해서 다행이야." 희진이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슬펐다. 희진을 바라보는 엄마 미영이 안타까웠다. 서로에게 분명 소중한 존재이건만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모녀가 답답하고 가슴 아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안다고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우매한 일인가. 희진이는 엄마를 잘 안다고, 윤아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희진이가 본 그들의 모습은 일부였을 뿐이고, 희진이의 관점으로 본 그들이었을 뿐이다. '절대'라는 말을 싫어하는 윤아처럼 절대로 확신할 수 있는 것 없으니까.
우리 세계에서 희진이가 평소와 다른 윤아의 문자 메시지를 그냥 넘기지 않아서, 다른 세계에서 누군가 이동 중 사이 틈에 갇힌 엄마를 구조해서 윤아를, 엄마를 구할 수 있었다. 스스로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했던 희진은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엄마가 자신을 떠나버릴까 봐 걱정한 희진이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는 반면, 현 세계를 떠나고 싶을 만큼 두렵고 무섭지만 자신이 선택한 세계인 희진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옹골찬 미영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자신이 잘 살피지 못해 친구 윤아를 떠나보냈다는 자책감에 다른 세계의 윤아를 만나기 위해 이동까지 감행한 소민의 용기에 감동받았다. 그렇게 절실하고 진실한 마음들이 쌓여 타인을 구원하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미영의 말처럼 다중 우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족, 친구, 학교, 학원, SNS 등 다양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세계일지라도 세계가 확장되면 중요한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도 타인에게 세계를 침범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함께 하며 소중한 세계를 공유할 뿐이니까.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덕분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세계를 좀 더 넓혀가는 내일을 그릴 수 있었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은 지금 흔들리고 불안한 이들에게 수많은 세계를 품고 있는 '나'라는 우주를 발견할 수 있도록 손 내미는 전수경표 소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른 세계가 우리에게 값진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나 제도, 관습 등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거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양하고 유연한 변화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소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를 이 가을에 다들 만나봤으면 좋겠다.
"엄마는 두 세계를 산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