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서툰 어른을 위한 말하기 수업 -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의 기술
보이스무드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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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솔직히 다른 책과 크게 다를 것 없을거라 생각했다. 말하기 수업이라니, 어른이라면 심리적으로 어느정도 할말과 안할말쯤은 구별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차례를 보면 반드시 누군가가 생각이 난다. 말을 자르는 사람, 난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라며 자신을 치켜세우는 사람, 공격적인 말투, 사람의 계급을 나눠 대우하는 사람들. 등등 차례만 봐도 궁금한 심리가 너무 많았다.



많은 심리서적들이  "이런 심리가 있습니다"까지는 설명해주는데,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라는 질문에는 시원한 답을 하지 않는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은 설명이 나오면 반드시 사례가 따라오고, 사례 다음에는 바로 쓸 수 있는 문장이 나온다. 읽는 내내 이미 답을 손에 쥐여주는 느낌이라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책이었다.


가장 먼저  <걱정이라는 가면을 쓴 통제> 부분을 읽었다.

읽는 순간 바로 한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도 떠올랐다.  책에는 혼자 유럽 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친구가 어두운 얼굴로 "안 갔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 익숙한 상황이었다. 이직이든, 새로운 도전이든, 인생을 살다보면,  굵직한 결정들을 내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들려오는 "위험하지 않겠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들.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고 판단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땐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한가, 정도로 넘겼다. 



그런데 이 책은 그걸 딱 짚는다. 그게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통제 욕구의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가 깔린 나쁜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불안은 결국 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의 불안을 나에게 떠넘기는 행동이라고 한다. 가스라이팅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누군가를 아낀다면 막는 게 아니라, 더 잘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진짜 지지는 상대를 주저앉히는 게 아니라, 그가 선택한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안전장비를 챙겨주는 것일 거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막상 내가 그렇게 해왔는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안 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 적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게 사실은 나의 불안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행동이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안 했으면 좋겠어" 대신 "도와줄게"로 바꾸라고 말한다. 이런 변경된 말은 사실 관계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이야기다. 부정에서 지원으로. 말 몇 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싶지만, 실제로는 말에서 나오는 어투가 관계를 재설정하기도 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 챕터에서는 실제로 겪었던 사람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 있었다. 정말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은 분이었는데, 진짜 모든 말의 시작이 죄송한데요…였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해도 "죄송한데요, 저 먼저 나가도 될까요?", 회의에서 의견 하나 낼 때도 "죄송한데요, 제가 잘 모르는 건데…"라고 시작하는 분이었다.



처음엔 그냥 겸손한 사람이구나, 예의 바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근데 같이 일한 지 좀 되니까 팀 내에서 그분한테 묘하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한 팀장이 그분한테 유독 말을 툭툭 던지거나, 업무 지시를 좀 부당하게 내리는 경우가 생겼다. 상대가 몸을 낮추고 들어오니까 그걸 예의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해서 사과하는구나' 혹은 '너는 내 밑이구나'라고 착각하며 점점 더 제압하려 드는 구조가 생겨버린 거였다. 왜 모두가 아는 말이 있지 않나.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는 인간들.. 



당시엔 그 팀장이 유독 못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과도한 사과가 반복되면 듣는 사람의 무의식이 상대를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팀장이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정확히 그 메커니즘이 있었다. 사과가 반복되면 뇌는 스스로를 을로 인식하게 되고, 상대 또한 나를 얉잡아보게 된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상황에서 어떤 동료가 그 팀장을 대놓고 제압하려 했다는 거다. 팀장이 그분한테 또 함부로 말하면, 그 동료가 옆에서 "잠깐만요, 지금 그 말이 맞는 건가요?"하고 치고 들어왔다. 처음엔 통쾌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도 그분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왜냐면 그분 자신이 여전히 "죄송한데요…"로 시작하는 패턴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누군가 제압해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었던 거다. 오히려 그 동료의 개입이 그분을 더 수동적으로 만든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책에서 말하듯, 결국은 본인이 언어 습관을 바꿔야 한다. "죄송합니다"를 "잠시만요"로 바꾸는 작은 차이가 쌓이면서 자기 자신을 대하는 무의식도 바뀌고, 그게 외부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단어 하나 바꾸는 건데, 위치가 바뀐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 분도 이런 심리책을 자주 읽었거나. 주변에서 그런 심리를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3자를 방패로 삼는 것>도 읽으면서 정말 많이 봤던 장면들이다.

책에서의 예시는 이거다. "이사님이 별로라고 하실 것 같아요." 이런 말들. 그게 결국 자기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반박을 피하려는 심리라는 걸 그런 이유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무의식과 관계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말이 이 챕터를 읽을 때 가장 공감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분리 질문, 그러니까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되돌려주는 기술이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숨을 곳을 없애는 방식이라 꽤 유용하겠다 싶었다.


사회생활의 연차가 쌓일수록 느끼는 게 있다. 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며,  그 사람이 어떤 관계 안에 서 있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책이 전반적으로 좋은 이유는, 심리 개념을 설명하고 끝내지 않고 실제 대화 예시를 Before/After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냥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가 아니라 이 말을 이 말로 바꾸면 됩니다를 보여준다.  읽고 나서 바로 써먹어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적인 정서 위에서 쓰인 예시들이라 더 피부에 와닿는다. 팀장님, 이사님, 동료, 친구 이런 단어들이 나한테 낯설지 않은 관계들이니까. 해외여행, 이직, 퇴사, 연인 관계 같은 장면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이라서, 심리적으로 쓰이는 말투를 확인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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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쉬워지는 최소한의 세계사 - 알고리즘, 정규분포, 게임 이론까지 역사를 움직인 18가지 수학 개념
후쿠스케 지음, 이정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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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40%도 안 된다. 책에서는 이런 통계를 보여주는데,  평균이면 딱 중간일텐데, 일부가 너무 많이 가져가서 평균을 위로 잡아당겨버리니까, 실제로는 평균 아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2023년 일본인 평균 연봉은 4,870만 원인데 중앙값은 3,764만 원. 100만 원도 아니고 1,000만 원 넘게 차이가 난다. 이 숫자 하나를 보니, 한국도 그렇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이라면 일단 거부감부터 든다. 공식 나오면 눈이 흐려지고, 미적분 같은 단어는 내 인생이랑 아무 상관 없다. 그럼에도 [수학이 쉬워지는 최소한의 세계사]를 읽어본 이유는 수학과 세계사를 연관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수학은 어렵지만, 세계사는 쉽게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들어서 같이 함께 읽어보면 두가지 지식을 한꺼번에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레토 법칙은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다. 아니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공식이다. 80대 20 회의실에서도 나오고, 자기계발서에서도 나오고. 근데 이게 완두콩 밭에서 시작됐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파레토라는 사람이 집 앞마당에서 완두콩을 수확하다가 발견한 법칙이다. 전체 수확량의 80퍼센트가 20퍼센트의 꼬투리에서 나왔다는 것. 그 사소한 관찰이 이탈리아 토지 소유 데이터로 이어지고, 유럽 각국의 소득 분포로 연결되고, 결국 <소수가 전체를 좌우한다>는 구조를 수식으로 정리해냈다.



이걸 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쏠려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근데 그 느낌을 숫자로 확인해주는 게 수학이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한번 들었다. 책에서 설명하는 건, 이런 공식이 먼저가 아니라 관찰이 먼저였다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파레토 분포식의 a값이 소득 격차를 나타낸다는 설명이 난생처음 쉽게 다가왔다.  숫자가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쏠려 있느냐"의 측정값이라고 받아들이니까. 더 쉽게 느껴지는 거다.



파레토의 삶도 꽤 흥미롭다. 혁명이 들불처럼 번지던 1848년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공화주의 사상으로 추방된 망명자였다. 이탈리아 통일이 막 이뤄지던 혼란한 시기를 청년으로 보냈으니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을 거다. 토목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경제학 강사가 됐다가, 40대에 로잔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 그리고 그의 강의를 청강한 학생 중에 나중에 무솔리니가 있었다는 대목은 놀라웠다.


책의 중반으로 넘어가면 다니엘 베르누이가 나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수록 상금이 두 배씩 늘어나는 게임이다. 수학적으로 기댓값을 계산하면 무한대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전 재산을 내고라도 참가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근데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 


 10억 원을 내고 이기려면 앞면이 연속으로 20번 넘게 나와야 하고, 그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몸이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수학은 맞고, 사람은 틀리게 마련이다.  베르누이는, 사람은 기댓값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가 느끼는 가치로 판단한다. 나도 늘 계산보다 감각으로 움직이는 편이라, 베르누이의 확률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집중하며 읽었던 것 같다. 투자할 때도, 선택할 때도. 그게 틀린 게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게 설계돼 있다는 걸 수식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베르누이다.


요한 베르누이와 아들 다니엘의 이야기는  거의 막장 급이다. 그는 아들이 잘하는데, 기쁜 게 아니라 질투를 한다.  함께 상을 받자 격분해서 아들을 집에 못 들어오게 막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의 저서 <유체역학>을 도용해서 출간 연도까지 조작했다. 유체역학은 비행기 양력을 설명하는 베르누이 방정식이 담긴 책이다. 그 역사적인 연구의 뒤에 이런 지저분한 질투가 있었다는 게 역설적이다.



다니엘은 형을 잃은 충격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는 그 대신 제자 오일러를 러시아로 보냈다. 그나마 오일러와의 공동 연구가 상실감을 버티게 해줬다고 하니, 다니엘 입장에선 아버지한테 버려진 기분이었을 거다. 수학자가 이렇게 인간적으로 지저분하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계산적이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이 좋아졌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건 아니다. 복잡한 수식은 여전히 보기 싫다. 근데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수식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호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라는 거다. 



평균이라는 말이 뉴스에 나오면 중앙값은 얼마이며, 누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자동으로 따라올 것 같다. 그게 책을 읽음으로써 느끼는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볼 때 숫자 뒤에 숨은 흐름을 읽는 눈이 생기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변화된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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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숲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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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래 제목은 [마가]였다. 7년 만에 [괴담의 숲]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마가]라는 제목은. 마가 낀 별장일 수도 있고, 마귀가 사는 저택일 수도 있고. 어느 쪽으로 읽어도 이 저택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그 공포가 저택 안에서만 머문다면, 제목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을 거다. [괴담의 숲]으로 달라진 건, 공포가 집 밖으로 번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저택을 감싸고 있는 무언가가 숲 을 지나 구역 전체로 확장된다는 걸 제목이 먼저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사사 숲. 덤불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소리를  작가는 사아사아 라고 표현했따.  사아사아, 하고. 그 소리가 계속 들리면 기분이 묘해진다. 고무로 저택 뒤에 바로 그 숲이 있다. 주인공 유마가 발을 들이게 되는 곳. 제목이 [마가]일 때는 저택이 중심이었다면, [괴담의 숲]이 되면서 그 저택마저 삼키는 숲이 전면에 선다.. 나는 이 제목 변경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택에는 유마의 동거녀 사토미가 함께 산다. 사토미에게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세이이치가 있고. 복잡한 구성이다. 겉으로 보이는 관계와 실제로 얽혀 있는 관계가 다르고, 그 틈에서 서늘한 비밀이 있다. 유마와 세이이치는 결국 고무로 저택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그리고 도모노리. 유마의 삼촌. 처음에는 보호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얼굴이 자꾸 어긋난다. 말투, 태도, 시선. 하나씩 찝어 보면 다 이상하다. 8이 붙은 나이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사람인데, 정작 사촌 유마를 처음 만난 게 자기 나이 서른여덟 살이라며 좋아한다.. 본인 말대로면 유마와의 만남이 그 '좋은 일'이었던 건가. 근데 그게 왜 찜찜하냐면, 이 책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 가면 우연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기 어려운 인물이다.



고이즈미 마사토처럼 과거에 사라진 아이의 존재도 그냥 배경 설정으로 넘기기 어렵다. 그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숲의 괴담은 괴담으로 남지 않는다. 뭔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있고, 그게 숲 안에 묻혀 있다는 감각. 읽으면서 계속 그게 따라붙는다.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이 끝까지 괴이한 척하면서도 결국 인간 쪽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는 점이다. 귀신 이야기처럼 시작했는데, 중간쯤 가면 느낌이 달라진다. 무서운 숲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숲은 상징이고, 진짜 공포는 따로 있다. 




미쓰다 신조의 호러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종류가 아니다.개인적으로는 [걷는 망자]를 재밌게 읽었었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숲]은 재미는 있지만, 플롯이 정리되는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지는 않은 느낌이라 그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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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민보고대회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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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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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민보고대회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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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릿하고 훈훈한, 갓 쪄낸 참치 수만 마리의 냄새. 그 냄새 속에서 10년 넘게 가시를 발라온 사람들 옆에, 어느 날 AI가 조용히 섰다.


이 책은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솔직히 동원 F&B 창원공장의 AI 엑스레이 이야기는 그냥 신기한 기술 사례처럼 보였다. AI가 진짜로 0.1mm짜리 가시를 잡아내고,  뼈와 살의 두께를 구별한다는 말이 그 정도로 AI가 발전을 했다는 게 진짜 대단하네 라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베테랑 작업자들의 눈을 피해 간 미세가시는 AI에 의해 적발됐다.  적발이라니, 사람이 놓친 걸 기계가 잡아내는 게 대단한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걸 보여주는 건지모르겠다.


불만 접수 20% 감소, 생산성 56% 향상, 불량률 77% 개선. AI가 만든 평가들은 아주 높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굴려도 쉬지 않고 일하는 데다 먹을 시간도 쌀 시간도 필요없는 기계가 거의 완벽한 작업까지 한다면,. 굳이 사람을 쓰려 할까? 라는 생각이든다.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다. 


AI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방어적 기술>로 묘사되는데, 더 많이 생산하는 게 아니라, 손실을 줄이는 기술로 본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노르웨이 연어 양식장도, 한국 도금 공장도, 전통주 화요도 전부 같은 결로 본다. . 그렇게 조용히 재편하고 있는 거다.나는 이 표현이 참 그랬다. 조용하다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미국 빅테크 챕터에 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이 기업들이 벌이는 건 "방어"가 아니다. 연간 600억 달러씩 쏟아붓는 건 그냥 공격이다. 노골적이고 거대한. 엔비디아 하나가 AI 가속기 시장의 90%를 쥐고, 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전 세계 개발자를 묶어두는 구조다. 싱가포르가 아무리 영리하게 NAIS 2.0을 설계해도, 결국 엔비디아 칩 없인 아무것도 못 한다는 현실을 보면  경쟁력은 달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생산직, 물류직에서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거기에 외국인 노동력까지 유입되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현실도 있다. 이건 감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구조의 문제다. AI가 중간 수준의 인지 노동까지 해내는 시대가 오면, 그냥 다른 일 찾으면 되는게 대안이되지 않을거다.  이동할 곳이 없어질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AI 대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직종은 솔직히 AI가 들어오면 낫겠다 싶은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서빙. 언젠가 반찬이 맛있어서 리필을 한 번 했는데, 두 번 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서빙하는 사람이 두 명이었는데, 한 명한테 리필 요청을 했다가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 다른 서빙 직원한테 또 부탁했다. 두 번 리필 요청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괜히 머쓱했다. 서빙 로봇이었으면 그런 눈치 게임 자체가 없었을 거다. 그냥 버튼 누르면 되니까.


사서도 그렇다. 도서관에서 책 대출할 때 카운터에 가면 컴퓨터 모니터에 내 개인정보가 그대로 뜬다. 이름, 대출 이력. 사서가 보고 있는 화면에. 굳이 사람이 거기 앉아 있어야 하나 싶다. 무인 반납함은 이미 있고, 무인 대출함도 있는데. 예약 도서 찾고 상호대차 처리하는 것도 기계로 충분히 되는 일이다. 개인정보 측면에서도 오히려 AI가 더 나을 수 있다.


편의점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물론 예외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안다. 근데 어차피 CCTV 있고 경찰도 인근에 있는데, 무인으로 돌아가는 게 크게 문제가 될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무인 편의점 써보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리가 분명히 있다. 그 자리만큼은 AI가 들어오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기본소득 이야기로 자꾸 생각이 흘러간다.


AI가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건 이미 한국 언론에서도 수없이 다뤄진 이야기다. 새로운 경고가 아니라는 거다. 근데 그 논의는 항상 미래의 일처럼 다뤄진다.  근데 창원공장 컨베이어 벨트 옆에 AI 엑스레이가 이미 서 있고, 도금 공장 작업자가 하루 120분 하던 모니터링을 AI가 5분으로 줄인 게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점은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AI를 보여준다.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는 거다. 


나는 이재명이 재난지원금을 뿌렸을 때 당연하다 싶었다. 반발도 있었고 논란도 컸지만, 그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진짜 물어봤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었다. 재원을 어디서 끌어오냐는 거다. 한국의 빚이 많아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나. 이 때, 쿠팡이 한국에서 수조 원을 벌고, 구글과 메타가 한국 이용자 데이터로 광고를 팔면서  세금은 싱가포르나 아일랜드에 낸다는 걸 알고는 욱할 수밖에 없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 이득은 이런 기업들한테 쌓인다. 근데 세금 구멍은 그대로다. 수익을 많이 벌어가는 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 당연하다. 기본소득 재원을 결국 월급쟁이 중산층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디지털세, 플랫폼세 논의가 OECD에서 계속 나오는 이유가 있다. AI로 돈 버는 구조와, 세금 내는 구조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는 AI기술의 화려함 뒤에, 사실 이 구조적 문제점이 가장 위험하게 보인다.


하지만 책은 AI가 만들어내는 이익이 누구에게 가는지, 효율이 높아진 공장에서 줄어든 일자리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 그게 이 책의 한계다.  기자들이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문제점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이 하게 하려함일까....


참치캔은 오늘도 AI 검수를 통과해 식탁에 오른다. 깔끔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근데 그 효율이 만들어낸 이익은 어디로 흘라갈까. 이를  조용한 재편이라고 책은 말한다. 이렇게 사람이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책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국가적 AI전략도 자세히 다룬다. 잠깐의 글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역시 책은 이렇게 고민거리와 불편함을 같이 던져줄 때 오래 남는다. 오늘 저녁엔 참치캔을 열면서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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