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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쉬워지는 최소한의 세계사 - 알고리즘, 정규분포, 게임 이론까지 역사를 움직인 18가지 수학 개념
후쿠스케 지음, 이정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평균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40%도 안 된다. 책에서는 이런 통계를 보여주는데, 평균이면 딱 중간일텐데, 일부가 너무 많이 가져가서 평균을 위로 잡아당겨버리니까, 실제로는 평균 아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2023년 일본인 평균 연봉은 4,870만 원인데 중앙값은 3,764만 원. 100만 원도 아니고 1,000만 원 넘게 차이가 난다. 이 숫자 하나를 보니, 한국도 그렇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이라면 일단 거부감부터 든다. 공식 나오면 눈이 흐려지고, 미적분 같은 단어는 내 인생이랑 아무 상관 없다. 그럼에도 [수학이 쉬워지는 최소한의 세계사]를 읽어본 이유는 수학과 세계사를 연관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수학은 어렵지만, 세계사는 쉽게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들어서 같이 함께 읽어보면 두가지 지식을 한꺼번에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레토 법칙은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다. 아니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공식이다. 80대 20 회의실에서도 나오고, 자기계발서에서도 나오고. 근데 이게 완두콩 밭에서 시작됐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파레토라는 사람이 집 앞마당에서 완두콩을 수확하다가 발견한 법칙이다. 전체 수확량의 80퍼센트가 20퍼센트의 꼬투리에서 나왔다는 것. 그 사소한 관찰이 이탈리아 토지 소유 데이터로 이어지고, 유럽 각국의 소득 분포로 연결되고, 결국 <소수가 전체를 좌우한다>는 구조를 수식으로 정리해냈다.
이걸 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쏠려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근데 그 느낌을 숫자로 확인해주는 게 수학이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한번 들었다. 책에서 설명하는 건, 이런 공식이 먼저가 아니라 관찰이 먼저였다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파레토 분포식의 a값이 소득 격차를 나타낸다는 설명이 난생처음 쉽게 다가왔다. 숫자가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쏠려 있느냐"의 측정값이라고 받아들이니까. 더 쉽게 느껴지는 거다.
파레토의 삶도 꽤 흥미롭다. 혁명이 들불처럼 번지던 1848년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공화주의 사상으로 추방된 망명자였다. 이탈리아 통일이 막 이뤄지던 혼란한 시기를 청년으로 보냈으니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을 거다. 토목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경제학 강사가 됐다가, 40대에 로잔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 그리고 그의 강의를 청강한 학생 중에 나중에 무솔리니가 있었다는 대목은 놀라웠다.
책의 중반으로 넘어가면 다니엘 베르누이가 나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수록 상금이 두 배씩 늘어나는 게임이다. 수학적으로 기댓값을 계산하면 무한대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전 재산을 내고라도 참가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근데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
10억 원을 내고 이기려면 앞면이 연속으로 20번 넘게 나와야 하고, 그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몸이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수학은 맞고, 사람은 틀리게 마련이다. 베르누이는, 사람은 기댓값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가 느끼는 가치로 판단한다. 나도 늘 계산보다 감각으로 움직이는 편이라, 베르누이의 확률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집중하며 읽었던 것 같다. 투자할 때도, 선택할 때도. 그게 틀린 게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게 설계돼 있다는 걸 수식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베르누이다.
요한 베르누이와 아들 다니엘의 이야기는 거의 막장 급이다. 그는 아들이 잘하는데, 기쁜 게 아니라 질투를 한다. 함께 상을 받자 격분해서 아들을 집에 못 들어오게 막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의 저서 <유체역학>을 도용해서 출간 연도까지 조작했다. 유체역학은 비행기 양력을 설명하는 베르누이 방정식이 담긴 책이다. 그 역사적인 연구의 뒤에 이런 지저분한 질투가 있었다는 게 역설적이다.
다니엘은 형을 잃은 충격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는 그 대신 제자 오일러를 러시아로 보냈다. 그나마 오일러와의 공동 연구가 상실감을 버티게 해줬다고 하니, 다니엘 입장에선 아버지한테 버려진 기분이었을 거다. 수학자가 이렇게 인간적으로 지저분하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계산적이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이 좋아졌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건 아니다. 복잡한 수식은 여전히 보기 싫다. 근데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수식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호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라는 거다.
평균이라는 말이 뉴스에 나오면 중앙값은 얼마이며, 누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자동으로 따라올 것 같다. 그게 책을 읽음으로써 느끼는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볼 때 숫자 뒤에 숨은 흐름을 읽는 눈이 생기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변화된 심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