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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삶은 처음이라
김영임 지음 / 리더북스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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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읽자마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아내(이모)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넘어 겨우 10살밖에 안된 조카(글의 주인공인 희숙) 를 범하려는 이모부, 짐승을 넘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를 첫 장부터 마주하기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결국 이모는 남편의 행동을 저지하려다 이모부가 휘두른 칼에 맞는다. ( 어릴 적 희숙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희숙은 성인이 되어서도 평탄하게 살지 못한다. (지금은 문제거리도 안되는 이혼이 희숙에게는 큰 흉이된다.) 희숙은 두 번의 이혼을 하게 되고, 두 번째 남편의 시누이들로부터 공개 재판을 받는다. 희숙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전 시누이들에게 몰매(?)를 맞게 된다. 적어도 시누이들에게 희숙은 남편의 부인을 자살하도록 유도한 살인 방조범이자. 가정 파괴범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희숙을 바라보며 곁눈질하는 모습과 쑥덕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니, 희숙의 상황을 믿기가 힘들었다. 적어도 어릴 적 부조리함(가정 폭력)을 보아온 희숙에게 모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희숙은 조리 돌린 공개 재판으로 세상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두 번의 이혼이 멍에 가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희숙은 아파트 난간으로 다리를 걸친다..
일단 이야기는 너무도 울적하게 시작한다. 마치 다큐, 아니 시사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암울한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가정 폭력과 이혼,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초반부를 읽고 있노라면, 희숙이 자신의 엄마(함창순 여사) 에게 말하듯 써 내려간 글이 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 싶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희숙은 자살 시도를 하려다 특급 우편으로 온 엄마의 수의를 받고, 난간에서 내려온다. 엄마를 위한 수의를 꼭 자신이 받겠다고 했던 그 말이 스스로를 살린 것이다. 동시에 딸 주현의 전화가 울린다. 딸은 29살의 성인이었지만, 희숙은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남자와 외박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딸은 희숙에게 하나 밖에 없는 행복 보따리였다. 대한민국에서 순결을 중시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희숙에게 딸 주현의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엄마와 딸의 고민이자 논쟁거리가 시작된다.
책에서 희숙은 꾸준하게 엄마(함창순 여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곧 책을 읽는 독자가 희숙의 엄마가 된다. 희숙의 생각을 완전히 전해 듣는 것이다. 중 장년 층의 여성이라면 희숙이 말하는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 젊다면 희숙이 딸에게 말하는 순결이 답답한 논쟁거리 일 수 밖에 없다.
책의 큰 특징은,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어 나가며, 1인칭 시점에 연결되는 부가적인 인물들이 주제를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에 있다. 희숙의 엄마(함창순 여사)가 겪어온 시어머니와의 관계 (희숙의 친 할머니의 만행), 아버지의 가출, 출가외인이라 묶어둔 수용적인 여성들의 삶,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 낙태법의 논쟁 등등를 모두 함축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족의 이야기이며, 모든 여성들 주변, 혹은 여성들 스스로가 겪어 봤음직한 이야기들이라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불평등한 차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어머니일 것이고, 누군가는 딸이 된다. 책 속 이야기는 암울했다가 등장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했다가 사건에 대해 씁쓸해 하기도 하면서 여성들이 얼마나 편견과 관습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 왔는지, 한 여성의 입으로 보여준다. 읽다 보면 저절로 모든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 책을 모든 여성들이 한 번 쯤 읽어봐야 할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