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워런 버핏의 허락을 얻은 책이 있다. 앨리스 슈뢰더가 쓴 《스노우볼》이다. 두 권으로 출간됐는데, 워낙 내용이 자세해 워런 버핏이 몇몇 부분은 삭제했으면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는 워런 버핏의 삶과 투자에 대한 내용이 아주 잘 나와 있다. 어린 시절 코카콜라 병을 팔아 치운 이야기나 핀볼 사업은 물론이고 도서관에 있는 모든 경제경영 책을 다 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후에 워런 버핏이 젊은 시절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그가 있는 대학으로 간다. 함께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다 다시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와서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그가 오마하라는 시골에서 전국구 투자자를 넘어 전 세계적 투자자가 되기까지 일대기를 보여준다. 투자뿐만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삶까지 보여주어 입체적으로 워런 버핏을 이해할 수 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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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운동선수가 체력 단련을 하듯 정신력을 단련해야 한다. 오랜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정신력은 어떤 스펙보다 강력한 힘이 된다.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불평을 하는 사람에게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나를 제어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내가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비만 환자가 의사의 제어를 받듯,
결국 나는 누군가의 제어를 받게 될 테니까요."
세상은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도 내일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은 정답이지만, 그 답이 내일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1년만 지나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확실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믿음은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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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속성들이 허물어질 때조차 철학자들이 현상적 주체라고 부르는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그대로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조현병을 앓는, 이민증을 겪는, 자폐증을 경험하는, 황홀해하는 신체 부위를 낯설게 느끼는,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는 여전히 있다. 그 ‘나‘는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 8세기의 인도 철학자이자 아드바이타 Advaita(불이일원론)학파의 신학자 아디 샹카라 Adi Shankara는 자아의 정수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니르바나 샤트캄Nirvana Shatkam> (6연으로 이루어진 해방의 노래)이라는 그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마음도 지성도 아니요 귀와 혀와 코와 눈으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실체도 아니다.
공간이나 땅, 빛이나 바람으로 알아볼 수도 없다.

시의 각 연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끝난다. 이 답은 후렴구로 반복되며, 강렬한 마지막 연으로 치닫는다(<니르바나 샤트캄> 마지막 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는 것은 없다. 나는 어떤 속성도, 어떤 형태도 갖지 않는다. 나는 이 세계에도, 해탈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이고 모든 곳이며 모든 시간이기에 무엇에도 바라는 바가 없다. 나는 영원한 앎이며 축복이고 선함이고 사랑이며 순수한 의식이다."-옮긴이).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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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다음의 공식을 통해 삼위의 본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일체이며, 성자는 (신성과 인성) 두 본질을 갖춘 하나의 실체"라고 정한다. 교회가 그렇듯 신도 하나이며, 이는 인류 통합의 모형이다. 당시의 개인은 ‘개체‘ 개념과 관련이 있다. 라틴어로 ‘in-divisus‘는 분리되지 않음,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의 자녀이므로, 하위 본질로 분리될 수 없고, 그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기독교 철학과 함께 인간 개인은 신성을 얻는다. 그리고 물론 기독교적 페르소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 법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예라 할지라도 영혼에 대해서는 권리를 갖는다. 이 역사적인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진보적으로 내면화됨을 알 수 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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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까지가 인생 1막이었다면 인생 2막은 50대부터라고 생각하자. 삶의 절정은 지났지만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도 하다. 해가 지기 전의 저녁놀처럼 우리의 50대도 아름다워야 한다. 찬란했던 절정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모든 영광은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고 언제까지 소처럼 되새김질만 하고 있을 것인가? 사람은 시기마다, 그리고 때에 따라, 나이에 따라 변해야 한다. 달라지지 않겠다는 완고함이야말로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다. 다들 미적거리고 있을 때, 다들 쪽팔려 주저하고 있을 때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이것저것 따지다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일도 못 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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