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너무나 가난했다. 땅은 척박하고 산은 많았다. 농사로 먹고 살 수 없는 나라였다. 가난한 나라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은 낫이 아니라 칼을 들고 있었다. 스위스 용병들의 실력이 어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의리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모두 전멸했다.
그들이 멍청하거나, 어리석어서 전멸한 것이 아니다. 신의를 저버리고 도망을 가버리면, 자신들의 후손이 신의를 잃어 용병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도망가지 않았다. 기꺼이 남의 나라에서, 정의롭지 못한 편에서, 후손들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786명의 용병들이 전멸당한 아픈 역사이지만, 끝까지 그들을 지키려한 의리와 충성심과 후손들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것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루체른은 아프고도 자랑스러운 스위스의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이다. 스위스는 루체른에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조각을 했다. 그 조각이 바로 빈사의 사자상이다. 빈사의 사자상 위에는 ‘스위스인의 충성과 용기를 기리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사자상이라는 이름만 듣는다면 네발로 일어나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사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빈사의 사자상은 죽어가는 사자를 조각했다. 발로는 힘없이 방패를 끌어안고 있었다. 방패에는 프랑스 혁명으로 사라진 부르봉 왕조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사자 옆에는 창과 스위스 국기가 그려진 방패가 있었다.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