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를 보았다. 묵자의 겸애, 공자의 서, 장자의 자유, 한비자의 시스템 등 저마다 난세를 구하고자 한 노력이었다. 고통 받는 힘 없는 이를 근심하고 이를 위해 인생을 바친 그들의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대표적 인물뿐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애쓴 수많은 인물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그저 절망뿐이 아니라는 희망이 생긴다.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케인즈, 하이에크 등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경제학자를 다룬다. 이들 모두 다른 진단과 전망을 내놓지만 그들 모두 자본주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한다. 묵자가, 공자가, 장자가, 한비자가 오늘날 자본주의 세상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지혜가 필요하다.
아는 선생님이 중학교 교실에서 겪은 일화이다. 수업 중 선생님이 자는 학생을 지적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더러 '선생님, 얘한테 잘 보이셔야 해요.' 했다. 왜냐고 묻자, 학생들은 '얘네 아빠 ㅇㅇ 회사 사장님이에요.'하고 대꾸했다. 선생님은 '나 그 회사에서 일 안 할 건데?'하고 되묻자, 학생들은 '선생님 아이가 나중에 일할 수도 있잖아요.'하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1. 젠장2. 아빠가 사장이면 아들이 당연히 물려 받나. 3.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잘 보여야 하나. 4. 이렇게 생각하는 중학생들이 커서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되겠지.요즘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나의 소비에 관해 돌아보았다. 나의 욕망은 과연 나의 것일까. 광고와 유행, 사람들의 시선에 조작된 나의 욕망과 소비를 알게되었다. 몸에 걸치는 옷이나 가방이 그 사람의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면세점의 구찌 매장을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된다. 꼭 소비뿐이 아니다. TV나 교육에 의해 옳다고 믿게 된 신념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정도는 사회인의 상식이라고 자부하게 된 꼰대 마인드들. 이중에 내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한 것은 얼마나 될까. 공부하지 않으면 속고 사는 세상이다. 나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나의 욕망을 조작하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직장 동료와 비정규직 처우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정규직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말을 건네니, ‘근데 솔직히 비정규직이 한 사람 몫을 제대로 못 하긴 해요.‘하는 대답이 따랐다. 비정규직이 일을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이건 전후 관계가 잘못됐다. 한 사람으로 대접해 주지 않으면서 한 사람 몫을 하길 바라는 것은 문제이다. 몇 개월 후면 재계약이 될지 아닐지도 몰라서 불안한데 책임감까지 요구한다. 그것도 관리자가 아니라 직장 동료가 그런 식이다.
남자를 이해하려고 읽기 시작했고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결말에 닿았다. 요즘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고 있다. 그의 부조리함과 비민주적 행태에 분개하였고 무기력한 내가 싫었다. 이런 나를 두고 ‘잘못의 반은 너에게 있을 거야.‘하고 조언해준 사람이 있었지만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절대 내 잘못이 아니고 그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김도인의 숨쉬듯 가볍게는 자기 감각, 정서, 생각을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를 위하여 역시 자신의 내면에 숨긴 약한 모습을 직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내 고통의 원인은 타인에게 있지 않다.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일 앞에서는 침묵하고 뒤에서는 분개하는 나의 모순.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나를 이해해 보자.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