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망원동 - 어린 나는 그곳을 여권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아무튼 시리즈 5
김민섭 지음 / 제철소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민섭의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10쇄, 20쇄까지 나가도록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더 이상 책을 둘 공간이 없어서 책을 잘 안 사지만 ‘아무튼, 망원동‘은 기쁜 마음으로 주문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흥미롭게 읽었고 ‘대리 사회‘도 직장에서 고통 당하는 내 처지와 잘 맞아떨어져서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의 첫 책과 (나 혼자) 맺은 인연을 높게 사서 저자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비록 책 한 권을 산 것뿐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 책은 망원동과 그 일대에서 성장한 저자의 삶을 공간을 중심으로 돌아본다. ‘망리단길‘로 상징되는 동네의 변화를 저자는 미화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담담히 그려낸다. 옛날은 좋았고 지금은 나쁘다거나 그 반대의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어서 좋다.

저자는 2017년부터 1984년까지 가까운 과거의 에피소드부터 풀어낸다. 점포마다 간판이 생기고 지붕이 달린 망원시장의 변신, 영화 ‘추격자‘에 망원동이 배경으로 등장한 이야기, 월드컵 거리 응원, 파리 날리던 난지도의 변신과 어디론가 떠난 사람들, 자유로, 개인보다 국가를 내세웠던 국민학교, 침수에 대한 기억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삶의 모습도 떠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저자는 20살로 거리 응원을 즐겼지만 나는 한끗 차이로 고3이었다. 18년간 몰랐던 나의 ‘과몰입하는 재주‘를 그때 발견했고 수험공부에 과몰입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 씻지도 자지도 않고 공부했다. 하루 서너 시간 겨우 잤던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인생 레벨업의 기회라고 직감했던 것 같다. 월드컵을 보지 않았다. 온 나라가 벌겋게 달아올랐을 때도 한 경기도 보지 않았다.

스페인 전이었던가. 집에서 혼자 월드컵을 볼 엄마가 괜히 안쓰러워서 독서실에 있다가 경기 시간에 맞춰서 집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도 예정이 없이 언니가 일찍 귀가했고 게다가 그 전날 나와 싸운 여파로 언니가 날 노려보며 ‘넌 왜 왔어‘하는 바람에 경기도 제대로 못 봤다.

2006년에도 그 다음에도 월드컵을 보지 않았다. 누군가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2002년에도 안 봤는 걸 뭘하고 말았다. 월드컵만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광장의 경험이 없다. 대학 진학 이후인 미선이 효순이 사고 때도 광우병 시위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에도 나는 나가지 않았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유폐된 인간이 되버린 걸까. 이건 혹시 2002년 거리 응원에 나간다던 친구를 내심 한심해했던 것에 대한 저주인 걸까.

웹툰을 즐겨 보고 좋아하는 작가는 단행본까지 사는 편이다. 20대 초반에는 사회 초년 생의 고생이나 잘 풀리지 않는 연애사를 다룬 웹툰을 좋아했고 최근에는 사회인으로서의 비극(..은 과장이지만)이나 결혼 생활을 하는 웹툰도 재미있게 봤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몇 년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자취방에서 시작했고 실연의 상처에 허덕이던 작가가 강남과 백화점에 매장을 내고 명품 브랜드와 제휴한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아, 이제는 공감할 수 없구나 하는 지점에서 그 작가와는 작별을 한다. 나만 알던 혁오가 무도에 나왔을 때 느끼는 기분 같은 걸까. 좀 유치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몇 년 전에는 성게군과 작별을 했고 최근에는 어쿠스틱 라이프가 위험하다.

언젠가 이 책의 저자 김민섭도 그렇게 될까. 망원동이 아닌 강남이나 더 과감하게 포르투갈에서 글을 썼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묘해지겠지. 현대화된 망원시장을 마주친 저자의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김민섭의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아주 잘 되면 약간 시샘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남들 다 빼고 저자 혼자 잘 됐다는 증거가 아니고 나도 잘 되고 있다는 지표였으면 좋겠고 나아가 다들 잘 살고 있다는 증거되면 좋겠다. 그러면 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은 저자를 두고 외로이 떠나는 독자의 이상한 젠트리피케이션도 멈출 것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명 2017-11-0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주 주간경향(1251호)에 김민섭 작가님이 이 서평을 인용해 기고를 하셨네요.
기고문 읽다 궁금해져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네요. 사유의 확장에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철철대마왕 2017-11-11 07:08   좋아요 0 | URL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나 세상에!

309동1201호 2019-01-10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알라딘에 들어와서 이 서평을 읽고 힘을 얻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김민섭 드림.)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흘이 넘는 추석 연휴에 읽으려고 세 권의 책을 빌렸는데 겨우 두 권 읽었다. 요리를 했고 대구에 다녀왔고 찬장에 머리를 부딪혔고 뇌진탕에 걸렸고 응급실 신세를 졌고 인천에 다녀왔고 아직 아프고 있는 중이라 바빴다. 지금도 머리가 막 어지럽다.

내년 1학년이 쓸 교과서 선정을 위해 교과서 9종을 검토 중이다. 교과서에 실린 글들은 왜 이렇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뭐랄까. 절실함이 없다. 읽는 이에게 가서 닿고 싶다는, 귀에 내 목소리를 때려넣고 싶다는 절실함. 그게 없다. 절실한 문제는 대체로 아직 사회적 합의가 끝나지 않았고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교과서는 안전한 주제, 이미 합의가 끝난(끝났다고 믿는) 주제들만을 다룬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주장하는 글도 설명하는 글도 건의하는 글도 온건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 가슴에 가닿기는 커녕 귓구멍에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글 가지고 배움이 일어날까. 회의가 생긴다.

이 책을 읽고 교사로서 고민하게 되는 대목은 학생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학생들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하아아 그래 노력해봐야지. 힘을 내자. 이 선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개정증보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역으로 여겨지는 생각들이 있다. 독도, 친일파, 위안부, 역사왜곡. 성역에는 ‘식민지의 기억, 위안부 할머니, 약소국, 짓밟힌 백성들‘ 등의 피해자가 산다. 성역의 밖에는 가해자가 산다. 제국주의, 일본, 타자. 가해자는 비판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피해자는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보호와 억압의 경계가 곧잘 흐려진다.)
박유하는 이 책에서 성역을 넘나들며 가-피해자의 작위적인 틀을 벗어나, 잠시 판단을 멈추고 구체적인 사실을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타자와 자아에 대한 왜곡을 그치고 타자와 자아를 아우르는 ‘우리‘ 안의 폭력성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해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맗란다.
성역에 들어간 자가 받는 형벌인 걸까. 2013년 이 책의 속편 격인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박유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소송에 휘말렸다고 한다. 2015년 작성한 화해를 위하여 개정판 서문에서 박유하는 소송 소속을 전하며 씁쓸한 심경을 전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인간 세계 너머 다른 세상을 보고 온 자들은 행방이 묘연해 졌다거나 산으로 들어갔다거나 큰 물에 들어가서 조개가 되었다거나 하는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이미 보아 버린 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도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지난 금요일 있었던 일이다. 학교에서 동료교사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중이었다.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면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 동네 위신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학생들이라고 알아들었을까. 퇴근길에 우연히 다시 본 그 학생들은 여전히 체육복 차림이었다.

박유하는 사실과 대면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화해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 걸까. 너무 사람을 믿는 건 아닐까.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직시하고 이해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박유하의 글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왜곡했다. 그리고 박유하에게 돌을 던졌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절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희망적이다. ‘일본은 가해자이다. 한국은 피해자이다.‘ 이건 ‘나는 진상을 모두 안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으니 더 알아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차라리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는 당신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다 이해 못할 테지만 아무튼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소, 나는 당신을 더 알아가겠소. 이게 훨씬 건강하고 윤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다 안다는 오만과 독선을 벗어나 잘 모르는 자의 입장을 가지고,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

사람들의 증오나 혐오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것. 그것은 하시모토 시장이 노동조합이나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에 대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무언가와 싸우려고 하면서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공격하고 있는 상대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91쪽)

"증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회에 넘치는 증오의 말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회가 그 실패를 숨기기 위한 필수품인 것이다. (150)

신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교육의 시장화에 의해 붕괴되는 미국 공교육의 현장을 면밀히 관찰해왔던 스즈키 다이유는 어느덧 ‘풍요로운 비지니스의 토양‘이 되어버린 학교의 새로운 모델로서 차터 스쿨을 소개하고 있다. 휑뎅그렁한 방에 수많은 칸막이로 나뉜 박스가 있으며 아이들은 헤드폰을 낀 채 눈앞의 컴퓨터를 향하고 있다.
"학교 측은 정규교원을 줄이고, 시급 15달러의 무면허 강사가 한 번에 최고 130명의 학생을 모니터하게 함으로써 1년간 약 5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교원의 절반은 경력 2년 미만이고 75퍼센트는 단 5주간의 트레이닝으로 비정규 교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티치 포 아메리카(미국의 교육봉사단체) 출신이다."
이 학교를 열렬하게 지원하는 실리콘밸리의 사장들은 물론 자기 아이들을 이 ‘서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머지않은 풍경일까.
스즈키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고찰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경제적 합리성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원리가 우리 ‘마음속까지 깊이‘ 침투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자처해서 장기판의 말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맞서야 한다. 우선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말이다.(162~163)

사람은 실수한다. 조직이나 사회도 실수한다. 국가도 실수한다. 그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정의‘든 간에 "나는 실수하지 않는다"고 하는 놈은 의심해야 한다. 자칭 ‘애국자‘라고 하는 놈들은 ‘국가의 올바름‘에 민감하다. 하지만 올바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손택에게 조국인 미국은 ‘올바름‘과 ‘부정‘이 뒤섞인 존재였다. 그녀는 그런 모순된 미국을 사랑했다. (182~183)

"의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고착되기 쉽다는 점이다. (....) 어떤 일이든 거기에는 항상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어떤 사건이든, 그 밖의 사건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더 읽을 책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유아사 마코토, 덤벼라 빈곤
야마다 마사히로,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