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먹고 사는 것과 관련 없는 본질적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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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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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을 견뎌야 한다.

모든 것이 정합적으로, 기계적으로 맞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론과 현실이, 공식과 계산이, 기준과 결과가 딱딱딱딱딱! 예외가 발생하면 별표를 하나 그리고 예외라고 분류하면 그만이었다. 예외마저 ‘예외 없는 법칙은 없지’라는 법칙으로 설명해 버렸다.

모순을 견뎌야 한다. 진리를 사랑하지만 나는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는 모순. 부족한 나와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모순. 나는 살아있지만 반드시 죽고 말 거라는 모순. 아무것도 확신할 순 없지만 여전히 살아내야 한다는 모순.

모순은 고통스럽지만 모순만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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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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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24편 모음. 복잡한 상황 설정 없이 상상의 세계로 툭 치고 들어간다. 간결하니 좋다.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분류하기 어렵다. 분류되지 않는 문제적 존재는 기존 생각에 파문을 일으킨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 내 머릿속에 돌을 하나 던졌다.

소통은 가능한 걸까. 고독을 떨칠 수 있는 걸까. 단편 ‘회색 인간’의 줄거리는 이렇다. 만 명의 사람이 지저 세계에 납치된다. 납치된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한다. 저항하는 이에게는 죽음뿐이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일을 한다. 어느 날 누군가 노래를 한다.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잉여 생산물이 있으면 예술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잉여가 없고 현실을 버틸 재간이 없으면 예술이 발생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살기 위해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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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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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저저는 언젠가 실현될 주체와 타자의 만남을 긍정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생을 넘어서야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 저자는 정말 만남을 긍정하는 것일까. 아니다. ‘언젠가’ 만난다는 것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생은 아니다. 의식은 개체에 갇혀 있다. 제목은 역설이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만날 수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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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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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텅 빈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으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텅 비었다고 말할 수밖에. 다른 존재가 공존해야 나는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삶이 삶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내 삶에는 중요한 몇 개의 마디가 있다. 그때마다 내 삶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가장 중요한 마디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나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았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사건이 마디가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에게 새롭게 추가된 카테고리는 ‘죽음’이다. 어린 시절 나의 카테고리는 [엄마, 아빠, 언니]-[친구들-선생님] 정도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의 카테고리는 [삶, 죽음]이 되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는 나를 항상 불안해했다. 내가 땅에 서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는 어린 나이에 간파했다.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친구는 말했다. 너를 보면 누구나 알 거라고. 아.. 그런가. 잘 숨기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중학생 시절 친구는 나에게 종종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모와의 갈등, 다이어트 문제, 교우 관계, 왜 사는 걸까 등등. 그럴 때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하고 말았다. 친구는 갑갑해 했다. 너는 왜 너의 고민을 말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고민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민이 없었다. 왜냐하면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고민인 줄도 몰랐으니까. 경제적, 문화적 궁핍과 폭력. 미성숙. 그것이 나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게 문제인 줄 인지하지도 못했다.

요즘 종종 거울 앞에서 늙은 나의 얼굴을 생각한다. 동영상을 빨리 재생시키는 것처럼 몸의 시간을 막 돌린다. 그럼 쪼끌쪼글 늙어버린 나의 얼굴을 마주한다. 건넛방에 있는 남편도 덩달아 쪼글쪼글 늙는다. 늙음이 있으면 나의 젊음도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으로 태어날 계획인지를 묻는다. 질문이 잘못 되었다. 전생에 무엇이었고 현생에 무엇이고 다음 생에 무엇이 되는가가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이 몸을 타고 있는 나와 여러 내가 공존한다. 전생의 나는 사자이다.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한 사슴의 배에 얼굴을 파묻고 내장을 먹는다. 다음 생의 나는 이름 모를 깊은 산골에 흐르는 작은 냇물에 사는 물고기이다. 은색으로, 초록색으로 빛난다. 살다가 어느 순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생각하며 산다.

어린 시절부터 했던 고민. 눈을 감으면 앞이 깜깜하다. 나는 내 눈꺼풀을 보는 것인가, 광활한 공간을 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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