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24편 모음. 복잡한 상황 설정 없이 상상의 세계로 툭 치고 들어간다. 간결하니 좋다.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분류하기 어렵다. 분류되지 않는 문제적 존재는 기존 생각에 파문을 일으킨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 내 머릿속에 돌을 하나 던졌다. 소통은 가능한 걸까. 고독을 떨칠 수 있는 걸까. 단편 ‘회색 인간’의 줄거리는 이렇다. 만 명의 사람이 지저 세계에 납치된다. 납치된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한다. 저항하는 이에게는 죽음뿐이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일을 한다. 어느 날 누군가 노래를 한다.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잉여 생산물이 있으면 예술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잉여가 없고 현실을 버틸 재간이 없으면 예술이 발생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살기 위해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