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븐을 켤게요 - 빵과 베이킹, 그리고 을지로 이야기
문현준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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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6년 전에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3년 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베이킹을 하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을지로에 <문토>라는 베이킹 공방을 열었다. '저 사람처럼 누구나 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주는 '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내가 부러운 건, 뭐가 됐든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럴싸해 보일 정도의 손재주를 가졌다는 거다. 무역 일을 하다 빵을 만든다니 내겐 놀라운 능력자다.


나는 다치기 전에도 전구 하나 가는데도 손이 가는 사람이었고 다치고 난 후에는 손이 자유롭지 못해 더 그렇다. 작가가 원래 베이킹을 꿈꾸던 사람 같지는 않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책까지 펴낼 정도니 더 더 더 부러울 수밖에.


한데 작가의 '글의 시작'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생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어째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 철봉이나 우주의 팽창 그리고 멀어져 간 친구의 생각 같은 것들일까 싶어서. 이딴 게 그에게 어떤 파장을 주어서 그걸 없애자고 몰입도 높은 베이킹을 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그가 무섭다니 무서움이겠거니 했다. 여기선 베이킹이 중요한 거니까.


딱히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그의 공방은 빵뿐이 아니라 사람과 을지로의 맛도 담겨있어 재밌다. 신기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빵 만드는 건 어렵지만 그중에 소금빵이 조금 더 그렇고 특히나 개인의 손동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니 신기하다. 게다가 반죽은 한 번 시작하는 빠꾸가 없다는 게 왠지 더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소금빵 먹을 때마다 작가를, <문토>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표현은 디테일하진 않지만 섬세하다. 작가의 설명을 볼 때면 그 오븐의 온도처럼 차츰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사람들과 만들고 나누어 먹는 공간에 슬쩍 껴있는 느낌도 들고.


그나저나 내가 먹어본 에그타르트는 그닥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 보면 한국식이었나? 그럼 포르투갈식을 맛보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나?


베이킹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베이킹 자체의 까다로움이나 재료 수급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들. 그냥 먹기엔 노발대발할 수준의 크기가 되레 베이킹에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도 알았다. 역시나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33쪽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진짜 미안한 일이 되니 신중해야 한다." 106쪽


망해버린 베이킹 클래스에서 노심초사하는 작가에게 운영진 여성이 해줬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T라서 그런지 몰라도 작가가 애를 쓰긴 했지만 공유 주방에 대한 준비가 서툴러 망한 건 망한 거다. 그러니까 비용까지 지불하고 부푼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고 을지로에 공방을 왜 열었는지 아냐고 묻길래 알려줄 줄 알았다. 그쪽에서 쭈욱 살았나?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사람 많고 복잡한 을지로일까 궁금했는데 궁금함으로 남았다. 개취이긴 하지만 엔틱과 레트로 가게가 많아서? 베이킹 공방인데 엔틱이 중요해? 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조금 웃었다.


138쪽

175쪽


작가의 공방에서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이킹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자꾸자꾸 만들어 보고 싶을 만큼 자신감을 주려 애쓰는 공방에서 만들어낸 베이킹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의 중간중간 앙꼬처럼 들어 간 사진이 이 책을 더 맛있게 만든다.


책을 보면서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 가득한 베이킹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빵이 고소하게 구워지는 오븐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빵으로 맺어진 사람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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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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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배우 박정민은 김금희 작가의 문장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출판사 무제의 대표란 것도, 김금희 작가도 그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보는 책보다 듣는 책이 먼저 발간된다는 색다른 발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작가의 문장과 목소리의 주인공 등 온통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에 주문해 놓고 이런저런 개인사에 묵혀두다 먼저 읽고 뒤이어 들었다.


작가는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산문, 소설, 장편, 중편, 단편, 연작으로 여러 작품과 젊은작가상 대상을 비롯한 아주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나는 <첫 여름, 완주>가 처음이다.


"얼마나 많은 웃음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을까." 책날개 작가 소개 옆에 그의 필체로 된 사인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지 이런 여름에 얼마나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뜨거운 8월에 태어난, 난 여름이 싫다. 땀이 나지 않는 여름은 생명을 위협하니까.


와, 미치겠다. 어린 열매의 이 기멕힌 멘트에 물고 있던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하고 뿜어 내버렸다. 패드 화면에 세계 지도가 흐른다. 제길! 열매에게 쫓아가 귀엽다고 볼따구니를 잡고 늘려 주고 싶을 지경이다.


아, 재밌다. 무조건 재밌다. 아직 사춘기가 오기 전,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던 팔십 세 할아버지에게 열매가 <마스크> 한 편을 통째로 보여 줄(?) 만큼 열의를 보이더니 결국 공채 성우가 되고,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가 결국 종종 나오지 않는 날이 생긴 어느 날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쫙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하게도 그냥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30대가 된 열매에게 돈 빌려 증발해 버린 고수미의 이야기가 무척 안타깝고.


"보령에서 올라와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15쪽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이란 표현에 울컥할 사람이 많겠다, 싶었다. 마치 나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쉰이 한참 넘어가도, 경력을 채울 만큼 채워도 삶은 기어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 아니 당연하면 안 되는 일상이 점점 당연해지는 게 기이해진달까.


'여름 환한 햇살을 배경으로 내리는 빗소리 같은 느낌'이란 지문을 보면서 아, 그런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한다. 후텁지근함이 피부에 내려 붙지만 살짝 시원한 바람기 같은 게 있고 또 그 사이로 따뜻함이 밀려오는 느낌일까?

문득 더위를 먹든 말든 창밖으로 돌아누워 디민 얼굴로 따뜻한 햇살을 정통으로 다 받아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또, 할부지와 실없는 대화에서 '얼른 늙고 싶다'라는 말 할 때 열매의 심정이 읽혀 곤란했다. 젊음이 올매나 좋은지 알면서도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버려 늙었으면 하는 마음이, 세상 어디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랬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것들이 다 헛소리이기를 바랐다.


"그날 밤은 큰 도화지를 척척 접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 접었을 때 손열매는 밤의 교량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고 한 번 더 접자 개구리 소리가 왁왁 나는 개천을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사뿐히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었을 때쯤에는 늘 보는 버스 정류장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목이 아플 때까지 별을 보고 있다가 손열매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 외계인이라면서요'하고 심상하게 물었다." 101쪽


마치 시간이 공간을 접어내듯 공간을 타고 넘는 열매의 얼굴이 그려져 기분이 막 좋아졌다. 완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잘 정돈된 문장 사이로 자꾸 재치 넘치는 문장에 한참을 낄낄 거리게 만든다. 이런 문장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작가도 외계인 아니삼?


당황? 허무? 허구의 세계를 동경하는 창세기 비디오 대여점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완주 매점의 공간의 의미를 알아챘어야 했나? 어쩌면 자작나무 숲속의 어저귀의 공간이었던 공소도?


어저귀 말마따나 삶은 시작과 끝을 어차피 알 수 없으니 동강난 허리통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열매와 수미의 완주는 분명 희망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뭐, 그러고 보면 달리는 버스에서 졸 수 있는 열매의 시작으로 끝이 나는 걸 보면 희망일지도.


어쨌든 인간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가가 고맙고, 각자의 몫을 온전히 완주하길 바라는 박정민 배우의 끝인사도 뭉클했다. 이제 나는 내 몫의 완주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처음에 보는 세상에서 많은 부분 듣는 세상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획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읽고, 듣고 나니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특정한 감각들에 머무르지 않는, 오감이 다 휘몰아치듯 즐거운 독서가 됐다. 듣는 독서의 생생함에 낭독은 쨉이 안 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듣는 책을 볼 수 있다. 꼭 보고 듣고 하시길 추천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 https://www.nld.go.kr/



구매해서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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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 모두의 반려질병 보고서
강영아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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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딱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들의 삶은 매 순간이 치열해서 '적당히'란 포장지가 필요하고, 또 그런 치열함이 여전히 진행 중이겠다,라는 것.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감각은 그랬다. 질병을 처덕처덕 붙이고 사는 워킹맘 이야기라서?


아무튼 이런저런 전문직에 몸담았거나 여전히 담고 있는 11명의 워킹맘이 작심하고 자신의 반려질병(생소하고, 어감이 주는 가벼움이 있어 좀 아이러니하지만)을 드러낸다. 온몸에 파스를 붙인 것처럼 처덕처덕 붙이고 살아야 하는 질병을 보고 있자니 우리 모두 사는 게 참 아프다 싶다.


결국 전업주부에 건강한 할머니를 소망하는 삶에 대한 보고서 같아 더 서글프지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쌩쌩한 절은 것들에게는 처방전이, 지금 아픈 세대들에겐 위로가 되는 책이다. 책날개에 '날씬병아리' 작가 소개를 보고 '북한 강변'에서 피아노 치고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인생 2라운드가 무척 궁금했다.


매력적인 표지만 보고 11명 여성의 '잘난' 커리어를 쏟아내는 이야기일 거라는 섣부른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불쑥 '병'이라는 주제에 공감대가 은근 간질거렸다. 질병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진 모르겠으나 장애 역시 삶의 궤적에 늘 함께해야 하는 '반려 불편함'이라서.


29쪽, 몰디브


남성 독자로서 저 먼 우주의 섭리쯤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질염을 처음부터 꺼내든다. 한데 이 질병의 발현을 생생하고 직설적이고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당당함은 꽤나 사이다 같다. 특히 많은 여성이 숨기기 급급할 거라 예상되는 질병을 몰디브 작가는 귀찮은 것쯤으로 치부하면서 "아래가 가려워서"라는 말로 약 처방을 요구한다. 멋지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질병이든 장애든 일상에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숨기지 않고 삶에 받아들이고 외부로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이 완벽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들춰야 한다. 몰디브 작가의 질염처럼.


뜬금없이 '뜨악' 하는 통증으로 시작해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고 나서야 서서히 존재를 드러낸 이정화 작가의 급성 임파선염은 그동안 수많은 신호를 보내도 스스로 돌보지 않았던 반격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무심했다는 질병의 진격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짠함이 있었다. 늘 피로와 맞짱을 뜨면서도 이음미 씨는 아내와 엄마, 며느리, 딸의 역할을 척척해내는 동안 반려 질병인 갑상선 기능저하가 롤러코스터를 탔었다.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을 배웠다.


또, 이름도 생소한 삼차신경통의 세상 끔찍한 통증을 이겨내고 제주에서 프로실행러 기질을 뽐내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노마드맘의 이야기도 오래전 3년 정도 제주살이를 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았다. 아, 그의 아픔에는 미안하지만.


112쪽, 날씬병아리


한편, 쟁쟁한 커리어를 쏟아낸 동년배 날씬병아리 작가 앞에서는 어깨가 한참 겸손해졌다.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산 건지. 아무튼 워킹맘의 고단한 일상을 알아줘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이야기는 애초에 궁금했던 이유가 책날개 작가 소개였는데 띄어쓰기의 함정이었다니 한참 웃었다. '북한 강변'이 아니라 '북한강변'이었다.


183쪽, 김지은


암이지만 괜찮아라고 꿋꿋하게, 한 달 살기와 여행으로 전 세계를 돌며 감각들을 넓히는 김지은 작가의 이야기는 아파도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 좋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감정과 감각들이 그를 통해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디 그가 완치 판정을 받길 바란다.


이 책은 결국 워킹맘들에게 세상은 더 강하고, 더 많은 노력을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버티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만큼만 애쓰고,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적당한' 삶을 살라고 위로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이 괜찮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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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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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작가가 강력 추천했다는 홍보 글은 차치하고 우선 눈을 끈 건 다름 아닌 '덕질'이었다. 나 역시 소위 '조크든요!'로 대변되는 트렌드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유행에 민감한 X세대 아니던가.


동대문 흥인 시장에서 털 안감의 스노우청자켓을 학교에 유행 시키고,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부러워하던 10대 시절의 부활과 들국화를 쫓아 다니던 시절,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일하면서 일본까지 날아가 LD를 사고 피겨와 가샤폰에 매진하던 시간을 떠올리며 생면부지 작가의 '덕질'이 매우 궁금해졌다.


이 책은 제12회 브런치북 종합부문 대상작으로, 필명 편안한 제이드로 활동 중인 저자 김지원이 자신의 인생 궤적에서 30년 넘게 이어져 온 '덕질'을 총 4장으로 나누어 썰을 푼다. 1장은 덕후로 살아가는 기쁨과 고충을, 2장은 아이돌부터 프로게이머 등 다양했던 덕질의 연대기를, 3장은 덕질 비하인드 스토리와 4장에선 덕후로서 터득한 삶의 철학을 단순한 취향을 넘어 자신을 사랑하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읽다 보니 추천사를 쓴 소설가 성해나의 표현대로 '덖질'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애를 이리저리 타지 않게 잘 익혀내는 과정이랄까. 흠, 덕질의 세계를 잘 모르는, 작가의 구분에 따르자면 머글인 나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혹은 콘텐츠 내지는 물건들을 규칙을 세우면서까지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 좀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의아하다 해야 할까, 아무튼 좀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하는 덕질이 정신건강에 좋을는지. 공공기관에 안 다니면 좀 다르나?라는 생각이랄까.


49쪽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성공한 사람을 동경하고, 실패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곤 한다. 성공엔 다 이유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실패에도 사유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사람의 능력뿐 아니라 수많은 우연과 다른 환경적 요인에 의해 갈리는 것이다." 141쪽


망돌에 관해 덕후로 겪는 여러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을 자신의 일상의 변화로 끌고 오는 지혜로움도 엿볼 수 있어서 나름 괜찮은 덕질일 수 있겠다 싶다.


152쪽


책을 읽는 동안 추억 여행을 한 기분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8년 넘게 일하면서 하루 종일 애니메이션을 틀어 놓고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스타를 하며 밤을 새우던 기억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작가는 '덕질'을 통해 얻는 다양한 감각들과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 '덕질'의 유무에 상관없이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특히 '덕질'이 현실 도피라는 부정적 인식이 아니라 삶의 활력과 용기를 얻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이기도 해서 번아웃에 허덕이는 모든 이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덕질'은 돈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메시지는 아마도 강력하지 않을까 싶다. 그 안에서 망돌의 덕질처럼 웃픈 작가의 덕질 스토리를 보면서 세상은 역시 뭐든 쉬운 일이 없겠지만 이런 덕후 역시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화려한 문장이 치덕치덕 하지 않고 담백하고 통통 튀는 경쾌한 문장에 푹 빠져들게 된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묵직하게 공감되는 문장이 많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덕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수 배우고 말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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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생활모험가 지음 / 소로소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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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붙어있는 '도'를 의심했다. 어차피 주력 생존에 필요한 주요 공급원은 있고 해도 안 해도 그만인 말 그대로 취미 정도의 수입원이 콘텐츠겠거니, 그 정도인 것을 과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도'의 합리적 의심.


그럼에도 회사를 안 다니는 모험은 피하고 싶지만 콘텐츠로 먹고살고픈 나의 부러움이 이 책을 피할 수 없는 이유였다.


자칭 생활모험가라 칭하는 저자는 캠핑 여행 전문 크리에이터이자 작가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글과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작은 캠핑 다녀오겠습니다>, <캠핑 하루>, <숲의 하루> 등을 썼다. 1인 출판사 소로소로와 네이버 인플루언서, 10만 유튜버, 인스타그램을 운영한다.


"나를 지키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며 살아가기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기에 비로소 자유롭고 나다울 수 있다."


라며 시작하는 그의 다짐처럼 느껴지는 말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내 자존감을 여지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알지만 나는 선뜻 하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는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는 일은 부러움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그래서 초장부터 기분 잡쳤다. 지질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가능성과 자유, 누구나 혹하는 말이지만 그 옆에 안정을 갖다 대면 스리슬쩍 불안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그의 자유 예찬이 미안하게도 곧이곧대로 와닿지 않은 건 아마도 생존은 남편이 발 벗고 나서고 있어서는 아닐까.


어쨌든 비빌 언덕이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 때 할 수 있는, 럭키비키한 건 아니었을까. 그냥 내 시기심인가?


읽다 보니 뭐랄까, 설렘? 그런 비슷한 감정의 느낌이 활자에 빼곡히 담겼다. 살짝 통통 튄달까? 그의 이야기는 지금 그가 하는 일에 어떤 기대가 많음을, 그래서 실수도 신나는 모험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여 그의 삶은 나와는 참으로 다르게 활기차다.


103쪽


생존 영역을 남기는 동물들처럼 여기저기 쓸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더군다나 얼마간은 책임지지도 못할 글이면서도 마구 써대는 나로선 그저 좋아하기만 한 글쓰기인가 싶어 생각이 많아진다.


게다가 그런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 서보라는 그의 조언 역시 쉽지 않다. 쉰여섯에도 여적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찾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기도 해서.


"한 치의 오차 없는 완벽함보다는 정성을 다한 진심의 힘을 믿기로 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걸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뛰다가도 걷고. 지치면 잠깐 멈췄다가 적당히 외부의 에너지를 빌려 가면서 완급 조절을 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다음'은 꼭 오더라." 111쪽


차안대를 차고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하는 세상에서 완급 조절의 힘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아주 많은 공감을 하면서 언젠가 내게도 다가올 '다음'을 믿어보기로 한다.


150쪽


이 책은 완성본이 아닌 진행형의 이야기다. 그가 만들어 온 다양한 모험과 가능성 많은 콘텐츠는 계속 쏟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자신이 궁금한 이들에게 활짝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이지 싶다. 평범한 생계형 출판 직장인에서 10만 유튜버가 되기까지 저자의 에피소드와 노하우를 보며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먹고사는 콘텐츠로 연결되는지,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크리에이터 입문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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