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대화술 - 속마음 들키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이노우에 도모스케 지음, 오시연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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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회사는 영혼을 두고 나가야 하는 곳인데 거기에 빌런까지 있다면 그것만큼 난제가 어디 있을까. 그런 오피스 빌런 퇴치에 관해 속 시원하게 해결법을 제시한다는 저자는 매월 30여 개의 회사를 방문해 직원들의 정신건강과 재해 예방 할 정도로 활발하게 사람들의 '정신'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빌런의 소굴이 일본이긴 하지만 그게 뭐 국적을 가릴 것 같지는 않지만 저자는 일본에서 우울과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진료하면서 사람들이 '대충 웃고 대충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하… 시작에 성가시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손절이 아닌 그 빌런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니… 공감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저자가 실제 효과가 있다니 일독해 보기로 한다.


뒷담화 만렙인 사람, 유아독존인 사람, 밥 먹듯 갑질하는 사람, 막무가내 요구하는 사람, 책임 떠넘기는 사람으로 저자가 주목한 '오피스 빌런 5가지 유형'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 즐비한 빌런을 다 모아놨다. 이런 빌런이 나타나면 공습경보를 울리느라 급급했다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내가 빌런이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유형들은 마스크로도 해결 안 돼서 거리 두기가 답이라는 저자의 말에 살짝 마상 입었다.


"그들은 어쩌다 눈에 들어온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보기에 만만하고 여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 즉 문제 삼지 않을 만한 사람을 선별합니다."31쪽, 빌런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섬뜩했다. 학폭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자기계발서에서 보다니. 저자는 빌런들의 표적은 다름 아닌 '착한 사람'이라며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데 그 방법이라는 게 첫인상부터 범접하지 못하게 시크하게 선을 긋는 게 필요하다고 하는데 회사 막내라면 그게 가능해?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71쪽, 싹싹하지 않지만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


스스로 털어놓는 TMI, 타인의 물건을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사람 등 오피스 빌런은 그들만의 신호가 있으니 잘 탐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타인의 말을 백 퍼센트 믿지 말고, 상하관계를 떠나서,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파트 3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대놓고 MZ 세대의 나이 어린 빌런을 꼽는다. 꼰대의 입장이 아닌 상사와 관계뿐만 아니라 부하직원과의 관계로 힘들어 하는 부분도 다루는데 흥미롭다가 답답함도 든다. MZ 세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관심과 관찰로 상하관계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는 조언이 이어진다. 결국 비위 맞추라는 얘기 아닌가?


120쪽,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내 말을 듣게 하는 법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뭐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해서 성공한 경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방식이 정해져 있어서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143쪽


이 책은 오피스 빌런은 멀리하는 게 상책이지만 사내에서 자신의 평가와 일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을 때 참고하자는 내용이 강하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간은 상투적이고 뻔함도 많다. 한 번에 확 바뀌어서 빌런의 보복을 당하지 말고 조금씩 변화를 통해 빌런이 더 이상 무례할 수 없게 만들라는 조언들과 부득이 하게 빠져 나올 수 없어 수면장애나 심신에 반응이 나타나면 참거나 노력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방법을 제시한다.


솔직히 정신적 안정을 위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많아서 나랑은 좀 안 맞는 처방이다. 나는 빌런은 무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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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 버는 비즈니스 글쓰기의 힘 - 한 줄 쓰기부터 챗GPT로 소설까지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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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한 줄이면 충분한'이란 문장에 혹했다. 업무로든 서평이든 글을 자꾸만 써내야 하는 업보에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신 내림' 같은 능력이 생겼으면 했다.


술술 잘도 읽힌다. 한데 읽다 보면 은근 서글퍼진다. 생존 글쓰기, 그렇다 비즈니스 글쓰기니 돈을 좀 벌어 보자는 이야기가 맞겠지만,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심지어 타이탄의 도구라고까지 글쓰기 자체를 표현하는 저자의 글쓰기 지론이 왠지 절박한 듯, 좋아서 쓰는 글쓰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부업을 알선하는 느낌이 든다.


기존에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가 되어라는 말은 분명 쉽지 않은 현실에서 안정적인(저자는 공무원이니 더 그렇겠지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일을 스스로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뭐 저자가 말하는 부수입을 위해 달려보자는 응원에도 나는 그 둘을 다 잘해내지 못하는 처지라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독서를 하다가 글을 쓰자 마음먹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쓰다 보니 여러 공모제에서 입상도 하고 책도 낸 자칭 큐레이션 전문작가라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기본기와 스킬 등을 포함한 7개 파트로 비즈니스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이중 첫 번째 파트는 말 그대로 생존 글쓰기를 처절하게 강조한다. 이 파트 읽다가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현타에 직면하기도 했다. 막연히 업무에 도움이 될 글쓰기라고 생각했다가 글쓰기에 대한 원 포인트 레슨 같은 내용에 움찔했다. 글쓰기 설명하면서 5천 년 진화의 산물이나, 살기 위한 감각으로 진화한 원시 DNA까지 거슬러 오르는 작가가 몇이나 있겠나. 눈을 크게 뜨고 몰입하게 한다.


쫄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고 말하는데 분명 여타의 책과는 그 밀도 자체가 다르다. 자칭 큐레이터 전문작가라고 하더니 자료 수집과 분류 같은 방법 소개도 남다르다.


"본질적 사고를 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글의 깊이는 얕아집니다. 본질적 질문을 하지 않고 생각지 않으면, 남들과 같은 글만 씁니다. 뻔한 주장을 하고 남들과 같은 표현을 쓰고 같은 주장을 하는데 누가 읽어 줄까요?" 58쪽, 근원적 질문이 고전의 힘이다


글쓰기의 기본기로 독서를 다루면서 안 읽히면 읽지 말라 조언하는데 은근 멋짐이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얼마간의 책임감으로 한 장 넘기기도 힘든 책을 부둥켜안고 씨름하면서 적잖은 머리칼을 내주었던 시간이 순간 공허해졌다. 이제부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


좋은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라는 자지의 말은 은근 다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옳다. 쉽게 읽히는 글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런 좋은 글쓰기 방법으로 12가지를 소개한다. 짧고, 쉽고, 명확하게 그리고 정확한 사례와 뻔한 표현을 피하고, 숫자는 상상하게 만들라. 사실적으로, 좋은 구성과 문장에 리듬감을 주며, 말하듯, 명확한 결론과 요점을 반복해서 쓰라고 조언한다. 깊이 새길만한 조언이다.


136쪽, 문장을 잘 쓰는 기본 항목

181쪽, 글쓰기 실전


이어 문장과 묘사의 기본부터 고급 테크닉을 설명하는데 줄치고 메모하는데 여념 없게 만든다. 솔직히 이런다고 내 글쓰기가 좋아질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고문이 든다. 특히 실전 로드맵을 소개하는데 글쓰기에 앞서 보다 디테일한 틀을 짤 수 있게 하면서 실전 글쓰기를 설명한다. 또 블로그를 이용한 자기 알리기, 서평, 필사, 공모전에 전자책 만들기, 챗 GPT를 이용한 글쓰기 등등 글쓰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준다.



243쪽, 책을 써야하는 이유 3가지


이 책 한 권 읽고 나니 문예 창작이나 그와 비슷한 수업을 들은 것 같다. 당장 글쓰기에 도전할 만큼 자신감도 생긴다. 일독은 기본이고 다독할만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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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서사 - 수많은 창작물 속 악, 악행, 빌런에 관한 아홉 가지 쟁점
듀나 외 지음 / 돌고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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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콘텐츠인가 싶을 정도로 '악인'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그러니 악인의 정의가 새삼 궁금했다. 작가, 평론가, 연구자, 번역가에 비평가로 구성된 9인의 저자가 콘텐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악인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사뭇 기대 됐다.




본 내용에 앞서 등장한 <편집자의 말>은 논문의 초록을 보는 것처럼 이 책의 엑기스를 쭉 뽑아 압축 요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쉽지 않은 딱딱한 내용이겠다, 싶은 예감이 들었다. 사실 논문은 읽고 공감하기 쉽지 않은데.


"'영화는 영화로만', '코미디는 코미디로만' 같은 말들은 비겁한 거짓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던진 모든 것인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24쪽, 악인보다 선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


공감한다. 아주 많이. 작가의 이야기는 우린 어떻게든 타인과 연결되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게 '아니면 말고' 식의 어떤 소모적인 표현쯤으로 치부되는 건 위험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외치며 정치 탄압을 피하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를 만큼 그 이면에 존재한 의미를 곱씹게 된다.


영화평론가 전승민은 그의 글에서 악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의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덧붙여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악이 부재한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이며,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드는 것은 결국 위선이 아니냐 묻는다. 솔직히 악이 존재하지 않다 해서 선이 가득할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빛을 위해 어둠이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존재로서 각기 드러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콘텐츠 속에서 내리는 악이라는 정의 속에만 악은 갇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분명 콘텐츠에는 독자나 시청자가 있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실에는 다양한 이상 동기를 가진 이들의 존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80쪽, 조명등, 달, 물고기


이어 강덕구는 <나쁜 놈도 눈물 흘려야 할 이유>에서 서부극과 다큐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악'에 대해 "악인에게 서사를 지운다는 것은 그의 얼굴을 지운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얼굴을 빼앗긴다.(169쪽)"라는 주장을 담는다.


물론 콘텐츠라는 허구의 세계(허구의 세계로 단정하기엔 현실에서 등장하는 악인의 존재가 비일비재 하지만)에서 선을 드러내기 위해선 악이 필요하지만 현대에서 악인의 묘사는 잔인함의 강도가 도를 넘어섰는데 이를 억눌린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포장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착각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스릴은 없고 잔인함과 공포만 극대화 하고 있지 않은가.


215쪽, 현실의 낙인, 무대 위의 매혹


아홉 명의 저자들이 말하는 '악'과 '악인'이 펼치는 서사에 대해 내가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저자들의 열띤 논점의 기저에는 악인임에도 가져야 하는 '인권'에 대한 담론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쇄 살인마도 인권이 있는가, 같은 질문들.


이 책은 콘텐츠 속 잔혹한 연쇄 살인마의 얼굴을 한 악인부터, 여성성에 대한 차별 혹은 배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빌런의 속성 같은 다양한 악인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악인의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텍스트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악인의 서사를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거나 혹은 그래서 속이 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저자들은 지적하는 게 아닌가, 라는 정도로 이해했다.


책장을 덮는 순간, 타고 나든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지든 악인은 악인일 뿐이라는, 거기에 서사를 입히는 순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분명한 건 환경이 똑같아도 악인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더프 백더프의 말처럼 악인 그 자체는 그의 선텍일 테다. 악인의 서사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공감한다.


'악'에 대한 심도 있는 학술지를 읽은 듯 하지만 나름 악을 구분하는 수준은 살짝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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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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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 없이 편안하게 늘어졌다가 자연스럽게 의자를 땅기고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힘이 있다. 도시, 혹은 건물 내지는 골목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읽으면 읽을 수록 도시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도 못생길수록 치열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숨 쉬고 있다는 걸.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건축가의 꿈을 접었다는, 그리고 기자로서 도시의 건축을 이야기한다는 저자가 흥미로웠다. 그가 바라 보는 서울은 건축으로든 활자로든 분명 독특할 것이라는 얼마간의 믿음이 생겼다. 세상은 잘생긴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으므로.


이름조차 생소한 '백사마을'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시의 주거지보존사업을 "처음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관으로 기획한 공간과 진짜 사람이 사는 마을은 달라야 한다."라는 저자의 일침은 도시를 재개발로 포장해 한낱 볼거리로 만들어 생기를 빼앗는 것이라는 데 동의 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중계동 언덕 백사마을에서 시작한 걸음은 종로 창신동으로 넘어 간다.


도시와 도시, 그 안에 골목들을 둘러보며 하느작거릴 모양새를 예상한 것과는 달리 책은 서울의 도시정비계획이나 뉴타운 계획 등 소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재개발을 통한 공공의 집장사를 역사와 배경,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리 등을 꽤나 디테일하게 짚어낸다.


심지어 헌 집을 줬는데 새 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즐비했던 도시정비사업에 얽힌, 게다가 서울 토박이라면 산증인을 자처하고 나설 만큼 할 말이 차고 넘치는 이야기겠다 싶다. 초등학교 1학년, 옥수동 산 5번지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성남시로 쫓겨난 이력이 있는 나로선 좀 더 꾹꾹 눌러 읽게 된다.


104쪽,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폐지 1킬로그램을 모아 봤자 100원도 받지 못하는데, 하루 50킬로그램을 수집한다 해도 50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한 달 내내 쉼 없이 폐지를 주워도 손에 쥐는 돈이 15만 원 안팎에 불과합니다. 도시에서 매일 쏟아지는 폐지를 줍는 노동이 계속 필요하다면, 도시에는 이 정도 소득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도 필요합니다. (...) 하물며 그런 집을 재개발로 하나씩 없애는 건 우리 스스로 도시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입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면 정말 도시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잇습니다." 108쪽, 신림 반지하와 종로 고시원


저자가 지적하는, 폐지가 도시 순환의 밑바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문장에서 주거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폐지 줍는 일이 도시 재생에서 어떻게 선순환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질문한다.


도시 이야기는 주거 문제를 지나 기본적인 복지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중계동에서 창신동으로 종로, 행당을 거쳐 다산동, 세운, 예지동, 힙지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도시에서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데 눈을 뗄 수 없고 공감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출발선에 서는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합니다." 137쪽, 사람이 스무 살에 죽는다면


146쪽, 1000개의 공장이 돌아가는 곳


다산동 김 씨를 사례로 도시에 뿌리를 둔 동네의 의미를 정책만 들이대는 부류들에게 저자가 날리는 패러독스는 정말 사이다처럼 청량감이 가득하다. 멀쩡한 건물을 쓸어버리고 새로 짓겠다는 포부가 도시 재생을 위해서인지 개발업자들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뻔하지만 모른다 쳐도 정작 동네 사람을 위한 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204쪽, '힙지로'의 교훈


창신동 이야기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사계>가 떠올랐다. 근무지인 동대문과 가까워 관심과 공감이 남달랐다. 창신동 일대는 여전히 미싱이 멈추지 않는 1000개의 공장들이 있다지만 그 안은 그다지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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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의 마법사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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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실존 인물에 기반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니 이 얼마나 창의적인가 싶다. 심지어 흑마법이란 추천사를 할 정도라니 더 궁금하다. 왠지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 등장해 각인된 비선 실세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떠올랐는데, 바딤 바라노프라는 이름 탓인가?


러시아에 앞선 소련을 떠올리면 단지 비밀스러운 조직인 KGB 정도랄까. 그들, 소련이나 러시아의 역사에는 문외한이라 베일에 쌓인 정치 권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허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작가는 세계 그것도 인류 역사 등장하는 잔혹한 학살자 명단에 스탈린이나 히틀러에다 처칠까지 껴 넣었다. 전쟁 혹은 그 이외의 이유로 인류 학살을 설계한 그들을 '예술가'로 표현하는 데 대한, 솔직히 단전 밑에서 끓어 오르는 거부의 빡침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으로 도배된 전반부의 서사는 당혹스러울 만큼 잔잔했다. 어디가 흑마법? 하다가도 중간중간 묘사되는 정치 공작에는 살짝 진짠가? 싶은 궁금증도 있어 페이지를 멈추진 못했다. 그렇지만 정말 문학에 가까운 설명이 길게 이어지는 건 후레자식 퀴스틴이 묘사한 '러시아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기대감의 예열 치고는 너무 더딘데 책까지 두껍다.


53쪽


"특권이란 자유의 반대이며, 노예화의 한 형태이니까." 59쪽


당시 그러니까 소비에트 체제 하의 세상이란 돈 따위는 그저 색깔 있는 종이일 뿐이고 권력이나 혹은 그 근거리에 있는 것이 특권을 증명하는 네 개의 번호를 조합해서 작동되는 베르투슈를 갖는 것이며, 심지어 대화 내용이 KGB에 도청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는 바쟈의 설명이 멋지면 안 되는데 멋져버렸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화려한 장례식을 보장받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바쟈의 말을 되풀이 해서 몇 번 읽었다. 그런 이유로 권력이 있든 없든 성공에 대한 탐욕은 어차피 죽고 나서야 쓸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동의 같은 심정이 됐달까.


고르바초프, 옐친, 밴틀리, 재규어, 메르체데스로 대변되는 90년 대 초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겪는 러시아의 혼란과 들뜸 그 이면에 돈에 대한 욕망이 도사린 모스크바, 그것도 크렘린에서 고대 왕족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불안한 권력자들 틈에서 드디어 나타난 푸틴!


이 책은 거의 절반에 가깝게 소련과 러시아를 다소 관념적이고 서사적 꾸미기에 할애 한다. 그게 되레 독자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덮으려 한다면 아직은 섣부르다고 말해 주고 싶다.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116쪽


"러시아에서 권력은 전혀 다른 무엇입니다." 129쪽


상상력에만 의존한 내용이 아니라면 푸틴은 이 책에서 좀 더 생동감 있게 팔딱 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 정치는 서구의 피티 쪼가리로 결정 나는 선거가 아니라 전혀 다른 힘의 논리가 있다고 단언하는 장면에 소름이 쫙 끼쳤다. 우크라이나 침략도 그런 이유겠지.


인간의 눈은 미세한 움직임도 순식간에 포착해 내지만 문제는 변하지 않는 것은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141쪽


사실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차치하고 이런 질문이 훅하고 들었다. 작가는 괜찮나? 제국주의가 평온을 넘어 안일에 가깝게 자본주의에 물들고 이를 다시 제국주의 영광으로 돌려보고자 건물 두 동을 간단히 날려 버린다. 그리고 무정부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 붙인 푸틴의 연출에 정치는 인간의 공포심에 응답하는 것쯤으로 화답하는 내용은 현재 권력자에 대한 비판적 응징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정치쇼를 벌이고 싶었던 한 야심가는 푸틴이라는 배우를 선택 했다가 실수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푸틴을 둘러싼 팩션 소설인 이 책이 주는 서늘함은 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포장하는 모든 정치 권력을 생각하게 하는데, 특히 그 힘이 한 곳으로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작금의 한국 정치를 더 우려하게 만들기도 한다.


21세기에 버젓이 무력을 앞세운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통해 이 시대 정치 권력을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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