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마법사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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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실존 인물에 기반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니 이 얼마나 창의적인가 싶다. 심지어 흑마법이란 추천사를 할 정도라니 더 궁금하다. 왠지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 등장해 각인된 비선 실세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떠올랐는데, 바딤 바라노프라는 이름 탓인가?


러시아에 앞선 소련을 떠올리면 단지 비밀스러운 조직인 KGB 정도랄까. 그들, 소련이나 러시아의 역사에는 문외한이라 베일에 쌓인 정치 권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허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작가는 세계 그것도 인류 역사 등장하는 잔혹한 학살자 명단에 스탈린이나 히틀러에다 처칠까지 껴 넣었다. 전쟁 혹은 그 이외의 이유로 인류 학살을 설계한 그들을 '예술가'로 표현하는 데 대한, 솔직히 단전 밑에서 끓어 오르는 거부의 빡침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으로 도배된 전반부의 서사는 당혹스러울 만큼 잔잔했다. 어디가 흑마법? 하다가도 중간중간 묘사되는 정치 공작에는 살짝 진짠가? 싶은 궁금증도 있어 페이지를 멈추진 못했다. 그렇지만 정말 문학에 가까운 설명이 길게 이어지는 건 후레자식 퀴스틴이 묘사한 '러시아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기대감의 예열 치고는 너무 더딘데 책까지 두껍다.


53쪽


"특권이란 자유의 반대이며, 노예화의 한 형태이니까." 59쪽


당시 그러니까 소비에트 체제 하의 세상이란 돈 따위는 그저 색깔 있는 종이일 뿐이고 권력이나 혹은 그 근거리에 있는 것이 특권을 증명하는 네 개의 번호를 조합해서 작동되는 베르투슈를 갖는 것이며, 심지어 대화 내용이 KGB에 도청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는 바쟈의 설명이 멋지면 안 되는데 멋져버렸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화려한 장례식을 보장받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바쟈의 말을 되풀이 해서 몇 번 읽었다. 그런 이유로 권력이 있든 없든 성공에 대한 탐욕은 어차피 죽고 나서야 쓸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동의 같은 심정이 됐달까.


고르바초프, 옐친, 밴틀리, 재규어, 메르체데스로 대변되는 90년 대 초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겪는 러시아의 혼란과 들뜸 그 이면에 돈에 대한 욕망이 도사린 모스크바, 그것도 크렘린에서 고대 왕족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불안한 권력자들 틈에서 드디어 나타난 푸틴!


이 책은 거의 절반에 가깝게 소련과 러시아를 다소 관념적이고 서사적 꾸미기에 할애 한다. 그게 되레 독자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덮으려 한다면 아직은 섣부르다고 말해 주고 싶다.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116쪽


"러시아에서 권력은 전혀 다른 무엇입니다." 129쪽


상상력에만 의존한 내용이 아니라면 푸틴은 이 책에서 좀 더 생동감 있게 팔딱 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 정치는 서구의 피티 쪼가리로 결정 나는 선거가 아니라 전혀 다른 힘의 논리가 있다고 단언하는 장면에 소름이 쫙 끼쳤다. 우크라이나 침략도 그런 이유겠지.


인간의 눈은 미세한 움직임도 순식간에 포착해 내지만 문제는 변하지 않는 것은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141쪽


사실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차치하고 이런 질문이 훅하고 들었다. 작가는 괜찮나? 제국주의가 평온을 넘어 안일에 가깝게 자본주의에 물들고 이를 다시 제국주의 영광으로 돌려보고자 건물 두 동을 간단히 날려 버린다. 그리고 무정부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 붙인 푸틴의 연출에 정치는 인간의 공포심에 응답하는 것쯤으로 화답하는 내용은 현재 권력자에 대한 비판적 응징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정치쇼를 벌이고 싶었던 한 야심가는 푸틴이라는 배우를 선택 했다가 실수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푸틴을 둘러싼 팩션 소설인 이 책이 주는 서늘함은 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포장하는 모든 정치 권력을 생각하게 하는데, 특히 그 힘이 한 곳으로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작금의 한국 정치를 더 우려하게 만들기도 한다.


21세기에 버젓이 무력을 앞세운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통해 이 시대 정치 권력을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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