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모님 말고 사장님이 되기로 했다
소택언니(김지엽).글로공명(이지아) 지음 / 북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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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사모님과 사장님, 단어 뒤에 숨은 의미가 한됫박쯤 담긴 페미니즘 책인가 했다. 그러다 작가 소개를 보고 아닌가? 했고. 고집 세서 사장이 되었다는 소택언니의 화려한 이력에, 월요일마다 상 타러 조회대에 올랐다는 글로공명의 자랑질에 살짝 삐딱해진 채, 그런 둘이 힘을 합쳐 사장이 되라고 부추기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소택언니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막 부추기는 게 응원보다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더 들었다. '망해도 젊을 때 망하는 게 낫다'라는 응원을 믿고 호기롭게 회사를 차렸다. 무려 8년쯤 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일이었다. 조금은 성공할 줄 알았지만 1년 만에 쫄딱 망했다.


결국 신혼티도 벗지 않은 집 한 채 날리고 나는 사장 그릇이 아니라는 뼈아픈 가르침만 남았다. 분명 젊을 때 망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오지 못했다. 경력에 사장 타이틀이 붙고 나니 다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후배들은 대놓고 그냥 프리랜서나 하지 왜 회사로 오려 하느냐며 거리를 두었다. 마상을 크게 입은 채 그 바닥을 떠났다. 그래서 사장 아무나 하면 안 된다. 자신이 그럴만한 그릇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런 우려의 심정으로, 토돌토돌 소름 돋았다는 소택언니의 말과 글을 글만 잘 쓴다는 글로공명이 다듬어 옮겼다니 조금 더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 보면 사장, 사장을 부르짖으며 혹독한 자기계발을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 소택언니가 말하는 사장의 의미는 폭넓기는 하지만 성공, 부자에 관심이 덜하고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실천적이지 못한 나는 깜냥 자체가 소택언니를 흉내 낼 수 없으니 스스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힘들게 다가온다.


그리고 김대리로 퇴사했다면 김대리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그들이 나를 김대리로 부르는 것이야 무시하면 되고, 취급이 그렇다면 손절하면 되고. 아무튼 그렇게 불리는 게 싫어서 혼자(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장이라 부르는 건 너무 애처롭다. 부디 자존감 잃지 않은 김대리로 남아 주길.


48쪽, 50은 사장되기 딱 좋은 나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책은 중간을 넘어가는데 여전히 사장이 돼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라 응원에 매진한다. 그냥 막연하게 남의 평가와 잣대 속에서만 허우적대지 말라고 하면서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언니처럼 당당해지는지가 궁금한데, 그냥 언니처럼 다짐하고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되나 싶을 때쯤 본격적인 조언이 시작된다.


고되고 정신없이 지내온 과거의 삶을 토대로 든든하고 지혜로운 현재의 나를 발견하는 일, 그래서 자신을 좀 더 인정하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들에 대한 소택언니의 조언이 이어지는데, 무작정 달리던 자신을 삶을 멈추고 숙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안내한다.


"지나온 삶의 과정 속에 더욱 현명해지고 유연해진 내가 있다. 만약 내가 더 잘 살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세월과 경험을 더한 나의 잠재력이라는 무기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의 총량이라는 숙제를 일찍 끝내는 것이다."52쪽, 어려운 일은 빨리 겪고 많이 겪을수록 좋다


소택언니는 40대까지 어려운 일과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면 50대부터는 성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용기를 준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일은 안 겪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나는 40대 초 사장이 돼서 집 한 채 날리고 부모님 집에 기생하며 눈치 보던 시간이 생각나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평직원 월급쟁이로 자식뻘의 동료들과 일하며 눈치 보며 버텨내고 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인지 숨은 잠재력을 찾지 못해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택언니의 응원은 뼈를 때린다. "책은 무조건 옳지만 그렇다고 내용도 옳은 것은 아니"라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넘쳐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조언들을 잘 새기고 골라서 적용해야 한다고 한다.


74쪽, 우리는 역행자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이 언니, 내 인생 여정을 들여다본 듯하다. 아니면 사람들 인생이 대개 다 비슷비슷 한가? 소택언니의 뒤통수 맞은 얘기는 형이 없는 내가 8년 넘게 친형처럼 의지하던 놈에게 크게 뒤통수 맞았었던 일은 평생 잊지 못하고 남아 있는데 이런저런 자신이 맞은 뒤통수 이야기를 해준다.


​"나를 먼저 알고, 어떤 분야의 일이 주어지든지 어떤 아이템을 판매하든지 사장님의 사업 마인드와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이때는 운영이 아니라 경영이라고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데 소택언니가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열강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이 책은 4050 여성들의 자립과 자아실현을 돕고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러면서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좇는 일을 멈추지 않는 언니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부럽다.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잘 살릴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잘 다듬어 팔아 볼 것을 조언한다. 사업자등록증만들기, 세금과 소득신고, 직장보험과 연금 및 필수 교육 등에 대한 짧지만 실질적인 조언과 언니와 관계 맺은 이후 사장이 된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도 담았다.


기억에 남았던,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사실 당신의 착각일 수 있다는 지적에서, 어쩌면 열심히'만'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이런 자신을 깨닫는 일이 두렵지 않다면 4050대 여성이 아니더라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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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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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인권 활동의 현장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을 활자에만 가두고 살아오다 얼마 전부터 인권교육을 받으며 깨닫는 단 하나는 인권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공짜로 뚝 떨어진 것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누리며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더해 돌봄이 왜 돌봄이고 왜 인권을 떼려야 뗄 수 없는지 명확히 한다. 신입생 티를 아직 다 벗지도 못했던 대학 2학년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말 그대로 무한 돌봄 의존자였기에 돌봄에 인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도 전에 얼마간의 지침이 있었다.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20개의 숫자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선으로 서로 엮여 있지만, 어느 것은 선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고 어느 것은 떨어져 독립적이기도 하다. 마치 대한민국 돌봄 사각지대처럼.


이 책은 인권활동가인 두 저자가 돌봄을 인권 위에 올려놓고 철학부터 인식과 현장의 관념을 환기하고 전환한다. 나아가 돌봄을 권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던 돌봄을 주체적인 권리로 인식하게 해 그동안의 관념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돌봄은 애정, 헌신, 신뢰의 관계인데 이기성이 대결하는 구도를 끌어들이기 싫다는 것이다. 권리를 끌어들이면 돌봄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강제적인 의무나 책무 같은 것으로 격하된다는 감정도 있다."16쪽, 권리를 꺼리는 돌봄?


'출근'과 '출근 밖'을 구분하며 노동의 '가치'와 아울러 다양한 돌봄에서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 그런 돌봄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돌봄이 개인에서 '나라를 돌본다'라는 말처럼 국가로 확장될 수 있음도 놀랐다. 사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경험하는 인권 역시 열악하다.


장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인간답게 산다는 조건에 '노동'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반면,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욕설에 얻어맞고 물리고 뜯기는 현장에서 “복지사의 인권은 누가 지키느냐"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상황의 대척은 비일비재 한 현실을 드러내면서 그로 인한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거론하며 돌봄 의존자와 제공자 사이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권리의 세계는 1인칭과 2인칭뿐 아니라 무수한 3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쪽, 권리는 의무를 부과하는 정당한 힘


권리는 필요 또는 욕구와는 분명 다르고, “타자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힘(21쪽)”이 권리라는 자격에 대한 설명은 쉽게 이해된다. 인권이 천부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와 질서에 따른 주체, 대상(의무자), 내용이라는 점에서 인권은 운동이자 정치(26쪽)”라는 저자의 지적은 눈여겨보게 된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복지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에 깊숙한 공감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과연 정치가 끼어들지 않으면 복지는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돌봄 제공자가 갖는 권력은 돌봄 의존자를 수혜자 혹은 지시 수행자의 위치로 전락시킨다. 특히 상시 프로그램 발달장애인 이용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애들”이라거나 “우리 친구들”이라 취급하는데 이런 태도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돌봄 제공자가 많다. 이렇게 보호나 수혜를 전제로 한 서비스의 영역은 돌봄 의존자의 영역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바꿔 누군가 돌봄 제공자를 그런 취급을 한다면 기함하지 않겠나.


TV 드라마에서 파킨슨으로 몸과 기억의 기능을 잃어가는 현실을 인간 존엄으로 연결 짓는 설명은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늘 답답함이 있었던 질문을 마주한다. 의식도 없고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옥에게 '인간 존엄'의 선언적 내용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 질문은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당신은 뭘 원하느냐고 묻는 현장의 딜레마와 유사한 접점이 있지 않을까. 그 역시 무엇으로도 위로도 답도 되지 않는다.




뒤이어 저자는 존엄에 대해 그렇게 '기억하는 능력',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움직이는 상태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타인의 응답 속에서 존재한다고 한다. 즉 돌봄 제공자의 태도에 따라 돌봄 의존자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다는 지적은 많은 사유를 동반하게 한다.


또 저자는 돌봄에서의 인정(re-cognition)에 대해 언급하는데, 인정은 언제나 상호 인정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내가 그를 다시 알아본다는 건 그와 내가 서로 타자인 상태에서 만났고 자기에게 다가온 타자의 헐벗은 취약한 얼굴이 송신하는 책임의 메시지를 수신했음을 기억하는 행위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너를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내게 있다'가 아니다.(69쪽)"라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이 말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처럼 돌봄에서의 호혜성이 포장된 인정은 상호(inter)의 구조를 지닌다고 저자는 못 박는다. 한데 읽으면서 드는 의심은 과연 이런 상호 의존이 주는 인정의 범위가 왜 대부분 가족에 한정되는 가다. 치매(인지기억장애)나 정신을 포함한 신체장애 같은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돌봄의 부분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을 '나'와 '너'가 아니라 '가족'이 짊어지는 현실에서 타자가 포함된 ‘우리’라는 주장은 공염불이 아닐까 싶다.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상호 의존성을 갖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뜨끔거리기 바빴다. 여태 인권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던 탓에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어떻게든 노력할 부분을 찾아보려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강도영의 사례에서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있는’ 의미의 유무를 판단하는 부분에 저자가 던지는, ‘그런’ 상태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멍해졌다.


나 역시 자력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에크모에 의지해 3개월 넘게 숨을 쉬어야 했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를 두고 ‘살아 있는’ 것에 의미를 따졌다면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됐고 여기서 오는 돌봄의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 문제를 몰라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돌봄이 인권의 영역에서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경험했음에도 잊고 있었다. 저자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의 의미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또 민폐를 돌봄의 입장해서 생각해 보는 대목 역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폐 끼치지 않으려면 타자와 관계 맺고 어울리는 삶에서 물러 나야만 하는 삶"이라는 지적은 이제는 공공장소에서도 타인에 대한 불편한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치매가 한창 진행 중인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발달장애인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보통의 돌봄 제공자는 부끄럽거나 혹은 지쳐서 자신은 돌봄 의존자가 된다는 것에서 의식적으로 예외로 두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나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같은 다짐은 의식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나 노년의 시기를 겪는다. 의존은 그리고 돌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 민폐가 아니다.


197쪽, 시민권과 인권으로서 돌봄권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온통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한자 한자 토씨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돌봄이 개인을 넘어 사회 시민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담론은 무조건 옳다. 돌봄이 삶의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생애 전반에 거쳐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다. 그 이야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마음이 꿈틀댄다. 꼭 읽어 보시라.


솔직히 머리 아픈 어려운 개념들로 가득 차서 더디게 읽혔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돌봄과 인권을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다. 가능하다면 아예 통째로 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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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대화술 - 속마음 들키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이노우에 도모스케 지음, 오시연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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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회사는 영혼을 두고 나가야 하는 곳인데 거기에 빌런까지 있다면 그것만큼 난제가 어디 있을까. 그런 오피스 빌런 퇴치에 관해 속 시원하게 해결법을 제시한다는 저자는 매월 30여 개의 회사를 방문해 직원들의 정신건강과 재해 예방 할 정도로 활발하게 사람들의 '정신'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빌런의 소굴이 일본이긴 하지만 그게 뭐 국적을 가릴 것 같지는 않지만 저자는 일본에서 우울과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진료하면서 사람들이 '대충 웃고 대충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하… 시작에 성가시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손절이 아닌 그 빌런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니… 공감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저자가 실제 효과가 있다니 일독해 보기로 한다.


뒷담화 만렙인 사람, 유아독존인 사람, 밥 먹듯 갑질하는 사람, 막무가내 요구하는 사람, 책임 떠넘기는 사람으로 저자가 주목한 '오피스 빌런 5가지 유형'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 즐비한 빌런을 다 모아놨다. 이런 빌런이 나타나면 공습경보를 울리느라 급급했다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내가 빌런이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유형들은 마스크로도 해결 안 돼서 거리 두기가 답이라는 저자의 말에 살짝 마상 입었다.


"그들은 어쩌다 눈에 들어온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보기에 만만하고 여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 즉 문제 삼지 않을 만한 사람을 선별합니다."31쪽, 빌런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섬뜩했다. 학폭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자기계발서에서 보다니. 저자는 빌런들의 표적은 다름 아닌 '착한 사람'이라며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데 그 방법이라는 게 첫인상부터 범접하지 못하게 시크하게 선을 긋는 게 필요하다고 하는데 회사 막내라면 그게 가능해?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71쪽, 싹싹하지 않지만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


스스로 털어놓는 TMI, 타인의 물건을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사람 등 오피스 빌런은 그들만의 신호가 있으니 잘 탐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타인의 말을 백 퍼센트 믿지 말고, 상하관계를 떠나서,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파트 3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대놓고 MZ 세대의 나이 어린 빌런을 꼽는다. 꼰대의 입장이 아닌 상사와 관계뿐만 아니라 부하직원과의 관계로 힘들어 하는 부분도 다루는데 흥미롭다가 답답함도 든다. MZ 세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관심과 관찰로 상하관계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는 조언이 이어진다. 결국 비위 맞추라는 얘기 아닌가?


120쪽,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내 말을 듣게 하는 법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뭐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해서 성공한 경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방식이 정해져 있어서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143쪽


이 책은 오피스 빌런은 멀리하는 게 상책이지만 사내에서 자신의 평가와 일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을 때 참고하자는 내용이 강하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간은 상투적이고 뻔함도 많다. 한 번에 확 바뀌어서 빌런의 보복을 당하지 말고 조금씩 변화를 통해 빌런이 더 이상 무례할 수 없게 만들라는 조언들과 부득이 하게 빠져 나올 수 없어 수면장애나 심신에 반응이 나타나면 참거나 노력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방법을 제시한다.


솔직히 정신적 안정을 위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많아서 나랑은 좀 안 맞는 처방이다. 나는 빌런은 무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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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 버는 비즈니스 글쓰기의 힘 - 한 줄 쓰기부터 챗GPT로 소설까지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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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한 줄이면 충분한'이란 문장에 혹했다. 업무로든 서평이든 글을 자꾸만 써내야 하는 업보에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신 내림' 같은 능력이 생겼으면 했다.


술술 잘도 읽힌다. 한데 읽다 보면 은근 서글퍼진다. 생존 글쓰기, 그렇다 비즈니스 글쓰기니 돈을 좀 벌어 보자는 이야기가 맞겠지만,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심지어 타이탄의 도구라고까지 글쓰기 자체를 표현하는 저자의 글쓰기 지론이 왠지 절박한 듯, 좋아서 쓰는 글쓰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부업을 알선하는 느낌이 든다.


기존에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가 되어라는 말은 분명 쉽지 않은 현실에서 안정적인(저자는 공무원이니 더 그렇겠지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일을 스스로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뭐 저자가 말하는 부수입을 위해 달려보자는 응원에도 나는 그 둘을 다 잘해내지 못하는 처지라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독서를 하다가 글을 쓰자 마음먹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쓰다 보니 여러 공모제에서 입상도 하고 책도 낸 자칭 큐레이션 전문작가라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기본기와 스킬 등을 포함한 7개 파트로 비즈니스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이중 첫 번째 파트는 말 그대로 생존 글쓰기를 처절하게 강조한다. 이 파트 읽다가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현타에 직면하기도 했다. 막연히 업무에 도움이 될 글쓰기라고 생각했다가 글쓰기에 대한 원 포인트 레슨 같은 내용에 움찔했다. 글쓰기 설명하면서 5천 년 진화의 산물이나, 살기 위한 감각으로 진화한 원시 DNA까지 거슬러 오르는 작가가 몇이나 있겠나. 눈을 크게 뜨고 몰입하게 한다.


쫄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고 말하는데 분명 여타의 책과는 그 밀도 자체가 다르다. 자칭 큐레이터 전문작가라고 하더니 자료 수집과 분류 같은 방법 소개도 남다르다.


"본질적 사고를 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글의 깊이는 얕아집니다. 본질적 질문을 하지 않고 생각지 않으면, 남들과 같은 글만 씁니다. 뻔한 주장을 하고 남들과 같은 표현을 쓰고 같은 주장을 하는데 누가 읽어 줄까요?" 58쪽, 근원적 질문이 고전의 힘이다


글쓰기의 기본기로 독서를 다루면서 안 읽히면 읽지 말라 조언하는데 은근 멋짐이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얼마간의 책임감으로 한 장 넘기기도 힘든 책을 부둥켜안고 씨름하면서 적잖은 머리칼을 내주었던 시간이 순간 공허해졌다. 이제부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


좋은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라는 자지의 말은 은근 다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옳다. 쉽게 읽히는 글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런 좋은 글쓰기 방법으로 12가지를 소개한다. 짧고, 쉽고, 명확하게 그리고 정확한 사례와 뻔한 표현을 피하고, 숫자는 상상하게 만들라. 사실적으로, 좋은 구성과 문장에 리듬감을 주며, 말하듯, 명확한 결론과 요점을 반복해서 쓰라고 조언한다. 깊이 새길만한 조언이다.


136쪽, 문장을 잘 쓰는 기본 항목

181쪽, 글쓰기 실전


이어 문장과 묘사의 기본부터 고급 테크닉을 설명하는데 줄치고 메모하는데 여념 없게 만든다. 솔직히 이런다고 내 글쓰기가 좋아질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고문이 든다. 특히 실전 로드맵을 소개하는데 글쓰기에 앞서 보다 디테일한 틀을 짤 수 있게 하면서 실전 글쓰기를 설명한다. 또 블로그를 이용한 자기 알리기, 서평, 필사, 공모전에 전자책 만들기, 챗 GPT를 이용한 글쓰기 등등 글쓰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준다.



243쪽, 책을 써야하는 이유 3가지


이 책 한 권 읽고 나니 문예 창작이나 그와 비슷한 수업을 들은 것 같다. 당장 글쓰기에 도전할 만큼 자신감도 생긴다. 일독은 기본이고 다독할만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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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서사 - 수많은 창작물 속 악, 악행, 빌런에 관한 아홉 가지 쟁점
듀나 외 지음 / 돌고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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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콘텐츠인가 싶을 정도로 '악인'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그러니 악인의 정의가 새삼 궁금했다. 작가, 평론가, 연구자, 번역가에 비평가로 구성된 9인의 저자가 콘텐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악인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사뭇 기대 됐다.




본 내용에 앞서 등장한 <편집자의 말>은 논문의 초록을 보는 것처럼 이 책의 엑기스를 쭉 뽑아 압축 요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쉽지 않은 딱딱한 내용이겠다, 싶은 예감이 들었다. 사실 논문은 읽고 공감하기 쉽지 않은데.


"'영화는 영화로만', '코미디는 코미디로만' 같은 말들은 비겁한 거짓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던진 모든 것인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24쪽, 악인보다 선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


공감한다. 아주 많이. 작가의 이야기는 우린 어떻게든 타인과 연결되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게 '아니면 말고' 식의 어떤 소모적인 표현쯤으로 치부되는 건 위험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외치며 정치 탄압을 피하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를 만큼 그 이면에 존재한 의미를 곱씹게 된다.


영화평론가 전승민은 그의 글에서 악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의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덧붙여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악이 부재한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이며,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드는 것은 결국 위선이 아니냐 묻는다. 솔직히 악이 존재하지 않다 해서 선이 가득할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빛을 위해 어둠이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존재로서 각기 드러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콘텐츠 속에서 내리는 악이라는 정의 속에만 악은 갇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분명 콘텐츠에는 독자나 시청자가 있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실에는 다양한 이상 동기를 가진 이들의 존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80쪽, 조명등, 달, 물고기


이어 강덕구는 <나쁜 놈도 눈물 흘려야 할 이유>에서 서부극과 다큐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악'에 대해 "악인에게 서사를 지운다는 것은 그의 얼굴을 지운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얼굴을 빼앗긴다.(169쪽)"라는 주장을 담는다.


물론 콘텐츠라는 허구의 세계(허구의 세계로 단정하기엔 현실에서 등장하는 악인의 존재가 비일비재 하지만)에서 선을 드러내기 위해선 악이 필요하지만 현대에서 악인의 묘사는 잔인함의 강도가 도를 넘어섰는데 이를 억눌린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포장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착각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스릴은 없고 잔인함과 공포만 극대화 하고 있지 않은가.


215쪽, 현실의 낙인, 무대 위의 매혹


아홉 명의 저자들이 말하는 '악'과 '악인'이 펼치는 서사에 대해 내가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저자들의 열띤 논점의 기저에는 악인임에도 가져야 하는 '인권'에 대한 담론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쇄 살인마도 인권이 있는가, 같은 질문들.


이 책은 콘텐츠 속 잔혹한 연쇄 살인마의 얼굴을 한 악인부터, 여성성에 대한 차별 혹은 배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빌런의 속성 같은 다양한 악인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악인의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텍스트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악인의 서사를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거나 혹은 그래서 속이 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저자들은 지적하는 게 아닌가, 라는 정도로 이해했다.


책장을 덮는 순간, 타고 나든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지든 악인은 악인일 뿐이라는, 거기에 서사를 입히는 순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분명한 건 환경이 똑같아도 악인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더프 백더프의 말처럼 악인 그 자체는 그의 선텍일 테다. 악인의 서사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공감한다.


'악'에 대한 심도 있는 학술지를 읽은 듯 하지만 나름 악을 구분하는 수준은 살짝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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