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 타인의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니다
캐런 케이시 지음, 방수연 옮김 / 센시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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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같은 말을 여러 심리 관련 책에서 많이 봐왔다. 나름 실천하는 중이기도 하다. 누구나 관계에서 타인에게 감정이 휘둘리는 일이 많은 세상 아닌가. 한데 문득 문득 타인의 감정을 살피지 않는 '직설적'으로 포장된 말들이 무례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자주 본다. 나 역시 그러고 있으리라는 짐작이 들기도 하지만.


제목에 '가르침'이란 타이틀을 버젓이 내 건 책의 저자도 그렇고, 장사에 대한 조언을 독설을 쏟아내는 걸로 유명세를 떨치는 유튜버도 그렇다. 그들을 읽고 보다 보면 꽤 많은 지점에서 불쾌한 감정이 든다. 그렇게 타인의 감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말과 행동들. 정말 내 감정만 괜찮으면 괜찮은 걸까?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작가이자 강연가로 활동하는 캐런 케이시는 불행한 유년기와 알코올과 약물중독을 겪은 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란 책을 써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책이 10년 개정판이라니 좀 놀랍다. 10년이나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쓴맛을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


서문에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은 '만나기로 약속되었던 것'이 었다라고 하는데, '신'을 거론하며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식의 무슨 운명론 같은 주문처럼 들려서 살짝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대로 살아 간다'라는 말에는 빠져 들기도 한다.


이런 관계와 자신을 앎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 자신이 깨달은 삶의 태도에 관한 12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에 집중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내려 놓기' 쉽지 않아서 욕심이 아닐까. 타인이 밀접해질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그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는 피폐해진다는 조언 역시 팩트다. 대를 이어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지 마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엄마에 이어 아내의 따가운 눈총에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일관하는 이런 무심함에 상처는 잔소리 폭격을 당하는 내가 아닌 엄마와 아내가 받는다. 아마 양말 뒤축에 손가락 하나 넣을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이 책은 얼마간 그런 심오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중 타인에게 '간섭'하는 일이 '인질로 잡는 일'이라는 표현이 마음 쓰였다. 저자의 이 지적은 부모의 간섭이 싫었던 과거의 일을 까맣게 잊고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경험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현명한 관계'라는 말이 공감 되면서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38쪽, 그래서 뭐?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노를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릴 때 '그래서 뭐?'는 마법처럼 치솟은 감정을 순식간에 식혀줄 수 있을까? 뒤이어 파트 3 '기쁨'에 대한 내용에서 '즐겁게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현재를 살 때만 가능하다며 미래의 걱정 따위는 이제 그만하고 절대적으로 현재를, 코 앞만 보고 살'라는 조언은 감전된 것처럼 찌릿함이 있다.


학생이 공부를 어쩜 이렇게 안 할 수도 있을까, 싶을 만큼 공부에는 도통 관심 없어 하는 아들에게 늘 하는 잔소리는 현재를 이렇게 살면 미래 네 인생은 더 불안해 진다는 협박인데, 아들의 현재가 마냥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의 조언처럼 나는 쿨하게 웃으며 네가 행복하다면야, 라며 더 즐기도록 내버려 둬야 하나? 멘탈이 심하게 흔들린다.


106쪽, 짐을 내래놓아라


내게 유독 의지하는 친구가 있다. 근 40년 가까이 지내는 이 친구의 결정적 선택에 나는 매번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도왔다, 고 생각 했는데 어쩌면 통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친구는 중대한 결정에 늘 어려워했고 내게 물었고 나는 조언이랍시고 아무 말 잔치를 벌였다.


여자친구와 갈등이 있을 때도, 대학에 들어 갈 때도, 군대에 갈 때도, 회사를 퇴사할 때도 나이 오십에 초혼이 재혼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할 때도 어김없이 나는 친구의 결정에 선봉에 섰었다. 그래서 '자신이 돕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분노 섞인 비난을 듣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 댔다. 술만 먹으면 후회하는 친구는 나를 비난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데 열심인 자아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제로, 안 해도 될 논쟁을 매우 격하게 벌이곤 합니다. 아무래도 어떤 논쟁이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모양인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논쟁을 끝까지 끌고 가지 않는 결정은 진정한 해방감을 줍니다." 186쪽, 옳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교육을 받았던가 아리송 한데, 내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집념으로 끝장 토론을 즐겨 하는 편이라서 상대에게 적당히 져주는 식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라는 저자의 말이 공감은 되지만 입맛이 씁쓸해진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줄여야 하는 것이 '말'이고 더욱이 내 생각을 고집스레 우기는 걸 피해야 함을 알지만 쉽지 않아서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타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가지 조언이 담겨 있어,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거나 스스로의 마음이 불안정 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느긋하게 마음 챙김을 할 수 있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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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김유리.김영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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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낯익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권익옹호'라는 거센 바람이 복지관으로 밀려들던 2017년, 새로운 사업 구상이 필요했다. 더 이상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보고 싶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다다를 수 있는 '당사자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써보자! '했다.



<펜대: 나를 찾다>라는 이름의 에세이 출간 사업을 기획하고, 수많은 출판사에 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글쓰기 교육과 출간을 공익적으로 저렴하게 좀 도와 줄수 없느냐는, 좀 비굴모드를 장착한 내용이었다. 그러는 한편 함께 자신의 민낯의 이야기를 토해내 줄 당사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장애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우연히 간결하고 짜임새 있던 그의 글을 봤다.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일이 생각났다. 수줍지만 밝게 웃던 그였다.



그렇게 출판사와 당사자 8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이 그렇게 배우고 쓰며 웃고 즐겼던 이야기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이 책은 그 시간, 함께였던 그의 이야기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책은 직업재활상담사와 발달장애인이 인연을 맺은 14년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조력을 주고 받는 관계일 텐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장애인과 조력자의 관계가 아닌 공통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 작가, 딱 그만큼의 위치에서 앞으로도 우정이 계속되길 응원하게 된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은 날것의 글, 그게 잘 쓴 글이라는 김아영의 이야기에는 수긍하지 못했다. 다만, 김유리의 글이 빨간펜으로 좍좍 그어졌을 때의 곤혹스러움에는 공감 됐다. 그 자리에서 그의 글도, 내 글도 그렇게 빨갛게 물들었으니까.



사실 쓰는 이상 글이 아닌 글은 없다지만 모든 글이 문학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터라, 내용 중에 글로 고민하는 두 작가의 이야기에는 개인적으로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읽히는 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읽어도 충분한 글을 쓰는 게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쉬운 단문, 그게 참 어렵다.



95쪽, 덕업 불일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낸 것 같다는 김아영의 소회에 살짝 미소를 짖는다. 글을 쓴다는 행위와 그를 통해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그들의 소박함과 발달장애인과 지원 인력들의 관계에게 글을 쓴다는 희망적인 모델이 되고프다는 바람을 응원한다.



작가에 대한 순수한 욕망이 묻어나는 김유리의 글에서 5년 전, 눈도 잘 맞추지 못하고 수줍기만 하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글쓰기에는 의욕 차고 넘치던 그가 떠올라 절로 미소를 짓는다.



묵직한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꿈을 이뤄주려 하는 장애인재활상담사라는 관계성이 반복돼서 언급되는데 이 부분이 훈훈한 미담으로 폄하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가 '죽지 않으려'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때 의욕적으로 글을 써내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앞으로는 행복한 글쓰기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를 썼는데 그의 기억 속에 나는 '그 사람'쯤으로 남아 있다는 게 얼마간 섭섭함이 들었다. 어쩌면 질투일지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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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이요? 없는데요? - 한 권으로 끝내는 취업종합선물세트 리얼커리어 시리즈
유성열 지음 / 리얼러닝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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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신감 좀 보소? 없으면 이는 바람에 절로 무릎 꿇게 되니 죽길 각오하고 스펙을 쌓으라라 부추기는 게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꿀리지 않는 비법을 기꺼이 전수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제목이 강렬하다.


본인은 특이하다 했지만 읽는 나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은, 심리학과 출신의 직업상담사라는 이력을 가졌다. 관공서 및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취준생들을 심폐 소생하고 다닌다는 그는 단순한 취업전문가와는 달리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로 설정과 그에 맞는 썰(자소서) 푸는 법 그리고 면접에 필요한 일타 강의 같은 그만의 상담 경험을 이 책에 녹여냈다.


저자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쉽게 썼다더니 정말 그렇다. 사례를 통해 진로 탐색과 취업지원기관, 채용정보, 이력서, 면접, 직업훈련 등 취업 전반에 얽힌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첫 사례가 팔랑귀 여성의 이야기다.


한데 인적자원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일 저일 중심을 잡지 못하는 성향인데 결국 지인 찬스로 어디라도 취업한 것이 다행이라는 저자의 말은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취업도 성공이라 볼 수 있나?


33쪽, 인터넷을 통해 채용정보 찾기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한데 다른 취준이나 스펙 쌓기 관련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정보 제공에 좀 더 힘을 쏟는다. 자질구레한 부연 설명이 없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달까. 여기에 제공된 정보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Do it' 코너를 통해 스스로 체크하면서 취업 준비를 점검할 수 있게 돕는다. 특히 직무기술서나 이력서 작성에 대한 비포/애프터 설명은 현장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큼 유용하다.


57쪽, 61쪽

99쪽, 107쪽


한편, 자격증이나 외국어 성적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집하는 것처럼 취득에 열을 올리는 세태를 꼬집는다. 쓸데 없는 스펙 쌓느라 금전, 시간,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자기 탐색을 통해 원하는 직무를 찾고 그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현실적 조언을 해준다.


이후에 면접 준비와 직업훈련과정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도 소개한다. 덧붙여 근로계약서 작성 같은 취업 성공 후 적응하고 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심지어 전화응대 팁도 담았는데, 이건 십수 년이 지나도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누구에게는 통화보다는 활자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데 사실 업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아무튼 이 책은 취준생을 위한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영역별 저자의 설명을 사례와 함께 꼼꼼히 읽고 자기 탐색을 해보면 취업은 분명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는 현실적인 조언과 필요한 정보가 가득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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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 삶을 관통하는 여덟 가지 주제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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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름이 낯익다. 이근후 박사야 워낙 유명 인사니 그렇고, 이서원 박사는 그의 전작 <감정 식당>을 읽었었다. 읽었다고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라 쓴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제목과 비슷한 문장이 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란 걸 기억하면 화날 일이 반으로 줄어듭니다."라는 말인데, 역시 인생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진리인가 보다.


사실 운전대 하나만 잡아도 분노하게 되는 게 이놈의 세상인데, 이것도 알고 보면 운전 하나도 내 맘대로 안 되니 그런 것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대담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겐 물을 줘야지, 우물을 파 갈증을 해결하라고 하면 안 된다"라는 현실적이고 사이다 같은 지혜를 담았다니 마음이 조급해질 정도다. 얼른 잠수함에 승선한다.


이 책은 두 정신건강의가 자존,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의 8가지 주제로 110가지의 짧은 대담으로 삶의 통찰을 전한다.



27쪽, 열등감이 생기는 이유


뇌는 있는데 내가 없거나, 시험을 망친 자식보다 더 많이 운다는 한국의 엄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작부터 큭 하고 웃었다. 큰소리로 웃자니 나도 그러고 있는 편이라서 그러기엔 양심이 좀 찔리고. 한국에 살면 어차피 다 그렇게 되나 보다.


웃다가 어제 아들 녀석이 학원 쪽지시험을 다 맞았다고 으스댔던 일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아예 딴에는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었나 보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아빠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가 칭찬해 줄 타이밍을 놓쳤다. 미안했지만 모른체했다. 그런데 생활 자체가 경쟁인 아이들에게 그 기준인 등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한 건 아닐까?


'획일적 평등주의'라는 단어가 눈에 꽂혔다. 물론 짧은 글에서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진위를 다 헤아릴 수 없다지만, 저자가 말하는 평등에 대해 나와 너는 같지 않음을 같다고 여기는 것,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능력을 가치로 추구하는 세상에선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라는 그의 말에 애초에 능력이 열악한 사람들은 늘 열등한 대접만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건지 묻고 싶다. 능력이 없으면 배려나 시혜의 삶이 최선이 되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약점을 보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나의 약점을 보는 일이다." 101쪽, 외면하고 싶은 진실


132쪽, 갑질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갑질 천국인 한국에서 정작 갑질이 지질함에서 온다니 은근 쾌감이 있다. 진정한 우월감은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온다고 하니 막연하게 높은 자존감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반적인 사회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고, 너의 상식이 나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 상식은 시대의 산물이고 개인의 경험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155쪽, 말도 안 돼


상식에 대한 조언에 깨달음을 얻는다. 상식이 사회 통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저자의 글에서 상식도 개인에 따라 온도차가 많겠구나 했다. 같은 문제를 바라봐도 나에겐 상식의 문제가 타자에겐 애초에 상식의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언은 새길만하다.


204쪽, 진짜 만남이란 무엇인가


<진짜 만남>에 대해 읽으면서 불알친구가 생각났다. 동네 깨복쟁이로 만나 지내왔으니 50년 가까이 됐다. 입만 열면 나방이 쏟아져 나오는 사오정처럼 내 친구는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쏟아내는 염세주의자다. 그렇게 친구나 타인에 대해 험담은 쏟아내도 피해 주는 일을 극도로 조심하는 친구라서 귀여운(?) 험담에 적당히 장단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 귀는 좀 피로하더라도 마음은 편해진다.


또, <틈새 파고들기>를 읽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직원 교육이 생각났다. 몇 년 새 복지관에도 정신장애인 이용인이 늘어나고 있어 준비한 교육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신보건 전문가였던 강사는 화면에 뇌가 그려진 그림에 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전두엽이 탈이 날 수 있고, 대부분 정신질환자들이 그렇다면서 이 부위는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약 복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신병이 생활 습관의 잘못이고, 심지어 고칠 수 있다니 저자의 이야기는 희망적일 수 있을까 싶다.


각 주제에 따른 지혜가 담긴 조언들을 보면서 가족, 친구, 동료와 주변 일들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가렵지만 어쩌지 못하고 애먹던 곳이 금세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예컨대, 갑자기 치통에 고통스러워 찾은 치과에서 치아가 아닌 뜻밖에 부비동 염증 때문에 그런 것이어서 치과가 아닌 이비인후과를 가야 한다는 일처럼. 고통을 고통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그 일로 지혜를 얻는 일로 만들라 조언한다.


두 사제지간 사이를 보며 부러움이 끊이질 않았다. 나야 사제지간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지만 내 관계망에서 이런 마음을 담은 지혜를 주고받을 이가 있을까 싶다. 그의 말처럼 내가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삶의 통찰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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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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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2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1965년 생으로 환갑이 코앞인 나이에 미스터리 작가로 등단했다는 그의 이력이 눈에 띈다. 은퇴하고 글쓰기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겐 등불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명탐정과 할아버지의 상관관계는 뭘까? 명탐정이 궁금하다.


뭐랄까 상상 혹은 기대했던 하나의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추리하며 풀어 나가는 형식은 아니다. 사건의 치밀한 전개와 숨막히는 해결이 펼쳐진다기보다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주고받기 위해 사건이 만들어지는, 살짝 흥미 위주의 미스터리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할아버지의 치매성 환시가 양념처럼 곁들여져 긴장감이나 무겁다는 느낌이 덜하다.


277쪽


자아내면 스토리고, 세상 모든 일도 스토리며, 지어낸 일이기에 아름 답다지만 자고로 명탐정이 등장하는 미스터리는 손에 땀을 흠뻑 적셔야 맛일텐데 할아버지 명탐정은 그냥 따뜻해서 오히려 차분해진다. 미스터리의 전개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형태로 각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손녀가 스토킹을 당하는 부분으로 이어지는 건 좀 갑작스러웠다. 전체적으로 느슨했던 부분에 부자연스러운 긴장감이랄까?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매니아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취향이 저격당한 느낌은 아니다. 그럼에도 얽히고 섥힌 사건을 따라가야 하는 복잡한 추리물이 아니라서 좋다. 편안하게 읽다보면 푹 빠져든다.


그런데 완전 개인적인 어려움이긴 하지만 작다! 작아도 너무 작다. 이렇게 작은 글씨라니. 거스를 수 없는 생애주기 탓에 노안을 관통하고 있는지라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읽어야 해서 쉽지 않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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