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보다
이수배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7년간 몸담은 교직을 떠날 준비를 하며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교육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는 소개 글이 뭉클하다. 어쩌면 늦게나마 내가 십수 년 몸담은 복지현장과도 맞닿아 있을지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할많하않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지 단숨에 읽었다.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작가의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독자도 충분히 그 바람을 공감할 테니 걱정 마시라, 전하고 싶다.


'시우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묵직한 메시지가 역시나 길게 뻗어 내가 몸담은 복지현장으로 연결된다. 얼마 전, 어제 안부를 묻고 일용할 반찬을 가져다 드린 어르신을 오늘 영정 사진으로 만났다. 건조한 두 번의 조아림이 끝나고 어르신을 명단에서 지우는 일로 관계가 끝날 때 우린 헛헛할까 아니면 일이 줄어 편하다고 생각할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작가의 인간적인 고백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91쪽, 흥정


소설은, 아니 현장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시우 엄마와 브로커와 박윤기를 그려내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어림 짐작을 한다. 거기에 나는 박윤기와 다른 부류인가,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시우가 죽었다에서 죽였나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죽을 만큼 힘들 시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박윤기처럼, 아이의 죽음을 쉽게 사무적인 '일'로 대체해버릴 수 있는 부류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울까? 우리도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이라고 볼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그럴 수 있을까? 고구마 백만 스물한 개를 한꺼번에 쑤셔 넣은 것처럼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189쪽, 실마리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이고, 복지현장에서 뭣이 중헌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속내가 절절히 담긴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부디 행복하기 위해 특수교사가 되었다던 소설 속 진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행복한 퇴직으로 꿈이 마무리 되길 소망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작정하고 쏟아내는 자기반성이자 시스템에 갇혀 아이들의 행복이 사라진 학교와 보호자와 교사의 문제를 거침없이 또 가감 없이 쏟아낸다. 자전적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더 크게 요동쳤다.


소설의 제목이 욕망의 그늘에서 무지개를 보다로 되기까지 험난하고 지난한 일들을 통해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희망적인 바람이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차는 것처럼 가슴을 부풀게 한다. 행복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 사랑의 내공을 높이는 64편의 인문학적 사유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호라. 오랜 세월 함께 지내는 동안 어찌 딱 한점만으로 동반자의 인생을 퉁칠 수 있을까? 나는 하도 꿇어 무릎에 굳은살이 박혔거늘. 암튼 발칙한 제목에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소개를 읽다 어라? 인문학? 제주? 낯익은 이름에 뒤적여 보니 <인문학 쫌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의 저자다. 나는 '말 그대로 간결하고 감칠맛 나고 재밌는 인문서'라고 서평했다. 믿고 읽어도 좋겠다.


https://blog.yes24.com/document/16641525


"인간이 새기는 무늬는 인문(人文)이다. 인간은 어디에 무늬를 새기는가?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제 존재를 새기고 떠난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인간이 세상에 남긴 흔적의 총량이 인문이다. 즉,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인문이다." 8쪽, 프롤로그


캬, 역시 철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답다. 인문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표현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아내와 주고 받은 무늬 보고서라니. 오늘이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 웬걸 올 들어 가장 훈훈해졌다. 당장 제주도로 가서 그를 알현하고 싶다.


그렇지.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고 끝까지 애써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그의 통찰에서 뼈 때리게 깨닫는다. 갱년기는 10년쯤 버티면 된다는 데 10년에 10년을 거듭하는 아내의 갱년기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떠오르는 것인지.


25쪽,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그가 옮기니 확 와닿는다. 레알 공감한다. 결혼을 두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면 하는 게 낫지 않아? 라는 되도 않는 말로 진실을 가린 친구 A는 자신의 말에 현혹돼 그 후회의 열차 칸에 동승하겠다는 친구 B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마 A는 눈빛은 그랬어도 속은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A는 결혼식장에서 환하게 웃는 B의 얼굴을 끝으로 한동안 B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도 입을 닫고 있던 나는 A와 공범인가? 아무튼 결혼을 떠올릴 때 후회라는 말이 자연스럽다면 이미 볼장 다 본건 아닐까 싶다. 차라리 세금을 더 내고 마는 게 어떨지 스드메 전에 결단하시길.


"신은 때때로 자신이 빛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우리를 어둠 속에 두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단 하나의 질문에 집중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조차도 없앨 수 없는 어떤 의미가 내 인생에 있는가?" 31쪽, 5


84쪽, 18


제 여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우주 전체를 압축해 놓은 것보다 무겁고, 헌신과 책임을 무한 감내하겠다는 고백이라니. 이 남자, 제 정신인가 싶고, 이 세상 남편들의 욕받이도 감내하겠다는 의지인가 싶어 그냥 헛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이 매력적인 하오체는 일상 언어일까? 참 귀에 착 붙는다.


들키면 할 수 없지만 최대한 아내 모르게 빨래를 하자, 라는 말은 분명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나와 같은 부류들이 들으면 심히 빡칠 말인데도 이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사노동도 사랑으로 변질 시켜버린 그의 능력에 감탄하며, 내 아내는 그런 마음이 아닌 듯하여 얼마간 심난하다. 청소기와 빨래는 내가 눈에 알짱거릴 때만 돌아간다.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 내게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내게는 내 정답이 있다. 그 정답은 언제나 아내에게로 향한다." 122쪽, 29


그래서 그랬나 보다. 백날 남이 쓴 자기계발서를 읽어대도 나는 그들처럼 살지도 성공도 못하고 찌질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나였다는 것과, 정답은 내 아내였다는 걸 이제 깨달으니 슬픈데 기쁘다. 그나마 아주 조금은 그 정답에 가깝게 살아내는 거 같기도 해서. 요즘 아내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취소다. 이렇게 재치 있는 필력을 갖춘 인문학자를 제주도까지 가서 보고 싶던 마음이, 지구를 돌고 돌며 한껏 높여 놓은 입맛 수준을 다 버리고 바다 건너 촌집에 틀어박힌 초딩 입맛에 맞출 정도로 자기애 넘치는 그의 아내가 보고 싶은 것으로 바뀌었다. 둘 중 한 명만 알현이 허락된다면 단연코 우연히 선착순이 빨라져버린 B일 것이다.


"위대한 사랑은 위대한 사람이 하면 된다. 사소한 사랑으로 오늘 하루를 채울 수 있다면, 그 하루가 매일 매일 계속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172쪽, 41


180쪽, 43 수전 손택


누구보다 연민이란 감정에 날카롭게 반응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 해방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짝 비켜내고 무시할 정도의 날이 좀 무뎌진 정도랄까.


날벼락 같은 사고로 뜬금없이 20평생 살아온 몸이 완전 다른 동작 방식으로 재편 됐다. 일명 지체 장애라는, 아주 조금의 기능만으로 축소됐다. 그동안 힘들여 하지 않아도 수월 하던 것들이 죽을 힘을 다해도 수월해지지 않는 경험치가 상당히 오랜 시간 익숙해지지 않으니 그와 정비례하는 만큼 예민함도 치솟았다.


말하자면, 괜히 건드리면 성질머리 드러내며 지랄발광하는 수준이라 불알친구 아닌 이상 웬만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려되는 수준이었다. 이런 내게 손톱만큼의 관심을 드러내는 이성에겐 그의 미모와 지성은 따지지도 않고 동정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손톱을 뽑아버릴 기세로 덤볐다. 그런 내가 아내를 만나고 감사와 존경을 배웠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내가 써야 하는데 지적 수준이 그의 발바닥 높이 정도니, 그가 절절하게 담아 놓는 아내 공경에 숟가락을 담가 본다. 이 마음 부디 아내에게 스치기라도 하면 좋겠다.


209쪽, 50


아주 굵은 고딕체로 한눈에 들어오는 신사임당의 유언과 그 유언을 콧방귀로 날려내고 고작 10년의 생사를 연장한 남편의 이름에 빵 터졌다. 그리고 그의 결연한 다짐에 다시 한번 쿡 하게 된다.

오호라, 제목의 발칙한 그 딱 한 점의 부끄러움이 고작 초딩 입맛 대로 드시겠다는 거라니 다소 김빠지는 게 이상하지만 기분은 좀 그랬다. 고작 녹색간판 샌드위치가 뭐라고.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신과 날카롭게 만난다. 사랑은 신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91쪽


이 책은 인문학자가 쓴 사랑학개론이 아니고 무엇이랴. 재치가 범벅이지 않은 구절이 없다. 세포 하나 하나 건드리지 않는 감각이 없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B가 아내가 되기 전, 서울 깍쟁이 여인이던 때 그가 날린 고백 문자를 보지 못했으면 말을 말아야 한다. 사랑을,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면 추천한다.



#아내를우러러딱한점만부끄럽기를 #조이엘 #섬타임즈 #서평 #책리뷰 #인문 #공감에세이 #추천도서 #결혼지침서 #사랑학개론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십부터는 왜 논어와 손자병법을 함께 알아야 하는가 -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몰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 100 최고의 안목 시리즈 1
모리야 히로시 지음, 김양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쎄요'라는 궁금증으로 신청한 책이다. 말하지 않아도 하늘의 뜻을 헤아린다는 지천명인 오십을 넘어선지 한참인데, 그 어려운 고전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이제라도 알아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 책은 91세 동양 고전 해설의 일인자라고 알려진 모리야 히로시가 현대에 맞도록 해석했다. 그는 어려운 동양 고전을 쉽게 해설하기로 정평이 난 데다, 단순히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헛헛한 마음에 이제라도 자신을 찾겠다거나,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험에 떠나는 흔들리고 불안한 인생이 바로 오십이라는 저자의 말에, 나 역시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던 터라 마음이 동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인생의 한복판에 다다랐어도 여전히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흔들리는 순간에 이 책은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둥글게 관계 맺는 데는 논어를, 무조건 싸우자 덤빌게 아니라 되도록 싸움을 피하는데 전력을 다하라는 손자병법은 혐오와 분노 사회인 이 시대에 분명 인생을 지혜롭게 만들어줄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라며 논어와 손자병법에서 엄선한 100가지 지혜와 전략을 소개하면서 제대로 읽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고 한다.


子曰, 基身正, 不令而行, 基身不正, 雖令不從​

자왈,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


'자기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기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즉 리더가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실행된다. 리더가 바르지 않으면 어떤 명령을 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저자의 리더십의 해석은 몸담고 있는 조직에 새로운 리더가 등장한 요즘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마음에 와닿았다. 아울러 리더와 오너의 차이를 다시금 생각한다.


118쪽, 오십부터는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오십부터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묻는 저자의 질문에, 솔직히 오십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때쯤이면 있는 친구도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으면 솎아 내면서 그동안 피로했던 인간관계를 점점 가볍게 다이어트 하는 시기인데 뭐 하러 또 굳이 관계를 만들까.


또, 저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익자삼우 益者三友를 말한다. 사귀면 좋은 세 종류의 친구로 강직하고 성실하고 박식한 친구로 友直, 友諒, 友多聞을 꼽는다.


한데 이런 류의 친구가 남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십에 강직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울트라 꼰대가 분명하지 않을까? 뭐 성실이나 박식한 것도 다르게 보면 새로운 친구로 사귀는 것도 쉽진 않겠다 싶은데 내가 너무 부정적일까. 내 친구들은 익자삼우인가.


兵者, 詭道也

병자, 궤도야


병법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라는 손자의 말을 삶은 속고 속이는, 그런 싸움의 연속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순간 멈칫했다. 8년 동안 친형처럼 따랐던 인간에게 뒤통수 맞은 일이 상기됐다. 잊을만하면 그렇게 되는데 그런 게 삶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216쪽, 살면서 경계해야 할 5가지 위태로움


故將有五危

고장유오위​


장수가 경계해야 할 5가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지 말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 말며, 화를 잘 내지 않고, 청렴결백을 고집할 것도 아니고,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말라는 것을 손자는 꼽았다. 하여 저자는 무엇이 위태로움인지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마무리하는데 손자의 병법을 현대로 끌고 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접목해 보자니 현실에는 쉽지 않지만 사실 죽자고 싸우다 진짜 죽는다는 말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되레 허를 찌른다.


이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만 공자와 손자의 마음을 모두 헤아려 내 삶에 적용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덤이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놓은 저자의 해석은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이 된다. 최고의 안목이 확실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우연히 방문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눈물 콧물 찍어내며 감동과 희열을 경험하게 했다던, 게다가 관람하고 나서 개미지옥처럼 오페라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만든 오페라가 어떤 작품이었을까 심히 궁금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한 문화콘텐츠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서희는 <방구석 뮤지컬>,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등을 펴냈다.


12쪽, 오페라 용어 해설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용어부터 친절하게 담았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오페라가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오랜 시간 전, 위대한 문학가들의 글이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지만 보통은 성악 정도로만 이해했는데 아차 싶다.


개인적으로 나와는 수준이 다른 어려운 예술로 여겨 오페라의 '오'자도 이해 못 하는 문맹 수준이라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라는 '피델리오'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그만의 인문학적 해석이 곁들여져 소개하는 25편의 서사가 남다르다. 특히 친절하게도 각각 QR코드를 통해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46쪽, 긴 기다림이 빚어낸 고결한 사랑: 율리시스의 귀환

https://youtu.be/Jk_MceHbzeM?si=_U7vIfmu1RclrRSv


그나마 좀 익숙한 율리시스의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 수많이 회자되면서 율리시스에 초점이 맞춰있지만, 오페라는 페넬로페의 고결함과 정숙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느낌이 새롭다.


베토벤, 헨델,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의 이름이 등장하니 더 흥미로운데 오페라라고는 단 한편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그나마 제목이라도 들어본 <피가로의 결혼>이 로맨스뿐만 아니라 모차르트가 신분사회를 대놓고 비판하는 작품이었다니 더 빠져든다. 구구절절한 미니와 래머레즈의 사랑을 노래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의 서사는 활자로 읽어도 짜릿할 정도다.


204쪽, 피로 얼룩진 욕정의 춤

https://youtu.be/BNUZsl3XBEY?si=Kj5eT39KOSNlGVGk


피로 얼룩진 사랑의 욕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로메의 이야기는 목이 잘린 요한의 목을 들고 그의 입술에 키스를 퍼붓는 장면이 그대로 상상이 돼서 그로테스크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궁금해 QR코드를 찍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연기하는 살로메의 심정은 어떨까.


중국 공주 투란도트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푸치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제자인 알파노가 완성해 현재까지 독특한 색채의 오페라로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설명 역시 작품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애정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국립 오페라단의 공식 추천도서이기도 한 이 책은 작품의 줄거리를 쉽게 요약해 어렵다고 느꼈던 오페라를 친숙하게 만든다. 또 등장인물들이 노래하는 가사와 서사에 얽힌 내용을 인문학적으로 설명과 저자의 해석을 덧입혀 읽는 내내 흥미로움이 식지 않게 한다. 거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작품은 QR코드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은 몇 번 보긴 했어도 솔직히 오페라는 아예 생각도 안 했던 장르다. 한데 이 책으로 극장에 가지 않고 방구석에서도 오페라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어쩌면 반음 정도는 지적 수준이 높아졌을지도. 그리고 더 이상 방구석에 있지 못하게 극장으로 등 떠미는 느낌도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검열의 시대를 관통해 온 사람이라면 '물 좀 주소!'라는 노래, 아니 절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갈급한 시대를 담은 사진이라니… 그것도 그렇게 검열되던 한대수라는 인물 담아낸 세상이라니 궁금했다. 많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2쪽


종신형이라니, 그에겐 삶이 통째로 고통이었으려나. 하기야 이 시대 저 시대 가리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하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군들 자유로울까.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이, 그에게는 전성기였다니…. 그와 나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순간 열린 느낌이 들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같은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자랐던 나는 그를 동시대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41쪽

83쪽


그의 시선을 따라 가다가 1969년 뉴욕의 어느 거리, 원숭이가 올려진 히피 남자의 손목에서 멈췄다. 그의 가죽 팔찌에 달린 시계는 1986년, 고등학생이던 내 팔목에도 채워져 있었다. 흑백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때의 시간으로 느리게 되감긴다. ​


1969년에는 있던 창경원과 전차는 1979년에는 창경원만 남았을까? 엄마 손잡고 창경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고 기겁한 일은 기억이 있는데 전차를 탄 기억은 없다. 기록에는 서울전차는 1968년까지 달렸다는데 그의 사진은 1969년으로 기억한다. 뭐 어떠랴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을.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태극기 아래 돌아 보는 여인이 그녀일까? 빨리 감기로 감아 버리는 그의 연애사는 잿빛에 가깝다. "뉴욕에서 이혼을 결정하는 파트너는 주로 여자다"라는 그의 말은 잡지 못하고 놓아주어야만 했던 마음이 짙게 베였다. 어쩌면 후회일지도. 명신이 떠난 후 그의 삶이 피폐했을까 마음이 쓰였다.


"매일같이 늘어나는 이 슬픈 인간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파 진다. 홈리스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비단 뉴욕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이 현상이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된 사회의 결과물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똑같은 한 인생, 똑 같이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태어났을 텐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오늘도 그들 앞을 무심하게 무심하게 지나간다." 161쪽


홈리스, 우리가 인상을 찌푸리거나 측은한 시선을 짓게 되는 또 다른 이름 노숙자. 대학을 막 입학했던 1989년, 숙대 앞에서 친구들과 진탕 술을 먹고 비틀거렸던 그곳에 박스를 이불 삼아 누워있던 그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체온을 나누던 그들의 안녕을 걱정했던가 떠올려 보지만 기억에 없다. 추워도 너무 추웠던 그때의 한파가 몰아닥친다.


그가 담아낸 세상 곳곳에 있는 그들의 사진들은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일을 아프게 끌어 당긴다.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의 밤을 지샐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게 한다.


179쪽


책장의 대부분은 그가 바라본 1960년 대의 거리사진이 담겼다. 그리고 짧게나마 굴곡진 그의 인생 이야기도 있다. 또 그의 삶의 철학이나 따라 부르던 그의 노래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알게 되는 건 덤이다. 아티스트 한대수를 이해하기 이만한 책이 있을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