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알게 된 것들 - 만화에세이
허용호 지음 / 득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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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펼쳤는데 익숙한 휠체어가 보였다. 만화가 인지 조소면 조각가겠지? 어쨌든 만화가 이자 조각가이자 <비밀이 사는 아파트>를 출간한 동화 작가라는데 굳이 자신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작가로 드러낼 필요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가 아니면 조각가인 예술가로 소개는 충분했다.


작가 허용호, 만화를 그리고 조소 작업을 하는 그것도 보란 듯 작업실에서 노는 듯 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 부럽지 않을 수 없는데 꾸준히 그린 만화가 어느 순간 동화가 될지 모른다는 소망을 갖고 작품이 쌓이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니 이것도 역시 부러울 수밖에.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놀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랑’일까? 짤막하게 펼쳐지는 그의 사랑 이야기가 스치듯 지나치다도 또 멈춰 오래 생각에 잠기게도 해서. 나는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지 묻게 된다.


칸으로 나누고 눈을 현혹시키는 효과나 의성어나 의태어가 넘치는 그런 익숙한 만화는 아니다. 작가의 생각 혹은 철학이 담긴 그림일기랄까? 아무튼 익숙하진 않다. 그런 메시지를 읽다 보니 만화처럼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림과 메시지를 찬찬히 훑어보는 재미가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버라이어티하다. 다만 누군가는 딱 한 번의 사건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빛나야 할 스무 살에 참 인생 더럽게 버라이어티 해졌다.


20대,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작가는(이것도 나랑 똑같다.) 살면서 잘 놀기 위해 고민한다. 평범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생각들에서 마주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다른 생각들을 통해 틀에 갇힌 생각이나 감정에 빠져 있지 않길 바란다.


내가 그와 다른 것이 있다면 ‘노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는 뭘 하며 노는지, 왜 그게 재밌는지 궁금하다. 뭘 하며 놀아야 재밌는지를 잊은지 너무 오래라서 그리고 틈만 나면 소파에 붙어 있는 내가 한심해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어쩌면 내게 재밌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는데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은 왜 하지 못할까. 일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래서 놀지 못한다는 그가 너무 부러워서 약간 짜증이 났다.


이 책은 그가 일상을 살며 마주한 순간들을 사랑, 생명, 권리, 자유, 시간, 놀이, 행복, 존중 등 12가지 주제로 자신이 생각을 기록한 만화 에세이다. 때론 묵직하게 혹은 가볍고 재치 있게 생각들을 담고 있어서 푹 빠져 읽을 수 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만화처럼 그려낼 그의 동화도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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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알게 된 것들 - 만화에세이
허용호 지음 / 득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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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묵직하게 혹은 가볍고 재치있게 담고 있어서 한번에 푹빠져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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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지혜 - 평생 쌓아온 공든 탑을 지키는
고득성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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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관심조차 없다가 먹고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훅 들어오는 게 '상속'이지 않을까. 부모님이 물려 주실 게 있나 없나 따지고 형제들이 많으면 또 그 나름 각자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일.


오죽하면 물려줄 게 많을수록 형제의 난이 크다는 속설이 있을까. 사실 상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고 고령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나 역시도 관심 많은 분야이기도 해서 정독하게 된다.


명실상부 국내 재테크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고득성은 공인회계사로 소설 형식의 경제 교양서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 시리즈,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 등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쩌면 기부문화가 개미 똥구멍만큼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대물림이 꽤나 중요한 문화이기도 해서 상속의 의미도 대를 잇는 게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지 않을까. 누구나 받진 않지만 누구나 관심이 많아서 복잡한 세법도 마다하지 않는 상속을 소설로 쉽게 풀어 설명한다니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속이 '자산'과 '부채'를 넘겨 받는 일이며,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어느 추천인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


예전에 복지관에 근무할 때 금융교육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잠시 스치듯 들었던 빚도 상속된다는 이야기에, 듣도 보도 못한 친척 누군가가 죽으면서 느닷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청년의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울까. 그런 상상하는 맛이 있다.


남주인 수성의 물러터진 심성에 슬슬 열이 오를 즈음, 장애에 대한 편집자의 무신경이 방지턱처럼 눈에 걸렸다. 저자가 칼바람이 부는 겨울, 수성이 낀 ‘벙어리장갑’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편집자는 ‘손모아장갑’이나 ‘엄지장갑’으로 고쳐야 했다.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시대적 상황이 그러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핑계다.


그나저나 할머니의 사망 후 뚝 떨어진 보험금 내용은 수익자가 지정된 사망 보험금은 상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혹시 이게 또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 궁금이 꼬리를 문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그 사람의 가치는 남겨진 가족의 삶에 반영되고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126쪽, 든든한 주춧돌, 가족의 공통 재산


무자비할 정도로 매몰차게 가족을 버린 아버지란 인간이 20년 만에 나타났다가 빚만 잔뜩 남긴 내용에 모기도 아닌데 '피'에 목메는 한국인의 정서가 답답했다. 요즘 세상은 식구가 가족이라서 혈연에 집착하는 게 되레 가치를 잃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핏줄이 더 무서운 경우도 허다한 세상 아닌가. 아무튼 가족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여지없이 발끈하게 된다.


상속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물려주는 것이 아닌 유무형의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 우리 정서상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 대부분 집 장만에 목숨 거는 이유도 자식에게 넘겨줄 요량이 아닌가.


아직은 건강한 시기인데도 물려 줄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그 안에 빚이 얼마가 포함 되어 있는지 혹은 상속이 아니라 기부로 가치를 전할 건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녀들은 궁금해도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뭔가모르게 죄를 짖는 거 같아 조심스러울 건 뻔하고. 그럼에도 저자는 수성의 사고를 들어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니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152쪽, 부모 마음 따로, 자식 마음 따로


솔직히 뜻있는 일을 하고 싶은 수성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불편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우선은 평온하게 늙어가야 할 게 아닌가. 그러려면 자녀들과 적당한 거리 두기가 있어야 하는데 수성은 그런 거리 두기에 실패했고, 끊임없이 자녀들이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는 판에 장학사업을 고집하는 게 수성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나중에 편히 눈 감고 싶었다면 가화만사성이 먼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정자의 말처럼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이해되는 건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 했다면 부모는 부모고 자녀는 자녀의 남은 인생은 각자도생 하는 게 필요하다. 노후에는 좀 쉬자.


이 책은 청년기와 중장년기를 관통하는 주인공 수성의 인생사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돈의 가치, 상속의 중요성을 쉬우면서도 재밌게 풀어 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또 제목처럼 지혜롭게 형제의 난을 잠재울 유언장에 대한 조언도 다루고 있어 받기도, 주기도 해야 할 처지인 중년의 입장에서 많은 공감이 됐다. 상속에 대해서는 아주 유익한 경제 지침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특별부록은 꼭 읽길 권한다.




이 책은 상속에 대한 절세를 콕 집어 다루진 않지만 자녀에게 남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상속은 부모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가족 모두가 협의해야 할 일이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유언장은 꼭 필요하다는 조언은 피상속인이나 상속인 모두에게 유익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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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지혜 - 평생 쌓아온 공든 탑을 지키는
고득성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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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에 대한 절세를 콕 집어 다루진 않지만 자녀에게 남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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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의 노래 -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
크리스천 쿠퍼 지음, 김숲 옮김 / 동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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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고백'이란 글귀가 무겁게 내리 누르는 느낌이 있다. 얼추 소수자로서의 고단한 인생이 그려져서 그런 것이겠고, 나도 사회제도에서 얼마쯤은 비켜나 있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마블 작가이자 편집자. 마블 최초의 커밍아웃한 히어로 '노스스타'를 창조한 크리스천 쿠퍼는 '요시 미시마', 빅토리아 몬테시' 등 다양한 퀴어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리고 새를 사랑해 하버드대학교 탐조 클럽 회장을 맡기도 했다.


2020년 5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한 여성에게 겪은 인종차별 을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DC코믹스 단편 그래픽 노블 <새 It's a Bird>의 스토리를 썼다. 이 책은 그의 이야기다.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는 개가 목줄도 없이 산책로를 배회하는 것을 지적했더니 되레 흑인이 위협한다고 신고 하겠다는 협박을 듣는 일은 어떤 기분일까. 정당한 목소리조차 낼 수없는 이 사회가 정당한 걸까. 그래서 목소리를 거둬버린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그의 이야기를 그가 사랑한 탐조의 시간을 통해 관찰해 보라고 한다. 당신은 어느 세상에 있는지, 이제라도 쌍안경을 들어보라고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새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고백하는 데 마치 조류 백과사전에나 나올만한 수준으로 신나게 설명한다. 옆에 있었으면 침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한참을 새타령이 이어진다.


뭐랄까, 그의 천재성에 가까운, 아차! 그가 마블의 창작자였다는 걸 잠시 깜빡했다. 역시 그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글은 소름이 돋을 만큼 은유적이면서 직설적이다. 검게 빛나는 깃털을 가진 붉은어깨검정새와 비슷하게 완전히 다른 새임에도 비슷한 이름이 부여된 대륙검은지빠귀 설명으로 피부색이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31쪽, 블랙버드


피부색, 성 정체성에 관해 묵직하면서도 강렬하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성토하듯 토해내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름도 생소한 '탐조'의 세계를 유영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데 이런 새의 다양성에서 건져 올리는 그의 삶은 살아 움직인다. 같은 생명체를 보고 있어도 누군가는 좀 더 넓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와닿는다.


고정관념 그러니까 백인 주류의 삶에서 흑인의 지위가 뒤바뀐 남반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콘트라마노의 경험, '흑인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아온 시간에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매력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는 편견은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확인 같다.


그가 <스타트렉>에 매료되었다던 시절에 나는 TV 앞보다는 어딘가에서 뛰는데 열중하며 에너지를 쏟아내는 편이어서 영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다양한 종이 등장했다거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끼리 입을 맞추거나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거나 흑인 여성이 함교 장교로 등장하는 등의 편견을 뒤집어 버리는 것들이 담겨있었다니 시대를 앞선 감독의 인식이 놀랍다.


"인간의 마음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다. (…) 아르헨티나에서, 서서히 퍼지는 위협적인 존재는 유대인이다. 호주에서는 아시아인이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백인들이 흑인을 짐처럼 여겼지만 호주에서 흑인은 그저 아프리카계 미국인일 뿐이었다. 나는 몇 년 후 베를린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터키 후손을 업신 여기는 분위기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는 또 다른 '니거'가 있는 것 같았다." 198쪽, 새로운 궤도에 오르다


그의 새와 일상의 탐조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예컨대 부자지간의 불편함 같은 것들인데 그의 아버지가 맥락 없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쏟아 내는 것들에서 나 역시 주눅 들었던 어린 시절 감정이 불쑥 튀어 나오기도 했다.


이제는 아버지와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지만 과거에도 모든 아버지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여행은 지치기만 했던 터라 그리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아무튼 그는 즐겁게 탐조하는 팁을 일곱 개나 알려준다.


300쪽, 가족 문제


서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스물세 살 아마두 디알로는 대학을 가고 싶어 뉴욕에서 2년 동안 양말과 장갑, 비디오를 팔아 9,000달러를 모았다. 그런데 디알로는 집 앞에서 무장한 경찰의 총격에 41발을 맞고 죽었다. 그리고 12년 후 플로리다에서 트레이본 마틴이 디알로처럼 자경단의 총격에 또 죽었다.


이 일로 1,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시위를 했고 그 중 누군가 목청 껏 노래를 불렀다. 마치 검은머리솔새, 케이프메이솔새, 적갈색가슴솔새, 아메리칸딱새, 블랙번솔새 등이 부르는 노래와 같이.


인종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노래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목소리를 지는 명금류들의 노래는 어쩌면 같은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표현은 탁월하다.


316쪽, 아빠와 나


그의 이야기는 굳이 차별과 혐오를 거센 언어로 드러내지 않아도 선명하게 읽힌다.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전 지구적 인식의 문제가 지금 여기,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게 씁쓸하다. 생각이 다르고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무섭게 날세우는 혐오의 시대에 꼭 탐독해 봐야 할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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