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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지혜 - 평생 쌓아온 공든 탑을 지키는
고득성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어릴 땐 관심조차 없다가 먹고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훅 들어오는 게 '상속'이지 않을까. 부모님이 물려 주실 게 있나 없나 따지고 형제들이 많으면 또 그 나름 각자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일.
오죽하면 물려줄 게 많을수록 형제의 난이 크다는 속설이 있을까. 사실 상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고 고령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나 역시도 관심 많은 분야이기도 해서 정독하게 된다.
명실상부 국내 재테크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고득성은 공인회계사로 소설 형식의 경제 교양서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 시리즈,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 등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쩌면 기부문화가 개미 똥구멍만큼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대물림이 꽤나 중요한 문화이기도 해서 상속의 의미도 대를 잇는 게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지 않을까. 누구나 받진 않지만 누구나 관심이 많아서 복잡한 세법도 마다하지 않는 상속을 소설로 쉽게 풀어 설명한다니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속이 '자산'과 '부채'를 넘겨 받는 일이며,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어느 추천인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
예전에 복지관에 근무할 때 금융교육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잠시 스치듯 들었던 빚도 상속된다는 이야기에, 듣도 보도 못한 친척 누군가가 죽으면서 느닷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청년의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울까. 그런 상상하는 맛이 있다.
남주인 수성의 물러터진 심성에 슬슬 열이 오를 즈음, 장애에 대한 편집자의 무신경이 방지턱처럼 눈에 걸렸다. 저자가 칼바람이 부는 겨울, 수성이 낀 ‘벙어리장갑’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편집자는 ‘손모아장갑’이나 ‘엄지장갑’으로 고쳐야 했다.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시대적 상황이 그러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핑계다.
그나저나 할머니의 사망 후 뚝 떨어진 보험금 내용은 수익자가 지정된 사망 보험금은 상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혹시 이게 또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 궁금이 꼬리를 문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그 사람의 가치는 남겨진 가족의 삶에 반영되고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126쪽, 든든한 주춧돌, 가족의 공통 재산
무자비할 정도로 매몰차게 가족을 버린 아버지란 인간이 20년 만에 나타났다가 빚만 잔뜩 남긴 내용에 모기도 아닌데 '피'에 목메는 한국인의 정서가 답답했다. 요즘 세상은 식구가 가족이라서 혈연에 집착하는 게 되레 가치를 잃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핏줄이 더 무서운 경우도 허다한 세상 아닌가. 아무튼 가족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여지없이 발끈하게 된다.
상속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물려주는 것이 아닌 유무형의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 우리 정서상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 대부분 집 장만에 목숨 거는 이유도 자식에게 넘겨줄 요량이 아닌가.
아직은 건강한 시기인데도 물려 줄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그 안에 빚이 얼마가 포함 되어 있는지 혹은 상속이 아니라 기부로 가치를 전할 건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녀들은 궁금해도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뭔가모르게 죄를 짖는 거 같아 조심스러울 건 뻔하고. 그럼에도 저자는 수성의 사고를 들어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니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152쪽, 부모 마음 따로, 자식 마음 따로
솔직히 뜻있는 일을 하고 싶은 수성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불편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우선은 평온하게 늙어가야 할 게 아닌가. 그러려면 자녀들과 적당한 거리 두기가 있어야 하는데 수성은 그런 거리 두기에 실패했고, 끊임없이 자녀들이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는 판에 장학사업을 고집하는 게 수성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나중에 편히 눈 감고 싶었다면 가화만사성이 먼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정자의 말처럼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이해되는 건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 했다면 부모는 부모고 자녀는 자녀의 남은 인생은 각자도생 하는 게 필요하다. 노후에는 좀 쉬자.
이 책은 청년기와 중장년기를 관통하는 주인공 수성의 인생사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돈의 가치, 상속의 중요성을 쉬우면서도 재밌게 풀어 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또 제목처럼 지혜롭게 형제의 난을 잠재울 유언장에 대한 조언도 다루고 있어 받기도, 주기도 해야 할 처지인 중년의 입장에서 많은 공감이 됐다. 상속에 대해서는 아주 유익한 경제 지침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특별부록은 꼭 읽길 권한다.
이 책은 상속에 대한 절세를 콕 집어 다루진 않지만 자녀에게 남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상속은 부모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가족 모두가 협의해야 할 일이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유언장은 꼭 필요하다는 조언은 피상속인이나 상속인 모두에게 유익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