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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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아메리칸 뷰티>로 중산층 가정의 위선을 까발리고 가정의 붕괴를 말하는 것에는 선수급으로 올라선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다. 원작 소설은 타임지가 뽑은 100대 영문소설에 뽑혔다네. 영화 보기 전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두껍길래-_-ㅋ 어쨌든 보긴 봐야겠더라. 영화 보고 나니까 소설에는 얼마나 상세하게 심리 묘사가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뉴욕의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게 된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단란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과 자신들을 짓누르는 위선적인 분위기에 질식할 것만 같다. 매일 매일  권태로움과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현실은 '레볼루셔너리' 하지 않았고 지루하다. 어느 날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에 남편이 파리야말로 다시 가고 싶은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파리에 가서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 역시 설득당한다. 두 사람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남편은 더 좋은 자리를 제안하는 사장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잉태된 셋째 아이 역시 이들 부부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파리에 가는 것이 좌절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그렇게 극적인 것도 없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의 심리가 아주 잔잔하게 묘사될 뿐이다. 그러나 힘있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었고 2시간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 없이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사랑의 종말과 가정의 붕괴를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음이 놀랍고 이래서 헐리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쓰레기같은 블록버스터도 만들지만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도 만들어지니 말이다. 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아직까지 이들 부부가 고민했던, 그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문제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결혼한 부부의 속사정은 정말 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멀쩡하게 잘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를 죽일 듯이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어찌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됐건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을 과장하는 편인데 그것은 타인들에게 보이기 위한 일종의 연극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도 부부는 조금씩 서로를 속이고 있고 다른 이들을 상대로 삶을 공연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런 연극을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익숙해지지만 아직 뜨거운 마음을 지닌 아내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편은 절대 아버지처럼 녹스사의 사원으로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문제 때문에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나 연극배우를 꿈꿨던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내는 현실적인 남편과 같은 것을 지향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은 종말을 맞는다.

어떻게 보면 아내는 재능 없는 연극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절망을 느꼈기 때문에 뜨거운 삶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은 가정 때문에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후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려 했는지 자체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모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했고, 아내는 남편이 가진 것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고 이상화했다. 하지만 남편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아내가 파리를 고집한 것은 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대로의 사람인지에 대한 기대감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 같다. 파리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녀는 어떻게든 허망한 결혼 생활을, 그리고 지지부진한 삶을 바꿔보고 싶었고 그래서 파리를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몸부림을 외면하고 만다. 사랑으로 잉태된 아기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높게 평가하지만 결혼 생활은 높게 끌어올렸던 상대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잔인한 여정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그런 기대를 했던 내 잘못인 거니까) 절망하고 결국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본래의 형태대로 남아 있지를 못한다. 결혼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괴상한 제도인 것이다. 희망없는 삶을 살아가려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연극할 수 없다면 떠나든가. 우리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당신은 이 희망없는 삶을 박차고 떠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작품이었다.

중반에 등장하는 꽤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박사 학위까지 있지만 정신병동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부동산 업자의 아들 존 기빙스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선택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을 때도 존은 그들의 선택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때는 존 만이 그들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정신병자만이 그들의 삶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 정말 무섭지 않나. 연극하며 사는 사람들은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삶이 연극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삶의 연극적 요소를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미치거나 죽는다.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고민하게 했다.   

내 결론은 이랬다. 다 내던지고 떠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연극도 괴로울 것 같으므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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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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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은 요즘 인기를 끌게 된 신인 여배우 하나를 목숨 걸고 키우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이다. 뭐 그래봤자 작은 사무실이고 키우는 애도 달랑 하나지만. 그런데 이게 웬일. 청순한 이미지로 잘나가기 시작한 여배우가 섹스 비디오를 찍었고 그 영상이 그의 폰으로 전송되어 온 것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그는 폰을 분실하게 된다. 그 때부터 목숨보다 소중한 핸드폰을 주웠다는 남자에게서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당신 와이프, 예쁜데?'

현대인에게 핸드폰은 프라이버시를 상징하는 거나 다름없다. 수많은 전화번호며 영상이며 사진이며... 단축번호나 컬러링, 액정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사람의 기호, 관심사 등등. 특히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사람은 더하다. 천정명이 예전에 드라마 촬영장에서 폰 잃어버린 것 때문에 날뛰었던 걸 보면 대강 짐작이 간다. 핸드폰에 자신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만큼 엄청난 것이 들었다면 더 그랬겠지. 핸드폰을 찾으려는 남자는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을 테고, 핸드폰을 습득한 남자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손에 쥔 파워를 즐기려고 할 것이다. 은근히 조여오는 스릴러 작품의 소재로 꽤 괜찮네, 싶었다. 초반엔 그랬다.

그런데 이야기는 점점 치정극으로 흘러간다. 휴대폰 습득자 박용우가 억눌려 있는 폭력 욕구를 핸드폰을 이용해서 채운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가 어느새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무릎팍 도사도 아닌데!! 박솔미와 그녀의 변호사 애인 얘기는 왜 자꾸 나오나 싶더니만 후반에는 엄태웅이 휴대폰에 목숨을 건 건 다른 이유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황당하다. 아내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니... 엄태웅같은 인물은 대놓고 찾아가서 까면 깠지 그렇게 처리할 인물이 아니다. 성질 보면 모르나. 그런데 일이 그런 식으로 됐다는 것도 웃기고 억지스럽다. 또 모든 일이 처리된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지는 건 뭔가. 모르긴 몰라도 뭐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작가나 감독이 계속 사족을 붙인 걸텐데 네버엔딩 스토리같은 느낌에 아주 짜증났다.

적어도 이 영화는 30분을 덜어냈어야 한다. 스릴러의 공식을 비껴가면서 지루함을 유발하려는 거면 성공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차례대로 정렬시키고 그 얘기와 특별하게 관계가 없다면 잘라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영화는 깔끔함의 미덕조차 없었다. 뻔하고 깔끔한 이야기보다 더 나쁜 건 황당하고 지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후자였다. 더군다나 뭘 말하려고 하는 작품인지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는 듯 했다. 계속 되지도 않는 반전을 주려고 노력하기만 했지 이야기의 짜임새는 허술했다. 대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게 뭐냐는 내 질문에 지인은 '핸드폰 때문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냐?' 한다. 아니, 그건 주제 차원이 아니고 소재 차원이지 않을까? 

두 남자의 연기는 나쁘지 않은 수준. 그러나 아사직전의 영화를 살리기엔 부족했다.  

* 또 하나 최악이었던 것은 음악. 엄태웅은 트로트를 즐겨 듣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든 BGM이 뽕삘이다. 일부러 그런 것일까? 일부러 그랬다면 판단 미스고 심사숙고해서 만든 곡이 그렇다면 음악 감독은.......
되게 진지한 장면에서 무슨 가라오케 반주 음악으로 나올 법한 음악이 흘러나와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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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 Dou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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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정말 간단하다. 심.플. 그 자체다. 1960년대의 카톨릭계 학교를 배경으로 진보적 성향의 신부, 보수적이며 엄격함 그 자체인 교장 수녀, 교육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순진한 제임스 수녀 이렇게 세 명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는 얘기다. 제임스 수녀는 유일한 흑인 학생인 도널드 밀러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는 플린 신부를 의심하게 된다. 아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플린 신부는 제임스 수녀와 교장 수녀 앞에서 단호하게 부인한다. 제임스 수녀는 의심을 풀고 그를 신뢰하게 되나 교장 수녀는 끝까지 그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한정된 장소, 한정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사건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웬만한 서사극들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복잡하다. 영화는 예배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플린 신부는 '의심은 믿음만큼이나 확신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인물들은 정말 유려하게 소개된다. 글씨체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볼펜을 싫어하는 교장 수녀는 학생들의 작은 잘못에도 지나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그녀는 '손톱이 긴' 진보주의적 성향의 신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부는 자신을 싫어하는 수녀에 대한 소심한 보복(?)으로 설교 시간의 주제를 '편협함'으로 잡는다.

이 영화는 끝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을 거부한다. 신부는 어떤 잘못을 했던 것일까? 그가 부장신부에게 고백했다는 죄는 무엇일까? 그는 소년과 부적절한 관계였을까 아닐까. 교장 수녀는 자신의 의심에 대해 확신이 있었을까? 그래서 그를 쫓아내려 한 것일까? 그렇다면 마지막의 눈물과 오열은 무엇일까? 손쉽게 답을 제시해주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끝까지 '의심'하게 하는 재주야말로 이 영화가 지닌 주제면의 다층성이다. 그래서 복잡하다.

신부가 설교 시간에 말했다시피 세상에 흩날리는 베개의 깃털같은 것이 바로 의심이다. 주워담을 수 없는 뒷담화들, 증폭되어 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타인에게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우스운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종교적인 믿음과 확신, 그리고 의심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어떤 진실에 대한 의심의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신부가 과연 그 아이와 부적절한 관계였느냐 아니냐 하는 (제기하는 문제에 비해서는) 작은 문제가 놓여 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 만큼이나 확신에 차 있는 것이며 사람에 대한 의심은 사람에 대한 믿음 만큼이나 확신에 차 있는 것이다. 번쩍거리는 안경 뒤에서 차갑게 빛나는 뱀의 눈을 지닌 교장 수녀처럼 우리는 '나는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육감과 보는 눈에 대한 확신으로 타인을 질식하게 한 적은 없었던가. 오랜만에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확신에 차 신부를 의심했던 교장 수녀는 자신의 결정에 의심을 품고 오열한다. 결국 우리는 의심과 확신을 오가는 복잡한 인간 존재로, 미완성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다면 의심할 수 없겠지만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기에 의심은 자라난다.

배우들의 호연을 빼놓고 영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이들의 연기가 후덜덜이다. 휴 잭맨의 말처럼 '운동선수였다면 스테로이드 검사를 받았을 법한' 능력의 소유자 메릴 스트립은 엄격한 질서를 상징하는,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교장 수녀를 연기한다. 그녀에게 대적하는 플린 신부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나온다. 그가 주연한 <카포티>를 아직 안봤는데 그가 메릴 스트립과 대립할 때 보이는 카리스마는 외모가 주는 '귀여움'을 무색하게 만들더군. 에이미 아담스 역시 대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순진하며 이상주의적인 수녀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은 문제의 흑인 소년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여배우인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가 진짜 놀라웠다. 

교장 수녀에게 아들의 비밀을 눈물로 고백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백인 학교의 단 한 명의 흑인 아들을 지닌 어머니로서의 고요한 투쟁과 모성, 두려움과 강인함이 교차한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구나, 이게 바로 위대한 연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중 적다고 궁시렁 거리는 배우들은 그녀를 보고 배울 지어다.

김혜자 주연의 연극으로도 나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감독은 존 패트릭 쉐인리로 <문스트럭>의 각본가이자 연극 <다우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작품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직접 각본을 썼고 연출도 맡았다. 재주도 많군하. <문스트럭>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연극과 어떤 면이 비슷하고 어떤 면이 다른지 비교해 보고 싶다. 연극에도 설탕 많이 넣은 차와 밋밋한 차가 등장하는지, 손톱 문제와 볼펜이 등장하는지 아닌지... 어쨌든 이 영화는 겉으로는 심플하지만 내면으로는 컴플렉스한, 겉과 속이 다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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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 The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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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롤라 런>의 감독 톰 튀크베어와 짐승과 수컷형 배우에 속하는 클라이브 오웬. 그리고 뒷받침해주는 여자 역할로는 꽤 적역인 나오미 와츠. 뭐가 더 필요한가? 재밌을 줄 알았지, 난. 세계적인 불황에도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은행이 있고 그 은행이 분쟁 지역에 무기를 팔고 테러를 조장하고 범죄 조직의 돈 세탁을 해 주고 있었다는 얘기도 흥미진진했으니까. 은행이 나쁜 놈이라니, 꽤 괜찮은 설정 아닌가. 어쨌든 돈이 들어가고 나오는 곳이니까 범죄 조직의 돈도 들어갈 것이고 액수만 크면야 은행에선 좋아라 할 것이니. 나름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곤한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졸음 유발 스릴러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또 보다 보니까 제이슨 본 시리즈랑 느낌이 비스무리한 부분도 있더라구. 뭐라고 딱 집어서 말은 못하겠지만 그냥 그렇다. 카메라의 흔들림도 그렇고 액션 장면의 차가운 느낌도 그렇고. 근데 재미는 진짜 없는 제이슨 본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ㅋㅋ

재미가 왜 없는지를 생각해 봤다. 은행과 범죄 조직의 결탁이라는 걸 너무너무 심하게 설명을 해대는 통에 지루했다는 게 1번 이유. 무슨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액션씬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 또 설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은행이 어떻게 해서 조직과 결탁했는지,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지를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냥 그렇다는 것만 간단하게 알려주고 드라마를 보여주란 말이야!! 드라마에 목말라 아무리 쳐다봐도 이 사람들은 계속 설명문을 쓰고 있으니. 중간에 10분 졸았다.

2번 이유는 캐릭터의 부재. 나오미 와츠는 뉴욕 검사인데 유부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은행을 조사하는 클라이브 오웬은 인터폴 형사다. 오웬은 누가 뭐라 해도 포기하지 않고 은행 조사에 집착한다. 영화 시작 초반 10분에 그의 동료가 죽어버리는 이유도 있지만 그는 은행을 조사하다가 인상 망칠 뻔한 안좋은 추억 때문에 더 포기할 수가 없다. 근데 오웬은 그냥 '은행 조사에 미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게 졸음을 유발한다. 드라마의 부재와 캐릭터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오미 와츠와 클라이브 오웬 사이에 '짐승스러운 그 무엇'이 아니라면 '인간적인 그 무엇'이라도 오간다면 좋을텐데 톰 튀크베어 감독은 사람 약올리는 데에 재미 들렸는지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떡밥도 던져주지 않고 쫑을 내버린다. 그것도 중간에 뚝 잘라 버리고 허무하게. 이게 뭐냐구. 두 사람이 끝까지 함께 뭐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당신 힘들까봐 걱정된다'면서 여자를 확 보내버린다. 뭐라도 쌓아놓고 보내든지 말든지 하지. 안타깝다. 두 사람 사이에 로맨스도 없어서 그것도 졸음 유발.

이 영화를 편집해서 간직할 수 있다면 딱 세 부분 갖고 싶다. 처음 10분의 긴박한 '접선'씬. 그리고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에서 벌어지는 정말 아름다운 액션씬. 와장창 유리들이 깨어지고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장면이 진짜 아름다웠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고 관객의 졸음을 깨게 해주기 위한 배려같이 느껴졌지만-_-ㅋ 마지막으로 클라이브 오웬이 양미간 찌푸리는 씬. 요렇게 세 부분 편집본 없나요?ㅋㅋㅋ 지적이면서도 강인한 수컷 느낌의 배우 오웬의 양미간에 내천자를 보는 순간 순간이 정말 황홀했다. 클로즈업 될 때마다 감탄. 그러나 후반 20분은 지나친 사족으로 잘라냈어야 한다고 생각함. 클라이막스가 이렇게도 지루할 줄이야.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문을 쓰긴 써야 하는데 지루했다는 얘기만 쓰게 될까봐 망설여졌다. 혹시 나만 이렇게 본 걸까 궁금해서 네이년을 검색했더니 평점도 낮고 그렇더군. 난 넘 괜찮게 봤던 <작전>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핸드폰>이랑 별볼일 없던 <마린 보이>랑 비슷한 평점이라서 네이년 관객 평점이 그럼 그렇지, 이랬는데 이건 또 내 생각이랑 비슷하게 나왔더라구. 그치만 5점 짜리 영화는 아닌데-_-ㅋ <핸드폰>보다 평점이 낮다는 건 말이 안 돼. 백상시상식보다 재미없었던 영화인데 말이다ㅎㅎ

결론은 그렇다. 튀크베어의 영상미조차도 지루한 네러티브를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것. 유머를 첨가하기 싫었다면 설명이라도 잘라내지. 이게 뭡니까. 나오미 와츠와 클라이브 오웬을 놓고 눈으로 오가는 정사씬이라도 넣었어야 되는 거 아냐?ㅋㅋㅋ 짐승 배우를 활용하지도 못하는 감독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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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 The Wres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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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입에 주먹 넣고 어깨춤을 들썩들썩 추면서 펑펑 울었다. 간만에 눈물을 흘려봤네. 이 영화가 걸작인가요? -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겠다. 걸작은 아니고 꽤 신파적이고 감상적이고 또 어떤 부분은 유치하기까지 한데 미키 루크의 등판만 보면, 미키 루크의 거친 숨소리만 들으면 그냥 눈물이 줄줄 나는 거였다. 마지막에 '슈웅'하는 그의 비상을 지켜보는데 이거 원 울지 않을 재간이 없는 거였다. 마지막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주제가까지 나오는데 이건 눈물 흘리라는 말이 아니고 뭐냐구ㅋㅋ '마음껏 울어요'라는 서비스?? 

영화 시작한 후 5분 정도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의 앞얼굴이 나오는 건 좀 지나서다. 체격은 지나칠 정도로 건장한 남자의 등. 그러나 노쇠한 그의 육체가 내는 경고의 신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의 보청기, 그의 안경, 그의 온 몸을 감아 놓은 밴드와 여기저기서 짤랑이는 소리를 내는 진통제 병들. 육체가 병들기 시작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사람은 화려했던 지난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추억이 버릇이 되는' 노인이 된다. 그러나 약물 중독처럼 레슬링에 중독된 이 할부지는 레슬링을 계속 하게 되면 죽는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그만둘 수가 없다.

예전에 <꼬마 아니발의 일곱가지 소원>이라는 청소년들을 위한 동화책 비슷한 걸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니발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나갔을 때만을 추억하며 산다'고 한다. 배구 선수였던 사람은 자기가 한참 배구 선수로 얼마나 잘나갔는지를 말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땐 나도 노인들의 추억담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왕년에 자기 잘나갔던 것만을 주절거리며 자기 잘나갔던 때를 추억하며 소일거리하는 노인들. Loser 느낌 팍팍 나지 않은가. 그러나 이젠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인간은 원래 그런 거다. 어린 것들은 모르는 유한한 삶에의 회한, 병들어가는 육체에 대한 야속함, 그러나 늙지 않는 마음... 과거를 추억하는 일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것은 그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삶의 고독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나를 기억할 만했던, 떠들썩하고 외롭지 않았던 그 때를 잊을 수 없는 거다.

다른 사람이 심장수술을 받은 레슬러 역할을 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키 루크의 사연 많은 얼굴, 한 때 <나인 하프 위크>같은 영화에서 사람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섹스 어필했던 남자가 성형 수술로 망가지고 퉁퉁 부어 화면에 클로즈업 될 때면 이렇게 배우와 배역의 싱크로율이 높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팍팍 드는 거지. 레슬러 '더 램'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하면서 날아오를 때 미키 루크 역시 '나 아직 연기할 수 있어'라며 날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였다. 잘나갈 때 괜히 복싱은 한다고 난리쳐서 얼굴은 얼굴대로 망가지고, 수술 몇 번에 또 망가지고, 애완견을 촬영 안해준다며 촬영장에서 뛰쳐나간 악동 할부지가 외로운 티 팍팍 내며 딸 찾아가고 스트립쇼 하는 아줌마 찾아가고 그럴 때 이건 뭐 사는 게 뭔가 싶고 그랬다. 인생 평탄했던 몇몇 배우들이 이런 역할 했으면 이 정도로 울리진 않았을 거다.

난 남동생 덕분에 헐크 호건이 나오는 레슬링 비디오 테이프는 거의 다 섭렵해야 했는데 알고 보니 레슬링이란 게 의외의 매력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게 '짜고 치는 고스톱' 느낌이 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틱했던 거였다. 꼭 한 쪽이 예쁨받으면 다른 쪽은 미움을 받으며 등장을 했다. 한참 예쁨받는 쪽이 이기다가 미움 받는 쪽이 반칙을 하면서 반전된다. 그러나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하던 예쁨받는 쪽이 나중에는 미움 받는 쪽을 힘겹게 이긴다. 로프를 튕기며 달려가거나 링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면 게임 끝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이겼다는 행복감을 느낀다. 이 모든 것에도 줄거리가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고 반칙을 해서 이긴다 해도 그걸 사람들이 내버려 둔다는 것도 의외로 큰 재미를 줬다. 반칙을 대놓고 허용하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였기에.

헐크 호건 세대(ㅋㅋ)로서 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아니면 고통?)도 있었다. 레슬러들의 세계를 충분히 조사하고 시작했을 법한 섬세한 시나리오 덕에 내가 봤던 장면들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싶었고 헐크 호건은 지금 뭐하고 있나 궁금해지기도 했다. 지금 K1이다 뭐다 나오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레슬링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짜고 치지만 그 안에 치열함이 있고 감동적인 스포츠들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스포츠로서의 모습과 끊임없이 자신을 고문해서 즐거움을 주는 사디스트들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그것은 한 때 복싱이 표현했던 인간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램과 비슷한 위치의 퇴물 스트리퍼인 캐시디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부분을 인용한 것도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 영화를 못 봤냐며 램에게 '몇 시간을 채찍질당하면서도 예수는 모든 것을 참아낸다'고 말한다. 램은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말한다. 그가 스템플러로 찍어대며, 깨진 유리에 상처가 나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치렀던 경기가 끝난 후 그녀를 찾아갔을 때의 대사다. 인간은 어찌보면 신에게 채찍질당하면서도 모든 것을 참아내며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신의 고문이 죽는 순간에야 끝나는 고통스러운 것이라 해도 우린 그걸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크고 작은 고문을 참아내며 끝까지 날아오르는 레슬러 '램'은 작은 예수가 아닐까. 이렇게 살아야만 우리는 신의 품에 안겼을 때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넓고 탄탄하지만 참으로 쓸쓸한 그의 등이, 그리고 그런 탄탄한 등과 어울리지 않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들이 참으로 애처롭고도 익숙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 쓸쓸한 등을 가진 노인이 되겠지 싶어서. 허나 신이시여. 저를 채찍질하세요. 끝까지 참아내겠습니다 - 레슬러 '더 램'도, 미키 루크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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