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정말 간단하다. 심.플. 그 자체다. 1960년대의 카톨릭계 학교를 배경으로 진보적 성향의 신부, 보수적이며 엄격함 그 자체인 교장 수녀, 교육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순진한 제임스 수녀 이렇게 세 명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는 얘기다. 제임스 수녀는 유일한 흑인 학생인 도널드 밀러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는 플린 신부를 의심하게 된다. 아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플린 신부는 제임스 수녀와 교장 수녀 앞에서 단호하게 부인한다. 제임스 수녀는 의심을 풀고 그를 신뢰하게 되나 교장 수녀는 끝까지 그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한정된 장소, 한정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사건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웬만한 서사극들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복잡하다. 영화는 예배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플린 신부는 '의심은 믿음만큼이나 확신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인물들은 정말 유려하게 소개된다. 글씨체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볼펜을 싫어하는 교장 수녀는 학생들의 작은 잘못에도 지나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그녀는 '손톱이 긴' 진보주의적 성향의 신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부는 자신을 싫어하는 수녀에 대한 소심한 보복(?)으로 설교 시간의 주제를 '편협함'으로 잡는다.
이 영화는 끝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을 거부한다. 신부는 어떤 잘못을 했던 것일까? 그가 부장신부에게 고백했다는 죄는 무엇일까? 그는 소년과 부적절한 관계였을까 아닐까. 교장 수녀는 자신의 의심에 대해 확신이 있었을까? 그래서 그를 쫓아내려 한 것일까? 그렇다면 마지막의 눈물과 오열은 무엇일까? 손쉽게 답을 제시해주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끝까지 '의심'하게 하는 재주야말로 이 영화가 지닌 주제면의 다층성이다. 그래서 복잡하다.
신부가 설교 시간에 말했다시피 세상에 흩날리는 베개의 깃털같은 것이 바로 의심이다. 주워담을 수 없는 뒷담화들, 증폭되어 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타인에게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우스운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종교적인 믿음과 확신, 그리고 의심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어떤 진실에 대한 의심의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신부가 과연 그 아이와 부적절한 관계였느냐 아니냐 하는 (제기하는 문제에 비해서는) 작은 문제가 놓여 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 만큼이나 확신에 차 있는 것이며 사람에 대한 의심은 사람에 대한 믿음 만큼이나 확신에 차 있는 것이다. 번쩍거리는 안경 뒤에서 차갑게 빛나는 뱀의 눈을 지닌 교장 수녀처럼 우리는 '나는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육감과 보는 눈에 대한 확신으로 타인을 질식하게 한 적은 없었던가. 오랜만에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확신에 차 신부를 의심했던 교장 수녀는 자신의 결정에 의심을 품고 오열한다. 결국 우리는 의심과 확신을 오가는 복잡한 인간 존재로, 미완성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다면 의심할 수 없겠지만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기에 의심은 자라난다.
배우들의 호연을 빼놓고 영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이들의 연기가 후덜덜이다. 휴 잭맨의 말처럼 '운동선수였다면 스테로이드 검사를 받았을 법한' 능력의 소유자 메릴 스트립은 엄격한 질서를 상징하는,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교장 수녀를 연기한다. 그녀에게 대적하는 플린 신부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나온다. 그가 주연한 <카포티>를 아직 안봤는데 그가 메릴 스트립과 대립할 때 보이는 카리스마는 외모가 주는 '귀여움'을 무색하게 만들더군. 에이미 아담스 역시 대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순진하며 이상주의적인 수녀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은 문제의 흑인 소년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여배우인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가 진짜 놀라웠다.
교장 수녀에게 아들의 비밀을 눈물로 고백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백인 학교의 단 한 명의 흑인 아들을 지닌 어머니로서의 고요한 투쟁과 모성, 두려움과 강인함이 교차한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구나, 이게 바로 위대한 연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중 적다고 궁시렁 거리는 배우들은 그녀를 보고 배울 지어다.
김혜자 주연의 연극으로도 나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감독은 존 패트릭 쉐인리로 <문스트럭>의 각본가이자 연극 <다우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작품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직접 각본을 썼고 연출도 맡았다. 재주도 많군하. <문스트럭>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연극과 어떤 면이 비슷하고 어떤 면이 다른지 비교해 보고 싶다. 연극에도 설탕 많이 넣은 차와 밋밋한 차가 등장하는지, 손톱 문제와 볼펜이 등장하는지 아닌지... 어쨌든 이 영화는 겉으로는 심플하지만 내면으로는 컴플렉스한, 겉과 속이 다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