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아메리칸 뷰티>로 중산층 가정의 위선을 까발리고 가정의 붕괴를 말하는 것에는 선수급으로 올라선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다. 원작 소설은 타임지가 뽑은 100대 영문소설에 뽑혔다네. 영화 보기 전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두껍길래-_-ㅋ 어쨌든 보긴 봐야겠더라. 영화 보고 나니까 소설에는 얼마나 상세하게 심리 묘사가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뉴욕의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게 된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단란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과 자신들을 짓누르는 위선적인 분위기에 질식할 것만 같다. 매일 매일  권태로움과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현실은 '레볼루셔너리' 하지 않았고 지루하다. 어느 날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에 남편이 파리야말로 다시 가고 싶은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파리에 가서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 역시 설득당한다. 두 사람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남편은 더 좋은 자리를 제안하는 사장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잉태된 셋째 아이 역시 이들 부부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파리에 가는 것이 좌절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그렇게 극적인 것도 없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의 심리가 아주 잔잔하게 묘사될 뿐이다. 그러나 힘있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었고 2시간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 없이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사랑의 종말과 가정의 붕괴를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음이 놀랍고 이래서 헐리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쓰레기같은 블록버스터도 만들지만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도 만들어지니 말이다. 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아직까지 이들 부부가 고민했던, 그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문제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결혼한 부부의 속사정은 정말 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멀쩡하게 잘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를 죽일 듯이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어찌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됐건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을 과장하는 편인데 그것은 타인들에게 보이기 위한 일종의 연극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도 부부는 조금씩 서로를 속이고 있고 다른 이들을 상대로 삶을 공연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런 연극을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익숙해지지만 아직 뜨거운 마음을 지닌 아내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편은 절대 아버지처럼 녹스사의 사원으로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문제 때문에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나 연극배우를 꿈꿨던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내는 현실적인 남편과 같은 것을 지향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은 종말을 맞는다.

어떻게 보면 아내는 재능 없는 연극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절망을 느꼈기 때문에 뜨거운 삶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은 가정 때문에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후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려 했는지 자체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모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했고, 아내는 남편이 가진 것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고 이상화했다. 하지만 남편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아내가 파리를 고집한 것은 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대로의 사람인지에 대한 기대감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 같다. 파리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녀는 어떻게든 허망한 결혼 생활을, 그리고 지지부진한 삶을 바꿔보고 싶었고 그래서 파리를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몸부림을 외면하고 만다. 사랑으로 잉태된 아기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높게 평가하지만 결혼 생활은 높게 끌어올렸던 상대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잔인한 여정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그런 기대를 했던 내 잘못인 거니까) 절망하고 결국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본래의 형태대로 남아 있지를 못한다. 결혼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괴상한 제도인 것이다. 희망없는 삶을 살아가려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연극할 수 없다면 떠나든가. 우리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당신은 이 희망없는 삶을 박차고 떠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작품이었다.

중반에 등장하는 꽤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박사 학위까지 있지만 정신병동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부동산 업자의 아들 존 기빙스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선택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을 때도 존은 그들의 선택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때는 존 만이 그들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정신병자만이 그들의 삶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 정말 무섭지 않나. 연극하며 사는 사람들은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삶이 연극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삶의 연극적 요소를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미치거나 죽는다.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고민하게 했다.   

내 결론은 이랬다. 다 내던지고 떠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연극도 괴로울 것 같으므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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