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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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배경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은 거대한 문명과 기술, 혹은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네이선 밸링루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 이미 멀어져버린 존재의 흔적, 사라진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지구가 침묵한 이후의 화성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한 소녀는 그 황량한 세계 한가운데에서 오히려 과거를 움켜쥔 채 앞으로 걸어간다. 모두가 짐을 덜어내며 생존하려 하는 동안, 그녀만이 버리지 못한 기억 하나를 품고 붉은 사막을 건넌다. 그래서 이 소설은 멸망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실은 인간 안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온기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작품 속 화성은 몹시 차갑다. 광물 ‘스트레인지’에 의해 뒤틀린 땅, 서로를 불신하는 개척민들, 폭력과 광기에 잠식된 세계. 그곳에서는 인간의 존엄조차 생존의 효율 앞에서 쉽게 소모된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누군가는 더 오래 버티기 위해 스스로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윤리와 다정함은 가장 먼저 버려지는 짐처럼 취급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완전히 비어버린 존재로 남지 못한다.살아남는 능력보다 누군가를 함부로 잊지 않는 마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면. 이 소설이 응시하는 것은 바로 그 연약하고 비효율적인 감정의 가치이다. 상실을 지워내는 대신 품고 살아가려는 태도는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방식이다.

실린더 속에 남겨진 것은 결국 몇 마디 음성과 오래전의 숨결뿐이다. 생존만을 생각한다면 이미 잃어버린 과거쯤은 포기하는 편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상할 정도로 사라진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오래전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사라진 체온을 마음속에 남겨둔다. 이미 돌아오지 않을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때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와 체온을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려낸다.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한 채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시간을 돌아본다. 그럼에도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증명해주는 마지막 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너벨이 실린더를 따라 나아가는 여정은 엄마를 찾기 위한 모험이라기보다, 폐허가 된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일부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래서 애도란 사라진 존재와 함께 무너져내린 자기 자신을 다시 붙드는 일에 가깝다.

화성의 밤은 다정하지 않고, 사람들은 쉽게 서로를 해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 위에 올라서야 한다. 소설은 그 잔혹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폭력에 익숙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애너벨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는 작은 온기는 더욱 선명해진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억하려는 마음, 폐허 속에서도 자신 안의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 멸망 이후의 세계를 견디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단 한 사람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우리는 타인을 기억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사랑했던 존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과거와 연결되지 못하고 끝없는 현재 속으로 추락해버린다. 기억은 붕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붙드는 정신의 마지막 구조물로 작동한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레이 브래드버리 특유의 서정성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인간적인 SF 감각을 함께 품고 있으면서도, 결국 자신만의 외로운 빛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붉은 먼지와 침묵으로 가득한 화성의 풍경 속에는 이상하리만치 푸른 감정이 스며 있다. 그것은 상실 이후에도 식지 않는 마음의 색이다. 세상이 궤도에서 이탈해 어두운 방향으로 돌진하더라도, 인간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한다. 사랑했던 존재의 흔적 하나를 품은 채 메마른 세계를 걸어간다. 그 느린 걸음 끝에서 인간은 무엇을 잃더라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인간은 망각을 통해 살아남는 대신, 기억을 끌어안은 채 천천히 붕괴하는 길을 선택하는 생명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단순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를 찾는 독자보다, 상실 이후에도 오래 과거를 되짚어본 적 있는 사람에게 더 깊게 와닿을 것이다. 이미 사라진 존재의 목소리를 마음속 어딘가에 보관한 채 살아가는 사람, 인간다움이란 결국 무엇으로 증명되는지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우주 개척과 생존이라는 거대한 외피 아래 기억과 애도, 그리고 인간다움의 잔존 가능성을 천천히 해부하는 작품이다. 레이 브래드버리 특유의 서정성과 고독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정취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붉은 먼지로 뒤덮인 화성의 풍경 속에서 낯설 만큼 서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폐허와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에서도 인간이 왜 끝내 다정함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묻는다.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 세계에서조차 누군가의 흔적 하나를 품고 걸어가는 존재들. 그 느리고 고독한 궤적은 오래도록 독자의 내면을 공전할 것이다.

✏️도서출판 문학수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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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피플
앨리슨 에스파흐 지음, 김보람 옮김 / 북로망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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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위해 호텔 전체를 빌리고, 누군가는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그 기묘한 충돌에서 시작되는 소설, 『웨딩 피플』. 결혼식이라는 공간은 원래도 이상한 장소이다. 사람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연습한다. 사랑과 축복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흐르고, 그 하루를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과 감정이 소비된다. 현대의 결혼식은 사랑의 의식이라기보다, ’잘 살아온 인생’을 증명하기 위한 전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완성되는 행복. 흠 없는 미소와 정돈된 감정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본래 그렇게 매끈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슬픔과 불안, 후회와 공허는 언제나 보기 좋은 장면 바깥으로 밀려난다. 앨리슨 에스파흐는 그 눈부신 무대 한가운데에 죽음을 품은 여자를 들여보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오래 자기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피비와 라일라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닮아 있다. 한 사람은 삶이 완전히 무너진 끝에서 호텔에 도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완벽한 결혼식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애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타인에게 보여줄 얼굴을 연기하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피비는 오랫동안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상실을 삼켜왔고, 라일라는 완벽한 신부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불안을 외면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솔직해지는 순간이 언제나 실패 직전이라는 사실이다. 무너질 듯 흔들리는 순간에야 사람들은 겨우 진심을 입 밖으로 꺼낸다. 인간은 안정 속에서는 쉽게 자신을 숨길 수 있다. 사회는 오래전부터 슬픔보다 단정함을, 혼란보다 명랑함을 요구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감정은 억눌렀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못한 감정은 몸 어딘가에 침전된 채 인간을 천천히 잠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웨딩 피플』은 무너짐에 대한 소설인 동시에, 자신에게조차 숨겨왔던 감정을 가까스로 직면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웨딩 피플』은 우울을 다루면서도 조금도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놀라울 만큼 우습고 사랑스럽다. 삶은 거창한 희망이나 숭고한 의지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때로 인간을 붙잡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대화 한마디, 예상치 못한 친절,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시원한 바닷물처럼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피비가 다시 살아가고 싶어지는 과정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이상하게 현실적이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타인의 체온이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무르며, 조금씩 죽음에서 멀어질 뿐이다. 햇빛이 피부에 닿는 순간, 누군가와 동시에 웃어버린 짧은 찰나, 예상 밖의 다정함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밤. 살아간다는 감각은 대개 그런 장면들 속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유머는 단순한 분위기 환기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아주 연약한 구조물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상처는 극복의 서사로 소비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얼마나 쉽게 외로워지고, 또 얼마나 우연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결혼식이라는 공간을 통해 행복해 보이는 삶의 허상을 들춰내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축제의 중심에서 가장 공허한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해가는 모습은 묘하게 현대적인 슬픔처럼 느껴진다. SNS 속 완벽한 하루들, 보기 좋게 다듬어진 감정들, 무너지지 않은 척 애쓰는 얼굴들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와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세계 속에서 오히려 서툴고 망가진 감정들이야말로 사람을 진짜 사람답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역시 거창한 공감 능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초라함을 목격하고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일, 설명되지 않는 슬픔을 함부로 정리하려 들지 않는 태도에서 관계는 천천히 만들어진다. 이 소설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살아간다는 일은 결국 거대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보다, 하루를 조금 더 견뎌보게 만드는 작고 하찮은 이유들로 이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조차 직접 건네지 않으면서, 이상할 만큼 사람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소설. 누군가의 축제와 누군가의 절망이 우연히 같은 장소에 머물렀던 그 일주일은, 어쩌면 살아 있다는 감각 역시 타인과의 불완전한 접촉 속에서 가까스로 이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흔들리고,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진다. 그럼에도 완전히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시선, 목소리, 웃음, 어설픈 친절 하나가 예상치 못한 순간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놓는다. 『웨딩 피플』은 바로 그 연약하고도 희미한 연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앨리슨 에스파흐는 이 책에서 삶이 완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생각보다 자주 흔들리고, 예상보다 쉽게 외로워진다는 사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사람은 끝내 타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시선 하나, 어설픈 농담 한마디, 우연히 함께 웃어버린 순간 같은 것들이 삶을 아주 조금씩 다음 날로 밀어낸다는 사실. 그래서 이 소설은 거창한 위로보다 더 오래 곁에 남는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 뒤에서 조용히 지쳐 있던 사람, 오래도록 괜찮은 척 살아오느라 자기 감정을 외면해왔던 사람, 관계의 끝에서 삶 전체가 무너진 듯한 감각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작품이다. 또한 우울과 상실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는 소설, 웃음과 슬픔이 기묘하게 뒤섞인 인간 군상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오래 기억될 이야기이다. 아마 사실 이 책은 모두에게 자신의 마음 어딘가를 천천히 건드리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도서 및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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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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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가장 처절한 결핍의 언어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원한다는 마음은 결국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고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자주 타인을 붙잡고 자신의 공허를 연명하는지를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문장 곳곳에는 애틋함보다 허기가 짙게 배어 있다. 애정을 말하는데도 어딘가 쓸쓸하고, 다정을 이야기하는데도 오래 굶주린 사람의 체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위가 실은 상대를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무너지는 자신을 붙들기 위한 몸짓처럼 읽히는 순간들도 많다. 그 마음은 때때로 지나치게 처연하고, 또 지나치게 솔직하다.

책은 계속해서 상처와 외로움, 관계의 폐허를 맴돈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사람은 상대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겨우 유지되던 자기 자신까지 함께 잃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별은 단순한 작별이 아닌, 스스로를 지탱하던 세계의 붕괴처럼 다가온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타인을 얻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존재가 버려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사랑은 낭만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워 보인다. 인간은 누군가의 애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이 세계에 받아들여졌다고 느끼는 연약한 생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다정 속에 자신을 잠시 맡겨 두지 않으면 금세 흔들리고 마는 마음들. 상대를 사랑한다는 말 속에 사실은 “부디 나를 혼자 두지 말아 달라”는 절박함이 숨어 있는 순간들.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는가. 사람은 타인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 사람을 통해 구원받고 싶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외로운 사람은 자신을 안아줄 존재를 찾고, 불안한 사람은 끝까지 곁에 남아줄 존재를 갈망한다. 결국 사랑은 상대를 향하는 감정보다도, 자기 결핍을 메우기 위한 본능에 가까워질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그를 통해 완성되고 싶은 자기 환상에 더 매혹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관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서로에게 기대어 무너지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누군가를 구원이라 부르지만, 사실 인간은 타인을 구원할 만큼 단단한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제 상처를 끌어안은 채 비틀거리며 삶을 통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시 사랑을 믿는다. 그 사실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기이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고 상처 입고, 몇 번이고 버려지고,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처럼 무너져 놓고도 결국 또 누군가의 체온을 찾아 헤맨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기보다, 자기 외로움을 혼자 견디지 못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랑은 행복만을 위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공포를 견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계는 자꾸 반복된다. 같은 상처를 되풀이하면서도,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믿으면서. 때로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랑을 붙잡고 늘어지지만, 바로 그 구질구질함 속에 인간 본연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약하고, 훨씬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원하는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는 대개 깊고 오래된 고독이 가라앉아 있다. 『구원에게』는 그 고독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 초라하고 서툰 모습 그대로 끌어안는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통해 자기 삶의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타인은 결코 한 사람의 결핍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완전한 충만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결핍과 갈망 사이를 왕복한다. 읽고 나면 거창한 위로나 희망보다는, 인간의 연약함만이 오래 남는다. 사랑은 사람을 완벽히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잠시 붙들어 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잠깐의 온기를 위해 평생 서로를 찾아 헤맨다.

사람은 흔히 사랑을 행복의 감정으로 기억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기 고독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생존 방식인지도 모른다. 『구원에게』는 그 사실을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문장으로 들춰낸다. 누군가를 붙잡는 마음이 실은 무너지는 자신을 간신히 지탱하기 위한 몸짓이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문장들은 꽤 깊은 곳까지 스며들 것이다. 관계가 끝난 뒤에도 오래 자기 자신을 폐허처럼 들여다본 적 있는 사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지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정과 애틋함보다 결핍과 고독의 체온이 짙게 남아 있는 책. 그리고 그 구질구질한 감정 속에서 오히려 인간이라는 생물의 가장 솔직한 얼굴을 발견하게 만드는 산문.

✏️도서출판 부크럼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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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없는 불안 - 2024 부커상 수상 작가 서맨사 하비 에세이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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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대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때조차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흔히 불안을 원인과 결과로 정리하려 한다. 무엇이 두려운지, 왜 흔들리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내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 속의 불안은 너무 흐릿해서 형태를 붙일 수조차 없고, 너무 오래 몸 안에 머물러 있어서 끝내 타인에게 설명되지 않는다. 과거를 끝없이 곱씹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마저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각.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서서히 잠식하는 어떤 흐린 기류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안정을 얻지만, 불안은 그 이해의 감각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 책은 불면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점점 낯선 존재로 변해가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처럼 읽힌다.

서맨사 하비는 자신의 불안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의심하고, 언어화한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천천히 손을 넣어보듯이. 그래서 이 책은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라기보다,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슬픔과 불안을 공유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감정은 언제나 각자의 몸 안에서 전혀 다른 농도로 침잠한다. 이해란 낯섦을 조금 덜어낼 뿐, 그 감각 자체를 온전히 공유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언어는 감정을 완전히 번역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인간은 자기 내부의 감각을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말하고 기록한다. 어쩌면 글쓰기란 이해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간신히 붙들어두기 위한 행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불면 또한 단순한 수면의 결핍으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은 원래 망각과 단절을 통해 스스로를 유지한다. 잠은 하루 동안 축적된 감각과 사유를 잠시 중단시키며 자아를 봉합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은 그 중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의식은 끝없이 연장되고, 사고는 자기 자신을 과잉 반복하며, 인간은 쉼 없이 자기 내부를 배회하게 된다. 그래서 불면의 밤에는 사소한 기억 하나조차 비정상적으로 증폭된다. 낮에는 지나칠 수 있었던 감정들이 새벽에는 존재 전체를 잠식하는 질문으로 변한다. 잠들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자기 존재를 과잉으로 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잉의 끝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세계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인지도 모른다. 불면의 밤은 인간이 스스로를 하나의 안정된 존재라고 믿어온 감각을 천천히 해체한다.

불안은 세계가 두려워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시작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잠갔는지 다시 확인하는 순간에도, 지나간 대화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순간에도, 사실 인간은 세상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의심한다. 그래서 불안은 사람을 가장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자기 내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자기 안에도 끝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 역시 바로 그 낯선 내면의 풍경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불안은 그 믿음조차 얼마나 위태로운 착각이었는지를 드러낸다. 불안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흔들림처럼 보인다.

우리는 평생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조차 낯설어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흔들림 속에서 몇 번이고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사람은 언어를 통해 계속 스스로를 더듬는다. 서맨사 하비 역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가장 불안정한 밤들 속에서도 계속 글을 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어떤 내면은 문장 바깥에 남는다. 그래서 어떤 감정들은 설명되는 순간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오래 몸 안에 머문다.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만이 가진 가장 처절한 생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남겨진 서맨사 하비의 기록이자, 결국 우리의 기록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해 자꾸만 과거를 되짚어보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인간의 의식과 언어, 자기 존재의 불완전성 같은 주제에 오래 매혹되어 온 사람. 그리고 문학이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인간 내면의 가장 불안정한 층위를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깊게 남을 책이다. 『형태 없는 불안』은 감정을 쉽게 정리하거나 치유의 언어로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왜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지, 왜 언어는 언제나 가장 본질적인 감각 앞에서 조금씩 실패하는지를 집요할 만큼 오래 응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가볍게 위로하기보다는, 이해되지 않는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인간 존재의 본질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불안은 끝내 이름 붙여지지 못한 채 오래 몸 안에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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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시절
양솽쯔 지음, 문현선 옮김 / 마티스블루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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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라는 시간을 떠올리면 한국인에게는 대개 선명한 방향의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빼앗긴 역사와 언어, 강제로 지워진 이름들. 그래서 양솽쯔의 『꽃 피는 시절』을 펼쳤을 때에도 어쩌면 비슷한 정서를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이 보여주는 타이완의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흐릿하다. 이곳의 사람들은 일본 제국을 단순히 증오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그리워하지도 못한다. 식민의 기억 위에 또 다른 폭력이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통치가 끝난 뒤 이어진 국민당 정권의 학살과 계엄은 타이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침묵을 강요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 시간은 끝난 과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해석되지 못한 채 현재 안에 가라앉아 있는 감정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타임슬립은 흔한 회귀 판타지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체험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식민지의 언어를 배우고,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시대가 정해놓은 역할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쉐쯔는 점점 깨닫게 된다. 인간은 시대를 완전히 벗어난 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지만, 무엇을 잃지 않을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인간의 언어를 바꾸고, 식탁을 바꾸고,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며 존재의 형태까지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감각이다. 시대는 인간의 삶을 규정할 수는 있어도,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감각까지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한다.

낯선 타이완 음식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들을 읽는 것만으로 낯선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인간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물질이 아닌 듯하다. 어떤 국물의 냄새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불러오고, 한 입의 맛은 이미 사라진 사람을 다시 식탁 앞으로 데려온다. 식민지 시대처럼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짓고, 누군가를 위해 국을 끓이고, 계절의 맛을 기억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언어보다 먼저 맛으로 세계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음식들은 단순한 생활 묘사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으려는 삶의 흔적과도 같다. 역사가 한 나라의 이름을 바꾸려 할 때조차, 사람들은 혀끝에 남은 기억으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거대한 이념보다도 반복되는 일상의 감각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이들은 혁명을 일으키지도, 시대를 뒤집지도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조용히 받아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작고 사소한 행위들이야말로 무너지는 시대를 버티게 만드는 힘처럼 느껴진다. 역사책은 흔히 전쟁과 권력, 영웅의 이름을 기록하지만, 인간의 삶을 실제로 지탱해온 것은 어쩌면 이런 존재들이 아니었을까. 꽃은 가장 찬란한 순간에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를 견디고, 계절을 통과하고, 다시 피어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포함해 비로소 꽃이라 불린다. 이 소설의 여성들 역시 그렇다.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저항이 아니라,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단순히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피고 지는 과정을 견뎌낸 시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양솽쯔는 이 작품을 통해 타이완의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현재로 끌고 온다. 인간은 폭력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사랑과 상처가 동시에 남아 있는 과거를 어떤 언어로 껴안을 수 있는가. 어쩌면 인간은 과거를 극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기억조차 삶의 일부로 품어안으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인간 내부에 남아, 이후의 삶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자신으로 피어나게 되었는가.

이 책은 과거를 명확히 정리해주는 소설이라기보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내부를 오래 헤매게 만드는 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낯선 타이완의 역사 이야기로 읽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미 오래전 자신의 안에 침전되어 있던 상실과 그리움을 건드리는 기록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시간을 지나치지만, 어떤 시대는 사라지지 않은 채 이후의 삶 전체를 흔들어놓는다. 『꽃 피는 시절』은 바로 그런 기억의 잔향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모두 견뎌낸 끝에 비로소 한 송이의 꽃이 된다. 지금 자신의 삶 또한 어떤 계절을 지나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도서출판 마티스블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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